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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3권(54화)
Part 2. 새로운 파티원 케브라(2)


바퀴벌레!
케브라가 바바리코트를 벗어젖히고 중절모까지 벗자 모습을 드러낸 건 보무당당하게 뒷다리로 서 있는 한 마리 바퀴벌레였다.
키는 성인 남자와 비슷하고, 덩치도 사람과 비슷했다.
보통의 바퀴벌레와 다른 점이라면 그 사이즈가 판이하게 차이가 난다는 것. 그리고 여섯 개의 다리로 기어 다니지 않고 두 개의 뒷다리로 서 있고 나머지 네 개의 다리는 사람의 손처럼 쓰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러나저러나 바퀴벌레는 바퀴벌레다.
갈색으로 번들거리는 몸에, 등껍질 밑에서 파르르 떨리는 날개, 그리고 징그러운 가시가 빽빽이 나 있는 여섯 개의 다리. 그리고 말을 할 때마다 흔들리는 더듬이와 희미하게 갈색으로 기분 나쁘게 번득이는 눈알, 그리고 입과 턱 밑에 달린 수염들을 정면에서 보니 온몸에 스멀스멀 바퀴벌레가 기어 다니는 느낌이다.
젠장! 란슬링도 처음 볼 때는 좀 놀라긴 했지만 이 정도는 절대 아니었는데…….
파충류보다 곤충, 그 중에서도 곤충강 바퀴목에 속하는 이 바퀴벌레란 녀석은 그 이름만 들어도 혐오스러운데 사이즈가 딱 인간의 형태이니 이거 장난 아니네.
물론 마리사의 방앗간에서 자이언트 바퀴벌레를 소탕하기도 했지만 눈앞에서 보고 있는 이 직립형 바퀴벌레가 훨씬 더 엽기적이구먼.
우리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하자 케브라는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었다.
자기 딴에는 과감하게 커밍아웃을 했는데 반응이 영 신통치 않으니 말이지.
“저……. 혹시 제 정체를 아시고 실망하신 겁니까? 안 되는 건가요? 아무래도 바퀴벌레는 파티원으로 받아들이기가 곤란하신 건가요?”
음, 바퀴벌레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어서 자세히는 몰라도 꽤나 상처받은 목소리 같은데?
케브라의 말에 다쓰와 란슬링이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뭐, 이런 말하고 싶진 않지만 아무래도 그렇지? 세상에 바퀴벌레 따위를 파티원으로 데리고 다니는 파티가 어디 있다는…….”
“난 죽었으면 죽었지 바퀴벌레완 함께 못 다닌다. 쉬익! 파티장이 미치지 않은 다음에야 어떻게 바퀴벌레를 파티원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
퍽! 퍼퍼퍼퍽!
쿠당탕!
“크억!”
“케엑! 쉬익!”
두 녀석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내가 휘두르는 메이스 세례를 맞고 비명을 질렀다.
짜식들, 그렇지 않아도 파티의 전력을 보강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는데 초를 치려고 하다니.
한 번 더 입을 놀렸다간 아작 내 버린다는 시선을 두 녀석에게 던진 나는 케브라에게 미소를 지었다.
“아냐, 무슨 소리. 케브라는 훌륭한 우리 파티원이 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우리 파티는 파티장인 내 말이 절대적이거든. 내 말에 개기는 녀석은 죽음뿐이니까 걱정할 거 전혀 없어. 그렇지 않냐, 세영아?”
너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는 암시를 강력히 주자 세영이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요. 바퀴벌레를 파티원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규칙 같은 건 없잖아요? 뭐, 변태 속옷 마니아 팔라딘도 계시고 염산 같은 침을 뿌리고 다니는 리자드맨도 있는데 거기에 바퀴벌레 한 마리 더 추가된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나요.”
‘어차피 갈 데까지 간 막장 파티인데 말이죠.’라는 마지막 말은 아무도 안 들리게 입 모양으로만 말하는 세영이었다.
“역시 세영이라니깐. 이 얼마나 이해심이 넘치냔 말야. 야, 다쓰, 란슬링 너희 두 놈도 세영이를 좀 본받아 봐라.”
“훗! 저도 찬성입니다. 이 넓은 세상에 바퀴벌레가 낀 파티가 하나쯤 있어야 재미있는 법이죠.”
난데없이 조핀이 하는 말에 난 황당했다.
“조핀 님은 정식 파티원이 아니라서 전혀 상관없지만 그래도 찬성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그래서 분위기가 모두 케브라를 우리 파티원으로 인정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다쓰와 란슬링, 이 두 녀석한테도 확실히 찬성한다는 약속을 받아 둬야 한다.
안 그러면 우리 파티에 균열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 뭔 일이 터지면, 그래서 난 바퀴벌레를 파티원으로 받는 걸 반대했다는 둥, 이 모든 게 파티장이 멋대로 결정해서 생긴 일이라는 둥 하면 곤란하다고.
