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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3권(52화)
Part 1. 재경이의 행적(2)
세영이가 서류를 보며 하는 말에 나는 잠시 벙 쪘다.
뭐가 어째? 공적 내지 현상 수배범이라고?
그것도 한 나라도 아니고 자그마치 4개국에서?
아니, 그 한 마리 어린양처럼 순결하고 착하디 착한 녀석……이라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다만. 그래도 그렇지 공적 내지 현상 수배범이라니,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리란 말이람.
“세영아, 암만 생각해도 좀 이상해서 그런데 말이다. 혹시 그 조사가…….”
내가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묻자 세영인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음을 지었다.
“훗, 오빠가 지금 무슨 말 하고 싶은 건지는 잘 알아요. 조사가 잘못되었을지도 모르지 않냐는 거죠? 그런데. 우리 미라쥬 길드가 수집한 정보가 틀릴 가능성은 고블린이 드래곤하고 맞짱 떠서 이길 확률하고 비슷하거든요. 그 정도로 미라쥬 길드의 정보 수집 능력은 신뢰도가 높아요.”
“으음…….”
고블린과 드래곤의 맞짱이라…….
과장이 아닌가 싶지만 그 정도로 자신한다면야 별로 할 말은 없구먼.
나는 몸에서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다.
재경이 이 자슥이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지르고 다녔길래 이렇게 유명 인사가 되었는진 모르겠다만, 그렇다면 지금까지완 사정이 많이 다른데…….
그냥 이케루스 어느 한구석에 곱게 짱 박혀 있는 녀석을 찾아내서 데려 나오는 거하고 가상현실 게임 세계 전체가 들썩거리게 말썽 부리는 놈을 찾아서 끌고 나오는 건 말이지.
찾는 것도 그렇고 찾은 뒤에 끌고 나오는 거 모두 엄청 힘들잖겠냐고.
난 한숨을 쉬면서 세영이를 보았다.
“그래,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질렀길래 현상 수배범 내지 공적이 되었단 건지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
“네, 그게…….”
세영이는 서류를 뒤적이며 훑더니 말을 이었다.
“한 달 전에 교황청에 모셔진 성배에다가 누군가 오줌을 가득 눈 게 발견되어 대소동이 벌어졌었는데, 그게 바로…….”
“음……. 그 범인이 재경이란 말이군. 근데 교황청은 뭐고, 성배는 또 뭐냐?”
“교황청은 주신 이르하임을 모시는 사제들만의 국가인 셈이죠. 현실 세계의 교황청과 비슷해요. 그 종교적인 영향력은 전 대륙에 미치거든요. 좌우간 성배는 주신 이르하임께서 언약의 증표로 준 거라는 전설이 있는 절대적인 성물인데 거기에 오줌이 가득 담긴 게 발견되었으니 말도 아녔죠. 교황청의 체면에 먹칠을 하는 대사건이었으니까요.”
“난리가 났었겠구나.”
“네, 교황 뮈르달 3세가 울화통이 터져 머리 싸매고 드러누워 한 달간 식음을 전폐했다 하고 전 대륙의 이르하임 신을 모시는 신전은 일주일 동안 문을 닫고 슬픔을 표시했어요. 그리고 교황청을 지키는 성기사단이 크게 문책을 당하고 기사단장이 파면되었고요. 그래서 조카분은 그 일로 교황청의 공적 1호로 지명되었고 현상금까지 걸리게 되었어요.”
“으음…….”
나는 기가 막혀서 신음을 흘렸다.
현실 세계에 있을 때도 간혹 범상찮은 장난을 치긴 했다만 이 자식이 게임 세계에 들어와서는 간땡이가 더 부은 것인지…….
“근데 도대체 재경이가 그 성배에다가 오줌을 싸지른 이유가 뭐래니?”
“아주 간단해요. 교황청의 중앙 건물 홀에 모셔진 그 성배를 참배객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구경하고 있었는데, 그 참배객들 속에 있던 조카분이 구경하다가 손으로 건드렸나 봐요. 목격자들의 말에 의하면 한 번도 아니고 꽤 여러 번 성배를 만졌다고 해요.”
“그런데?”
