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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2권(49화)
Part 10.승리와 그 뒷일들(1)
“아니, 너희들은 누구냐?”
갑자기 하수구 뚜껑을 열고 나타난 우리를 발견한 두 명의 카오스 길드원들이 당혹스러워했으나 곧 입을 다물고 길게 누웠다.
나의 메이스와 다쓰의 투핸디드 소드 세례를 받고 말이지.
우리가 나온 곳은 카오스 길드가 이 공장 지대로 들어오는 입구다.
우리 눈앞에는 우리가 조금 전까지 있었던 5층 건물을 공략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카오스 길드원들의 등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쩝! 블루 울프 기사단하고 미라쥬 길드원들이 대략 3백 명쯤은 쓰러뜨린 것 같은데도 아직도 많구만.
길 양쪽의 건물들에서는 미라쥬 길드원들이 필사적인 화살과 돌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저 끝, 그러니까 5층 건물 앞에선 블루 울프 기사단과 조핀이 밀물처럼 몰려드는 카오스 길드원들과 사투를 벌이는 게 어렴풋이 보인다.
제길! 모두들 휘청거리는 게 정말이지 오래 못 버틸 것 같다. 어서 서둘러야겠구만.
난 준비해 간 마나 포션을 마구 들이켰다. 그리고 메이스를 들고 마나를 온몸 가득 돌렸다.
젤라즈니의 메이스의 최고 최강의 스킬 레달입(레드 드래곤의 달콤한 입맞춤)을 쓰려는 거다.
근데 이 스킬은 위력이 강한 만큼(실제로 써 보는 건 처음이라 얼마나 강한지는 구체적으로 모르지만) 준비 과정도 길고 복잡하다.
근데 지들의 최후방에 우리가 나타난 걸 눈치챈 카오스 길드원 몇 명이 달려들었다.
난 레달입을 시전하기 위한 준비 상태라 움직일 수가 없다.
다쓰와 란슬링이 놈들을 막아 냈다.
젠장! 이럴 때 피그몽 몇 마리만 더 있었어도…….
가만있어라.
아닌 게 아니라 피그몽들하고 빛나리 길드는 어쩌고 있지?
나는 슬쩍 고개만 돌려 공장 지대 밖의 들판을 바라보았다.
허걱!
시장 바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뒤섞여서 싸우고 있구만. 어떤 게 피그몽들이고 빛나리, 카오스길드인 줄도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세 군데 모두 다 타격이 심할 것 같구만. 전투가 완전히 끝나도 말이지.
애초에 내 계획대로 되어 가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그럼 이제 레달입을……. 허걱!
난리났네.
지들 등 뒤에서 어른거리는 우릴 발견한 카오스 길드 스무 명이 다시 달려들고 있으니.
내 앞을 지키고 있는 다쓰와 란슬링은 살벌한 칼부림을 시작했다.
이거 버틸 수 있으려나…….
젠장! 아직 5분은 더 필요한데.
난 필사적으로 마나를 메이스에 주입시키기 시작했다.
아, 이놈의 스킬은 정말 마나를 너무 많이 요구한다.
뭐, 위력이 커서 그렇긴 하겠지만.
난 메이스를 쭈욱 앞으로 뻗었다.
폭 약 10m, 길이 100m에 달하는 이 회랑을 가득 채운 카오스 길드원들을 향해서!
음……. 근데 이 레달입 때문에 저 100m 끝에 있는 블루 울프 기사단하고 조핀까지 화염 세례를 뒤집어쓰면 안 될 텐데…….
설마 그 정돈 아니겠지. 아무리 극강의 스킬이래도 100m까지 뻗어 나가는 화염 공격이 있을 리가…….
근데 왜 이리 불안하지?
허걱! 이게 뭐야?
다쓰와 란슬링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메이스를 앞으로 주욱 뻗은 상태인 나에게 십여 명의 카오스 길드원들이 몸을 날려 덮쳐 오고 있잖아! 롱 소드와 핼버드, 바스타드 소드를 살벌하게 휘둘러 대면서 말이지.
내가 하려는 게 뭔가 심상찮다는 걸 느꼈나 보다.
제길! 이 상태에선 다른 동작을 취하면 레달입 시전하려는 게 다 물거품이 되는데.
근데 카오스 길드들이 날 덮치려 하는데 다쓰하고 란슬링 이 자식들은 뭐하는 거야?
날 단단히 지켜야 한다고 그토록 신신당부를 했구만.
헉!
옆눈으로 보니 이것들이 저만큼 떨어져서는 무기를 집어넣고 야릇한 미소를 짓고 있잖아?
저 고소하면서도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한 미소는 아주 많은 걸 시사하는 것 같은데?
이것들 이제 보니 이 기회에 날 보내 버리려는 속셈이구만.
이 치사한 것들!
