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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2권(44화)
Part 8.피그몽들을 끌어들이다(2)
“휴우, 겨우 따돌린 것 같군.”
필사적으로 숲 속을 도주해서 간신히 마리사의 마수(?)로부터 벗어난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근데 정작 다른 문제가 생겼다. 지금 위치가 어딘지를 도통 알 수가 없는 거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마리사로부터 빨리 떨어져야겠다는 마음에 무작정 튀다가 보니 방향을 까먹었다.
쩝……. 어쩐다? 미아가 되어 버렸으니…….
물론 최악의 경우는 미라쥬 길드 비밀 아지트로 좌표가 설정되어 있는 텔레포트 스크롤을 찢으면 된다. 그러면 간단하게 아지트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이 숲에 들어온 목적을 달성하지도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갈 순 없지.
일단 걷고 보자…….
근데 무언가를 목표로 하고 걸어야 할 텐데 말이지. 숲이 우거지고 시야가 좁은 곳에서는 무작정 걷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같은 장소를 빙빙 돌거나 헤매게 될 수가 있으니까.
그런 현상을 링반대롱이라고 한다더군. 링반대롱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무언가 목표를 정하고 그쪽을 향해서 꾸준히 걸어야 한다.
음, 목표라, 목표……. 뭐가 좋으려나? 이를테면 이 숲에 보이는 것들 중에 뭔가 특색이 있는 게 좋을 텐데…….
그렇지 저기 보이는 연기를 목표로 삼으면 딱 좋은……. 엉? 아니, 저거 진짜 연기 아냐?
연기가 있다는 건 저기 사람이 있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저 연기만 향해 가면 된다.
난 부지런히 발걸음을 놀렸다.
음……. 가까워 보였는데 좀 멀군. 역시 이런 험한 숲 속에서는 거리 감각이 확 트인 곳과는 다르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휴우……. 다 왔다. 엇! 근데 이게 뭐야?”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눈앞에 나타난 곳에는 풀과 나무를 엮어서 엉성하게 만든 초막이 여러 개 있었다. 근데 이거 어째 사람이 살만한 주거지역이 아닌 것 같은데? 원시인들이라면 몰라도…….
내가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데 초막 한 곳에서 한 인영이 스윽 모습을 드러냈다.
웃…….
“흐흐……. 넌 뭐냐? 인간이 여기 왜 있는 거냐? 흐흐흐.”
피그몽이었다. 메피스트보다 덩치는 더 작고 손톱은 짧았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웬만한 인간들에 비해서 머리 두 개는 더 컸고 이빨도 시퍼렇고 손톱은 웬만한 단검 못지않게 날카롭긴 했지만. 입고 있는 갑옷도 메피스트처럼 제대로 된 게 아니고 동물의 껍질을 벗겨서 대충 기운 거구만. 손에 들고 있는 것은 트라이던트……가 아니고 쇠스랑 같은데? 트라이던트나 쇠스랑이나 날이 세 개인 건 비슷하다만.
좌우간 여러모로 메피스트에 비해서는 미달이다. 뭐, 그 녀석이 피그몽들 중 대빵이니 당연한 거겠지만.
근데 문제는 저 피그몽이 하나가 아니라는 거지. 인기척을 느끼고 초막들에서 여러 명, 아니 여러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녀석들은 나를 포위하듯 빙 둘러쌌다. 그러고서는 저마다 한마디씩 던져 댔다.
“인간, 여기 뭐하러 왔냐. 흐흐.”
“우리 두목을 잡아 가둔 인간 놈들이 여긴 왜 온 거냐. 흐흐.”
“살이 야들야들한 게 발라서 먹으면 맛있을 것 같다. 흐흐.”
흐흐 거리는 건 메피스트만 그러는 줄 알았더니 이 피그몽이라는 몬스터들의 공통된 특징이었구만.
좌우간 피그몽들은 쪽수가 많다고 기고만장했는지 나에게 이빨을 드러내는 등 위협을 해 대면서 기세를 올렸다. 들고 있는 쇠스랑으로 내 발 쪽의 땅을 쿡쿡 찔러대는 녀석도 있었다.
훗! 이것들이……. 지금 날 위협하고 있단 말이지?
난 가소롭다는 듯 실실 쪼갰다.
근데 사실은 가소롭지가 않고 쬐끔 무섭군. 정확히 말하면 쬐끔……이 아니고 많이 무섭지만. 이렇게 몬스터들한테 떼거리로 둘러싸이는 건 처음이라서 말이지.
