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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3 -
이제경
스토킹 마스터 3권(51화)
Part 1. 재경이의 행적(1)
퍽, 퍼퍼퍼퍼퍽! 퍽퍽! 두두두두두!
“윽! 으아악! 아니, 이거 우영 형님 너무 심하잖습니까! 주먹도 아니고 메이스로 개 잡듯 때리는 건 너무 심하잖아요! 제발 그만 때리란 말입니다!!”
“어쭈, 개겨? 메이스로 맞는 게 싫으면, 그럼 파엘분 세례 한 대 맞고 끝낼래? 어쩔래?”
“아, 아닙니다. 그냥 맞겠습니다. 암요 맞고말고요!”
신나게 메이스로 두들겨 맞던 다쓰가 반항하자 난 눈을 부라리며 을러댔다.
그리고 다시 신나게 메이스로 다쓰를 타작하기 시작했다.
근데 왜 다쓰를 두들겨 패고 있냐고?
이 자식이 미라쥬 길드 보물 창고에서 고른 아이템들 때문이다.
아무래도 찝찝한 생각이 들어서 미라쥬 길드를 나오자마자 마법무기 판매 상점에 들어가서 무려 100골드를 주고 식별을 해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이런 창이 뜨는구먼그래.
-건달왕 쿤타의 립스틱 -
대륙의 모든 건달들이 떠받드는 건달왕 쿤타가 사용하던 립스틱이다.
이 립스틱을 입술에 바르고 공갈 협박을 하면 그 효과가 40% 증가한다. 그 결과 웬만한 상대는 당신의 협박에 굴복하게 될 거다.
충고 : 너무 자주 애용하면 정상적으로 할 말도 공갈 협박 모드로 나갈 확률이 높아진다. 깡패로 전직하기 싫거든 알아서 해라.
빌어먹을…….
하고많은 아이템 중에서 최고급의 아이템을 고르지 못한 거야 그럴 수 있다고 쳐. 하지만 최소한 레어나 그것도 안 되면 유니크 아이템이라도 골랐어야 될 거 아니냐고.
어디서 이런 개뼈다귀 같은 아이템을 고를 수가 있냔 말이다.
그렇잖아도 공갈 협박 스킬 점수가 자꾸 늘어나서 이러다가 캐릭터가 그런 쪽으로 완전히 고정되는 게 아닐까 은근히 신경 쓰이는 판에 이제는 공갈 협박 립스틱까지 발라서 그 능력을 더 키우라고?
아니, 뭐, 좋다.
어쩌다 한 개 정도는 실수로 이런 물건을 고를 수도 있다고 쳐. 근데 두 번째 물건까지도 아주 뒤집어질 걸로 이 다쓰란 자식이 고른 거다.
두 번째 고른 게 뭐냐고?
한번 봐. 돈 들여서 제대로 감정하니까 이런 창이 뜨더라고.
- 대거지 탈란도의 지팡이 -
대륙을 풍미하던 거지들의 우상, 거지 중의 거지 탈란도가 사용하던 무전취식의 지팡이.
이 지팡이를 가지고 다니면 어떤 음식점이나 여관 주인이라도 당신을 공짜로 먹여 주고 재워 주고 싶은 마음이 60% 상승한다.
옵션 : 당신이 데리고 다니는 파티원들도 무전취식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단 그 숫자는 10명을 초과할 수 없다.
충고 : 너무 자주 쓰면 돈은 쏠쏠히 절약되겠지만 니 꼬라지도 거지꼴로 보일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단 거 명심해라.
젠장…….
대거지는 무슨 얼어 죽을, 아무리 앞에 대 자 같은 거 붙어 봐야 결국 거지일 뿐이잖냐고.
그렇게 제대로 잘 고르라고 내가 명령했건만 하고많은 것 중에서 이따구 영양가 없는 걸 고르다니.
“야! 다쓰 너 솔직히 말해라. 일부러 앙심 품고 날 엿 먹이려고 기회만 보고 있었지? 그래서 내가 아이템 두 개 고르라니까 얼씨구나 하고서 이렇게 영양가 없는 거 고른 거지? 그렇지?”