나는 분노해서 울분을 터뜨렸고 그 순간 온몸에 충전된 마나가 맹렬한 기세로 메이스로 흘러 들어갔다.
쿠콰콰콰쾅!
하늘을 찢는 듯한 폭음이 울려 퍼졌고 드래곤의 브레스를 방불케 하는 강력한 화염이 맹렬한 기세로 앞으로 뻗어 나갔다.
강력한 섬광과 불꽃으로 눈이 멀 지경이었고 강력한 열기에 온몸이 타들어 가는 듯 고통스러웠다.
레드 드래곤의 달콤한 입맞춤, 줄여서 레달입이 발휘된 거였다.
나를 향해 몸을 날려 덮쳐들던 녀석들은 그 엄청난 화염 공격에 가루도 안 남고 삽시간에 로그아웃되어 버렸다.
물론 그들 말고 좁은 회랑을 가득히 메운 카오스 길드원들이 수도 없이 바비큐가 되어 쓰러져 있었다.
나도 완전히 무사하진 못했다.
후폭풍 때문에 10M 정도 뒤로 날려가서 낙엽처럼 뒹굴었으니까.
제기랄…….
띠리리링!
순간 알림음과 함께 창이 떴다.
이름 : 우영
직업 : 광란의 스토커
레벨 : 80 악명 : 30
명성 : 50 지식 : 15
힘 : 100 체력 : 60
민첩 : 45 행운 : 40
지혜 : 45 매력 : 80
HP : 150 MP : 100
허걱!
레벨이 무려 30이 단번에 올라서 도합 80이 되었다.
그밖에 거의 모든 스탯들이 크게 상승했다.
그리고 연달아 창이 또 하나 떴다.
이건 뭐지?
길드전의 학살마 칭호를 획득했다
초대형 화염 공격으로 도합 3백 50명에 달하는 적 길드원들을 단번에 로그아웃시켜서 길드전의 학살마 칭호를 획득했다.
보너스로 모든 스탯에 가산점이 크게 적용되었고 명성이 대폭 늘었다. 그리고 대량 학살의 영향으로 명성 이외에 악명 스탯도 새로 생겨 30점을 단번에 획득하는 성과를 이뤘다.
앞으로 니가 몸담는 길드는 길드원들의 사기가 15% 상승하고 길드전의 승률이 5% 상승할 거다. 그리고 적 길드에서는 사기가 10% 하락하고 공포와 두려움이 5%가 늘어날 거다.
근데 널 미리 제거하려고 드는 길드들이 대폭 늘어날 거니까 밤길 갈 때 칼침 맞지 않도록 알아서 주의하는 게 좋을 거다.
그리고…….
젠장, 길드전의 학살마라니, 이 무슨 찝찝한 칭호람…….
그리고 내가 무려 350명을 한 번에 쓸어버리다니.
설명 창의 ‘그리고…….’ 다음을 읽으려던 나는 의식이 가물가물해지는 것을 느끼며 그냥 쓰러져 버렸다.
초대형 스킬을 사용한 때문에 마나가 급속히 고갈되었고 기력과 체력도 탈진한 탓이었다.
제길! 이케루스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로그아웃당하는 건가?
젠장! 빨리 재경이를 찾아야 되는데…….
방 천장의 벽지가 눈에 들어왔다.
로그아웃되어서 현실로 돌아오자마자 정신없이 자고 지금에야 깨어났다.
몇 시간이나 잔 거지?
허걱! 아니, 저게 뭐야!
달력을 보니 이틀이나 지났잖아?
좀 무리해서 게임을 했더니 피로가 누적되어서 그랬는지 이틀이나 정신없이 자다니.
하긴, 길드전 때문에 체력도 그렇지만 심적으로도 꽤 피곤하긴 했다.
어쨌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틀이나 지났으면 지금 게임 속에선 뭔 일이 어떻게 진행되었을지 모른다.
그것 때문에 재경이를 찾는 일에 지장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정말 곤란하다.
난 서둘러 대충 차린 식사를 끝냈다. 그리고 헤드셋을 쓰고 이케루스에 다시 접속했다.
삐익 하는 음향과 함께 눈앞이 컴컴해졌다가 환하게 밝아졌다.
그리고 이케루스의 정경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바로 내가 로그아웃당한 공장 지대의 입구다.
응? 아니, 근데 저게 뭐지? 웬 사람들이 이리 북적거려?
근데 죄다 상복을 입고 있구만.
누가 죽기라도 했나?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든 나는 지나가는 상인한테 후드 하나를 사서 뒤집어쓰고 얼굴을 감췄다.
그리고 안쪽에 있는 5층 건물, 그러니까 미라쥬 길드 비밀 거점이었던 곳으로 향했다.
잉? 이게 뭐람?
건물 앞에는 조화가 가득 놓여 있는데…….