“그런데 성배를 경비하고 있던 성기사가 그걸 보고서는 ‘거기 엄청 재수 없게 생긴 꼬마야. 이르하임 신께 벼락 맞기 싫으면 땟국물 흐르는 손일랑 당장 치우거라! 싹둑 하고 손모가지 잘라 버리기 전에!’라고 했다나 봐요.”
“그 말에 열 받아서 보복으로 밤에 몰래 침입해서 오줌을 싸지른 거로군.”
덴장, 안 봐도 훤하다.
재경이 요놈의 자식은 은근히 사람 짜증나게 하고 쥐어박고 싶은 충동이 마구 들게 행동하는 놈이거든.
하는 행동과 얼굴 표정만 봐도 재수 없음은 기본이고 밥맛에 왕따는 옵션으로 추가되는 놈이라서 말이지.
참배객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성배를 우러르며 구경하는데 그 속에서 찧고 까불고 밥맛 떨어지게 방방 뛰면서 성배를 슬쩍슬쩍 마구 만져 대는 그 모습이 눈에 훤하다.
어린애니까 경비하던 성기사도 웬만하면 참으려고 했겠지. 그런데 보고 있자니 짜증나고 쥐어박고 싶은 충동이 불처럼 솟구쳐서 견디다 못 해 한마디한 걸 거다.
그리고 재경이 놈은 현실 세계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당한 모욕을 잊지 않고 갚아 준 거겠지.
내 표정을 보던 세영이는 고개를 갸웃하다 한마디 던졌다.
“아마 조카분이 현실에서 하던 행동도 여기서 하고 다니는 건가 보죠?”
“제 버릇 개 주겠냐? 안 봐도 비디오다. 좌우간 다음으로 넘어가 봐라. 설마 일 저지른 게 그 한 건만은 아닐 거 아냐.”
“아, 물론이죠.”
세영이는 서류를 뒤적이며 말을 이었다.
“가뎀 왕국의 왕세자 즉위식에서 엉덩이를 까고 엉덩춤을 추다가 잡으려 드는 경비병들과 구경하던 군중들이 넘어지고 밟고 깔리는 소동이 있었어요. 그 사건으로 사상자가 1백 명 넘게 생겼다나 봐요. 중요한 건 가뎀 왕국 왕세자의 즉위를 축하하는 중요한 의식이 엉망이 돼 버렸단 거죠.”
“설마……. 가뎀 왕국에서도 재경이를 공적으로 지목한 거냐?”
“네…….”
난 어이가 없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어린애가 한 짓인데…….”
“중요한 건 왕세자한테 주먹 감자를 여섯 번쯤 날리고선 엉덩이를 까고 엉덩춤을 췄다는 거죠. 그 결과 가뎀 왕국 왕실과 왕세자 모독이란 죄목으로 공적이 되었고요.”
“으음…….”
골치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근데 재경이 그놈이 도대체 가뎀 왕국에선 왜 그런 건데?”
“네……. 그게, 축하 군중들 속에서 조카분이 마구 양손을 흔들고 방방 뛰는 걸 보고 왕세자가 기분이 나빠졌었나 봐요. 손을 흔들 때 가운데 손가락을 세워서 힘차게 흔들었다나요. 그래서 왕세자는 주위 사람들이 다 들리게 큰소리로 측근들한테 ‘저 왕재수에 싸가지 없는 애새끼는 뭐야? 어디서 저따구 오크 발싸개 같은 게 내 왕세자 즉위식에 나타나서 개지랄을 떠는 거야, 기분 잡치게!’라고 했다나 봐요.”
“그 소릴 듣고 열 받아서 주먹 감자 날리고 엉덩이 까 보이고 엉덩춤 춰서 복수한 거로구먼. 재경이도 재경이지만 그 왕세자란 놈도 입이 좀 험하긴 하군.”
“저……. 우영 오빠, 어째 피곤해 보이시는데 쉬었다가 할까요?”
“아니다, 쉬긴 개뿔을 쉬냐? 내 이놈의 자식이 하고 다닌 짓을 다 듣기 전엔 안 쉴 거니깐 그 다음에 저지르고 다닌 것도 빨랑빨랑 이야기해라.”
