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스토킹 마스터 2권(34화)
Part 4.뜻밖의 상황(2)


“…….”
조핀이 다쓰와 란슬링에게 물었으나 대답이 돌아올 리가 없었다.
내가 설명해 줄 수밖에.
“저, 조핀 님. 이분은 몬스터가 아니고 미라쥬 길드 마스터시거든요.”
“허억, 이런 실례가 있나. 죄송합니다. 몬스터…… 아니, 몬스터 길드 마스터! 원 이런! 거듭 실례를 하는군요. 죄송합니다.”
“괜찮다, 꼬마야. 종종 듣는 말이니까.”
“…….”
자신을 처음 보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 꼬마 취급하는 로저에게 조핀은 화를 내지 않았고 나도 일일이 설명해 주기도 귀찮았다.
지금 그런 게 중요한 문제도 아니고 말이지.
“어째서 본 건물은 놔두고 엉뚱한 곳으로 옮기신 겁니까? 길드전이 벌어졌다고 하더니 미라쥬 길드에도 여파가 미친 겁니까?”
“그렇습니다. 흑흑……. 우리와 동맹을 맺고 있던 넘버4 불사조 길드가 배신을 때리고 넘버2의 카오스 길드, 넘버3의 빛나리 길드와 손을 잡고 우릴 쳤지 뭡니까? 랭킹 2, 3, 4위의 길드가 합세해서 덤벼드니 최강 길드인 우리라고 해도 당할 재간이 없더라고요. 간신히 길마인 나와 간부들은 피신을 했습니다만……. 웃!”
성성이 같은 손으로 날 부여잡고 참새 똥 같은 째째한 눈물을 짜던 로저는 이사도라를 언뜻 보더니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리고는 언제 울었냐는 듯 눈물은 싹 감추고 입이 귀밑까지 벌어져서 희희낙락하는 표정이 되었다.
사람이 가볍기가 한량없구만.
“오오……. 이사도라 양, 와 주셨군요!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다니 정말 기쁘군요!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이 사람이야?”
“…….”
자신을 반겨하는 로저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이사도라가 충격받은 음성으로 물었다.
내가 시선을 피하자 그녀는 다시 채근하듯 뾰족하게 날이 선 목소리로 질문했다.
“왜 말이 없어! 이 사람이 내 신랑감이냐고 묻고 있잖아?”
“그래, 이분이 너한테 청혼하신 미라쥬 길드 마스터 로저 님이셔. 인사 드려.”
뚫어져라 날 보는 이사도라의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이사도라의 두 눈에는 처절한 원망이 가득 담겨 있었던 탓이다. 눈물까지 흘리려고 하는……이 아니라 진짜로 울고 있다. 쩝…….
이 아가씨를 날라리 왕싸가지 초특급 불량 여고딩으로만 생각한 게 내 실수였군. 아무리 불량스러워도 10대의 소녀였던 거다. 자신에게 청혼한 남자, 결혼할 남자, 미래의 남편감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환상과 기대, 가슴 부푸는 설렘을 가지고 나를 따라 여기까지 왔던 거다.
근데 막상 직접 만난 결혼 상대가 오크보다 더 심하고 오우거보다는 쬐끔 나은 몬스터형 인간(?)이라니 상처받지 않을 수 없을 테지.
원망을 가득 담아 나를 보는 물기 젖은 저 눈. 쯧, 이거 죄책감이 물밀듯 밀려오는구먼.
반면 로저는 자신을 향해 말도 하지 않는 이사도라의 태도에 적지 않게 당황한 것 같다.
“저, 이사도라 양. 여행하시느라 피로하시겠지만 저하고 차분하게 대화를 좀…….”
“로저 님?”
“네? 우영 님, 왜 그러십니까?”
“대단히 죄송한데 이사도라 양과 이야기를 하게 자리 좀 비켜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리고 다쓰와 란슬링, 조핀 님도 마찬가집니다.”
그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을 나갔다.
“난 속았어! 어떻게 저런 남자와 결혼을 하라고 할 수가 있어? 이건 너무 심하잖아! 난 돌아가겠어! 결혼은 무효야! 글래스 캐슬의 아버지한테로 돌아갈 거야!”
둘이 남자 이사도라는 얼굴의 눈물을 훔치더니 당차게 선언했다.
이거 마치 결혼 사기당하는 여자가 부르짖는 대사 같군. 난 너하고 결혼할 로저가 백마를 탄 미모의 왕자님이란 소리는 전혀 하지 않았는데…….