“아닌데요?”
“아니긴 뭐가 아냐, 짜샤! 날 엿 먹이려 그런 거잖아! 그래서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다가 드디어 일 벌인 거잖아! 길드전할 때 나를 보내려고 결정적인 순간에 뒤통수친 것도 용서해 주려고 했는데 은혜를 원수로 갚냐! 마침 잘됐다. 비까지 쏠쏠히 내리는데 얼마나 두들겨 맞으면 이 폭우 속에서 먼지가 마구 날릴 수 있는지 어디 한번 시험해 보자!”
퍼퍼퍼퍼퍽!
“아악! 팔라딘 살려!”
신나게 비가 쏟아지는 들판에서 나는 메이스를 풍차처럼 휘두르며 다쓰를 신나게 두들겨 팼다.
정말로 이런 상황에서 먼지가 나게 할 수 있을지 알아볼 겸 빛의 속도로 메이스를 휘둘러 대면서 말이지.
한 30분쯤을 신나게 때리고 있었을까?
그쯤 되자 옆에서 지켜보기가 지루했던지 란슬링과 세영이가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쉬익! 우영. 아무리 때려도 먼지 안 날리니까 이제 그쯤 해라. 먼지 날리는 거 보려면 아무래도 다쓰를 일주일은 더 두들겨 패야 할 거 같다. 쉬익!”
“그래요. 이제 오빠가 그만 화 푸세요. 설마하니 다쓰 님이 일부러 그랬겠어요?”
“훗! 다쓰가 일부러 그랬겠냐고? 세영이 넌 도둑 길드 부길마인 주제에 왜 그리도 순진한 거냐. 이 녀석이 여자 속옷만 챙기고 다니는 변태 팔라딘이란 걸 벌써 잊은 거냐?”
참 한심하다는 투로 말하자 세영이도 약간 발끈해서 대꾸했다.
“하지만 꼭 여자 속옷 수집한다고 나쁜 사람이라는 건 편견이에요. 그건 그냥 단순한 취미라고 봐줄 수도 있는 거잖아요. 우영 오빠는 어떻게 그렇게 외골수적으로만 생각하세요. 흥, 정말 실망했어욧!”
어절씨구.
세영이 얘가 팩 토라진 척을 하네. 그리고 뭐가 어째! 나한테 실망을 했다고?
아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를 물 먹인 녀석을 위해서 일부러 삐진 척까지 한단 말야?
아, 거참, 이런 것도 은근히 약이 오르는군.
세영이가 다쓰를 감싸려고 나한테 토라진 척을 하다니.
난 잠깐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열 받으려는 걸 애써 꾹꾹 눌러 참은 다음에 입을 열었다.
“훗! 세영이 니가 아직 이 녀석의 본색을 모르는 게로군. 그렇다면 좋다.”
“무슨 말이죠? 내가 다쓰 님의 본색을 모르다니요?”
어리둥절해하는 세영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다쓰에게 다가갔다.
“헉, 우영 형님! 또 왜 이러시는 겁니까? 아니, 남의 주머니에 왜 손을 집어넣느냔 말입니다!”
퍼억!
“으억!”
“이유가 있어서 주머니 뒤지는 거니까 입 다물고 있어라. 계속 처맞으려거든 개겨도 좋다!”
나는 메이스로 을러대며 다쓰의 주머니 속에서 연보라빛 천 조각을 스윽 끄집어냈다.
“어머! 그, 그건!”
그 천 조각의 정체를 확인한 세영이의 두 뺨은 당혹감과 수치심으로 붉게 물들었다.
“그렇지. 세영이 너의 브래지어로구나. 그런데 이게 도대체 왜 다쓰의 주머니 속에 있을까? 이래도 여전히 다쓰의 속옷 수집이 단순한 취미일까?”
“…….”
