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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2권(39화)
Part 6.당근과 채찍(2)


델마는 수긍이 가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내 말이 그럴 듯했나 보다.
헉, 근데 왜 고개를 끄덕이다가 멈추는 거지? ‘그건 아닌데…….’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당신 말에 모순이 있는 것 같은데……. 생각해 보니 당신네 길마 로저는 지금까지 손해될 짓도 제법 저지르지 않았던가?”
음……. 그게 의심스러웠단 거군. 난 또 괜히 가슴 철렁했네.
“후후후후훗! 로저 님 때문에 그러셨군요. 걱정 마시죠. 그분은 이미 사퇴했습니다. 우리 미라쥬 길마는 다른 분이 맡으셨으니까요. 아주 과단성 있고 대찬 분이죠.”
“호오, 그래? 그럼 이번에 최강 길드 자리에서 무너지면서 문책을 당해서 물러난 게로군. 하긴 길드원들이 가만 안 있을 법도 하지.”
델마는 수긍이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두 눈을 빛내고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근데 우리가 협력하면 어떤 보상을 해 줄 건가? 설마 아무런 보상 없이 동맹을 맺자는 말은 아닐 테지?”
나는 므훗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협력의 실질적인 동력은 바로 이 부분이다. 이권이 움직이지 않으면 실질적인 도움이 오갈 수 없다는 건 뻔한 이치니까.
“물론 보상이 있습니다. 보상도 드리고 또 빛나리 길드로부터 동맹의 담보물도 받을 겁니다만.”
“담보물이라고?”
“그건 마지막으로 말씀 드리고 우선은 보상부터 말씀 드리죠. 첫째 불사조 길드의 구역과 영업장 전부를 빛나리 길드에 넘겨 드리겠습니다.”
“음……. 그럼 우선 불사조 길드를 완전히 없애야 한단 이야기군.”
델마는 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말을 이었다.
“사실 우리 미라쥬 길드를 치자는 제안을 카오스와 빛나리 길드에 최초로 한 게 불사조 길드 아닙니까? 빛나리 길드까지는 원한이 없지만 불사조 길드는 확실히 응징을 할 작정입니다. 빛나리 길드는 우리 미라쥬의 관용을 보이는 케이스, 빛나리 길드는 우릴 배신한 대가가 얼마나 큰지를 보이는 케이스가 될 겁니다.”
내가 씨익 웃으면서도 서늘한 미소를 입가에 달자 델마와 길드원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알겠네. 근데 그것 말고 다른 보상은 없나?”
“카오스 길드의 구역과 영업장에서 발생하는 이익의 50%를 드리죠. 우리 미라쥬 길드와 정확하게 반분하는 겁니다.”
“오오…….”
델마의 입이 귀밑까지 벌어졌다. 카오스 길드가 차지한 이익의 반이라면 호박이 다발로 굴러들어 온 거나 진배없으니 그럴 법도 하지.
그러나 난 목소리를 낮추어 부연 설명을 했다.
“단 1년 동안만입니다. 그 뒤부터는 빛나리 길드의 몫은 1년마다 10%씩 낮추어 지급될 겁니다.”
“…….”
델마는 입을 씰룩거리며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으나 이의를 제기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이 정도면 확실히 호의적인 제안이라는 건 분명하니까.
“알겠네. 그럼 보상은 그렇고……. 우리한테 받아야 할 담보물이란 게 뭔가?”
긴장된 공기가 흘렀다.
협상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당근과 채찍의 적절한 제시다. 당근을 주르륵 보여 줬으니 채찍도 슬쩍 보여 줘야지. 그래야 상대가 이쪽을 깔보고 뒤통수 때리는 짓을 못하는 법이다.
난 잠시 침묵을 지키며 일부러 긴장감을 조성했다.
델마도 슬며시 미간을 찌푸렸다. 뒷골목 세계에서 잔뜩 굴러먹은 NPC니 자신도 이 협상에서 달콤한 과실만 받을 순 없다는 건 감 잡았을 테지.
난 침묵을 길게 늘려 그를 좀 더 초조하게 만든 다음 입을 열었다.
“담보는 델마 님의 따님입니다.”
“무엇이?”
“빛나리 길드가 우리 미라쥬 길드에 전적으로 협력해서 길드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잠시 우리가 따님을 모시고 있을 겁니다. 물론 우리 두 길드의 승리가 확정되면 무사히 돌려보내 드리죠.”
