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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화)Part 7.간계(2)


“…….”
조핀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천진난만하게 빙긋 미소 짓고 있구만. 어째 겉으론 웃지만 속으론 아드득 이를 갈고 있는 느낌인데? 내가 같이 자 주겠다고 하고선 꽁꽁 묶어서 하룻밤을 재웠다고 삐진 게 틀림없는 것 같군……. 그래서 빌려 주었던 블루 울프 기사단을 금방 원위치시킨 거다. 그러니 간부1이 저러고 있지…….
젠장! 블루 울프 기사단 삼십 명이면 도둑 길드 백 명 정도는 거뜬히 상대하고도 남는 전력인데 말이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블루 울프 기사단을 끌어들여야만 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이 길드전에 승산이 생긴다고.
그러니 일단 저 변태 중년의 비위부터 좀 맞춰 줘야겠다.
“조핀 님, 잠은 잘 주무셨습니까. 어젯밤에 좀 피곤하셨죠?”
“아뇨. 피곤하다니 천만에요. 그 어떤 분이 정성스럽게 밧줄로 저를 꽁꽁 묶어 숨도 못 쉬게 해 주신 덕분에 평생 못 잊을 밤을 보냈는 걸요. 그럼요, 죽어도 못 잊고말고요.”
“…….”
“…….”
조핀의 말에 란슬링과 다쓰가 혐오스런 눈빛을 나에게 던졌다.
“이게 무슨 소리냐. 쉬익! 우영 너 결박 플레이를 즐기는 취미까지 있었냐. 쉬익! 그것도 조핀 같은 미소년을 상대로 SM플레이를 즐기다니, 정말 질렸다. 쉬익!”
“훗! 이거 점입가경이군요. 파티장이라는 분이 이 정도로 막갈 줄이야. 뭐 단순 변태라면야 그래도 이해를 하겠지만 미성년자에게 고문과 다름없는 결박 플레이를 하면서 쾌감을 맛보다니, 인간의 탈을 쓰고 할 일이 아닌 것 같지 않습니까?”
이 자식들이! 나하고 조핀이 어떻게 자는가 새벽에 방문까지 열어서 모두 다 확인해 놓고선 저 지랄들이다.
망할 짜식들! 나를 천인공노할 변태로 낙인찍는 게 그렇게도 소원이냐?
그리고 조핀은 껍데기만 미소년이지 사실은 마흔댓 살 먹은 중년인이래도 왜 끝까지 미소년이고 미성년이라고 우기는 건데?
날 음해하려고 광분하는 녀석들은 일단 제쳐 놓고, 조핀에게 시선을 돌렸다.
“후훗, 제가 어젯밤에 장난이 좀 지나쳤던 것 같습니다. 앞길이 구만리 같은 조핀 님께서 너그럽게 이해하시고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 그래요? 그럼 용서해 드리죠. 근데 용서해 드리면 블루 울프 기사단은 안 빌려 드려도 괜찮죠?”
“전혀 안 괜찮습니다만. 그냥 절 용서하지 마시고 기사단만 빌려 주시면 안 될까요?”
“후후후후, 우영 님은 그렇게 안 보이는데 얼굴 피부가 상당히 두꺼우신 것 같네요. 우영 님이 제 입장이 되어 보시면 빌려 주겠다고 대뜸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니, 조핀 님. 그러지 마시고…….”
나는 안달복달하면서 조핀에게 매달렸다. 농담이 아니고 정말로 이 변태 중년이 협조 안 해 주면 승산이 없다고.
재경이를 찾아 떠나는 것도 급해 죽겠는데 이 길드전을 승리로 이끌기는커녕 패하면 어떻게 되겠냐고. 그러면 재경이 찾아 삼만 리가 아니고 재경이 찾아 저승까지가 될지도 모른단 거지.
즉, 창창한 내 청춘을 모조리 이케루스에서 다 보내게 될지도 모른단 거다.
난 조핀의 소맷자락을 붙잡고 늘어지며, 까까 사 달라고 투정 부리는 어린애처럼 칭얼거렸다.
“이잉! 조핀 님! 아이이잉! 좀 빌려 주세요. 아이이이잉∼”
“훗, 징그럽게 자꾸 그러지 마시죠. 그리고 그건 제가 하는 대사가 아닙니까? 어째서 우영 님이 귀여운 척을 하시는 거죠?
“길드전에서 지느냐 이기느냐 하는 이 시점에서 지금 누구 대사인지 그런 거 따지게 됐습니까? 그리고 알고 보면 저도 한 귀여움하는 남자라니깐요.”
“닭살 돋는단 말입니다!”
“안 빌려 주시겠다면 닭살 돋다 못해서 양계장으로 투신하고 싶어지게 만들어 드릴 겁니다!”
“훗, 아무리 그래 봐야 안 되는 건 안 됩니다.”