수치심으로 얼굴이 붉게 물든 세영이는 다쓰를 잡아 먹을 듯 째려보았고, 다쓰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럴 리가 없습니다. 이건 절대 제 짓이 아닙니다!”
입에 거품을 물고 다쓰가 항의하자 나는 인상을 쓰며 두 눈을 부라렸다.
“어절씨구. 다쓰 너 지금 무슨 소리냐? 니가 한 짓이 아니라고? 그럼 누구 짓인데? 그럼 누가 널 모함하려고 일부러 니 주머니에 세영이 브래지어를 집어넣기라도 했단 거냐?”
그러자 다쓰는 정말 억울해 죽겠다는 듯 울화를 터뜨렸다.
“당연하죠. 난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세영 님의 브래지어만은 절대로 수집할 생각이 없으니까요.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말입니다!!!”
“그런가요? 그런데 그 이유가 뭐죠?”
다쓰를 잡아 먹을 듯 째려보던 세영이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하긴 그건 내가 생각해도 궁금하네. 왜 딴 여자 건 몰라도 세영이 브래지어만은 니 관심 밖인 건데?
“훗, 왜긴 왜겠습니까? 저도 여자 속옷 수집을 아무 기준 없이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어느 정도 글래머라야 속옷 수집도 할 맛이 나지, 세영 님처럼 가슴이 저렇게 절벽인 여자분의 브래지어를 도대체 무슨 맛으로 수집을 한단 말입니…….”
다쓰는 말을 하다가 지 실수를 알아차렸는지 창백한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세영이가 부들부들 떨며 분노로 불타는 눈으로 자신을 쏘아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절벽이라, 으음……. 하긴 스타일이 꽤 좋은 세영이다만 가슴만큼은 가히 풍만하다고 할 순 없구먼.
순간 세영이가 내 시선을 눈치채고 뾰족하게 목청을 높이며 급히 가슴을 두 손으로 가렸다.
“뭐예욧! 우영 오빠, 지금 왜 내 가슴에 눈길을 준 거죠?”
“아니, 그게 무슨 소리냐? 거참, 내가 언제 니 가슴을 봤다고 그러냐? 흠흠…….”
웃, 놀래라. 세영이 녀석 저러는 거 보니 지 가슴이 절벽인 거에 대해서 열등감이 있었나 보구먼.
어쨌거나 다쓰 녀석, 괜히 절벽이니 뭐니 해서 결국 제 무덤을 파는군그래.
훗! 좋다. 그렇다면 그 무덤 파는 데 필요한 삽 정도는 빌려 주는 게 파티장으로서의 배려겠지.
나는 슬쩍 세영이의 손을 잡고 내가 가지고 있던 삽……이 아니고 메이스를 살며시 쥐어 주었다.
“세영아 아마 이게 필요할 것 같구나. 뭔가 다쓰와 할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데, 오빠는 잠시 자리를 피해 줄 테니 둘이서 오붓한 시간을 갖도록 하렴.”
“고마워요. 오빠.”
메이스를 건네받은 세영이는 이를 아드득 물면서 다쓰에게 다가갔다.
곧 세영이가 다쓰를 두들겨 패는 소리와 다쓰의 비명이 일대를 진동했다.
다쓰 녀석의 주머니에 세영이의 브래지어를 넣어 둔 게 나라는 사실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야지.
세영이가 다쓰와 아주 오붓한(?) 시간을 가진 다음에 한나절을 더 여행한 우리는 길가의 여관에 투숙했다.
식사를 마친 다음, 나와 세영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조핀과 다쓰, 란슬링에게는 조용히 하라고 말해 두고서.
응? 근데 세영이가 왜 미라쥬 길드에 안 있고 우리 파티와 같이 다니냐고?
아, 그건 별거 아냐.
이사도라가 미라쥬 길드의 새 길마가 되니까 더 있기 싫어진 세영이가 우리 파티에 합류하겠다고 말했거든.
어차피 재경이의 행적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기도 하니까 함께 여행을 하겠다면야 큰 도움이 될 거란 생각에 나는 대뜸 찬성한 거고 말이지.
