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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2권(48화)
Part 9.길드전(4)
옆에 서 있던 카오스 길드 간부인 앨빈이 초조한 표정으로 물었다.
“우리가 숫자는 더 많지만 상당히 불리한 지형에 갇힌 셈이네요. 길의 양쪽은 건물들로 막혀 있고 앞쪽에선 강력한 기사단들이 철벽같이 버티면서 우리 길드원들을 베어 넘기고 있고 양쪽 건물들에선 불화살과 돌덩어리가 마구 날아오고 있으니.”
“그러게 말입니다. 차라리 후퇴해서 전열을 재정비해서 공격하는 게 나을 텐데. 당통 형 성격이 물불 안 가리고 강행 돌파하는 거니…….”
“이대로 보시기만 할 겁니까? 길드원들의 희생이 자꾸 늘어 가는 것 같은데요? 아직 배후의 탈출로는 열려 있지만 만약 저러다가 뒤까지 막히면 어쩝니까?”
“그렇게 둘 순 없죠. 거리가 멀긴 하지만 우린 빙 돌아 우회해서 저 5층 건물을 뒤쪽에서 칩시다. 그러면 당통 형 쪽을 치던 미라쥬 길드도 전력을 분산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어서 서두르죠. 으응?”
길드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려던 앨빈은 난데없이 나타난 뜻밖의 인영들을 보고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데이쓰도 당혹스러워 하며 앞으로 나섰다.
“빛나리 길드의 델마 님 아니세요? 여긴 어쩐 일로……. 혹시 우릴 도와주러 오신 겁니까?”
길드원들을 이끌고 나타난 사람은 빛나리 길드의 길마 델마였다.
그러나 어쩐지 델마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서 데이쓰는 긴장을 풀지 않았다.
게다가 빛나리 길드원 중 절반은 인간이 아니라 붉은 돼지 머리에 송곳 같은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지닌, 그리고 손에는 트라이던트와 쇠스랑을 든 몬스터들이 아닌가?
델마는 민망한 웃음을 지었다.
“이것 참.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하하, 보상 때문에 그러시나 보군요. 걱정 마세요. 우리 카오스 길드를 도와주시면 당연히 보상을 드리겠습니다.”
“보상이라고? 관두게. 연합해서 미라쥬 길드를 무너뜨리고도 싸악 입 닦았던 카오스 길드가 아닌가?”
“그, 그건 당통 형이 좀 바빠서 미처 신경을 못 써 드린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 문제 때문에 당통 형과 의논 중이었습니다.”
“아, 그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린 관두란 말이네. 어쨌거나 당신들이 여기서 꼼짝 말고 그대로 있으면 피차 피 흘릴 일은 없을 거야.”
델마의 말에 데이쓰와 앨빈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러면…….”
“그래, 미라쥬 길드와 손잡기로 했어. 그러니 섣불리 저항할 생각 말라고. 그랬다간 여기 이 몬스터들하고 우릴 둘 다 상대해야 할 테니.”
그 말에 얼굴이 하얗게 질린 앨빈이 거칠게 소리쳤다.
“뭐가 어째요? 아니, 이럴 수가 있습니까! 길드 연합을 하기로 한 게 언젠데 이런 식으로 배신을 합니까!”
“흥! 배신? 우릴 실컷 이용해 먹고 보상 한 푼 없이 배신한 쪽이야말로 카오스 길드 아닌가?”
“…….”
“섭섭하다고 생각 말라고. 다 자업자득이니까. 아, 그렇게 두루두루 베풀고 살면 됐을 거 아닌가? 카오스 길드 혼자서 다 독식하겠다고 설치니 이런 꼴을 당하는 거 아니냐고.”
“…….”
데이쓰는 할 말이 없었다. 당통과 자신이 한 행태대로라면 사실 이렇게 당해도 억울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때늦은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제는 아무 소용없었다.
그때 피그몽들을 이끌고 온 바투르가 스윽 앞으로 나섰다.
