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스토킹 마스터 2권(38화)
Part 6.당근과 채찍(1)


비기닝 시티의 외곽에 위치한 허름한 목조건물 안에는 스산한 공기가 감돌았다.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조명 아래에는 대머리에 콧수염을 한 중년인이 불만스런 표정을 지은 채 탁자 앞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의 등 뒤로는 사십 명쯤 되는, 검은 후드에 플레이트 아머나 스터디드 레더 아머를 입고 숏 소드와 크로스 보우로 무장한 사내들이 서 있었다.
대머리 사내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소년을 향해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꼬마야 어찌 된 거냐? 불사조 길드에서는 왜 아직도 안 오는 것이냐?”
“글쎄요. 모르겠는데요. 전 그냥 편지 심부름만 한 거라서…….”
그 말에 대머리 사내는 험악하게 인상을 썼으나 소년의 천진난만하게 미소 짓는 얼굴에 더 이상의 추궁은 포기했다.
그는 옆의 부하에게 푸념하듯 말했다.
“혹시 어떤 녀석이 저 꼬마한테 장난 편지를 보낸 거 아니냐? 정말 불사조 길드 길마가 보낸 편지가 맞느냔 말이다!”
그 말에 부하는 부스럭거리며 편지를 꺼내 들었다.
“내용이나 필체를 봐서는 믿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길드 마스터. 그리고 이 장소를 아는 건 우리 두 길드 간부 중에서도 극소수 아닙니까? 또한 불사조 길드도 카오스 길드 때문에 불만이 폭발 직전인 건 우리 빛나리 길드와 비슷하니까요.”
“흥, 그럴 수밖에. 연합해서 미라쥬 길드를 절단 냈으면 구역과 이권을 공정히 나눠야지 카오스 길드 혼자서 독식을 해 버렸으니까. 애당초 그딴 의리 없는 놈들과 손잡고 미라쥬 길드를 친 게 실수였다.”
대머리 사내, 빛나리 길드의 길마 델마는 으드득 이를 악물며 편지를 펼쳐 보았다.
거기에는 이렇게 써져 있었다.

― 미라쥬 길드를 타도하기 위한 길드 연합은 카오스 길드의 전횡과 독선으로 사실상 무의미하게 된 것 같소. 미라쥬 길드를 무너뜨리고 생긴 이권들을 공정하게 나누지 않고 대부분 독식했으니 말이오. 우리 불사조 길드와 빛나리 길드는 결국 카오스 길드에게 좋은 일만 해 준 꼴이 아니고 뭐겠소? 우리 두 길드 마스터가 만나서 카오스 길드의 전횡에 대항하고 우리 이익을 지킬 방법을 의논해 봅시다.
돌아오는 금요일 자정, 우리 둘만 아는 회합 장소에서 만납시다. 하지만 카오스 길드의 눈에 띄지 않도록 주의해서 오기 바라오.

불사조 길마 루이스

최강 길드가 된 카오스 길드의 감시가 사방에 깔려 있으니 이렇게 은밀히 편지를 보낸 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도 델마는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만에 하나 이게 누군가의 함정일 경우를 생각해야 했다.
물론 그럴 경우를 대비해서 길드원들 중 최강의 실력자들만 골라서 데려오긴 했다.
무장한 채 긴장을 풀지 않는 길드원들을 쭈욱 둘러본 델마는 다소 안심이 되었다.
순간 문이 열리며 일단의 사내들이 실내로 들어섰다.
그들을 보는 델마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 * *