이사도라는 세영이가 나와 같은 파티가 되어 여행을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안 드는 눈치였고 로저도 세영이가 미라쥬 길드를 떠나는 걸 만류했지만 세영이는 결심을 굽히지 않은 거였지.
어쨌거나 세영이는 테이블에 서류를 늘어 놓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대빵 캡숑 울트라 전나세의 행적에 대해서 우리 미라쥬 길드의 모든 정보력을 동원해서 알아낸 결과…….”
“저, 세영아?”
“네?”
“그냥 재경이라고 불러라. 울트란지 전나센지 지랄옆차긴지라고 부르지 말고 말이다. 계속 그 아이디로 듣고 있으려니 좀 그래서 말이지. 유치한데다가 저질스럽기가 꼭 초딩 같아서……. 뭐, 그 녀석이 초딩인 건 분명한 사실이다만…….”
내 말에 세영이는 곱게 눈을 흘기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오빠도 참 지랄옆차기가 뭐예요? 삼촌이 그러니까 조카도 그런 아이디를 짓는 거겠죠. 뭐, 좌우간 그 전나세의 행적에 대해서 알아낸 결과인데……. 참 놀라웠어요.”
“놀라워?”
“네……. 참 여러 곳에서 다채로운 일을 벌여 놓았더라고요.”
이게 무슨 소릴까. 여러 곳에서 다채로운 일을 벌여 놓다니.
그럼 재경이 이놈이 이 이케루스란 게임 세계의 어느 한곳에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있는 게 아니란 말인가?
그래서 현실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거라고 짐작했었는데…….
슬며시 불안한 생각이 든 나는 세영이를 재촉했다.
“그래, 얼마나 다채로운지 한번 읊어 봐라.”
“네, 그게……. 이 이케루스에 존재하는 일곱 개 나라 중 4개국에서 큰 말썽을 일으켜서 공적 내지 현상 수배범으로 지명되어 있는 상태더라고요.”
“…….”
이제경
스토킹 마스터 3권(51화)
Part 1. 재경이의 행적(1)
퍽, 퍼퍼퍼퍼퍽! 퍽퍽! 두두두두두!
“윽! 으아악! 아니, 이거 우영 형님 너무 심하잖습니까! 주먹도 아니고 메이스로 개 잡듯 때리는 건 너무 심하잖아요! 제발 그만 때리란 말입니다!!”
“어쭈, 개겨? 메이스로 맞는 게 싫으면, 그럼 파엘분 세례 한 대 맞고 끝낼래? 어쩔래?”
“아, 아닙니다. 그냥 맞겠습니다. 암요 맞고말고요!”
신나게 메이스로 두들겨 맞던 다쓰가 반항하자 난 눈을 부라리며 을러댔다.
그리고 다시 신나게 메이스로 다쓰를 타작하기 시작했다.
근데 왜 다쓰를 두들겨 패고 있냐고?
이 자식이 미라쥬 길드 보물 창고에서 고른 아이템들 때문이다.
아무래도 찝찝한 생각이 들어서 미라쥬 길드를 나오자마자 마법무기 판매 상점에 들어가서 무려 100골드를 주고 식별을 해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이런 창이 뜨는구먼그래.
-건달왕 쿤타의 립스틱 -
대륙의 모든 건달들이 떠받드는 건달왕 쿤타가 사용하던 립스틱이다.
이 립스틱을 입술에 바르고 공갈 협박을 하면 그 효과가 40% 증가한다. 그 결과 웬만한 상대는 당신의 협박에 굴복하게 될 거다.
충고 : 너무 자주 애용하면 정상적으로 할 말도 공갈 협박 모드로 나갈 확률이 높아진다. 깡패로 전직하기 싫거든 알아서 해라.
빌어먹을…….
하고많은 아이템 중에서 최고급의 아이템을 고르지 못한 거야 그럴 수 있다고 쳐. 하지만 최소한 레어나 그것도 안 되면 유니크 아이템이라도 골랐어야 될 거 아니냐고.