“이노옴! 말하는 투로 보니 이미 내 딸을 납치했구나!”
“훗! 저기 서 있는 내 부하들이 이미 모처에 모셔 놓았습니다. 여기저기 나돌아다니길 좋아하는 아가씨라 모시는 것도 쉬웠다고 하더군요.”
“이 죽일 놈이!”
델마는 거칠게 탁자를 치며 일어나 숏 소드를 빼 들었다. 뒤의 길드원들도 일제히 무기로 날 겨냥했다.
“당장 내 딸을 풀어 줘라!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나는 눈에 있는 힘 없는 힘 다 주면서 델마를 마주 노려보았다.
덕분에 델마도 움찔했다.
“이, 이러고도 동맹이 성사될 성 싶으냐! 내 딸을 인질로 삼고서 말이다!”
“훗! 모르는 말씀. 이렇게 해야만 동맹이 성사될 수가 있소.”
“뭐라고?”
“이미 당신은 다른 길드와 손잡고 우리 미라쥬 길드의 뒤통수를 친 전력이 있지. 그리고 앞서 내가 말한 대로 도둑 길드는 이익을 좇아 움직이는 단체. 그렇다면 당신을 맹목적으로 믿는 것보다는 확실한 담보를 잡아 두는 게 더 낫다는 건 당신도 알 테지? 즉, 이렇게 해야 비로소 빛나리 길드에 대한 신뢰를 우리가 가질 수가 있다는 거요!”
“으음…….”
내가 유들유들 말하자 델마의 얼굴은 흥분으로 잔뜩 붉어졌다.
그는 잠시 갈등하는 것 같더니 장내가 떠나갈 듯 크게 소리를 질렀다.
“듣기 싫다! 당장 내 딸을 내놓지 않으면 네놈들부터 내 포로로 만들어 딸과 교환할 테다! 물론 동맹 협상은 결렬이고 말이지!”
“훗, 우릴 사로잡겠다고? 그게 가능할까요?”
내가 어이없다는 듯 빙긋 웃자 델마와 길드원들은 벙찐 표정이 되었다.
지금 인원수가 10 대 1의 차이가 나는데 뭘 믿고 저러나 싶겠지. 사실 말이 안 되긴 하지. 게다가 델마가 데려온 저 녀석들은 쪽수도 쪽수지만 빛나리 길드의 최정예들로 대부분 레벨이 100을 훌쩍 넘는 녀석들이다.
여기서 나와 란슬링, 다쓰, 조핀이 맞짱을 뜬다고 해서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단 말이지.
델마는 그 점을 믿는 듯 부하들에게 크게 소리쳤다.
“흥, 아무것도 아닌 주제에 큰소리는! 얘들아! 저 녀석들을 당장 사로잡아서…….”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조핀을 향해 외쳤다.
“조핀 님!”
“알겠습니다, 우영 님.”
조핀은 침착한 태도로 나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며 가볍게 손뼉을 두 번 쳤다.
파앗!
순간 실내가 잠시 어둠에 잠기는가 싶더니 다시 환하게 밝아졌다.
그리고 장내의 공기가 서늘하게 바뀌었다.
“이놈들,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거냐! 이런다고 내가 떨 것 같은…….”
놀라서 고함을 지르던 델마는 말을 멈추고 침을 꿀꺽 삼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이 펼쳐진 탓이었다. 사방 벽을 타고 설치되어 있는 2층 난간에는 어느새 나타났는지 은빛 풀 플레이트 갑옷에 검은 망토를 두른 서른 명의 기사들이 쭈욱 서 있었다.
기름 등잔에 반사되어 푸른빛을 온 실내에 가득 쏟아 내는 투핸디드 소드를 든 채로 서 있는 그들의 얼굴은 투구에 가려져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과 살기는 장내를 질식시킬 것만 같았다.
그 기세에 빛나리 길드원들은 자기도 모르게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순식간에 장내의 공기는 180도로 바뀌었다.
“이……이자들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척도 없었는데……. 언제 나타난 거지? 도대체 이들은 누군가? 미라쥬 길드에 이런 실력자들이 몸담고 있었다는 말인가?”
델마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나를 돌아보았다.
훗! 쫄았군. 아까부터 느낀 거지만 이 인간, 은근히 겁이 많다니깐.