“야! 다쓰. 뭔가 한마디 해야 하지 않겠냐? 케브라의 우리 파티 가입에 대해서 말이다.”
은근히 째려보며 케브라의 파티원 가입에 반대하면 재미 없을 거라는 신호를 보내자 다쓰는 한숨을 쉬었다.
“휴……. 이것 참 곤란하군요. 우영 형님의 눈빛이 의미하는 바는 압니다만, 그러나 주신 이르하임을 섬기는 팔라딘들은 결코 자기 양심의 결정에 어긋나는 지시를 따르지 않는 법이라서요!”
뭐라고! 양심의 결정이 어쩌고 어째!
꼴에 니가 무슨 순교자라도 되는 양 폼을 잡아?
나는 다쓰의 침대 밑에 숨겨져 있던 여자 속옷이 가득 들어 있는 가방을 슬쩍 끄집어내서 여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다쓰가 화들짝 소리를 질렀다.
“헛! 우영 형님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난데없이 제 가방은 왜 열려고 하시냐고요!”
“뭐, 별거 아니다. 자신의 양심을 목숨 걸고 지키는 팔라딘께서 어떤 취미 생활을 즐기는지 한번 알아볼려구 말이지. 케브라도 우리 파티원들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야 할 테니까 말이지. 그렇지 않겠냐?”
“아, 알겠습니다. 저는 제 양심의 지시에 따라서 케브라의 파티원 가입을 적극적으로 환영한다 그런 말이었습니다. 아니, 도대체 우영 형님께선 왜 사람 말을 엉뚱하게 알아들어서 저를 난처하게 하십니까?”
약점이 폭로될 처지가 되자 다쓰는 황급히 말을 바꿨다.
젠장! 그 정도 협박에 이렇게 쉽게 말을 바꾸냐.
협박한 내가 도리어 맥이 빠질 지경이네.
다쓰 이 자식은 무슨 놈의 양심이 이리도 가벼운지 여자 팬티스타킹만큼도 그 무게가 안 나갈 것 같다.
좌우간 내 협박에 못 이긴 다쓰가 찬성 의사를 표시했으니 이제 란슬링만 남았군그래.
그러나 란슬링은 케브라를 혐오감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강력한 거부 의사를 온몸으로 표시하고 있었다.
“야! 란슬링. 모두 다 케브라를 환영하는데 너 혼자만 싫단 소린 못하겠지?”
“아니다. 쉬익! 난 싫다, 절대 반대다. 쉬익!”
“뭐가 어째? 란슬링 너 죽을래!”
내가 메이스를 들고 두 눈을 치켜뜨자 란슬링은 숫제 울상이 되었다.
“우영, 너도 생각을 해 봐라. 쉬익! 우리 파티에서 내 임무가 뭐냐. 쉬익!”
“뭐긴 뭐야? 파티원이 부상을 입었으면 재빨리 힐링을 해 주는 거지! 가만…….”
난 거기까지 말하다가 비로소 짚이는 게 있어서 말을 흐렸다.
만약 케브라가 다쳤으면 란슬링이 힐링을 해 줘야 하는데 혀를 저 혐오스런 몸통과 다리에 갖다 대야 한다는 거로군.
그것 때문에 란슬링이 강력한 혐오감을 표시하고 있는 거다.
하긴, 가만 생각하니 간단한 일은 아니네. 바퀴벌레를 혀로 마구 쓰다듬는다고 생각해 보라고.
그걸 강요당하느니 자살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른 사람들이야 케브라하고 손 하나 안 부딪친다고 해도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란슬링은 입장이 다르다.
케브라가 싸우다가 다친다면 란슬링으로서는 저 혀로 힐링을 해 줘야만 하니까…….
으음……. 저 녀석 입장도 이해가 가긴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란슬링 때문에 케브라의 파티 가입 승인을 철회할 순 없다.
파티장으로서의 내 체면도 있고 특히 케브라는 나한테 충성심을 보이는 게 다쓰와 란슬링과는 너무도 다르니까 말이지. 이제 나도 내 심복을 하나 갖고 싶단 야그지.
그래서 난 얼굴에 철판 깔고 란슬링을 나무라는 척했다.
“훗! 란슬링 너 정말 못쓰겠구나!”
“쉬익! 그게 무슨 소리냐?”
“바퀴벌레라고 선입견을 갖고 있으니까 힐링해 줄 때 생기는 문제에 대해서 미리 걱정을 하는 거 아니냐고. 케브라를 바퀴벌레로 보지 말고 같은 파티원이자 둘도 없는 소중한 동료이고 사랑스러운 벗이라고 생각해라. 혀로 힐링해 주는 것쯤이야 문제될 건 아무것도 없다.”