나는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
“뭣?”
“니가 원하는 대로 글래스 캐슬, 너의 아버지 스트라스포드 백작한테로 돌아가라고.”
“…….”
내가 흔쾌히 승낙하자 이사도라는 도리어 당황한 눈치였다. 절대 안 된다고 내가 언성을 높이고 자신은 거기에 악을 쓰고 소리 지르는 광경이라도 예상을 했나 보군.
하지만 난 그러고 싶지 않다.
“미안하다.”
“뭐라고? 지금 뭐라고 했어?”
“이사도라 너한테 미안하다고 했다. 진심이다. 진심으로 너한테 사과하겠다.”
내가 머리 숙이고 사과를 하자 이사도라는 더더욱 당황하는 눈치였다. 내가 사과씩이나 할 인물로는 전혀 안 보였던 모양이다.
“너를 속인 건 아니지만 신랑될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 미리 말해 주지 않은 건 사실이니까. 솔직히 니가 어떻게 되든 나와 상관없다는 생각이 내 마음속에 없었다곤 못하겠다. 지금 니가 로저와 결혼을 거부하겠다면 그동안 내가 많은 시간과 우리 파티원들과 함께 이룬 것들이 다 허사가 되겠지만……. 그러나 너한테 못할 짓을 할 순 없으니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이사도라, 니가 로저와 결혼하지 않고 이대로 돌아간다고 해도 절대로 막지 않겠다. 내 명예를 걸고 약속한다!”
나는 있는 폼 없는 폼을 잔뜩 잡으며 당당하게 선언했다.
이사도라는 감동 먹은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 로저와 결혼하지 않으면 당신이 어떤 손해를 보게 되는 건데?”
“사실은 나에게 목숨보다 더 소중한 조카의 행적을 알려 주는 대가로 널 로저와 결혼시켜 주겠노라 약속했다. 니가 이대로 가 버리면 난 꿈에도 그리던 조카를 영영 찾을 수 없게 될 가능성이 높지. 하지만 내 조카를 찾고 싶다고 너에게 못할 짓을 할 순 없지. 그러니 조금도 개의치 말고 어서 돌아가라. 글래스 캐슬로!”
나는 이마를 한 손으로 짚으며 고뇌하는 척 (한쪽 발은 의자에 척 올리고) 멋지게 자세를 잡으며 말했다. 마치 마토스의 투르펜 국왕처럼 말이지.
마음 한구석엔 이러다가 저 날라리가 정말로 가 버리면 어쩌나 가슴을 졸이면서.
“…….”
내 말에 꽤 감동 먹은 듯 이사도라는 한참 동안을 말을 잇지 못하고 침묵을 지켰다.
무려 30분 동안을 말이지.
젠장! 30분간을 이마에 손을 짚은 채 있자니 팔다리가 저려 죽겠네. 뭐라고 반응을 좀 보이란 말이다! 내 팔 떨어지기 전에!
“내가 만약 로저와 결혼하겠다면…….”
“엉?”
“내가 로저와 결혼하겠다면 우영은 조카를 찾을 수 있게 되는 거야?”
“엉? 그, 글쎄. 물론 조카를 찾을 확률이 크게 높아지는 건 사실이지. 하지만 내 조카를 찾자고 너한테 상처 주긴 싫다. 여자를 울리는 그런 매너 없는 놈은 되기 싫다. 그러니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내 걱정할 거 없다!”
태연스레 말했지만 맘속으론 이사도라가 내가 권하는 대로 할까 봐 애간장이 탈 지경이었다.
“…….”
이사도라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결혼하겠어.”
“뭣?”
“로저와 결혼하겠어!”
“하지만…….”
“지금까지 나에게 진심으로 사과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아버지는 마음속으론 이미 날 포기하면서 건성으로만 나 하자는 대로 해 주었고 성의 하인과 하녀들은 마지못해서 내 눈치만 보았지, 진심으로 날 대하진 않고 피했어. 나에게 상처준 걸 진심으로 사과한 사람은 우영 당신이 처음이야. 그런 당신에게 피해를 줄 순 없어!”
“그래도 로저와 결혼하는 건 이사도라 너에게 너무 미안한 일을 시키는 건데…….”
나는 ‘로저한테도 엄청 미안한 일이고 말이지’라는 말은 마음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어차피 글래스 캐슬을 떠나 도회지에서 살고 싶었으니까 대가는 치러야지 어쩌겠어. 이제 로저를 들어오라고 해 줘. 결혼하겠다고 말해 주겠어. 그리고 당신은 조카를 찾도록 해.”
