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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2권
(43화)Part 7.간계(4)


“아니, 죽이지는 않았고, 그냥 발목과 팔에 철퇴가 달린 족쇄를 채워서 지하 감옥에 가둬 놨다고 하던데?”
“죽이지 않았다고?”
“응, 그 몬스터의 부하들이 제법 있어서 섣불리 죽이면 후환이 있을지 모르니까, 그냥 살려 둔 거야.”
“음…….”
“근데 그건 뭐하러 물어?”
“음…….”
“아, 사람 말이 안 들려? 그건 뭐하러 묻느냐고?”
“그건 알 거 없고……. 앗! 로저 님, 마침 잘 오셨습니다!”
슬쩍 이사도라의 얼굴을 보려고 들어온 로저는 내가 반가워하자 찝찝한 표정이 되었다.
내가 길드전에 대비하고자 이것저것 요구하는 게 많아지니까 그런 거였다. 길마 자리에선 물러났지만 실질적인 미라쥬 길드의 재정과 재산은 아직도 로저가 관리하고 있어서 말이지. 병참이나 무기 조달 등은 전적으로 로저의 허락을 받아야 얻어낼 수가 있었다.
“텔레포트 스크롤 좀 주시겠습니까? 왕복으로 어디 좀 다녀올 데가 있으니까 두 장이 필요하겠습니다만.”
“어디를 다녀오실 건데요?”
“글래스 캐슬입니다.”
내 말에 이사도라가 미심쩍은 표정이 되었다.
“우리 아버지 성엔 뭐하러 가는 건데? 내가 말했잖아. 아버진 절대로 자기 군대 안 빌려 줄 거라고.”
“어쨌거나 난 다녀와야겠다. 로저 님, 텔레포트 스크롤을 주실 수 있죠?”
“그냥 말 타고 갔다 오시면 안 됩니까?”
“아,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지금 언제 길드 연합하고 한판 벌여야 할지 모르는 판에 여길 비워 두고 며칠씩이나 걸려서 여행을 하고 있으란 말입니까! 휭하니 순식간에 갔다 와야 한단 말입니다!”
“그래도 그게 한 장에 백 골드씩이나 하는 건데…….”
이 인간이 지금 쪼잔하게 돈 나간다고 아까워하고 자빠졌네. 체격하고 생긴 건 보스 몬스터인 주제에 하는 짓마다 이렇게 째째하고 통이 적냐! 저길 보라고. 이사도라도 널 한심한 눈으로 보는 게 안 보이냐?
“훗! 그렇잖아도 스트라스포드 백작이 딸을 험한 곳에 시집보낸 거 같다고 걱정하시는 모양인데 제가 가서 잘 말씀드리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결혼이고 나발이고 다 때려치우고 이사도라 님을 당장에 데려오라고 하시지 않을까요? 로저 님은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결혼식을 예정대로 못 치르게 되어도 아무렇지도 않느냔 말씀입니다.”
“헉! 아니, 지금 무슨 말씀을! 텔레포트 스크롤 여기 있습니다. 두 장……. 아니, 넉 장 드리겠습니다. 팍팍 사용하세요.”
“역시, 로저 님은 통이 크시군요. 마음에 듭니다.”
“대신에 글래스 캐슬에서 장인어른을 만나시거든 제 이야기를 잘해 주셔야 합니다, 아시죠?”
“…….”



Part 8.피그몽들을 끌어들이다(1)


“숲이 꽤 울창하네요. 깊이 들어갈수록 햇볕도 안 들어오고 어두워지니 말입니다.”
나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대낮인데도 높이 솟은 아름드리 나무들의 가지에 가려서 사방이 어둑어둑하다.
“그래서 더 좋잖아요, 안 그런가요? 우영니이이임∼”
내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마리사가 몸을 슬쩍 밀착하면서 애교를 부렸다.
쩝! 이 아가씨, 이 어두컴컴한 숲으로 깊숙이 들어오자마자 이러는구먼.
덕분에 마리사의 가슴 감촉이 내 팔에 물컹하고 전달되고 있다.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향긋한 내음과 함께 말캉말캉한 가슴 감촉에 정신이 다 혼미해질 지경이다.
솔직히 기분이 나쁘진 않다만 이러다가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을 잊어 먹을까 봐 겁난다.
이곳은 글래스 캐슬에서 좀 떨어진 산에 있는 숲 속이다.
내가 이곳에서 뭘 하고 있냐고?
그걸 설명하자면 글래스 캐슬에서 백작을 만난 이야기부터 해야 한다.