“조핀 님, 장난은 그만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
중후한 바리톤 풍의 목소리에 나를 비롯한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을 향했다.
풀 플레이트 메일에 검은 망토를 걸친 기사, 블루 울프 기사단 중에서 제일 선임이라고 조핀이 귀띔해 주었던 사람이다. 이름이 랑케라고 했던가?
이 작전 회의에 참석하면서 처음으로 투구를 벗어 얼굴을 드러내 놓고 있는데 백발에다가 얼굴 왼쪽에 검상도 길게 나 있다. 전장에서 수도 없이 사선을 넘은 백전노장이라는 느낌이 드는 사람이다.
“어차피 우영 님을 도와주실 거면서 왜 그렇게 아닌 척하시는 겁니까?”
“…….”
랑케의 말에 조핀은 씨익 미소 지었다.
“후후후후! 사람 애간장을 태우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지 랑케 님은 모르시는군요.”
뭐라고? 그럼 괜히 튕겨 본 거였구만. 랑케의 말대로 날 도와줄 거면서 괜스레 아닌 척 폼만 잡은 거라고.
하긴 날 안 도와주면 암흑제국에 밀사로 가야 할 임무를 내가 무성의하게 할 수도 있으니 그럴 테지.
안심했다는 표정을 짓자 조핀은 나한테 얼굴을 바싹 들이대고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말했다.
“빌려 드리긴 합니다만……. 분명히 말씀 드리지만 우리 블루 울프 기사단의 손실은 최소한으로 줄이도록 작전을 세우셔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우리 마토스 왕국으로서는 나라를 되찾을 소중한 전력이니까요.”
“암요, 명심하고말고요. 그래서 블루 울프 기사단에게 지원할 병참은 최고급으로 하고 포션도 가장 비싸고 좋은 것만 드릴 겁니다. 다른 길드원들은 엄두도 못 낼 걸로 말입니다. 그렇죠, 이사도라 대행?”
“물론입니다. 우리 미라쥬 길드를 위해 헌신해 주신다면 어떤 대가를 치러도 아깝지 않아요.”
음, 이사도라 너야 확실히 아깝지 않겠지. 길마 대행한 지도 얼마 안 돼서 아직 여기 재산이 니 거라는 실감도 별로 안 날 테니까.
근데 로저는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지 상당히 찝찝한 표정이구만. 그러게 길마 자리에 있을 때 좀 잘하지 그랬냐. 여자 꽁무니나 쫓아다닐 생각 좀 작작하고 말이지.

회의가 끝나고 모두 나가자 나는 랑케에게 슬쩍 물었다.
“아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랑케 님. 근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별 말씀을. 일단 한 배를 탔으니 가급적 서로 도와야죠. 근데 궁금하신 것은?”
기기깅!
백전노장의 무인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고개를 숙이니 갑옷에서 금속성이 마구 나는군. 저놈의 풀 플레이트 메일이 무겁지도 않은지 이 아저씨는 언제나 저걸 입고 투구를 쓰고 다닌다. 척 봐도 몇십 킬로는 나갈 것 같은데 말이지. 잘 때도 저걸 입고 자지 않는지 모를 일이다.
설마 용변을 볼 때에도? 쩝,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구만.
그건 그렇고 나는 슬며시 입을 열어 궁금한 걸 물었다.
“조핀 님은 진짜로 변태입니까, 아니면 장난으로 그러시는 겁니까? 조핀 님과 함께 지내신 시간이 저보다 훨씬 더 많으시니 잘 아시겠죠?”
“허허허헛! 그게 궁금하셨군요.”
“도무지 짐작이 되지 않아서 말이죠. 어떤 때는 눈빛에 장난기가 가득하고, 어떤 때는 정말로 흑심이 반짝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허허허허헛!”
“후후후후훗!”
재미있다는 듯 랑케가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자 나도 어색하게 웃었다.
그렇게 신나게 웃다가 랑케는 웃음을 뚝 그치고 나를 바라보았다.
헉! 아니, 이 아저씨 갑자기 왜 이렇게 무게 잡냐? 뭐, 조핀의 엄청난 비밀이라도 말해 주려나? 그렇다면 귀를 더 바싹 들이대야…….
“우영 님, 말씀 드리죠. 그건 말입니다…….”
“네, 그건?”
“그건…….”
“네, 그것은?”
“그것이야말로…….”
“네, 그것이야말로?”
“……안 가르쳐 드립니다!”
“아니, 왜요? 어째서요!”
엄청난 비밀이라도 말할 것처럼 하더니 안 가르쳐 준다고? 아니, 이 무거운 철판때기를 걸치고 다니는 사람이, 말 바꾸는 건 왜 이리 가벼워!
바짝 약이 오른 내가 항의하자 랑케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우리 마토스 왕실의 기밀 사항이라고나 할까요.”