사실 재경이가 저지른 만행을 듣고 있자니 열이 뻗칠 대로 뻗쳐서 은근히 피곤했다.
그렇다고 세영이한테 티 내기는 싫었다.
이런 조카가 있는 걸 보이는 것만으로도 망신살이 뻗친 셈이니까.
“그래, 다음은 또 어디의 누구한테 주먹 감자를 날렸냐?”
“그게……. 비슷한 것들이 몇 개 더 있지만 그건 제외하죠. 결정적으로 지금까지와는 성격이 좀 다른 사건을 저질렀는데……. 그게 좀 심각해요.”
세영이가 입맛을 쩝쩝 다셨다.
심각, 심각이라고?
“설마 그놈이 누굴 다치게 하기라도 했냐?”
“그건 아닌데, 결국 비슷한 거죠. 엘카니아 왕국의 공주를 납치했었거든요. 결국 몸값 2만 골드를 받고 풀어 주긴 했지만.”
“…….”
난 한 십 분 정도 침묵했다.
이건 충격이구먼. 납치라니…….
그야말로 본격적인 범죄가 아니냐고.
지금까지는 아무리 공적으로 지목되었을 망정 그래도 어린애 장난으로 간주할 소지가 있었지만……. 납치라니!
재경이 이노무 자식! 아무리 게임 세계라고 이렇게 막가다니, 잡기만 하면 삼촌으로서 단단히 버르장머리를 고쳐 줄 테다.
“근데 일국의 공주를 혼자서 납치하긴 어려웠을 텐데…….”
“네, 엘카니아 왕국 인근에 니녹스란 이름의 산맥이 있어요. 그 산맥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산적단의 보스가 얼마 전에 바뀌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산적단을 손에 넣은 재경이가 그 산적 떼를 이끌고 공주를 납치했다?”
“네, 인근 국가에 사절로 방문하려고 니녹스 산맥을 넘는 공주 일행을…….”
난 머리가 어지러웠다.
산적단을 접수해서 공주를 납치했다고?
한 나라의 공주 일행을 납치할 정도면 엄청 대담무쌍하고 만만찮은 산적단이란 말인데, 재경이 이 자식이 얼마나 고렙이면 그런 산적단을 한 손에 쥐고 휘두를 정도라는 거지?
이거 곤란한데.
이러면 내가 재경이를 찾아내는 데 성공한대도 문제다.
재경이 녀석의 성격상, 게임 세계에서 그만 놀고 집으로 돌아가자는 내 말을 콧방귀 뀌면서 깔아뭉갤 가능성이 다분하니까.
아니, 어쩌면 내 말을 깔아뭉개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고 현실 세계에서 나한테 쌓이고 쌓였던 거를 다 풀려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
어디 한 번 내 손에 죽어 봐라 하고선 말이지.
뭐? 평소에 조카한테 얼마나 심하게 했으면 그렇게 보복을 겁내고 있냐고?
심하게 하기는 무슨!
그저 막가는 조카한테 가끔가다 어른으로서 가볍게 훈계를 한 것뿐이구먼 흠, 흠…….
어쨌거나 이것 참 갈수록 골치 아파지는군.
난 한숨을 쉬면서 세영이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재경이는 여전히 그 니녹스라는 산맥에서 산적단을 가지고 산적 놀이를 하고 있는 거냐?”
“아뇨, 그 산적단의 행패를 견디다 못한 인근 국가들이 합세해서 대대적인 토벌 작전을 벌였거든요. 물론 선봉에 선 국가는 공주를 납치당하고 거액의 몸값을 주고 돌려받은 엘카니아 왕국이었고요. 그래서 산적단은 흩어졌고 조카분은 니녹스 산맥을 떠나 모처로 잠적을 해 버렸어요.”
“으음……. 이 이케루스에서 국제적인 말썽이란 말썽은 다 저지르고 튀었다는 말이군.”
나는 기가 막혀서 한숨을 푹 쉬었다.
근데 날 물끄러미 보던 세영이가 궁금해서 못 참겠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근데 오빠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뭔데?”
“재경이라는 그 조카……. 오빠하고 많이 닮았나요?”
“뭐? 너 그게 무슨 소리냐?”
“아니, 아무래도 숙질 간이면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서…….”