그리고 문상을 하러 온 사람들이 쑥덕거리는 소리들이 귀에 들어왔다.
“그러니까 미라쥬 길드를 사실상 지휘했던 우영이 죽었단 말인가?”
“아, 그렇다니까. 엄청난 초강력 메이스 스킬로, 절체절명이었던 판세를 단번에 뒤집어서 미라쥬 길드를 구했다는군. 그 한 방의 스킬로 자그마치 5천 명이나 되는 카오스 길드원들을 몰살시켰다니 말이야.”
“커억! 5천 명을……. 그게 사실인가? 믿기 어려운데?”
“아, 글쎄 사실이라니까. 드래곤의 브레스도 상대가 안 될 정도의 엄청난 위력이었대나봐. 그래서 그런 엄청난 스킬의 대가로 본인도 모든 마나가 삽시간에 고갈되어서 전사하고 말았다는군.”
“음, 가히 영웅의 최후였군 그래.”
허걱! 이게 도대체 뭔 소리냐?
뭐? 내가 5천 명이나 되는 카오스 길드원을 몰살시켜?
350명 남짓한 사람들이 어째서 15배 가까이 뻥튀기된 거냐?
영웅의 최후니 뭐니 해서 칭찬해 주는 건 좋다만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그리고 아무리 가상현실 게임이래도 그렇지, 그런 황당한 스킬이 어딨냐고.
레달입도 엄밀히 따지면 사기성이 짙은 스킬이구만.
가만있어 보자.
아니, 그럼 지금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게 내 장례식이란 말이야?
“…….”
나는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다.
근데 가만 생각하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군.
레달입 같은 강력 스킬을 사용하고 로그아웃당해서 이틀을 접속을 못했으니 그런 오해가 생길 법도 하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NPC들이야 그렇다 쳐도 유저들이야 내가 완전히 죽었을 거라고 생각할 리 없을 텐데?
기껏 로그아웃당해 봐야 다시 재접속해서 들어 올 거란 걸 알 거 아니냐구.
그때 건물 한쪽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세영과 세영을 위로하는 로저의 모습이 들어왔다.
음, 세영이도 풀려났군. 카오스 길드가 끝장났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나는 후드로 얼굴을 가린 채로 슬쩍 그 근처로 가서 귀를 곤두세웠다.
“흑흑, 우영 오빠가 죽다니. 이럴 순 없어요!”
“세영아, 그쯤하렴. NPC면 몰라도 유저가 죽긴 왜 죽는단 말이냐?”
“나한텐 죽은 거나 마찬가지죠! 게임 속에서 게임 밸런스를 저해할 정도의 강력 스킬을 쓰거나 대량 살상을 하는 유저는 1년간 계정을 정지시키는 게 이케루스의 방침인데, 그렇다면 저에게는 사실상 우영 오빠가 죽은 거하고 다를 게 없잖아요!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거니까요. 현실에서의 연락처도 전혀 알지 못하는데!”
세영이 눈물을 흘리며 하는 말에 난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음……. 이케루스에 그런 원칙이 있었군. 초강력 스킬이나 대량 살상으로 게임 밸런스를 위태롭게 하면 1년간 계정 정지라.
그러면 1년씩이나 이 게임에 다시 안 들어 올 순 없을 테니 캐릭터 삭제하고 다른 캐릭터로 게임을 다시 시작하겠지.
그렇다면 엄밀히 말해서 이 게임 속에서 활동하던 캐릭터는 죽었다고 하는 게 맞기도 하겠군.
근데 왁슨은 왜 나한테 실제로 그런 규칙을 적용하지 않은 걸까…….
아마 재경이를 찾는 일 때문에 그런 페널티를 면제해 주는 거겠군. 왁슨 측으로서는 내가 한시바삐 재경이를 찾는 게 자기들로서도 속 편할 테니까.
어쨌거나 눈물을 흘리는 세영이의 모습에 난 쬐끔 감동 먹었다.
짜식, 날 그렇게까지 생각해 주는 줄은 몰랐는데.
근데 울고 있는 세영이를 물끄러미 보던 로저가 피식하며 말했다.
“정말 이해를 못하겠다. 그 사람 사기성도 농후하고 공갈 협박도 은근히 잘하는데다 공짜를 상당히 밝혀서 은근히 기분 나쁘던데, 뭘 그리 서운해하냐?”
“아니, 뭐에요! 그럼, 로저 오빠는 지금 우영 오빠가 죽은 게 잘됐다고 하는 거예욧!”
“아니, 뭐 잘됐다고 하는 게 아니라……. 그저 그렇다는 거지, 뭐.”
그때 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로저 님, 그 말씀은 심하시군요. 누가 뭐래도 우영 님은 영웅입니다.”
“아니, 랑케 님…….”
언제 듣고 있었는지 랑케와 조핀이 나타난 거였다.