“그, 그렇지만 분명히 바퀴벌레인데 어떻게 바퀴벌레를 바퀴벌레로 보지 말란 말이냐. 쉬익!”
“너 자꾸 바퀴벌레 바퀴벌레 할래? 그러면 듣는 바퀴벌레가 얼마나……. 아니지, 케브라가 얼마나 서럽겠냐? 내가 ‘이 덜떨어진 도마뱀 대가리 같은 자식아!’라고 너한테 주절대면 넌 기분 좋더냐?”
“응, 괜찮다. 쉬익! 처음엔 기분 나빴는데 그동안 우영한테 그 소릴 하도 들어서 이젠 아무렇지도 않다. 쉬익!”
“…….”
근데 이 자식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거지 꼭 초를 치는군.
세영이만큼은 아니라도 다쓰 정도로 겁을 주면 알아서 기어 줘야 할 거 아니냐고.
역시 지능이 떨어지는 도마뱀 대가리라서 어쩔 수 없구나. 머리로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니 몸이 알아듣도록 하는 수밖에.
난 란슬링과 잠시 진지한 디스커션을 나눌 필요성을 느끼고 모두 10분만 밖에 나가 있어 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10분 동안 나는 메이스를 가지고 란슬링의 온몸이 뼈저리도록 케브라가 우리 파티가 되어야 할 당위성을 알아먹게 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저를 파티원으로 받아 주신 우영 님께 충성을 다하고 목숨을 바쳐서 보필하겠습니다.”
정식으로 우리 파티원이 된 케브라는 감격에 겨워 하며 거듭 나에게 충성을 다짐했다.
음……. 아무래도 저 흉측한 외모 때문에 어느 곳에서나 따돌림을 당했었나 보군.
그러니 한편 먹게 해 준 나한테 저토록 감격하는 거겠지.
근데 모두가 다 떨떠름한 눈치군.
세영이 이놈은 나하고 관계 상하기 싫어 찬성했지만 여자애가 바퀴벌레하고 같은 파티인 게 즐거울 린 없겠지.
다쓰 자식은 내 공갈 협박에 굴복한 거니 말할 필요 없고 내 메이스에 떡이 되도록 두들겨 맞은 란슬링은 아직도 ‘내가 저 바퀴벌레를 힐링하느니 그냥 죽겠다!’는 표정이시로군.
그때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던 다쓰가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새로운 파티원도 생겼으니 이제 우리 파티의 위계질서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다쓰, 너 그게 무슨 소리냐? 위계질서라니?”
우리 파티에 그런 게 존재하기나 했나? 그것참 신기한 일이다.
“그게 그러니까, 우리 파티의 넘버 2인 나 다음으로 란슬링과 케브라 둘 중 누가 넘버 3인가 서열을 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말이죠.”
너무 당연한 걸 왜 묻냐는 투로 하는 말에 나는 잠시 벙 쪘다.
이 자슥이 지금 뭔 소리래? 틈만 나면 파티장인 나한테 개기면서 내 권위를 무너뜨리려고 광분하던 녀석이 말이다.
그때 세영이가 발끈했다.
“지금 그게 무슨 소리죠? 다쓰 님이 넘버 2고 란슬링, 케브라 두 분 중에서 넘버 3가 결정된다니. 그럼 제 서열은 어떻게 되는 건데요?”
“저……. 그건…….”
훗! 다쓰 자식. 당황해서 어떻게 대답할지를 모르는군. 그러니 여자 있는 데서는 좀 신중히 생각을 해 보고 말을 해야지.
근데 란슬링도 듣고만 있을 수가 없는지 입을 열었다.
“쉬익! 내가 넘버 2인지 3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다쓰 너보다 아래는 아니다. 그건 확실하다. 쉬익!”
“뭐? 란슬링, 너 죽을래? 그동안 나한테 개기는 것도 은근히 참아 줬는데 은혜를 모르고 까부냐? 너 나한테 한번 처맞아 볼래?”
“흥! 웃기지 마라. 쉬익! 너야말로 내가 힐링해 줘서 목숨 구한 게 얼만데 은혜도 모르고 지랄이냐. 쉬익!”
“이게 정말! 맞짱 한번 떠보자는 거냐!”
“흥! 투핸디드 소드 빼 들면 내가 겁먹을 줄 아냐. 쉬익!”
“지금 뭐하는 짓들이냐, 이것들아! 당장 무기 도로 안 처넣을래!”
내가 버럭 고함을 지르자 두 녀석은 마지못해서 무기를 집어넣었다.
나는 인상을 쓰면서 큰소리로 선언했다.
“분명히 말해 두지만 우리 파티에서 파티장인 내 밑으로는 서열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평등하니까 서열 2고 3이고 구분하는 짓은 전혀 무의미하다 그 말이지. 오로지 파티장인 내 말만 따르고 나한테 충성하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