음, 저기 앉아서 똥 씹은 표정을 짓고 있는 작자가 빛나리 길드의 길드 마스터 델마로군. 길드 이름에 걸맞게 정말 빛나는 대머리구만. 덕분에 실내가 온통 대낮처럼 밝은 것 같다.
그리고 저 대머리는 사대 길드의 길드 마스터 중 유일하게 유저가 아니고 NPC인 인물이지. 그래서 내가 포섭 상대로 점찍은 거지만. 아무래도 유저들인 길마보다는 회유나 공갈 협박이 먹히기 쉽다고 생각했거든.
어쨌든 이 작자를 잘 구슬러야…….
엇! 아니, 이 인간이 갑자기 왜 날 야리면서 몸을 벌떡 일으키냐?
“넌 불사조 길드 마스터가 아니잖아! 네놈은 도대체 누구냐!”
“훗! 아직 인사도 나누기 전인데 이놈 저놈 하고 삿대질이시라니 좀 심하시군요.”
“뭐가 어째? 심하다고! 진짜 심한 게 어떤 건지를 잘 모르나 보군! 얘들아!”
파파파파팟!
퍼퍼퍼퍽!
내가 델마의 말에 빈정거리며 받아치자 그의 손이 올라갔고 그걸 신호로 빛나리 길드원들의 크로스 보우에서 발사된 화살들이 아슬아슬하게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웃! 놀래라. 내 몸에 박히는 줄 알았네.
스윽 뒤를 돌아보니 문에 사람 형상으로 화살들이 주르륵 박혔구만.
멋들어진 위협사격이다.
근데 란슬링과 다쓰는 뭐하고 있는 거야? 이쯤 되면 날 막아 주면서 큰소리로 무슨 개수작이냐고 호통을 쳐야 할…….
아니, 근데 이것들은 화살에 안 맞으려고 나한테서 20m씩이나 떨어져서 몸 사리고 있구만.
치사한 놈들.
조핀만 두 눈 멀뚱히 뜨고 제 위치를 지키고 있다.
어쨌거나 여기서 쫄아서는 안 된다.
그랬다간 기선 제압당하고, 회유는커녕 이케루스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죽어서 로그아웃당하는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해서 나는 얼굴 가득 썩소를 지었다.
“후후훗! 다짜고짜 화살 세례라. 뜻밖이군요. 빛나리 길마께서는 자신이 함정에 빠졌을까 겁나서 과잉 방어를 마구 해 대는 겁장이가 아니라고 들었던 것 같습니다만.”
“뭐, 뭐라고! 시끄럽다. 누, 누가 과잉 방어를 했다는 거냐! 이건 내 경고다!”
내 말이 정곡을 찔렀는지 델마는 얼굴을 붉히며 버럭 소리쳤다.
나는 씨익 비웃음을 입가에 계속 흘리면서 넉살 좋게 의자에 앉았다.
“자, 밤은 길고 우리가 대화할 시간은 충분합니다. 크로스 보우와 숏 소드로 나누는 대화라면 금방 끝나겠지만요. 델마 님께서도 그런 대화를 하려고 오신 건 아니겠죠?”
“으음……. 좋다. 네놈이 누군지 그리고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 네놈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따라서는 이 무기들이 다시 춤추게 될 거란 걸 명심해라.”
델마는 두 눈을 험악하게 부라리며 길드원들을 뒤로 물린 다음 의자에 앉았다.
나는 이미 준비해 두었던 제안을 그에게 들려주었다.
“뭐? 넌 불사조 길드가 아니고 미라쥬 길드를 대표해서 왔다는 건가? 그리고 너희 미라쥬 길드와 우리 빛나리 길드가 손잡고 카오스, 불사조 길드 연합을 치자고?”
“그렇습니다. 속인 건 죄송하지만 처음부터 정체를 밝혔으면 절 만나 주지 않으셨을 테니까요. 지금 카오스 길드는 우리 미라쥬 길드를 무너뜨리고 차지한 이권을 모조리 독식하고 빛나리 길드는 찬밥 취급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생각해 보시죠. 우리 미라쥬 길드가 최강 길드일 때와 지금의 상황을. 그 어느 쪽이 빛나리 길드에게 더 좋은 시절이었는지 말입니다. 전자라고 생각하신다면 내 제안을 거절하는 건 현명치 못한 일이겠죠?”
내가 미라쥬 길드에서 말했던 불리한 판세를 뒤엎을 묘안은 바로 이거였다. 불사조나 빛나리 길드 중 하나를 회유해서 손을 잡고 카오스 길드를 친다는 것!
그게 불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한 이유는 카오스 길드의 전횡으로 빛나리와 불사조 길드의 불만이 심한 때문이었다.
좌우간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내자 델마는 눈살을 찌푸렸다.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이지.
“허, 이것 참.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물론 당신 말대로 우리도 카오스 길드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해 있다. 솔직히 말하면 카오스, 불사조 길드와 연합해서 당신네 미라쥬 길드를 무너뜨린 걸 후회하고 있다 그 말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 미라쥬 길드는 이미 치명타를 입지 않았는가? 그 전력으로 우리와 힘을 합쳐 봐야 뭘 할 수 있다는 건가? 그리고 설령 우리와 힘을 합쳐서 어찌어찌 카오스, 불사조 길드 연합과 상대할 만하다고 쳐도 그렇지. 이미 그들과 힘을 합쳐서 너희 미라쥬 길드의 등에 비수를 꽂은 우리에게, 나중에 보복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다는 거냐?”
델마가 경계와 불신의 빛을 두 눈 가득 담고 말을 마치자 나는 다시 여유로운 웃음을 흘렸다.
“후후후후후후후훗!”
“뭐가 그리 우습다는 건가?”
내가 가소롭다는 듯 비웃음을 흘리자 델마는 기분이 잔뜩 상한 듯했다.
그러나 난 개의치 않고 한참 더 비웃어 준 다음에 입을 열었다.
“훗! 놀랍도록 잘나간다고 세상이 알아주는 빛나리 길드의 길드 마스터란 분이 소심하기가 하늘을 찌르는구나 싶어서 잠시 웃었습니다.”
“뭣이! 감히!”
델마가 인상을 찡그리며 분노하자 뒤에 서 있던 길드원들이 숏 소드를 빼 들었고 일부는 크로스 보우로 날 겨냥했다.
난 개의치 않고 유들유들 모드로 계속 주절댔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여기서 델마를 설득시키느냐 못 시키느냐가 승부처라 그 말이지.
“분명히 말하지만 우리 미라쥬 길드의 전력은 상당 부분 보존되어 있습니다. 괜히 최강 길드라고 불렸겠습니까? 그리고……. 도둑 길드들은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단체죠. 뭐, 불사조 길드가 다른 길드들과 손잡고 우리 미라쥬 길드를 친 게 그쪽에 이익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그랬다면 굳이 나무랄 마음은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도둑 길드답게 행동한 것뿐이니까요.”
“…….”
델마는 말없이 나를 응시했다. 내 말의 진실성을 나름 심각하게 판단하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만약 이번에 빛나리 길드가 우릴 도와서 최강 길드로 복귀하게 해 준다면 우리 미라쥬 길드는 두 가지 큰 소득이 생깁니다. 거의 망한 상태에서도 고스란히 서열 1위 자리에 복귀할 수 있는 저력이 있다는 걸 온 세상에 과시하는 것, 그리고 든든한 우호 세력인 빛나리 길드가 생긴다는 것이죠. 그러면 다른 어떤 길드도 우리를 넘보지 못하게 될 겁니다. 원상회복된 다음에 빛나리 길드에게 보복을 한다? 그건 우리로선 엄청난 자충수입니다. 협력을 요청한 다음, 보복을 할 정도로 졸렬한 길드라는 걸 온 세상에 보이고, 큰 우호 세력이 될 길드를 우리 손으로 없애는 결과가 될 테니까요. 우리 미라쥬 길드 마스터께선 그런 큰 손해가 될 일을 할 바보가 아닙니다.”
“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