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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2권(35화)
Part 4.뜻밖의 상황(3)
“그건 좀 곤란합니다. 계획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거든요.”
“저……. 이런 말해서 죄송한데, 아지트를 되찾고 세영이를 구할 생각이 있기는 하신 겁니까?”
“물론 있죠. 근데 제가 길마가 된 후로 한 번도 길드전을 해 본 적이 없는지라 대책이 안 서서 이러고 있는 겁니다. 길드와 길드원들을 위해 희생하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니깐요.”
됐네, 이 양반아. 말로는 뭘 못하겠냐. 지옥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말도 있잖냐고. 행동이 전혀 안 따르는데 말로만 때우고 마음으로만 희생하면 뭘 하냐는 거다. 조직원이 그래도 곤란한데 그 조직의 우두머리가 그런다는 건 더더군다나 말이 안 되지.
어쨌거나 이러고 있을 순 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세영이를 구해내고 길드전을 미라쥬 길드의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
근데 길드원도 아닌 주제에 왜 내가 열을 내냐고?
아, 저 위에서 이사도라가 그랬잖아. 로저와의 결혼식은 미라쥬 길드의 승리로 길드전이 끝난 뒤에 하겠다고 말이지.
즉, 미라쥬 길드가 패하면 결혼은 없다는 말이라고.
그럼 난 ‘미라쥬 길마 결혼시켜 주기 퀘스트’를 실패하는 거다, 그 소리지. 그 말인즉슨 재경이 행적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는 것도 수포로 돌아간단 소리라고.
그러니 싫어도 길드전에 뛰어들 수밖에 없게 된 거다.
뭐, 그게 아니라도 세영이를 구해야 할 판이다. 앞으로 계속해서 도움도 받을 테고 그간의 친분도 있고 말이지.
길드전이 벌어지면 포로가 된 간부들은 특별 감방에 구금하는데 그곳은 자력으로는 빠져나올 방법이 없거든.
자살을 한다고 해도 그 장소에서만 부활을 하니까 아주 난감한 처지가 되는 거지. 그렇다고 애써 키워 온 캐릭을 지울 수도 없는 일일 테고 말이야.
그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한데 이사도라가 불쑥 입을 열었다.
“로저 님의 약혼자로서 제가 이번 길드전을 치르는데 일조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잠시 길마의 권한을 넘겨주시면 이 전쟁을 반드시 승리해 보이겠어요.”
그 말에 모두가 어리둥절했다.
이사도라, 너 뜬금없이 무슨 말이냐?
“아무래도 로저 님은 전면에 나서시는 타입이 아닌 것 같고……. 저는 고향에 있을 때 이런저런 소소한 싸움을 해 본 경험이 많거든요. 그래서…….”
음, 그렇군. 하긴 그 촌구석에서 불량 여고딩들 이끌고 패싸움깨나 했을 법한 인물이 너긴 하다.
로저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사실 이사도라 님처럼 어여쁘고 가녀린 분에게 안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만 굳이 원하신다면야 그렇게 하세요. 전 여자의 의견은 적극 받아들이는 성격이라서요.”
쪽팔리지도 않는지 로저는 상황에 안 어울리는 페미니즘을 발휘했다.
쩝, 길마 권한을 내 달라는 말을 저렇게 쉽게 받아들이다니 정말로 황당하네. 이거 진짜로 아무 생각 없는 인간이다. 아니면 워낙 콩깍지가 씌인 탓에 이사도라 말은 무조건 들어주는 건지도…….
어쨌거나 이사도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명령인지 부탁인지 모를 말을 던졌다.
“그럼, 로저 님께서는 우리 미라쥬 길드의 간부들을 모두 소집해 주시겠어요? 이제부터 작전 회의를 하도록 하죠.”
“네? 아, 네…….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다 불러 모으겠습니다! 지금 적 길드들의 눈에 안 띄게 여러 군데로 피해 있어서 다 소집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긴 할 겁니다만.”
하는 거 보니 결혼하면 완전 와이프 손아귀에 꽉 쥐여 살 타입이로군. 뭐, 그것도 나름 괜찮은 선택일지도…….