빠직!
내 미간에 혈관이 불룩 솟았다.
아니, 세영이 이 녀석이 지금 내 인간성을 의심하고 있다는 거야, 뭐야?
“임마 너 돌았냐? 내가 어딜 봐서 그런 엽기적인 녀석하고 같단 거냐. 지금까지 내가 한 행동을 보면 모르냐?”
“…….”
내 말에 세영이는 뭔가 말을 하려다가 슬쩍 입을 다물었다.
근데 표정에 ‘당신이 하는 걸 지금까지 봤으니 이런 질문을 하는 거지’라고 나타나 있다.
젠장! 조카 하나 잘못 둔 덕분에 별 이상한 꼴을 다 당하는군. 에이, 찝찝해.
“좋아. 뭐, 그건 그렇고. 좌우간 그 모처가 어디냐? 이 자식이 도대체 어디로 튀었는가 말이다.”
“암흑 제국요.”
“암흑 제국이라면, 혹시…….”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듣고 있던 조핀이 슬쩍 끼어들었다.
“그렇습니다. 바로 제가 트루펜 국왕 전하의 명을 받들어 밀사로 방문해야 하는 목적지입니다. 우영 님과 함께 말이죠.”
“으음…….”
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군.
어차피 방문해야 하는 곳이니까 말이지.
근데 좀 궁금해지는군. 마토스의 국왕 투르펜도 밀사를 보내려 하고 사고를 친 재경이 녀석도 잠적하려는 곳이기도 하다니, 도대체 암흑 제국이란 어떤 나라인 거지?
“그 암흑 제국이란 곳이 좀 특별한 나란가?”
“살벌한 곳이죠. 다른 나라들처럼 정상적으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 아니거든요.”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곳이 아니라고?”
내가 궁금해하자 세영이에 이어 조핀이 부연 설명을 시작했다.
“약육강식의 사회이고, 강자가 약자를 죽이는 게 별 흠이 되지 않는 곳입니다. 때문에 사회는 물론 국가적으로도 암흑 제국이 지닌 무력은 굉장하다는 소문이 자자하고요. 아마 암흑 제국이 본격적으로 전쟁을 일으키면 주변의 대여섯 개 되는 나라들이 연합해서 싸운다고 해도 상대하기가 어려울 거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니까요.”
난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투르펜 국왕께서 조핀 님을 밀사로 보내서 암흑 제국에 구원군을 요청하시려는 거군요.”
“그건 대답해드리기 힘들군요. 국가 기밀이라서 말입니다.”
나의 유도신문에 조핀은 대뜸 선을 그었다.
국가 기밀은 무슨 얼어 죽을!
구원군 청하는 거 아니면 뭣 땜에 그런 살벌한 나라에 밀사를 보내겠냐고.
조핀은 내 표정을 읽은 듯 씨익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 정 궁금하시면 우영 님께 말씀드릴 수도 있습니다만.”
“안 들을랍니다.”
“아니, 왜요?”
“몰라서 물으시는 겁니까? 오늘 밤 한 침대에서 같이 자겠다고 하면 다 말해 주겠노라고 하실 거잖습니까.”
“우후후후후후후! 우영 님도 참.”
“…….”
우리 말을 듣고 있던 세영이가 못마땅한 눈으로 조핀을 노려보자 나는 슬며시 화제를 바꾸었다.
“근데 세영아. 재경이 녀석은 왜 굳이 그런 살벌한 곳으로 잠적을 한 거라고 생각하냐? 다른 나라로 피신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건 간단해요. 단순히 자신이 이끌던 산적단이 궤멸되었기 때문만이 아니라서 그런 걸 거예요. 수많은 공적질 때문에 지금 조카분한테 붙은 현상금이 무려 십만 골드가 넘거든요. 그 정도 현상금이면 그 돈을 노리고 달려드는 사람의 숫자도 엄청나게 많을 거라는 것도 뻔하고요. 바운티 헌터들하고 용병들 말이죠.”
“그러니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상황이 상당히 살벌해졌으니까 아예 자기를 노리는 사람들이 쫓아오기 어려운 험지로 뛰어들었단 이야기로군. 추적을 포기하게 만들려고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