로저는 당혹스런 눈치였다.
레달입의 여파를 맞은 탓인지 머리가 검게 그을린 랑케는 한숨을 쉬더니 말을 이었다.
“휴우. 솔직히 저도 우영 님을 처음 봤을 때는 순 기생오라비 같은 그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더랬습니다. 게다가 인상이 가볍고 방정맞은데다가 얍삽하고 음험하고 신뢰가 전혀 가지 않아서 동료로 삼기에 적당한 인물이 전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만.”
저…… 이봐요, 아저씨. 가만 듣고 있자니 로저보다 댁이 한술 더 뜨는 거 같지 않수?
“하지만 우릴 구하기 위해 보여 준 그 살신성인의 투혼! 그것 하나만으로도 우영 님은 영웅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인물입니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우리 블루 울프 기사단은 모두 전멸했을 테니까요!”
음……. 그래도 끝을 좋게 맺어 주는군 그래.
그러자 랑케 옆에 서 있던 조핀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사실은 블루 울프 기사단을 이 길드전에 투입한 결정을 후회했었습니다. 우리의 패색이 짙어지는 순간에 말이죠. 물론 여기 30명은 전체 블루 울프 기사단의 일부일 뿐이긴 해도 마토스 왕국 재건을 위해서는 한 명도 희생해서는 안 될 입장이니까요. 근데 우영 님은 자신의 한 몸을 던져서 기사단이 입을 손실을 모두 막고 떠난 겁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죠. 블루 울프 기사단을 희생시키지 않겠다는 당초의 약속을 모두 지키고 갔으니까요. 그 거룩한 희생정신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에 세영은 물론 로저도 고개를 떨구며 숙연한 표정이 되었다.
아아……. 정말이지 뿌듯하다.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느껴질 지경이다. 이렇게 칭찬을 듣다니.
이 정도면 가끔은 죽는 것도 해 볼 만한 일이라는 생각까지 막 드는군.
근데 조핀이 느끼한 표정으로, 두 볼을 발그레 붉히면서 하는 다음 말에 나는 뒤집어지고 말았다.
“훗! 개인적으로 아쉬운 건 전사하기 전의 우영 님의 품에 안겨 잠들어 보지 못한 거군요. 그게 천추의 한입니다. 다시 기회가 생긴다면 절대로 놓치지 않을 겁니다만……. 그건 이제 불가능할 테니 너무나 아쉽군요.”
에라이, 변태 중년아! 그러면 그렇지, 당신한테서 끝까지 정상적인 말이 나올 거라고 생각한 내가 밥통이지.
나는 울화를 터뜨리면서 걸음을 옮겨 내 영정이 모셔져 있는 빈소로 향했다.
그리고 문 틈새에 얼굴을 대고 빈소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안에는 제단에 내 영정이 놓여 있었고 그 앞에는 향이 타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고 이빨이 다 드러나도록 웃으며 썩소를 짓고 있는 사진이다.
저 사진을 어디서 구했지? 이런 엄숙한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는 사진이 아니구만.
좌우간 제단 앞에서는 신관이 경전을 중얼거리고 있었고 수십 명의 길드원들과 다쓰, 란슬링이 조의를 표하고 있었다.
근데 조의를 표하는 것들의 태도가 어째 저 모양이지? 꾸벅꾸벅 조는 것들이야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쳐.
근데 뒤에서 화투장 꺼내 놓고 판 벌이는 놈들은 뭐야?
그리고 판돈이 왜 저리도 많은 거냐! 니들 눈엔 여기가 하우스로 보이는 거냐?
게다가 만화책 꺼내 놓고 히히덕거리고 웃으면서 보는 놈들까지 있네? 이것들아, 만화책을 보려면 이런 장소에선 개그 만화는 보지 말아야 예의 아니냐고!
어랍쇼?
란슬링과 다쓰 이 자식들은 잔치판인 줄 아는지 제단 앞에 놓인 과일과 음료수까지 제것인 양 마구 집어서는 먹고 마시고 처자빠졌다.
이것들아, 내가 너희들한테 그거 먹고 마시게 해 줄려고 죽은 줄 아냐!
아니, 어떻게 된 게 빈소에서 경건한 태도를 취하는 척이라도 하고 있는 인간이 단 한 명도 없냐?
이거 도저히 안 되겠다. 보고 있자니 열불나서 못 견디겠다고.
이런 예의 없고 싸가지 없는 인간들이 어디 있냔 말이다.
도대체 이것들이 남의 엄숙하고 경건한 장례식을 파리똥 만큼도 중요하게 안 보고 있단 거 아냐?
열불이 뻗친 내가 팔을 걷어붙이고 안으로 뛰어들려는 순간, 누군가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 누구죠?”
“…….”
난 아차했다. 안에서 하는 꼬라지들 보고 흥분한 때문에 후드를 벗고 있었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