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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2권(45화)
Part 8.피그몽들을 끌어들이다(3)


한구석에 처모여서 꿀꿀거리고 흐흐거리면서 피그몽들은 한참을 떠들어 대더니 결론을 내렸는지 바투르가 나한테로 왔다.
“인간, 너 부탁 들어준다. 흐흐. 하지만 그냥은 안 된다. 흐흐.”
“그럼 어쩌자는 건데?”
“인간들 우리 두목 메피스트 데리고 있다. 그러니 우리도 인간을 하나 데리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공평하다. 그래야 우리가 안심하고 싸워 준다. 흐흐. 이건 절대로 양보 못한다. 흐흐.”
음……. 지들도 인질을 잡고 있어야겠단 말이군. 그래서 싸움 끝나고도 메피스트를 안 돌려주면 지들도 그 인질을 없애겠단 거지.
말이 되는 소리긴 한데 난 여기 혼자서 왔단 말이다. 이 돼지 대가리들아.
난데없이 인질이 어디서 생겨서 니들한테, 애 좀 데리고 계셔 주세요 하고 갖다 바치냐고.
니들 같은 무식하고 밥맛 떨어지는 몬스터한테 인질로 잡혀 있겠다고 나설 골 빈 인간이 어디 있겠냔 거다.
돌아가서 스트라스포드 백작한테 부탁한다고 해도, 그렇게 영지민들을 아끼는 백작이 인질로 삼으라고 누굴 내줄 리도 없고 말이지.
어휴……. 어쩔 수 없군. 결국 협상 결렬이다. 씁쓸하지만 어쩔 수 없지. 지친 몸을 이끌고 미라쥬 길드 비밀 아지트로 돌아가야지. 정말 맥빠지네.
백 골드짜리 텔레포트 스크롤 두 장, 도합 2백 골드를 사용해 가지고 나온 결실이 아무것도 없다니. 뭐, 내 돈 2백 골드가 들어간 거야 아니지만.
젠장……. 난 가니까 잘 먹고 잘 살아라 이 돼지 대가리들아!
허탈한 표정으로 인벤토리에서 텔레포트 스크롤을 꺼내는 순간이었다.
그 누군가의 공포스런, 이를 아드득 가는 목소리가 내 귀를 두드렸다.
“아드드득! 오호호호홋! 우영 님, 절 따돌리고 어디로 튀셨나 했더니 여기서 피그몽들하고 놀고 계셨군요. 재미 좋으셨나요? 오호호호홋! 아드드득!”
스윽 고개를 돌려보니 마리사가 숲을 헤매느라 꽤 고생했는지 옷은 군데군데 찢어지고 팔뚝은 가시덤불에 긁혔는지 피가 맺혔고 머리는 마구 헝클어진 채로 날 노려보고 있다.
음, 이 아가씨 나자바바라 게임에 너무 심하게 열중했던 게로군. 날 잡아 가지고 그 무엇인가를 시키고 싶은 욕망이 그토록 강했던 거냐?
근데 나 찾느라고 숲 속에서 넘어지고 자빠지고 긁히고 찢기고 애깨나 먹었나 보다. 약이 단단히 올랐는지 저 눈빛이 장난이 아니네. 이대로 있다간 또 저 공포스런 주먹에 죽도록 두들겨 맞는다.
난 벌떡 일어나 그녀의 두 손을 잡았다. 그녀의 공포스런 주먹질을 미리 봉쇄하기 위한 내 나름의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마리사는 나의 그런 몸짓을 엉뚱하게 판단했나 보다.
“마리사 님!”
“엇! 아니, 왜 이래요? 흥, 누가 내 손 잡으랬어요? 엉큼하게 왜 이래요? 이 손 놓으세요. 흥, 흥, 흥!”
손 놓으라면서 왜 니 손에는 도리어 힘을 빼는 거니?
마리사는 얼굴을 돌리면서도 손은 완전히 나한테 맡긴 채 슬며시 얼굴까지 붉혔다.