대충 세어 봐도 백 마리는 훌쩍 넘을 것 같구만.
좌우간 머리 나쁘고 무작정 들이대는 것들한테는 절대 숙이고 들어가선 안 된다. 왜냐면 상대가 겸손해서 그런 줄을 모르고 지가 잘난 줄만 알고 한정 없이 밀고 들어오거든. 합리적이고 똑똑한 놈들은 이쪽에서 숙이는 만큼 양보를 할 줄 알지만 말이지.
그래서 쫄고 싶은 걸 꾹 참고 한껏 거만한 표정으로 외쳤다.
“훗! 나는 스트라스포드 백작의 명으로 너희들과 협상을 하러 온 우영 님이시다. 너희들의 대표자는 앞으로 나와라!”
“흐흐……. 대표자가 뭐냐?”
“먹는 거냐? 먹으면 맛은 있는 거냐. 흐흐……. 그리고 협상은 뭐하는 거냐? 대표자 뒤에 먹는 거냐, 앞에서 먹는 거냐?”
“…….”
나는 잠시 벙쪘다.
이런 무식한 것들이 있나. 대표자란 말도 모르는 무식한 돼지 새끼들 같으니.
가만 보니 몬스터 중에서도 냄새나고 더럽고 무식한 종족의 대명사로 인정받는 오크보다도 좀 더 심한 것 같다.
“그, 그러니까 말이다. 대표자라는 것은…….”
나는 진땀을 뻘뻘 흘리며 피그몽들에게 손짓 발짓에 땅바닥에 그림까지 그려 가며 설명을 해야 했다.
그러자 30분이나 지나서야 한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는 거였다.
“알겠다. 흐흐. 알고 보니 간단한 걸 이렇게 오래 걸려 설명하다니. 인간 너 머리 무지무지 나쁘구나. 흐흐. 불쌍하다 흐흐. 조금 있어라. 메피스트 두목 대신인 바투르 불러 준다. 흐흐.”
녀석은 날 불쌍하다는 눈으로 보더니 좀 규모가 큰 초막 안으로 들어가서는 한 피그몽을 데리고 나왔다.
이 녀석이 바투르인가? 메피스트하고 덩치는 거의 비슷한데 입고 있는 갑옷은 역시 짐승 가죽으로 만든 거로군. 그리고 확실히 다른 피그몽들에 비해서 좀 다르긴 하군. 눈빛이 밝은 게 제법 머리를 쓰는 녀석 같다.
“인간,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온 거냐. 흐흐. 죽으려고 제 발로 찾아온 거냐? 흐흐흐.”
“훗! 내가 죽긴 왜 죽냐? 잘 들어라. 난 글래스 캐슬의 스트라스포드 백작이 너희 피그몽들에게 전하는 편지를 가지고 왔다. 매우 중요한 편지니 꼭 읽어 봐라. 글래스 캐슬에 잡혀 있는 니들 두목 메피스트에 관한 거니깐.”
“편…… 지……. 읽어 보라고? 흐흐.”
편지라는 말에 바투르는 당황하는 눈치였다.
쩝, 대표자라는 말도 모르는 놈들의 두목이니까 똑똑하다고 해도 인간들의 글을 모르는 거로군.
“쩝……. 몬스터라도 똑똑한 녀석들은 인간이 하는 거 웬만큼 흉내 낼 줄 안다던데 당신은 예외인가 보구만. 어쩔 수 없지. 귀찮지만 내가 직접 읽어 주마.”
“고맙다. 흐흐…….”
“나 스트라스포드 백작이 너희 피그몽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겠다. 이 편지를 가지고 간 사람이 하는 부탁 하나를 무조건 들어주면 너희들의 두목 메피스트를 글래스 캐슬에서 석방해서 너희들에게로 무사히 돌려보내 주겠다. 웃, 이건!”
“엉? 마지막이 뭐가 그러냐? ‘웃, 이건’이라니? 흐흐…….”
“아, 아냐? 그저 백작의 필체가 너무 조잡해서 좀 놀란 거다.”
바투르의 물음에 난 황급히 아무것도 아닌 척했다. 사실 백작한테 편지를 써 달래서 부랴부랴 갖고 오느라 안 읽어 봤거든. 여기서 처음 읽는 거였는데 맨 마지막엔 이렇게 써져 있었다.
내 제안을 안 받으려면 이 편지를 가지고 간 녀석을 그냥 죽여주면 고맙겠다. 확실히 처리해 주면 그 보답으로 베이컨 백 인분을 주도록 하겠다.