“인간, 뭐하냐? 흐흐. 우린 여기에 싸우러 왔다. 흐흐…….”
“이것 봐! 가만히 있으라고. 싸우지 않고 말로 해결할 수 있는데 굳이 피 흘릴 건 없으니까.”
델마가 언성을 높였으나 바투르는 개의치 않고 트라이던트를 꺼내서 데이쓰와 앨빈 쪽을 겨눴다.
“우린 당신 말 듣지 않는다. 흐흐. 우영은 우리더러 싸우라고 했다. 흐흐.”
“이 더러운 몬스터 자식! 당장 이거 못 치워!”
자신의 목에 와 닿으려는 바투르의 트라이던트에 발끈한 앨빈이 롱 소드를 꺼냈다.
당황한 데이쓰가 그를 만류하려고 팔을 잡았다.
“안 됩니다! 몬스터한테 먼저 도발을 하면 어쩝니까!”
“흐흐. 그래, 싸우자.”
취익!
“아악!”
바투르의 트라이던트가 가슴을 훑고 지나가자 앨빈은 그대로 쓰러져 로그아웃되었다.
“이것들이 정말 해 보자는 거야!”
“다 죽여 버려!”
그러자 흥분한 카오스 길드원들은 일제히 무기를 빼 들었다.
피그몽들도 기다렸다는 듯이 쇠스랑과 트라이던트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차창!
퍼억!
“케엑!”
“싸우자! 죽여 버려라. 흐흐.”
“물러서지 마라!”
“이거 뭐하는 거야. 그만 둬! 양쪽 다 멈추란 말이야!”
삽시간에 난전이 벌어지자 델마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그는 카오스 길드원들과 싸우지 않고 제압하려고 했었는데 우영이 함께 행동하라고 붙여 준 피그몽들 때문에 일이 이상하게 꼬이고 만 것이다.
어쨌건 전투가 벌어진 이상 멍하니 서서 그냥 구경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에잇! 어쩔 수 없군. 뭣들 하느냐! 쳐라! 카오스 길드원들을 하나도 남기지 말고 쓸어버려라!”
그 말을 신호로 피그몽과 빛나리 길드, 데이쓰의 카오스 길드는 마구 뒤섞여서 서로를 찌르고 베어 넘기기 시작했다.
근데 카오스 길드뿐만 아니라 빛나리 길드의 피해도 적지 않았다. 피그몽들이 두 길드를 구분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무기를 휘둘러 댔기 때문이었다.
델마는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으나 피그몽들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애초에 빛나리 길드의 전력도 어느 정도 약화시킬 속셈으로 우영이 피그몽들을 붙여 준 걸 델마가 짐작하지 못한 게 실수였던 셈이었다.
음, 공장 지대 바깥 쪽은 제대로 돌아가는군. 피그몽과 빛나리 길드, 카오스 길드가 난전이 벌어진 것 같으니 말이지.
근데 이쪽은 상황이 나빠지고 있군. 우리 미라쥬 길드원들의 불화살과 무지막지하게 큰 짱돌이 마구 날아다니며 카오스 길드원들의 몸을 꿰뚫거나 머리통을 깨뜨리고는 있지만 처음처럼 큰 효과는 없구만.
우리에 비해 월등히 숫자가 많은 카오스 길드의 성직자와 마법사들 때문이다. 마법사와 성직자의 숫자가 많아서 공격을 막거나 힐링을 적절히 해 주기 때문에 우리 미라쥬 길드의 공격에도 큰 데미지가 잘 발생하지 않고 있는 거다.
어쨌거나 지형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카오스 길드원들은 어떻게든 정면을 뚫으려고 필사적으로 공격하고 또 공격해 왔다.
이젠 차륜전을 펼치는군.
차륜전이 뭐냐고? 아, 쪽수 많은 놈들이 교대해 가면서 무한정 공격을 퍼붓는 거 말이야.
전투 시작된 지 30분은 지난 것 같은데 좀 걱정이 되는군.