가만있어라. 어차피 퀘스트 완수는 늦어지는 거니까 이참에 이사도라를 부추겨서 아예 미라쥬 길드를 완전 장악해 봐? 임시로 길마 권한대행을 하는 정도가 아니고 말이야.
지금의 이사도라와는 친밀도가 높아져서 내 부탁은 웬만한 건 다 들어줄 가능성이 있다고 했으니 이사도라가 대빵이 되면 미라쥬 길드가 내 수중에 들어온 거나 큰 차이가 없지 않을까?
좋아! 그렇다면 아주 화끈하게 부추겨 봐야겠다.
나는 간부들을 부르려고 나가는 로저의 팔을 슬며시 잡았다.
“우영 님, 왜 그러세요?”
“저……. 카타나 한 자루 없을까요?”
“제가 사용하는 무기가 카타나이긴 한데……. 그건 왜요?”
“아니, 내가 필요한 게 아니고 이사도라 양이 필요할 거 같아서요. 로저 님의 부인이 될 분이고 미라쥬 길드도 이끌어야 하니 좋은 무기 하나 정도는 가지고 다녀야 할 거 아닙니까? 다른 무기는 좀 그렇고 세련된 카타나 정도면 이사도라같이 아름다운 아가씨가 쓸 무기로는 잘 어울릴 것 같아서요.”
내 말에 로저는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내 카타나를 이사도라 양한테 주죠 뭐. 어차피 곧 결혼할 사이이고, 부부는 일심동체니까요. 전설급 카타나니까 본인도 만족할 겁니다.”
웃! 전설급씩이나……. 역시 최강 길드의 마스터라 다르긴 다르군.
“우영, 나 떨리는데 괜찮을까?”
“훗! 이사도라 너답지 않게 왜 그러는 거냐. 그저 내가 일러준 대로만 하면 된다, 알겠냐? 그리고 니가 먼저 하겠다고 자청하고 나섰잖냐고.”
“알았어. 할 거야. 이 미라쥬 길드를 내 손에 쥐고 흔들어 보이겠어!”
나의 격려에 이사도라는 이를 악물고 결의를 다졌다.
이윽고 로저를 위시한 미라쥬 길드의 간부들이 우르르 실내에 들어와 직사각형의 긴 탁자에 각기 앉았다.
로저는 이사도라의 눈치를 좀 보더니 입을 열었다.
“모두들 잘 들으시오. 위기에 몰린 우리 미라쥬 길드의 활로를 찾기 위해서 길드 마스터인 나는 잠시 내 권한을 나의 약혼자 이사도라 양에게 위임하고자 합니다. 간부 여러분들은 이사도라 양의 지시를 잘 따라서 이번 길드전을 승리로 이끌어 주기 바랍니다.”
뜻밖의 말에 간부들은 마구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무리도 아니지. 뜻하지 않게 상대 길드들의 배신으로 거리에 내쫓기다시피한 상황인데, 길마라는 사람이 듣도 보도 못한 여자에게 자기 권한을 내주었으니.
간부 중 한 명이 (편의상 간부1이라고 부르겠다)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약혼자라고는 해도 우린 전혀 모르는 분인데 대뜸 길마 권한을 넘겨주신다뇨? 이렇게 어려운 상황이면 길마께서 더 분발하셔야 할 텐데 우리 간부들은 전혀 모르는 분에게 전권을 넘기시면 어떻게 합니까? 더구나 사전에 의논 한마디 없이 말이죠!”
간부1의 말에 여기저기서 동조하는 수군거림이 일어났다.
이사도라의 얼굴에 불만의 기색이 비치자 로저는 황급히 진화에 나섰다.
“자, 좀 조용히들 하세요. 여러분이 모른다고 해도 내가 말을 미리 안 드렸을 뿐이고 지도력도 탁월한 분이니까 내 뜻대로 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니면 우리는 이번 길드전에서 승리하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그 말에 좌중은 잠시 수그러들었으나 간부들의 얼굴에 어린 불만의 기색이 완전히 사그라지진 않았다.
그럴 만도 하지. 길마가 바뀌면 자기들의 알량한 권력과 이권도 위태롭게 될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때였다.
간부 중 다른 한 명이(편의상 간부2라고 부르겠다.) 벌떡 일어나서 이사도라에게 삿대질을 했다.