* * *

로저한테 얻은 텔레포트 스크롤로 글래스 캐슬을 방문한 나는 우선 스트라스포드 백작을 만났다.
“백작님 영지의 군대를 좀 빌려 주셨으면 합니다만.”
“안 되네.”
“제가 빌려 달란 게 아니고 이사도라 양이 요청한 건데요?”
“그러니 안 된다는 걸세.”
“절대로 안 됩니까?”
“절대로 안 되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허락 못하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는 허리를 굽히고 땅의 흙을 열심히 모으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백작이 그러더군.
“자네 지금 뭘 하는 겐가?”
“백작님 눈에 넣을 흙을 줍고 있는 중입니다만.”
“…….”
좌우간 백작은 요지부동이었다.
스탯이 제법 오른 공갈 협박 스킬조차도 통하지 않았다.
뭐, 이사도라한테서 절대로 불가능할 거라는 말은 들었지만…….
“이곳의 영지민들은 영주인 나를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이고, 내가 목숨을 걸고라도 보호해야 할 사람들이네. 근데 내 딸년의 사소한 목적 때문에 그들을 길드전에 보내서 다치게 하거나 죽게 할 순 없네. 그랬다간 내가 무슨 낯으로 사상자들의 가족을 볼 수가 있겠냔 말인가. 따라서 절대로 불가능하네.”
그렇게까지 말하는 데야 정말로 도리 없었다. 깨끗이 포기하는 수밖에. 자신이 다스리는 영지민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생각하는, 제법 훌륭한 영주이긴 하다. 존경심까지 마구 생기려고 한다.
하지만 존경은 존경이고 내가 여기 온 목적은 달성해야겠지. 그래서 나는 준비해 둔 두 번째 카드를 백작에게 제시했다.
“후후훗! 저와 이사도라 양의 간절한 부탁을 백작님께선 무참하게 거절하셨습니다. 그러니 그건 포기하죠. 그러나 이 두 번째 부탁은 꼭 들어주셔야겠습니다. 만약 이것마저도 거절하신다면 전 무슨 짓을 할지 장담 못 드립니다. 그리고 이사도라 양도 제가 심했다고 나무라지는 않을 테고 말이죠.”
나는 메이스에 손을 얹은 채, 최후로 공갈 협박 스킬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살벌하게 말했다.
그러자 백작도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내가 자세히 말해 주는 두 번째 부탁을 모두 다 들은 백작의 얼굴은 새하얘졌다.
“무엇! 여기 잡혀 있는 메피스트를 이용해서 피그몽들을 길드전에 동원시키고 싶다고? 자네 지금 제정신인가?”
“물론 제정신이죠. 당연한 걸 뭐하러 물어보십니까? 설마 그것도 안 된다고는 못하시겠죠?”
“으음…….”
“너무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겁니다. 저와 이사도라가 다른 뒤탈이 안 생기도록 노력할 테니까요.”
“그래도…….”
“그렇게 마음에 걸리시면 그냥 첫 번째 요구를 들어주시는 건 어떻습니까?”
“그건 절대로 안 되네! 알았네. 두 번째 요구를 들어줌세. 저런 딸년을 낳은 내 죄이니 어쩌겠나. 위험부담을 내가 감수할 수밖에.”
스트라스포드 백작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순간 음향과 함께 창이 뜨더군.

공갈 협박 스킬이 85로 늘었다.

스트라스포드 백작에게 발휘한 공갈 스킬이 절반의 성공만 거둬서 5점만 챙겨 도합 85가 되었다.

* * *

그래서 나는 글래스 캐슬의 지하 감옥에 갇힌 메피스트를 만난 다음에 이 숲으로 들어온 거다.
근데 마리사가 왜 같이 있냐고?
사실은 백작을 만나고 메피스트를 만난 다음에 후딱 성을 나오려고 했다. 근데 성문에 설치된 도개교를 건너는 순간에 마리사와 딱 마주치고 말았던 거지.
“꺄아아아악! 이게 누구죠?”
어이, 거기 날 보고 반가워 날뛰며 비명을 마구 질러 대는 아가씨. 내가 누군지 모르겠으면 그냥 보내 주면 안 될까?
“어머! 피그몽들이 사는 숲으로 들어가실 거라고요?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우영 님은 이곳 지리는 전혀 모르시잖아요?”
아니, 사실은 백작이 지도를 보여 주면서 상세하게 알려 준 덕분에 아무 문제없습니다만……이라고 말을 해도 이 아가씨의 얼굴을 보니 소용이 없겠군. 내가 절대로 따라올 필요 없다고 해도 모조리 개무시하고 안내인인 양하면서 따라나설 태세다.
젠장, 어쩔 수 없지.
사실 험한 숲이라서 혼자 들어가는 게 좀 꺼림칙하기도 하니까.