* * *

“당통 형, 이거 정말 짭짤한데? 구역에서 바치는 상납금에 유흥업소들에서 들어오는 영업이익하며. 그동안 우리가 벌어들이던 것의 세 배 정도의 수익이 매달 생길 거 같애. 미라쥬 길드가 비기닝 시티에서는 최강 길드라서 접수하면 생기는 게 많을 줄은 알았지만 말이야.”
카오스 길드의 아지트, 길드 마스터 당통의 방이었다.
부길마 데이쓰는 계산기를 연신 두들기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던 당통도 피식 웃었다.
“그러니까 길드전을 하는 거지. 괜히 내가 길마가 되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그 고생을 했겠냐? 어쨌든 돈 관리 잘해라. 간부들은 물론이고 길드원들도 떨어지는 떡고물을 자기 손에 묻혀 보려고 눈들이 시뻘건 상태니까.”
그러자 데이쓰는 계산기를 두들기던 손을 멈추고 두 눈을 부라렸다.
“어림도 없지. 형하고 내가 얼마나 고생해서 작전 짜고 고생해서 미라쥬 길드를 무너뜨렸는데, 그 과실을 다 나눠 준다니. 천 명이 넘는 길드원들을 어떻게 전부 다 만족시켜 주느냐고.”
“그러니까 말이다. 하지만 밑에 놈들 마음이 어디 그러냐? 우리가 애쓰고 고생하는 건 아랑곳하지 않는 주제에 생기는 건 모조리 기계적으로 똑같이 나눠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인데.”
“그럼 어떻게 하지?”
“중간 간부들을 적당히 구슬려서, 미라쥬 길드를 무너뜨리고 챙긴 전리품이 생각보다 적고 구역에서 나오는 수입도 별로 많은 게 아니더라, 그래서 나눌 게 별로 없다고 길드원들을 설득하라고 해. 물론 중간 간부들한테는 어느 정도 챙겨 줘야겠지.”
당통과 데이쓰는 고개를 끄덕이며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들은 네 살 차이로 한동네에서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당통이 다니던 회사에서 업무상의 실수로 잘리고 백수가 되자 데이쓰는 자신이 하고 있는 가상현실 게임 이케루스를 권했다. 나름대로 돈벌이가 제법 된다면서.
그때부터 이케루스에 몰두하면서 본격적으로 폐인 모드에 돌입한 당통은 필사적으로 렙을 올리고 아이템 장사를 하면서 데이쓰와 함께 세력을 키워 나갔다.
급기야 카오스 길드를 만들어서 비기닝 시티에서 두 번째 가는 길드로 성장을 시켰다.
그 정도만 해도 제법 쏠쏠한 돈벌이가 되었다. 그러나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
어느 날, 미라쥬 길드와 사소한 이권 다툼이 생긴 불사조 길드가 카오스 길드를 찾아왔다. 그들의 제안은 연합해서 미라쥬 길드를 무너뜨리고 그 이권을 나눠 갖자는 거였다.
불사조 길드의 제안에 동의한 당통과 데이쓰는 빛나리 길드까지 끌어들여서 미라쥬 길드를 쳤고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큰 이익을 손에 쥐게 된 이 두 사람은 자신들이 챙길 이익을 독식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길드전에 참가해 싸운 대가를 나눠 달라는 길드원들의 요구를 철저하게 묵살할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물론 길마나 부길마가 일반 길드원들과 똑같이 이익을 나눈다는 건 불합리한 일일 테지만, 이들은 최소한의 분배조차도 밑의 사람들에게 해 줄 마음이 아예 없었다. 불사조 길드와 빛나리 길드한테도 전과를 제대로 나누지 않은 것은 물론이었다.
그들이 다시 계산기를 두들기며 자기들 수중에 들어오게 된 큰 이익에 흐뭇해하고 있는 순간. 덜컥 하고 문이 열렸다.
“길마님!”
“뭐야, 넌 노크도 할 줄 모르나!”
당통이 NPC인 길드원을 째려보았으나 그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죄송합니다만 길마님께 알려 드릴 매우 중요한 정보가 있다는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흥! 요즘엔 중요한 정보가 길거리에 넘쳐서 개나 소나 다 주워 갖고 다니나 보네. 도대체 그 정보를 가지고 왔다는 사람이 누군데?”
“미라쥬 길드의 간부라고 하는데 거짓말 같진 않습니다.”
길드원의 말에 당통은 미간을 찌푸렸고 데이쓰는 고개를 갸웃했다.
“미라쥬 길드 간부라……. 형, 어쩌지? 볼일 없으니 돌아가라고 할까?”
“아냐. 근자에 미라쥬 길드의 잔당들이 뭔가 꾸미고 다닌다는 소문도 있고 하니까. 일단 들어오라고 해 봐.”
“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