젠장, 이 능구렁이 같은 백작. 알고 보니 은근히 날 없애 버리고 싶어 했구만. 하긴 메피스트를 잡아 준다고 하고선 성의 절반을 다 날려 버렸지, 날라리 딸을 시집보내준다고 하고선 웬 도둑놈 마누라로 만들었지. 그것도 모자라서 출가외인의 우환거리를 만들어서 가지고 와 골치 아프게 하니 달가울 리는 없겠지.
해결해 주긴 해 줬는데 단 한 가지도 확실하고 뒷탈 없이 깨끗하게 해결해 준 건 없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런 식으로 날 없애 버리려고 잔꾀를 부려?
이 노인네는 바투르 정도면 직접 글을 읽을 줄 알리라 생각하고 이렇게 쓴 모양이다. 젠장할.
그건 그렇고 이 피그몽들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가 문제다.
“어떻게 할 거냐? 편지에 적힌 대로다. 메피스트를 돌려받고 싶으면 내 부탁을 하나 들어줘야 한다. 메피스트를 그냥 죽여 버려도 상관없다면 내 부탁 안 들어줘도 되고.”
“흐흐, 안 된다. 메피스트 있어야 우리 피그몽들 좋아진다. 흐흐.”
“그래? 하긴 백작한테서 대충 듣긴 들었다만…….”
메피스트가 변태긴 해도 피그몽들 중에선 머리가 제법 잘 돌아가서 인간들하고 협상을 잘해서 필요한 식료나 물자를 제법 얻어 왔다고 했다. 필요할 경우에는 마을을 습격해서 인간들에게 겁을 주고 물건을 빼앗아 오기도 했는데, 나름대로 무력과 협상을 적절히 사용하는 수완을 보였다는 거다.
근데 메피스트가 나 때문에 글래스 캐슬의 감옥에 잡히고 난 다음부터는 피그몽들도 사정이 어려워졌다는군. 메피스트가 구해 온 식료와 물자 조달이 불가능해졌으니까.
이 바투르란 녀석은 다른 피그몽들보단 나아도 메피스트 만큼은 못 되는 게 틀림없다.
“흐흐. 그전에 네가 정말 스트라스포드 백작이 보낸 인간인지 증명부터 해라.”
역시 임시 두목답게 기본적인 머리는 돌아가는군. 나는 준비해 간 메피스트의 녹슨 청동 건틀렛을 인벤토리에서 꺼내서 보여 주었다.
“확실하다. 흐흐. 두목의 건틀렛 맞다.”
“그럼 내 부탁을 들어줄 거냐?”
“어떤 부탁이냐?”
“길드전을 하는데 너희들의 힘이 필요하다. 와서 싸워다오.”
“우리 싸움 좋아한다. 흐흐. 싸워 주는 거 어려운 부탁은 아니다. 흐흐.”
“그래, 그럼 잘됐군. 그럼 지금 당장…….”
내가 반색을 하자 바투르는 손을 내밀어 말을 막았다.
“하지만 우리가 너 부탁 들어준 다음에 니가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는 보장 없다. 흐흐. 널 어떻게 믿냐. 흐흐.”
“음…….”
확실히 이 녀석은 피그몽치고는 생각이 깊다. 우두머리 노릇 할 만하다.
쩝, 잘나가다가 다시 난관에 봉착인가. 이 녀석들 숫자를 대략 세어 보니 백이십 마리. 피그몽 백이십 마리를 길드 동맹에 끌어들이면 판세가 지금까지와는 크게 달라질 텐데.
난 공갈 협박 스킬을 다시 발휘하면서, 살벌하게을 인상 쓰면서 일어섰다.
“그래? 못 믿겠다고! 그럼 거절하는 걸로 알겠다. 글래스 캐슬로 가면 메피스트를 당장 교수형에 처해야겠군, 그래.”
“자, 잠깐! 흐흐.”
바투르는 당황하며 나를 제지했다.
“왜? 내 제안을 받아들일 거야?”
“…….”
잠시 망설이던 바투르는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조금만 기다려라. 흐흐. 우리들이 의논해 본다. 흐흐.”
그러더니 한쪽 구석으로 가서는 열 마리쯤 되는 피그몽들과 함께 쑥덕 공론을 벌이기 시작했다. 어떻게 할 건지를 의논하는 거겠지.
뭐 저런 닭대가리……는 아니고 돼지 대가리들로 궁리해 봐야 좋은 수가 나올지는 모르겠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