왜 걱정되냐고? 블루 울프 기사단이 슬슬 피로를 드러내는 기색이라서 말이지.
무리도 아니지. 저 무거운 풀 플레이트 메일에 투핸디드 소드를 휘두르며 30분을 싸우고 있으니 말이지.
기사단 중 몇 명은 휘청거리는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나는 보다 못해서 로저에게 꽥 소리쳤다.
“아, 뭐하는 겁니까? 회복 포션 빨리 지급하고 경량화 마법 쉬지 말고 걸어 주세요! 돈 아끼다가 방어선이 뚫려서 모두 몰살당하면 로저 님한테 책임 다 물을 겁니다!”
그러자 로저도 사색이 되어서 부지런히 뛰면서 길드원들을 독려해 포션을 지급하고 성직자 계열 길드원들은 힐링을 쉴 새 없이 기사단에게 걸었다.
근데 결국 문제가 생겼다.
푸푹!
“욱!”
퍼억!
“아악!”
기사 중 두 명이 카오스 길드원들의 크로스 보우와 메이스 공격에 쓰러진 것이다.
“됐다!”
“놈들도 불사신이 아니다!”
그러자 기사단이 형성한 벽이 일순간 무너질 조짐이 보였다.
사기가 오른 카오스 길드들은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고 있었다.
그러자 랑케가 카오스 길드들을 향해 뛰쳐나가며 투핸디드 소드를 마구 휘둘렀으나 이내 포위를 당해 버렸다.
사방에서 랑케를 향해 검과 모닝스타, 핼버드가 날아들었다.
헉! 저 아저씨 저러다가 다굴당해서 금방 끝장나는 거 아냐?
절체절명의 위기!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순간, 뒤에서 묵묵히 보고 있던 조핀이 재빠른 발걸음으로 난전 속으로 뛰어들었다.
“엇? 이건 뭐야?”
“아니, 어디서 이런 꼬마가…….”
난데없이 나타난 천진하고 귀여운 소년의 등장에 카오스 길드원들도 벙찐 표정이다.
저런 귀여운 캐릭터는 이런 살벌한 전장에선 너무 안 어울려 보인 탓이다.
어디까지나 겉모습으로만 본다면 그렇지만.
어쨌거나 덕분에 전투는 잠시 소강상태의 분위기가 되었다.
“꼬마야, 여긴 위험하니 뒤로 물러나 있으…… 우악!”
친절하게 그 꼬마에게 손길을 뻗던 카오스 길드원은 그대로 목이 잘려 로그아웃당했다.
조핀의 소매에서 튀어나온 손도끼에 매끈하게 목이 달아나 버렸구만.
근데 저 변태 중년이 소매 속에 저런 날카로운 손도끼를 숨기고 다니는 줄은 몰랐는데…….
어쨌거나 장난이 아니군.
조핀이 양손에 도끼를 잡고 휘두르며 광분(?)하자 육편이 튀고 카오스 길드원들이 쉴 새 없이 쓰러져 로그아웃당했다.
그 덕분에 랑케와 블루 울프 기사단은 다소 시간을 벌 수 있었다.
“휴……. 다행이네.”
이사도라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근데 사실은 안도할 상황이 전혀 아니다.
이미 누적된 블루 울프 기사단의 피로는 포션과 힐링으로도 한계상황임이 분명했다.
조핀이 시간을 벌어 준다고 해도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장담 못한다.
그렇다면 마지막 비장의 수를 써야 한다.
“이사도라, 여기서 잠깐 기다리고 있어.”
“아니, 어디에 가려고?”
“이대로 있으면 끝장이니까 마지막 한 방을 먹여야지. 야! 다쓰, 란슬링 가자!”
불안한 표정을 짓는 이사도라와 로저를 뒤로하고 우리는 거기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맨홀 뚜껑을 열고 하수구 속으로 들어갔다.
악취가 코를 찌르고 발밑으로 쥐들이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빨리 움직여야 한다.
블루 울프 기사단과 조핀의 체력이 바닥나 버리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