순간 한 가지 아이디어가 반짝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 공포스런 여자도 해결하고 내가 여기 온 목적도 달성하는 방법이 말이지!
난 한껏 느끼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훗, 이제 보니 마리사 님은 절 정말로 좋아하시는가 보군요?”
“…….”
“근데 전 나만 바라보고 진득하게 기다려 줄 수 있는 여자를 좋아하는데, 마리사 님이 그런 타입인진 모르겠군요. 솔직히 그것 때문에 마리사 님의 마음을 받아들여야 할지 확신이 안 섭니다.”
“어머, 이거 왜 이러세요. 절 어떻게 보고 그러세요! 제가 세상에서 제일 자신 있는 게 기다리는 건데! 기다리기로 말하면 늙어 꼬부랑 할머니가 돼서 관에 들어가서도 기다릴 수 있어요!”
“그런가요? 그럼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 줄 수 있습니까?”
“행동이라고요? 어떻게…….”
내가 계속 진지한 태도로 말하자 마리사도 당황한 눈치였다.
여기서 늦춰 주면 안 된다. 계속 몰아붙여야 한다고!
“아주 간단합니다. 여기서 피그몽들하고 함께 일주일만 저를 기다려 주시면 됩니다. 그때까지 여기 계셔 주신다면 마리사 님이 제가 좋아하는, 주구장창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기다려 줄 타입의 여자라는 걸 분명히 인정해 드리겠습니다.”
“…….”
내 말에 마리사는 난감한 눈치였다.
당연하겠지. 멀쩡한 처녀가 돌았다고 저 피그몽들하고 함께 일주일 동안이나 있고 싶겠냐. 이 돼지 우리 같은 곳에서 말이다.
“훗, 역시 제가 너무 어려운 제안을 했나 보군요. 그냥 없던 일로 합시다. 그럼 우리 글래스 캐슬로 돌아가 볼까요?”
“자, 잠깐만요.”
“왜요?”
“아, 알았어요. 그러니까 일주일만 여기 있으면 되는 거죠?”
난 ‘심봤다!’고 속으로 소리 지르고 싶은 걸 꾹 참고 뭘 그렇게까지 하려고 하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습니다만 꼭 하셔야겠습니까? 웬만하면 관두시죠? 이런 몬스터 사는 곳에 마리사 님을 혼자 계시게 하려니 걱정이 되어서 말이죠.”
“싫어욧! 제가 우영 님 타입이라는 걸 반드시 증명해 보이겠어요!”
“그것참, 안 그러셔도 되는데……. 마리사 님은 참으로 도전 정신이 강하시군요. 이러시면 부담되는데…….”
나는 그 자리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은 걸 꾹 참고 마리사를 잠시 기다리라고 해 놓고 바투르한테로 갔다.
“좋다. 당신 요구를 수락한다. 인질을 주지. 바로 저기 저 여자다!”
“인간 여자? 좋다. 우리가 데리고 있는다. 흐흐. 우리가 싸워 준 다음, 메피스트 두목 올 때까지다. 걱정은 마라. 우리가 인간 여자 잘 데리고 있을 거다. 흐흐.”
잘 안 데리고 있어도 괜찮고, 내가 다시 올 때 아예 없어도 전혀 문제없다고 말해 주고 싶은 걸 꾹 참고 나는 바투르한테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마리사의 마음이 변할까 봐서 후다닥 그녀와 작별 인사를 마치고 텔레포트 스크롤을 찢었다.
번쩍하는 빛과 함께 내 몸은 순식간에 피그몽들의 촌락에서 사라졌다.
순간 띠리링하는 음향과 함께 창이 떴다.

