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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2권(30화)
Part 2.배우냐, 국왕이냐(3)
“전하 모시고 왔습니다!”
“오오……. 반갑소이다! 나로 말하면 마토스 왕국의 국왕 투르펜이라고 하오!”
“…….”
중년인을 따라 방 안에 들어서자 그 개폼 젊은이는 다시 국왕 행세를 시작했고 나는 떨떠름해졌다.
이게 뭐야? 당신들 국왕 놀이하는데 나를 초대한 거냐?
잉? 아니, 근데 국왕 옆의 저 할배 눈탱이도 밤탱이네? 그러고 보니 멀쩡한 사람은 저 개폼 젊은이하고 저 소년뿐인데……. 설마 저 꼬맹이가 저렇게 한 건가?
에이, 아무려면 저 새파란 녀석이 어른들을 그렇게 했을까 싶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소년의 눈이 야릇하게 빛났다.
웃! 아깐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 이거 장난 아니게 미소년이네.
열서너살 쯤 먹어 보이는 소년인데 피부도 뽀얗고 둥글고 큰 눈망울에 오똑한 코, 갸름한 턱선 하며 웬만한 소녀들이 한눈에 뻑 갈 정도의 미소년이다.
근데 날 보는 눈이 어째 촉촉하니 야릇한 거 같네? 내 착각인가?
아마 착각이겠지.
흠, 이것 참 나도 왕자 바이러스에 꽤나 침식당하고 있구만. 저런 어린 소년이 날 사모하는 눈빛을 던지는 게 아닌가 생각하다니……. 어허허허허헛!
“아까 우리 일행에게 보여 주신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호의? 무슨 호의?”
“병사들의 대장이 우리 일행에 대해 이상한 생각을 하자 도리어 우리를 화제로 삼아서 그 의심을 일거에 지워 주셨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았다면 그 대장은 분명히 국왕 전하와 우리를 체포해서 심문했겠죠. 그리고 정체를 알아냈을 것입니다.”
음……. 거 말 되네.
내가 ‘쟤들이 마토스 국왕 일당이라고 주인장이 그러더라구요. 되게 웃기죠? 푸하하하하!’라고 한 덕분에 도리어 그 대장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의심을 풀었다는 거로군.
뭐 그럴지도…….
가만있어 보자. 그럼 지금 당신들이 진짜 마토스 국왕 일당이라는 소리냐? 아니, 이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연기를 하고 자빠졌냐?
“전하를 모시는 우리들에 대해 소개를 올리겠습니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마토스 왕실의 시종장 조핀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분은 궁정 마법사 챈들러 님이시고, 이분께선 친위기사단 기사단장인 폴크 경이십니다.”
“…….”
나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이거 전혀 농담이나 연기하는 분위기가 아닌데?
그렇다면 개폼 젊은이는 국왕, 할배는 궁정 마법사, 중년인은 친위기사단 기사단장이라면, 그 허풍쟁이 주인장의 말이 사실이란 건가!
이 사람들이 정말로 마토스 왕국의 국왕과 그 수행원들이라는 거냐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꼬맹이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가만 보니 아직도 믿지 못하시는 것 같군요. 하지만 정말로 마토스 왕국의 국왕 전하이시고 우리는 그 수행원들입니다. 황당하실지 몰라도 원래 현실은 소설 이상으로 황당한 일이 벌어지는 곳이랍니다.”
“그런가? 나는 우영이라고 한다. 근데 국왕 전하께선 왜 저를 보자고 하신 겁니까? 가뎀 왕국의 추적을 피하느라고 경황이 없으실 텐데요. 그리고 저도 바쁜 몸이고 말이죠.”
난 은근히 튕겼다. 이 사람들이 정말로 국왕과 그 수행원들인지 100% 믿기 어려워서 말이지.
그러자 매우 국왕틱한 자세로 앉아 있던 투르펜이 소년…… 아니, 시종장에게 눈짓을 했고 시종장은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국왕 전하께서 우영 님에게 전하는 성의의 표시입니다. 꼭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으니 맡아 주십사 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아니, 뭐 그런 것을……. 이러시면 안 됩니다!”
