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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2권(32화)
Part 3.무적의 시종장!(2)


“근데 우영 형님의 몰골이 어째 저러냐? 어쩐지 한 달쯤 잠 못 자고 밤샌 사람 같지 않냐?”
“흥! 힘든 게 당연하지. 쉬익! 새벽까지 우리들 방에 뛰어드느라고 잠 안 자고 밤을 다 보냈으니까. 쉬익!”
“아무리 평민스러워도 그렇지. 주제에 야밤에 뛰어들어 나를 겁탈하려고 해? 흥! 꿈도 크지.”
“…….”
앞에서 걸어가는 세 녀석, 아니 두 녀석과 한 마리가 날 씹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대꾸할 기력도 없었다.
지금 내 몰골은 지치고 피로에 찌들어 좀비하고 별 차이 없고, 얼굴에는 이사도라의 손톱이 만든 오선지가 그려져 있다.
밤에 쫓아낸 조핀이 다시 들어와서 내 품에 안겨 자는 걸 발견하길 다섯 번이 더 있었던 거다. 그래서 아예 문에 자물쇠까지 채우고 잤는데도 이 변태 중년인은 무슨 수를 썼는지 내 침대로 기어들어 온 거였다.
그쯤 되자 조핀이 내 방에 침입하는 걸 막기를 포기하고 아예 다른 파티원 방에 가서 자려고 했다. 근데 이것들이 하나같이 나를 박대할 줄이야.
“훗! 저는 남자하고 같이 자는 취미는 없다고 말씀 드렸을 텐데요?”
“쉬익! 난 우영, 너처럼 비위생적인 인간하고는 한 침대 못 쓴다. 쉬익! 바닥에서 자겠다고? 그것도 싫으니까 꺼져라. 쉬익!”
다쓰와 란슬링 두 녀석이 이따구 소리를 하며 날 쫓아내길래 나중에는 이사도라 방까지 들어갔다. 침대 밑에서라도 자려고 말이지.
근데 자고 있는 줄 알았던 이사도라는 귀신같이 내가 들어온걸 알고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소리를 지르며 악을 써 댔다.
평민 나부랭이 주제에 건방지게 귀족인 자기를 겁탈하려 한대나 어쩐대나…….
내 얼굴에 지 손톱자국을 가득 내면서 말이지.
황당한 건 그 직후에 창이 떠올랐는데 그 내용이 이랬다.

당신이 보여 준 뜨거운 관심 때문에 이사도라와의 친밀도가 상승했다!

젠장! 관심은 얼어죽을!
두 번 관심을 보여 줬다간 내 볼따구니가 찢겨진 종잇장처럼 될까 겁난다.
어쨌건 그 소동을 치르면서 난 한숨도 못 잤고, 세 녀석은 나를 변태로 낙인찍었던 거다.
이게 다 저기 맨 앞에서 걷고 있는 저 진짜 변태 때문이다. 변태 중년 같으니!
조핀은 내 눈길을 의식했는지 돌아보며 생긋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었다.
난 부르르 치를 떨며 홱 고개를 돌렸다. 정상인은커녕 우리 파티원 중에서도 가장 강적인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정오가 되었다.
조핀은 자신의 장난이 쬐끔…… 그러니까 아주 쬐끔 지나쳤던 것 같다고 사과했고 난 그 사과를 받아들였다.
근데 이 아저씨 ‘앞으론 안 그러실 거죠?’라는 나의 질문에 ‘후후후훗! 글쎄요?’라고 음흉스레 웃으며 대답하는구먼…….
장난인지 진심인지 의심스러워.
근데 세 녀석의 불평이 들려왔다.
“헥헥! 아이고 힘들어!”
“쉬익! 죽겠다. 쉬익! 무슨 놈의 햇볕이 이리도 강하냐. 쉬익!”
“아악, 진짜 미치겠네. 나 같은 귀족이 이렇게 뙤약볕을 쬐면서 평민스럽고 구질구질하게 먼지 풀풀 날리는 시골길을 걸어야 하다니!”
한여름의 찌는 듯한 날씨였다. 이제 비기닝 시티가 저 산 두 개만 넘으면 보이는 지점이었다.
그러나 다쓰와 란슬링, 이사도라는 여정의 마지막 지점에서 짜증을 내면서 투덜거리며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말은 어쩌고 걷고 있냐고? 그건 내가 팔아 버렸지.