“이사도라…….”
나는 이번엔 일부러 꾸민 표정이 아니고 정말로 감격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오오……. 초특급 불량 여고딩답게 화통하고 대차기가 끝내주는구먼. 이건 내가 너한테 빚을 졌다고 분명하게 인정하겠다!
띠링!
음향과 함께 설명 창이 떴다.

기를 쓰고 개폼 잡은 덕택으로 이사도라와의 친밀도가 크게 상승했다. 앞으로 이사도라는 니가 하는 부탁은 크게 관심을 가지게 될 거다.

글쎄? 친밀도가 높아져서 나쁠 건 없다만 더 부탁할 일이야 있을라구.
나는 파티원들과 로저를 방으로 불러들였고 이사도라는 진지하게 선언했다.
“미라쥬 길드 마스터 로저 님의 청혼을 받아들이겠어요!”
“오오! 감사합니다. 이사도라 야아아아앙∼”
“하지만 식을 올리기까지는!”
“…….”
결혼을 승낙하겠다는 이사도라의 선언에 로저는 감격의 탄성을 터뜨리며 껴안으려고 (우리가 볼 때는 몬스터가 포효하며 먹이감을 덮치는 걸로 보였다) 하자 이사도라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식을 올리기까지는 제 반경 1m 안으론 접근을 금지해 주시기 바라요. 이제 처음 본 사이인데 그렇게 마구 덤벼드시면 제가 너무 무서우니까요.”
그 말에 로저는 엄청나게 맛있는 과자를 빼앗긴 초딩의 표정이 되었지만 우리 모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로저가 달려들어 포옹하는 건 옆에서 보고 있어도 공포스러우니깐.
“그리고 결혼식은 미라쥬 길드가 아지트를 되찾고 길드전에서 승리한 후에 했으면 하는데 로저 님도 당연히 동의하시겠죠, 길드 마스터시니까요?”
“아, 네……. 그……그래야죠. 네……. 그래야 하구 말구요.”
이그……. 마지못해서 대답하는 꼴이 미라쥬 길드 아지트를 되찾든 못 찾든 관계없이 그냥 이사도라하고 결혼해서 딩가딩가 한세월 잘 보내고 싶은 생각만 가득하구만.
설령 이사도라가 지금 당장 결혼식을 올리자고 해도 당신이 먼저 ‘우리 결혼식은 길드전에서 승리해서 아지트를 되찾은 뒤에 합시다!’라고 해야 할 거 아니냐고.
가만……. 근데 지금 이사도라가 뭔 소리를 한 거야?
뭐? 결혼식을 길드전에서 이긴 다음에 한다고? 이게 무슨 소리래?
두 사람의 결혼식이 이루어져야 내가 부여 받은 퀘스트가 끝나고, 재경이 행적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을 거 아니냐고! 그래야 내가 이 게임을 하는 주목적인 재경이 찾기를 후딱 시작할 수 있고 말이지.
젠장, 이럴 수가 있나. NPC의 돌발적인 발언 때문에 퀘스트 완료가 미루어지다니…….
난 맥이 쫘악 빠지는 걸 느끼면서 이사도라에게 원망의 눈길을 던졌다. 두 사람의 결혼식 끝나자마자 세영이한테 정보를 받아서 재경이를 찾는 여정을 즉시 시작하려고 했는데…….
가만있자,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는데 세영이가 안 보이네?
“로저 님. 근데 부길마 세영이는 어디 갔나요?”
“네……. 그게……. 카오스 길드 패들이 우리 아지트 덮칠 때, 저하고 다른 간부들이 달아날 시간을 벌어 준다고 길드원들과 함께 싸우다가 사로잡혔습니다.”
“…….”
이게 무슨 소리야? 그럼 당신은 부길마인 세영이를 희생시키고는 여기로 피신해 있었던 거냐?
인간아, 절치부심 반격을 해서 아지트하고 세영이를 되찾을 생각은 안 하고 이사도라가 나타나니까 대뜸 결혼하고 신방 차릴 꿈에만 부풀어 있었던 거냐?
쩝, 한 조직의 수장으로서나 남자로서나 한심하기 짝이 없구만.
모두가 어이없는 눈으로 바라보자 로저는 얼굴을 붉혔다.
“사실은 부길마 세영이를 구출할 작전을 짜고 있던 중에 여러분이 도착하신 겁니다.”
“그래요? 그럼 어디 그 구출 작전이 어떤 건지 한번 들어 볼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