나는 은근히 외면하는 척 고개를 돌리면서 슬쩍 상자 뚜껑을 열어 보았다. 그리고 안 보는 척 옆눈으로 상자 안을 예리하게 훑어보았다.
푸르고 영롱한 빛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꿀꺽!
상자 안에 든 것은 보석이었다. 주먹 반 개 크기의 보석이었는데 영롱한 푸른빛을 신비스럽게 발하고 있었다. 모양은 투박한 게 아직 세공하지 않은 원석 상태의 것으로 보였다.
나는 감정 스킬을 발휘해서 확인해 보았다. 다행히 나의 형편없는 감정 수준으로도 파악이 되었다.
바다의 정령의 오팔
바다의 정령이 한숨을 토해 내어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는 보석! 신비로운 푸른빛을 발하는 오팔이다. 바다의 정령의 오팔처럼 푸르다는 말은 대륙의 북쪽 지역에서는 아름다운 눈을 가진 사람을 칭찬할 때 쓰이는 말이기도 하다.
옵션 : 지니고 있으면 피부에 윤기가 흐르며, 전신에서 상쾌하고 청량한 기운을 뿜어낸다.
무게 : 5
가격 : 300골드
허억……. 아직 제대로 세공하지도 않은 보석이 300골드면 보석상에 맡겨서 정교하게 다듬으면 600골드도 넘는다는 소리 아냐?
내 가슴이 쿵쾅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심봤다!
이젠 틀림없다. 이 사람들은 진짜 마토스 왕국의 국왕과 수행원들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비싼 보석을 이렇게 쉽게 줄 수 있을 리가 없지.
“음……. 연극하시는 게 아니셨군요.”
“연극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아니, 그건 신경 쓰지 마시고 계속 말씀하시죠? 저에게 부탁하실 일은 어떤 겁니까?”
“간단하오. 여기 우리 시종장 조핀을 암흑제국의 황제에게 보내 주면 되는 것이오.”
“음…….”
대충 알 만하네. 이를테면 밀사를 보내는 거겠지. 나라가 망할 지경이니 뭔가 암흑제국의 힘을 빌려 달라는 밀사로 조핀을 보내려는 게 틀림없다.
“저, 근데 암흑제국에 밀사로 보내기에는 저 소년은 너무 어리지 않습니까?”
“헉! 조핀을 밀사로 보내는 건 줄 어떻게 알았소!”
“…….”
투르펜은 놀라서 입을 쩍 벌렸다.
근데 내가 더 황당하구만.
“아니, 저……. 국왕 전하. 지금 마토스 국 상황에서 전하의 수행원을 암흑제국에 보낸다면 밀사일 게 뻔하잖습니까. 이 판국에 친선 사절을 보낼 리는 없잖느냐구요?”
“오오……. 우영, 그대는 정말 명석한 두뇌를 가졌구려. 이번 임무를 부탁하기에 조금도 어려움이 없겠군 그래.”
거듭 경탄을 금치 못하는 국왕 투르펜을 보고 있으려니 내가 더 한심해지려고 한다. 그 정도 추리는 초딩이래도 하겠구만 명석한 두뇌라니…….
그때 중년인…… 아니, 기사단장 폴크가 눈탱이를 어루만지며 설명을 했다.
“저……. 사실 우리 조핀 시종장은 소년이 아닙니다. 과거에 나이를 거꾸로 먹는 저주 마법에 걸려서 저런 상태가 된 거죠. 국왕 전하를 습격한 흑마법사를 물리치다가 당한 불상사였는데……. 사실은 마흔다섯 살이랍니다. 저보다 더 연상이시죠.”
허걱!
저 티 없이 맑고 천진한 동안의 미소년이 마흔이 훌쩍 넘은 아저씨라고?
내가 어이없어 하자 조핀은 빙긋 미소 지었다.
“사력을 다해서 저주 마법을 막지 않았더라면 아마 갓난아이가 되었다가 끝내는 존재 자체가 소멸되었을 겁니다. 운이 좋아서 열네 살까지 신체가 변한 상태에서 마법을 중지시킬 수가 있었죠.”