처음에 미라쥬 길드에서 해 주는 지원의 일환으로 제공받은 말이었거든. 근데 이제 돌아가면 말을 돌려줘야 할 거 아니냐고. 그럴 바엔 그냥 팔아 치우고 미라쥬 길드에는 말들이 그만 뜨거운 날씨에 모두 다 과로사해 버렸다고 말할 작정이다.
뭐 설마 그 성성이 길드 마스터 로저의 신부감을 구해 오는 중차대한 임무를 완수했는데, 말 준 거 도로 안 가져왔다고 나더러 배 째라고 하겠어?
어쨌거나 이 인간들 하는 꼴을 보니 정말 가관이다.
나는 한숨을 푹 쉬며 맨 앞에서 걷고 있는 조핀에게 미안한 기색으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 인간들이 개념들이 쪼금 없어서 저 모양들입니다. 경로사상과 연장자 우대 정신을 지들 집에 굴러다니는 바퀴벌레 똥보다도 더 하찮게 여기는 왕싸가지들이라 그러니 부디 양해하시고…….”
“후훗! 전 괜찮으니 너무 미안해하지 마세요. 이 정도쯤이야 아주 가벼운 운동인걸요.”
“그래도 연세도 있으신데…….”
“후훗! 우영 님, 자꾸 저한테 제 나이를 들먹이시면 저 기분 나빠지거든요? 특히 우영 님한테 그런 소리를 들으면 더욱 그렇답니다!”
“하하, 네 알겠습니다. 주의할게요.”
나는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근데 갑자기 내가 왜 사과하느냐고? 다쓰, 란슬링, 이사도라가 힘들다고 불만들이라 조핀이 일행들의 짐의 대부분을 머리에 얹고 걷고 있거든. 그것도 하나도 안 무거운 것처럼 아주 가뿐하고 씩씩하게 걷고 있다. 머리에 얹은 짐의 높이가 무려 3미터는 넘는 것 같다.
근데 이것들은 고마운 줄도 모르고 빈손으로 걸으면서도 불만이란 불만은 다 주절대고 있었다.
자, 보라고 지금 이 광경을 말이야.
이제 중학교나 갓 들어갔을까 싶은 꼬마가 엄청난 양의 짐을 머리에 얹은 채 열심히 걷고 있고 그 뒤를 따르는 어른이라는 것들은 하나같이 빈손으로 힘들어 죽겠다며 불평을 터뜨리면서 뒤따르고 있는 꼬라지들을 말이야.
일행 중의 한 명인 내가 봐도 분통이 터지는 판이다.
그러니 길 가다가 우리 파티를 보는 사람들은 더더욱 그렇겠지. 눈총을 주는 것은 기본이며, 이토록 심한 아동 학대를 하는 인간들이 세상에 어디 있냐며 욕설을 퍼붓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NPC, 유저를 가리지 않고 말이지.
심지어 어떤 아줌마는 조핀의 두 손을 잡으며, 자기 집에 오면 이런 가혹한 혹사를 면하게 해 줄 수 있다며 우리들과 찢어지게 하려고 애쓰기도 했다. 그것도 눈물까지 흘려가면서.
근데 그럴 때마다 조핀의 답변은 한결같았다.
“제가 좋아서 하는 거거든요?”
겉으로는 청초한 미소년, 그러나 사실은 변태 중년에다가 천하장사인 조핀 덕분에 살판난 다쓰와 란슬링, 이사도라는 고마운 줄도 모르고 불평들이었지만 난 은근히 불안했다. 묵묵히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들은 왠지 겁이 나서 말이지. 지 할 건 안 하면서 불평불만만 터뜨리는 것들이야 그저 가소로울 뿐이지만 말이지.
내가 그렇게 걱정을 하며 터덜터덜 왕싸가지들의 뒤에서 걷고 있던 그 순간이었다.
“꼼짝 마라!”
“움직이면 죽인다!”
우리 앞쪽의 수풀에서 복면을 쓴 스무 명 정도의 괴한들이 쏟아져 나와 우리를 포위했다.
웃!
우리들은 일제히 놀라서 걸음을 멈췄다. 이 복면 괴한들의 손에는 롱 소드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어어!”