어디서 이런 개뼈다귀 같은 아이템을 고를 수가 있냔 말이다.
그렇잖아도 공갈 협박 스킬 점수가 자꾸 늘어나서 이러다가 캐릭터가 그런 쪽으로 완전히 고정되는 게 아닐까 은근히 신경 쓰이는 판에 이제는 공갈 협박 립스틱까지 발라서 그 능력을 더 키우라고?
아니, 뭐, 좋다.
어쩌다 한 개 정도는 실수로 이런 물건을 고를 수도 있다고 쳐. 근데 두 번째 물건까지도 아주 뒤집어질 걸로 이 다쓰란 자식이 고른 거다.
두 번째 고른 게 뭐냐고?
한번 봐. 돈 들여서 제대로 감정하니까 이런 창이 뜨더라고.
- 대거지 탈란도의 지팡이 -
대륙을 풍미하던 거지들의 우상, 거지 중의 거지 탈란도가 사용하던 무전취식의 지팡이.
이 지팡이를 가지고 다니면 어떤 음식점이나 여관 주인이라도 당신을 공짜로 먹여 주고 재워 주고 싶은 마음이 60% 상승한다.
옵션 : 당신이 데리고 다니는 파티원들도 무전취식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단 그 숫자는 10명을 초과할 수 없다.
충고 : 너무 자주 쓰면 돈은 쏠쏠히 절약되겠지만 니 꼬라지도 거지꼴로 보일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단 거 명심해라.
젠장…….
대거지는 무슨 얼어 죽을, 아무리 앞에 대 자 같은 거 붙어 봐야 결국 거지일 뿐이잖냐고.
그렇게 제대로 잘 고르라고 내가 명령했건만 하고많은 것 중에서 이따구 영양가 없는 걸 고르다니.
“야! 다쓰 너 솔직히 말해라. 일부러 앙심 품고 날 엿 먹이려고 기회만 보고 있었지? 그래서 내가 아이템 두 개 고르라니까 얼씨구나 하고서 이렇게 영양가 없는 거 고른 거지? 그렇지?”
“아닌데요?”
“아니긴 뭐가 아냐, 짜샤! 날 엿 먹이려 그런 거잖아! 그래서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다가 드디어 일 벌인 거잖아! 길드전할 때 나를 보내려고 결정적인 순간에 뒤통수친 것도 용서해 주려고 했는데 은혜를 원수로 갚냐! 마침 잘됐다. 비까지 쏠쏠히 내리는데 얼마나 두들겨 맞으면 이 폭우 속에서 먼지가 마구 날릴 수 있는지 어디 한번 시험해 보자!”
퍼퍼퍼퍼퍽!
“아악! 팔라딘 살려!”
신나게 비가 쏟아지는 들판에서 나는 메이스를 풍차처럼 휘두르며 다쓰를 신나게 두들겨 팼다.
정말로 이런 상황에서 먼지가 나게 할 수 있을지 알아볼 겸 빛의 속도로 메이스를 휘둘러 대면서 말이지.
한 30분쯤을 신나게 때리고 있었을까?
그쯤 되자 옆에서 지켜보기가 지루했던지 란슬링과 세영이가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쉬익! 우영. 아무리 때려도 먼지 안 날리니까 이제 그쯤 해라. 먼지 날리는 거 보려면 아무래도 다쓰를 일주일은 더 두들겨 패야 할 거 같다. 쉬익!”
“그래요. 이제 오빠가 그만 화 푸세요. 설마하니 다쓰 님이 일부러 그랬겠어요?”
“훗! 다쓰가 일부러 그랬겠냐고? 세영이 넌 도둑 길드 부길마인 주제에 왜 그리도 순진한 거냐. 이 녀석이 여자 속옷만 챙기고 다니는 변태 팔라딘이란 걸 벌써 잊은 거냐?”
참 한심하다는 투로 말하자 세영이도 약간 발끈해서 대꾸했다.