그래서 함께 숲으로 들어온 것까진 좋았는데 계속 질척질척 모드로구만.
그나마 란슬링과 다쓰 녀석이 옆에 없는 게 다행이다. 그것들이 있었으면 눈이 시어서 실명할 것 같다는 둥, 복통 때문에 내장 파열이 될 것 같다는 둥 헛소리를 또 해 대면서 날 갈궈 댔을 테니까 말이지.
“아이이잉∼ 우영 님? 왜 가만히 계셔요?”
“네?”
“왜 가만히 계시냐구요?”
“가만있지 않으면 절더러 뭘 어쩌란 말씀이신지?”
“흥, 여자인 제가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남자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노력? 노력이라고? 도대체 뭘 노력하고 있다는 건데? 그리고 여자, 남자는 왜 들먹이는 건데?
임무를 어떻게 완수할지 내심 초조해 죽겠는데 이 아가씬 혼자서 엉뚱한 생각만 하고 자빠졌구만.
“절더러 뭘 어떻게 하란 건지, 지금 마리사 님이 마음속으로 생각하시는 걸 구체적으로 일목요연하게 말씀해 주시면 그렇게 하도록 한번 노력은 해 보겠습니다만.”
내가 퉁명스럽게 말하자 마리사는 두 얼굴을 감싸 쥐면서 온 숲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질러 댔다.
“엄머머머머머! 세상에, 세상에! 어떻게 그렇게 심하게 음란하고 엉큼하고 낯 뜨거운 이야기를 제 입으로 말하란 거죠? 몰라! 몰라요옷! 전 살다 살다 우영 님처럼 엉큼하고 여자한테 심하게 성희롱하는 남자는 처음 봐욧! 악당, 악당! 이 악다아아아앙!”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퍽!
컥! 우욱!
이 아가씨 창피해죽겠다는 듯 몸을 비비꼬면서 내 등짝을 도리깨질하듯 마구 후려 패대네.
근데 여자의 펀치력이 왜 이리도 좋은 거냐. 등뼈가 부러지는 것 같고 내장이 마구 진탕되어서 졸도할 것만 같다.
그리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길래 ‘그렇게 엉큼하고 낯 뜨거운 이야기’를 할 수 있냐고 지레 난리를 떠는 건데?
도저히 더 이상은 안 되겠다. 마리사의 주먹이 등짝을 향해 또 날아올까 봐 겁에 질린 나는 다급히 말했다.
“마리사 님, 우리 재미있는 게임 하나 할까요?”
그러자 마리사는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관심을 보였다.
어휴……. 그 눈을 보니 또 그 머릿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자빠진 건지 짐작이 가는구먼. 게임이라니 무슨 야한 게임이라도 하는 걸로 상상하는 게 틀림없다.
“어떤 게임이죠?”
“나자바바라……라고 하는 이름의 게임입니다. 간단한 건데, 내가 지금부터 열심히 이 숲에서 도망을 치면 마리사 님이 절 잡는 거죠. 전 잡히면 안 되는 거고 마리사 님은 절 잡아야 하구요.”
“잡으면 무슨 상을 주는데요?”
“잡은 사람은 잡힌 사람이 시키는 것 한 가지를 해야 합니다. 10시간 동안 입 다물고 있기라든가. 잡힌 사람 주위 반경 10m 내외로는 절대 접근 금지라든가 말이죠.”
내 말에 마리사의 얼굴은 금세 차가워졌다.
“흥! 재미없네요. 규칙을 바꾸시면 그 게임을 하겠어요. 잡힌 사람은 잡은 사람이 시키는 걸 무조건 한 가지 해야 한다로 말이죠.”
젠장, 잡히면 이 아가씨가 나한테 뭘 요구할진 뻔하다만 어쩔 수 없지.
“알겠습니다. 시작합시다. 언제 시작하냐구요? 바로…… 지금 당장!”
후다다다다다다닥!
말을 끝마치자마자 나는 몸을 날려서 필사적으로 숲 속으로 도주했다.
당황한 마리사가 고래고래 지르는 뾰족한 목소리가 내 뒤통수를 때렸다.
“어머머머멋! 이건 반칙이예요! 우영 님, 서세요! 일단 서시라니까욧! 흥, 잡히면 가만 안 둘 테니까 그렇게 아세요! 내 손에 잡히기만 해 봐요오오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