거참, 신기하군. 그런 마법도 있었다니. 내가 한 예순 살쯤 먹었을 때 그런 저주 한번 당해 봤으면 좋겠다. 아, 물론 나도 10대 후반 정도에서 그 마법을 중지시킬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말이지.
“어쨌거나 우리 마토스 왕국은 가뎀 왕국에 점령당했지만 절대로 굴복하지 않을 거요. 국왕인 내가 건재하는 한 나라는 언제든지 되찾을 수 있소!”
투르펜은 탁자를 내리치며 결연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자 궁정 마법사와 기사단장, 시종장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나라를 되찾든 안 찾든 그건 지금의 나하곤 별 상관이 없는 문젠데…….
“다 좋은데요. 근데 굳이 제가 시종장을 호위해서 암흑제국까지 모실 필요가 있을까요? 두 분께서 직접 하셔도 되지 않습니까?”
내가 의문을 표시하자 기사단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안 될 말이오. 나와 챈들러 경은 전하를 지켜야 하니 따로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전하께서는 보시는 것처럼 국왕이신 걸 온몸으로 드러내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건 그러네. 혼자 놔뒀가는 또 어느 길거리에서 개폼 잡으면서 ‘오! 나의 마토스 왕국이 어쩌다가 패망의 길을 걸었단 말인가. 이게 짐의 잘못인가 신의 얄궂은 장난인가!’라고 주절거릴 게 뻔하고 그럼 체포되는 건 순식간일 거다. 사람들이 어느 극단의 배우라고 오해해 주는 것도 한두 번일 테니 말이지.
“국왕 전하께서 평민처럼 하고 다니시면 아무 문제없지 않을까요?”
내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궁정 마법사와 기사단장은 거의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불가능합니다. 하도 어릴 적부터 제왕 수업을 받아 와서 왕처럼 말씀하시고 걷고 식사를 하며 말을 타고, 심지어 용변을 보시는 것조차도 왕답게 하는 게 워낙 몸에 배셔서 말이죠. 왕이 아닌 방법으로 행동하는 게 어떤 건지를 전혀 모르시는 분입니다. 즉 말 한마디 손짓 발짓 하나하나까지도 왕답게 하시는 게 완전히 몸에 배어서 평민처럼 행동하다는 게 불가능하니까요.”
끙……. 이해가 된다.
일부러 저러는 게 아니고 저 오버스러운 게, 왕 자신으로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이라는 거군.
어쨌거나 이것도 퀘스트 요청이겠지?
그럼 이쯤해서 창이 떠야 할 텐데…….
아니나 다를까.
띠리링!
음향과 함께 퀘스트 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 마토스 왕국의 시종장 조핀을 암흑제국 황제와 만나게 해 주어라!-
가뎀 왕국에 점령당한 마토스 왕국의 국왕 투르펜은 시종장 조핀을 암흑제국 황제에게 보내 나라를 되찾을 응원군을 청할 작정이다. 당신은 조핀을 무사히 보호해서 암흑제국 황제와 만나게 해 주어야 한다.
기한 : 3개월
보상 1 : 마토스 국왕 투르펜과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
보상 2 : 가뎀 왕국의 수호기사 자격이 주어진다.
보상 3 : ??
페널티 : 성공할 시에는 가뎀 왕국과 적대 관계 성립
충고 : 한 나라의 운명이 왔다 갔다 하는 일이다. 임무를 완수하면 대박이겠다만 실패하면 상당히 황당한 꼴이 될 테니 니가 알아서 하세요다.
퀘스트 등급 : 1급
으음…….
퀘스트 등급 1급으로 난이도가 상당히 높은 퀘스트로군. 성공하면 대박이고 실패하면 상당히 황당할 거라고?
아마 게임을 다시 원점에서 시작하는 거나 다름없는 페널티가 주어질 거란 소리겠지?
쩝, 이걸 어쩐다……. 포기하자니 아깝고, 그렇다고 재경이를 구해야 하는 중차대한 임무를 망각하고 이 임무를 먼저 할 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