잔머리 스킬이 60점으로 올랐다.

마리사를 이용해서 피그몽들을 길드전에 동원하려는 계획이 성공해서 잔머리 스킬이 60점으로 올랐다. 내 몸으로 안 때우고 남을 움직여 목적을 달성하면 잔머리 스킬은 늘어난다.



Part 9.길드전(1)


“너희들은 누구냐?”
고급 와인들을 마차에 싣는 작업을 하던 카오스 길드원들이 불쑥 나타난 우리들을 향해 소리쳤다.
나는 거만하게 대꾸했다.
“그건 알 거 없고, 지금 하는 작업을 즉시 중지하고 여기에서 꺼져 주기 바란다. 30초 주겠다.”
“뭐라고?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
“무슨 소리는 무슨 소리. 그 와인들 모조리 우리가 다 접수해서 처분할 거거든. 그러니까 그대로 놔두고 사라지란 거다.”
“음……. 이제 보니 우리 카오스 길드에 대항하는 놈들이로군. 이 비기닝 시티의 최강 길드인 우리한테 도전하다니 간도 크구나.”
카오스 길드원들은 일제히 무기를 빼 들었다.
나는 옆에 서 있는 랑케를 돌아보았다.
“쩝……. 생각해서 안 다칠 기회를 주는데도 말 안 듣네. 어쩔 수 없군. 랑케 님이 처리하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어제의 도박장 습격은 우영 님의 파티에서 하셨으니까요. 이번엔 당연히 우리 기사단이 나서야죠.”
랑케가 손짓을 하자 뒤에서 모습을 감추고 있던 30명의 블루 울프 기사단이 등장했다. 일제히 투핸디드 소드를 빼 들고 웅장한 발걸음 소리를 울리면서 말이지.
풀 플레이트 메일은 안 입은 상태였다. 아직은 기사단이 미라쥬 길드에 가세했다는 걸 드러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이지.
그 모습을 본 카오스 길드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이 기세는 뭐야? 어디서 이런 고수들이 나타난 거지?”
그러나 당혹하고 어쩌고 할 시간도 길지 않았다.
30명의 블루 울프 기사들이 질풍같이 달려들어 카오스 길드원들과 치열한 전투를 치르기 시작했다.
비명과 칼부림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그리고 곧 상황은 정리되었다.
50명의 카오스 길드원들은 모두 블루 울프 기사단의 투핸디드 소드 아래 누워 버린 거였다.
역시 대단하다.
아니, 당연한 일일지도. 마토스 왕국 최강 기사단인 이들을 정예 길드원들도 아니고 잡일하는 길드원들이 제대로 상대하긴 어렵겠지.
내가 신호를 보내자 저쪽 골목에서 대가하던 미라쥬 길드원들이 우르르 달려와서 와인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걸 보던 다쓰가 입맛을 다셨다.
“우영 형님, 제가 한 몇 병만 챙기면 안 될까요? 상표를 보니 저 와인 제가 무지 좋아하는 건데요?”
“너, 저 와인이 얼마짜린 줄이나 아냐?”
“얼만데요?”
“한 병에 오십 골드나 하는 고급품이거든? 모두 처분해서 길드전하는 비용에 충당해야 하니까. 마시고 싶거든 돈 내고 사 마시든가.”
“칫!”
칫은 무슨.
팔라딘이라는 게 어째 이렇게 툭하면 떡고물을 챙기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구만.
수백 병에 달하는 고급 와인들을 다 챙긴 걸 확인한 우리들은 서둘러 그곳을 떠났다.
다음 목표는 카오스 길드가 경영하는 도박장이다!

* * *

“뭐가 어째? 너 지금 무슨 그게 무슨 소리냐. 우리가 주점에 공급하는 고급 양주 1만 골드어치를 강탈당했다고?”
“응, 당통 형. 그것뿐이 아냐. 우리 구역 곳곳에서 큰 문제들이 생겼어. 도박장에선 갑자기 불이 나서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데 그 와중에 판돈들이 모조리 사라져 버려서 손님들이 손해배상을 요구해 왔고……. 그리고 우리가 손대고 있는 인신매매 업소에 괴한들이 들이닥쳐서 길드원들을 죽이고 상품으로 팔 여자들을 모조리 풀어 줘 버렸고. 좌우간 하루 사이에 엄청난 손실이 생겨 버렸어.”
“……!”
데이쓰가 허탈한 표정으로 말하자 당통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하룻밤 사이에 카오스 일드의 구역에서 대형 사고들이 마구 일어난 것이다.
돈을 피같이 생각하는 그에게는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빌어먹을! 지금까지 우리가 어떻게 해서 돈을 모아 왔는데 이런 식으로 날려 버리다니. 누구냐? 도대체 어떤 죽일 새끼들이 감히 우릴 상대로 이따위 짓을 벌인 거냐?”
당통이 두 눈에 핏발이 서서 으르렁거리자 데이쓰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