“씨발 뭐가 어째! 길마랍시고 그동안 삽질하는 것도 참아왔는데, 이제는 아예 어디서 굴러먹던 건지도 모를 머리 꼭대기에 피도 안 마른 계집애한테 당신 자리를 넘겨줘? 우리 간부들을 X으로 아는 거야! 다 망하게 된 판에 이게 무슨 개지랄이야! 웃기지 마, 씨발!”
저 자식 막말을 기관총처럼 내뱉는 거 보니 유저가 틀림없군. 설마 NPC가 저런 욕을 마구 하게 프로그래밍되어 있진 않을 테니.
어쨌거나 내 예상대로다. 저렇게 반발하는 놈이 분명히 나올 거라고 봤거든.
아주 잘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분위기 장악하려면 시범 케이스로 때려잡기에 저런 녀석이 최고니까 말이지. 응징하는 쪽에서도 양심의 가책을 안 느껴도 되고.
나는 아까 로저에게 부탁해서 받은 카타나를 슬쩍 이사도라의 손에 넘겨주고 의미심장한 눈짓을 해 보였다.
본때를 보여 주거라, 이사도라! 미라쥬 길드를 장악하려는 너의 야심을 (사실은 나의 야심이다만) 가로막는 바퀴벌레를 일격에 밟아 버리는 거다!
내 의중을 알아들은 이사도라는 침을 꿀꺽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파앗!
이사도라는 마치 나비처럼 직사각형의 탁자 위로 가볍게 뛰어오르더니 간부2가 앉아 있는 쪽으로 바람처럼 달려갔다.
두두두두두!
“어어…….”
그녀가 자신들이 앉아 있는 탁자 위를 마구 달리자 간부들은 당황해서 허둥거렸다.
이사도라는 간부2의 정면까지 달려오자 주저앉듯 자세를 낮추는가 싶더니 번개같이 카타나를 빼서 휘둘렀다.
스팟!
간부2의 목이 핏물을 뿌리며 깨끗하게 절단되어 탁자 위를 공처럼 뒹굴었다.
떼구르르!
“허억!”
“으악!”
“이, 이게 뭐야! 이게 무슨 일이냐고!”
“이, 이럴 수가…….”
뜻밖의 참사에 간부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어떤 영화에서 보았을 법한 장면이 그대로 연출되는 바람에 간부들은, 특히 NPC가 아니고 유저인 간부들은 더 놀란 것 같다.
훗! 죽은 간부2 녀석 정말로 황당하겠군. 게임 속에서 저렇게 죽는 유저도 드물 테니 말이지.
이사도라는 핏물이 뚝둑 떨어지는 카타나를 검집에 넣더니 간부들을 노려보며 차갑게 소리쳤다.
“모두 조용해 주시죠!”
“…….”
자신의 목도 달아날까 겁났는지 간부들은 창백한 얼굴이 되어 침묵을 지켰다.
카타나를 휘둘러서 검신에 묻은 피를 떨친 이사도라는 비웃는 듯 정중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훗! 무례한 분이 계셔서 예의를 알려 드렸습니다. 누구든 원하는 분이 있으시면 계속 예의를 알려 드리도록 하죠. 더 발언하실 분 계십니까?”
“…….”
이사도라는 내가 미리 코치해 준 대사를 주절거렸고 간부들은 침묵을 지켰다.
“제가 길마가 되는 게 못마땅해서 우리 길드에서 탈퇴하실 분들은 그리 하셔도 좋습니다. 맹세하는데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곱게 보내드릴 테니까. 그러나…….”
이사도라는 서릿발 같은 시선으로 간부들을 훑어보았고 그들은 목을 움츠렸다.
이사도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으로 고함을 질렀다.
“미라쥬 길드에 남겠다면 내 명령에 절대 복종하도록 해! 그럼 단단히 한몫 안겨 줄 테니까! 그게 싫은 새끼들은 모두 꺼지란 말이야! 알아들어? 우리 미라쥬 길드엔 지레 겁먹고 눈치나 보는 얼간이들은 필요 없어! 우린 최강 길드고 이번 길드전에서 반드시 승리할 테니까 말이지! 최후의 승자는 누가 뭐래도 우리 미라쥬 길드란 말이야!”
짝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