“하지만 꼭 여자 속옷 수집한다고 나쁜 사람이라는 건 편견이에요. 그건 그냥 단순한 취미라고 봐줄 수도 있는 거잖아요. 우영 오빠는 어떻게 그렇게 외골수적으로만 생각하세요. 흥, 정말 실망했어욧!”
어절씨구.
세영이 얘가 팩 토라진 척을 하네. 그리고 뭐가 어째! 나한테 실망을 했다고?
아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를 물 먹인 녀석을 위해서 일부러 삐진 척까지 한단 말야?
아, 거참, 이런 것도 은근히 약이 오르는군.
세영이가 다쓰를 감싸려고 나한테 토라진 척을 하다니.
난 잠깐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열 받으려는 걸 애써 꾹꾹 눌러 참은 다음에 입을 열었다.
“훗! 세영이 니가 아직 이 녀석의 본색을 모르는 게로군. 그렇다면 좋다.”
“무슨 말이죠? 내가 다쓰 님의 본색을 모르다니요?”
어리둥절해하는 세영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다쓰에게 다가갔다.
“헉, 우영 형님! 또 왜 이러시는 겁니까? 아니, 남의 주머니에 왜 손을 집어넣느냔 말입니다!”
퍼억!
“으억!”
“이유가 있어서 주머니 뒤지는 거니까 입 다물고 있어라. 계속 처맞으려거든 개겨도 좋다!”
나는 메이스로 을러대며 다쓰의 주머니 속에서 연보라빛 천 조각을 스윽 끄집어냈다.
“어머! 그, 그건!”
그 천 조각의 정체를 확인한 세영이의 두 뺨은 당혹감과 수치심으로 붉게 물들었다.
“그렇지. 세영이 너의 브래지어로구나. 그런데 이게 도대체 왜 다쓰의 주머니 속에 있을까? 이래도 여전히 다쓰의 속옷 수집이 단순한 취미일까?”
“…….”
수치심으로 얼굴이 붉게 물든 세영이는 다쓰를 잡아 먹을 듯 째려보았고, 다쓰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럴 리가 없습니다. 이건 절대 제 짓이 아닙니다!”
입에 거품을 물고 다쓰가 항의하자 나는 인상을 쓰며 두 눈을 부라렸다.
“어절씨구. 다쓰 너 지금 무슨 소리냐? 니가 한 짓이 아니라고? 그럼 누구 짓인데? 그럼 누가 널 모함하려고 일부러 니 주머니에 세영이 브래지어를 집어넣기라도 했단 거냐?”
그러자 다쓰는 정말 억울해 죽겠다는 듯 울화를 터뜨렸다.
“당연하죠. 난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세영 님의 브래지어만은 절대로 수집할 생각이 없으니까요.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말입니다!!!”
“그런가요? 그런데 그 이유가 뭐죠?”
다쓰를 잡아 먹을 듯 째려보던 세영이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하긴 그건 내가 생각해도 궁금하네. 왜 딴 여자 건 몰라도 세영이 브래지어만은 니 관심 밖인 건데?
“훗, 왜긴 왜겠습니까? 저도 여자 속옷 수집을 아무 기준 없이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어느 정도 글래머라야 속옷 수집도 할 맛이 나지, 세영 님처럼 가슴이 저렇게 절벽인 여자분의 브래지어를 도대체 무슨 맛으로 수집을 한단 말입니…….”
다쓰는 말을 하다가 지 실수를 알아차렸는지 창백한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세영이가 부들부들 떨며 분노로 불타는 눈으로 자신을 쏘아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절벽이라, 으음……. 하긴 스타일이 꽤 좋은 세영이다만 가슴만큼은 가히 풍만하다고 할 순 없구먼.
순간 세영이가 내 시선을 눈치채고 뾰족하게 목청을 높이며 급히 가슴을 두 손으로 가렸다.
“뭐예욧! 우영 오빠, 지금 왜 내 가슴에 눈길을 준 거죠?”