“훗! 우리 미라쥬 길드를 지원하는 이 기사들의 정체는 알려 드릴 수 없소. 그러나 이케루스에 존재하는 그 어느 나라의 정예기사단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실력이란 건 장담하지. 어떻습니까, 델마 님. 말씀대로 지금 당장 맞짱 한번 떠 보시겠습니까? 아니면 동맹 제의를 수락하고 우리와 손을 잡으실는지요?”
“…….”
내가 양자택일을 요구하자 델마는 슬며시 자기 길드원들을 둘러보았다. 승산이 있겠냔 물음이다.
그러나 길드원들도 한결같이 당혹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검은 망토 기사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만으로도 자신들보다 월등한 고수들이란 걸 단박에 알아챈 거다. 쪽수가 약간 더 많아도 승산이 희박하다는 기색이 얼굴에 역력하다.
델마는 결국 한숨을 내쉬면서 자리에 앉았다.
“알겠소. 미라쥬 길드와 손을 잡겠소.”
후후후후후훗! 진작에 그럴 것이지. 이걸로 동맹 체결 성공이다!

휘리릭!
“후후훗! 동맹협정서에 사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빛나리 길드 마스터 델마 님.”
“…….”
난 델마가 친필 서명한 협정서를 소중하게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근데 델마는 온몸에서 기가 다 빠져나가기나 한 것처럼 맥이 쭉 빠진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자기 딸이 우리 손에 있다는 걸 안 다음부터 계속 저 상태군. 모르긴 해도 딸을 엄청 귀여워하는가 보다. 하긴 무남독녀 외동딸이라고 하니까 그럴지도…….
덥썩!
허걱! 아니, 뭐야? 이 인간이 징그럽게 왜 달려들어 내 두 손을 덥썩 잡고 야단이야!
“아니, 저 델마 님…….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협정서에 서명까지 잘하시고 마음이 바뀐 건 아니시겠죠?”
“그럴 리가 있나. 우영 님이라고 하셨던가? 이보시게, 우영 님. 제발 내 금쪽 같은 딸내미가 무사하도록 잘 보살펴 주시오! 쉰이 넘어 얻은 딸자식이요. 나하곤 정반대로 어찌나 몸매가 잘 빠지고 예쁜지 눈독을 들인 늑대 같은 놈들이 한둘이라야 말이지! 만약 걔한테 나쁜 일이라도 생기면 내 인생은 끝장이란 말일세!”
음……. 하긴 당신 같은 빛나리를 닮은 딸이라면 엄청 심란하겠지. 엄청나게 잘 빠졌고 미인이라니 아마 지 엄마를 닮았나 보군. 나쁜 짓하는 놈들이 마누라는 대체로 엄청 미인이니까 말이야.
“후후후훗! 걱정 마세요. 제가 책임지고 털끝 하나 다치는 일 없이 잘 대접하죠. 그리고 약속대로 길드전이 우리 승리로 끝나는 즉시 따님을 무사히 돌려보내 드릴 겁니다.”
“당신만 믿겠네. 그럼 잘 부탁하이. 그리고 우리에게 요구할 사항은 언제든 말하게. 불에 뛰어들라면 뛰어들고 죽는 시늉을 하라면 죽은 다음에 초상 치르는 시늉까지 할 테니까.”
델마는 나한테 신신당부한 뒤에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부하들과 함께 돌아갔다.
그 모습을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내 귀에 친숙한 음향이 들려왔다.
띠리링!

공갈 협박 스킬이 80으로 늘었다.

빛나리 길드 마스터를 공갈 협박해서, 미라쥬 길드와 동맹을 맺는 협정서에 순순히 서명하게 만드는 능력을 과시했다. 그 보상으로 40점을 거뜬히 획득했다.
훗! 별로 자랑할 만한 스킬은 아니지만 그래도 스탯이 오르는 건 뿌듯하군.
또 이 스킬이 오를수록 상대를 심리적으로 제압해서 내 뜻대로 움직이게 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니까. 공갈 협박 스킬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오늘 델마를 상대했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아장아장!
철커덕 철커덕!
임무를 가뿐하게 완수한 뿌듯함에 젖어 있는 내 귀에 달갑잖은 현실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려 주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장아장은 조핀의 발걸음 소리. 그리고 철커덕은 검은 망토 갑옷 기사의 걸음 소리다. 온통 무거운 금속 갑옷으로 도배한 몸이라 걷는 것도 시끄럽군.
“우영 님, 멋지게 성공하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