내 입에서는 당황스런 소리가 흘러나왔다. 근데 그 소리는 다쓰와 란슬링, 이사도라는 물론 복면 괴한들의 입에서도 동시에 흘러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조핀이 복면 괴한들의 살벌한 등장에도 아랑곳없이, 머리 위에 3미터 높이의 짐을 얹은 채 착실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봐 멈춰라! 꼼짝 말라는 소리 못 들었냐!”
“거기 서란 말이다! 아무리 아무것도 모르는 꼬마라지만 명색이 강도 떼인 척하고 등장했으면 겁먹은 척이라도 해야 할 거 아니냐고!”
울화통을 터뜨리며 한 녀석이 하는 말에 나는 의아했다.
강도 떼인 척이라고? 그럼 사실은 강도 떼들이 아니란 말인가?
어쨌거나 조핀은 강도 떼들의 호통에도 아랑곳없이 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짜증이 난 강도 한 녀석이 팔을 잡으려고 했다.
나는 그 녀석이 조핀을 다치게 할까 봐 막으려 했으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어어어어어!”
휘익!
퍽!
“우욱!”
쿠당탕!
“엉? 뭐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복면 괴한들과 우리가 모두 어리둥절했다. 조핀의 팔을 잡으려던 강도 녀석이 코피를 질펀하게 흘리며 대 자로 뻗어 있고 조핀은 여전히 걸음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무척 빠르게 벌어진 상황이었지만 내 탁월한 시력에 포착된 내용은 이랬다.
강도 떼들의 출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짐을 지고 걷던 조핀은, 자신을 향해 휘두른 강도의 주먹을 태연히 잡아 한 바퀴 휘돌려서 중심을 잃게 하고 발까지 걸어 몸의 균형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그리고선 한쪽 발로 강도의 복부를 가볍게 차서 길 저편으로 나가떨어지게 한 거다.
불과 0.5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그것도 머리에 무거운 짐을 진 상태에서 몸의 균형을 전혀 흩트리지 않은 채로 말이지.
“난 내가 일하고 있는데 누가 끼어들면 제일 짜증나거든요? 그러니 웬만하면 건드리지 않는 게 좋답니다.”
그제야 조핀이 그 강도를 한 방에 보내 버린 걸 알아챈 복면 녀석들은 일제히 덤벼들기 시작했다.
“어린애라서 제일 나중에 없애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얘들아, 쳐라!”
그 소리에 복면 괴한들은 가녀린 미소년에게 (그것도 엄청난 짐을 진) 떼거리로 마구 달려들었다.
난 조핀을 도와주려는 다쓰와 란슬링을 제지하면서 그냥 지켜보았다.
왠지 안 도와줘도 될 거 같아서 말이지.
그런 내 예감은 맞아떨어졌다.
퍽! 우지끈! 퍼퍼퍼퍽! 두둑!
“캑!”
“우욱!”
“커억!”
“헉! 어디서 이런 괴물이……. 으아악!”
마지막 대사, 즉 괴물이란 소리를 내뱉은 녀석은 조핀의 공중 회전 삼단 차기에 뒤통수를 맞고 수풀 뒤에 있던 절벽으로 떨어져 버렸다.
물론 그전에 다른 녀석들은 조핀의 주먹에 롱 소드 한번 휘둘러보지 못하고 전멸당했다. 조핀이 강하기도 하지만 이 녀석들도 강도치고는 아마추어들 같은데? 별로 강하지 않잖아.
좌우간 넋을 잃고 그 광경을 보던 다쓰, 란슬링, 이사도라는 한마디씩 했다.
“나보다 더 잘 싸우는 것 같은데……. 저 정도면 내가 속옷을 노리는 걸 포기해야만 하잖아. 으음…….”
“쉬익! 젠장, 저 정도면 내가 힐링할 기회도 없을 것 같다. 쉬익!”
“역시 왕실의 시종장은 다르네. 싸우는 것도 평민들과는 차원이 다르게 우아하잖아? 맘에 들어.”

“어서 불어라. 강도 떼인 척하면서 우리를 노린 이유가 뭐냐?”
“…….”
다쓰가 투핸디드 소드를 까닥거리면서 묶여 있는 복면 괴한들을 위협했지만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조핀에게 늘씬하게 두들겨 맞고 꽁꽁 묶였지만 쉽게 입을 열 모습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