“아니, 그게 무슨 소리냐? 거참, 내가 언제 니 가슴을 봤다고 그러냐? 흠흠…….”
웃, 놀래라. 세영이 녀석 저러는 거 보니 지 가슴이 절벽인 거에 대해서 열등감이 있었나 보구먼.
어쨌거나 다쓰 녀석, 괜히 절벽이니 뭐니 해서 결국 제 무덤을 파는군그래.
훗! 좋다. 그렇다면 그 무덤 파는 데 필요한 삽 정도는 빌려 주는 게 파티장으로서의 배려겠지.
나는 슬쩍 세영이의 손을 잡고 내가 가지고 있던 삽……이 아니고 메이스를 살며시 쥐어 주었다.
“세영아 아마 이게 필요할 것 같구나. 뭔가 다쓰와 할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데, 오빠는 잠시 자리를 피해 줄 테니 둘이서 오붓한 시간을 갖도록 하렴.”
“고마워요. 오빠.”
메이스를 건네받은 세영이는 이를 아드득 물면서 다쓰에게 다가갔다.
곧 세영이가 다쓰를 두들겨 패는 소리와 다쓰의 비명이 일대를 진동했다.
다쓰 녀석의 주머니에 세영이의 브래지어를 넣어 둔 게 나라는 사실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야지.
세영이가 다쓰와 아주 오붓한(?) 시간을 가진 다음에 한나절을 더 여행한 우리는 길가의 여관에 투숙했다.
식사를 마친 다음, 나와 세영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조핀과 다쓰, 란슬링에게는 조용히 하라고 말해 두고서.
응? 근데 세영이가 왜 미라쥬 길드에 안 있고 우리 파티와 같이 다니냐고?
아, 그건 별거 아냐.
이사도라가 미라쥬 길드의 새 길마가 되니까 더 있기 싫어진 세영이가 우리 파티에 합류하겠다고 말했거든.
어차피 재경이의 행적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기도 하니까 함께 여행을 하겠다면야 큰 도움이 될 거란 생각에 나는 대뜸 찬성한 거고 말이지.
이사도라는 세영이가 나와 같은 파티가 되어 여행을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안 드는 눈치였고 로저도 세영이가 미라쥬 길드를 떠나는 걸 만류했지만 세영이는 결심을 굽히지 않은 거였지.
어쨌거나 세영이는 테이블에 서류를 늘어 놓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대빵 캡숑 울트라 전나세의 행적에 대해서 우리 미라쥬 길드의 모든 정보력을 동원해서 알아낸 결과…….”
“저, 세영아?”
“네?”
“그냥 재경이라고 불러라. 울트란지 전나센지 지랄옆차긴지라고 부르지 말고 말이다. 계속 그 아이디로 듣고 있으려니 좀 그래서 말이지. 유치한데다가 저질스럽기가 꼭 초딩 같아서……. 뭐, 그 녀석이 초딩인 건 분명한 사실이다만…….”
내 말에 세영이는 곱게 눈을 흘기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오빠도 참 지랄옆차기가 뭐예요? 삼촌이 그러니까 조카도 그런 아이디를 짓는 거겠죠. 뭐, 좌우간 그 전나세의 행적에 대해서 알아낸 결과인데……. 참 놀라웠어요.”
“놀라워?”
“네……. 참 여러 곳에서 다채로운 일을 벌여 놓았더라고요.”
이게 무슨 소릴까. 여러 곳에서 다채로운 일을 벌여 놓다니.
그럼 재경이 이놈이 이 이케루스란 게임 세계의 어느 한곳에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있는 게 아니란 말인가?
그래서 현실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거라고 짐작했었는데…….
슬며시 불안한 생각이 든 나는 세영이를 재촉했다.
“그래, 얼마나 다채로운지 한번 읊어 봐라.”
“네, 그게……. 이 이케루스에 존재하는 일곱 개 나라 중 4개국에서 큰 말썽을 일으켜서 공적 내지 현상 수배범으로 지명되어 있는 상태더라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