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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3권(55화)
Part 2. 새로운 파티원 케브라(3)


“…….”
그 말에 세영이와 케브라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지만, 다쓰와 란슬링 두 자식은 불만이 있는 눈치다.
이것들은 말도 안 들어 처먹는 주제에 꼴 같지도 않은 서열 따지기는 왜 이리 좋아하는지 모르겠구먼.
바퀴벌레인 케브라만도 못한 자식들 같으니.
좋다, 나한테 은근히 불만을 품고 있는 너희들을 위해서 내가 서비스 하나 하지.
“훗, 그리고 우리 파티의 기강이 지금까지는 해이한 면이 있었는데 그걸 바로잡기 위해서는 앞으로 군기 반장을 임명하겠다. 그 군기 반장은 바로…….”
“어흠…….”
“그건 나밖에 할 사람이 없지. 쉬익!”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쓰와 란슬링 두 녀석이 지가 적임이라는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거 미치고 팔짝 뛰겠군.
항명에 하극상을 가장 밥 먹듯 한 것들이 군기 반장을 하겠다니.
“군기 반장은 바로 케브라다. 케브라는 앞으로 파티장인 나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하극상을 하거나 항명하는 파티원은 가차 없이 응징하도록.”
“알겠습니다, 우영 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케브라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자 다쓰와 란슬링 두 녀석의 주둥이가 불쑥 튀어나왔다.
“흥! 바퀴벌레 주제에 뭔 수로 응징을 하겠단 건지…….”
“그러게 말이다. 쉬익! 바퀴벌레 싹스나 바퀴벌레 트랩만 봐도 벌벌 떠는 주제에……. 쉬익!”
그러자 케브라는 힐끗 그들을 쏘아보더니 차갑게 내뱉었다.
“나한테는 무슨 소리를 해도 좋다. 하지만 우영 님께 불손하게 굴면 뜨거운 맛을 보게 될 거다!”
“…….”
위압감이 가득한 케브라의 말에 다쓰와 란슬링은 주춤했다.
훗! 녀석, 생긴 건 전혀 아니다만 말은 참 귀엽게 하는군.
“근데 케브라 너 무기는 가지고 있는 거냐?”
“물론입니다. 지금 당장 보여 드리겠습니다.”
내 말에 케브라는 잠시 뒤돌아서서 뭘 꺼내는 듯하더니 몸을 홱 돌렸다.
그의 네 손에는 각기 롱소드, 숏소드, 쌍절곤과 플레일의 네 가지 무기가 들려 있었다.
“후후후훗!”
다쓰와 란슬링을 향해 음침한 미소를 지은 케브라는 네 개의 무기를 힘차게 움직였다.
쐐애애액!
쉬이익!
요란한 칼바람과 파공성을 내며 네 개의 무기가 방 안 가득 서슬 퍼런 살기를 내뿜었다.
“으음…….”
“꿀꺽, 쉬익!”
케브라의 무력시위에 다쓰는 침을 삼켰고 란슬링도 안색이 창백해졌다.
어찌나 빠른지 무기가 보이지도 않누만.
저 정도면 어쌔신 중에서도 특급이라고 해도 좋을 실력이다.
역시 케브라를 영입한 건 탁월한 선택인 것 같다, 후후후후훗!
“이봐 다쓰, 란슬링. 식당에 가서 술과 음식들 좀 가져와라. 케브라가 우리 파티원이 된 걸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해야겠으니까.”
“그걸 왜 우리만 합니까!”
“맞다, 우영 넌 손이 없냐. 쉬익!”
“너희 둘, 조금 전에 뭘 들었길래 우영 님한테 개기는 건가? 나한테 한번 맞아 볼 테냐!”
불평을 궁시렁거리던 두 녀석은 케브라의 위협에 마지못한 듯 밖으로 나갔다.
거참 심복이 생기니 이렇게 좋구먼.
눈에 거슬리는 꼴들을 알아서 다 차단해 주고 말이지.
난 이제 한 식구가 된 케브라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던졌다.
“그래, 케브라 넌 카랄룩이라는 종족이라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우리 카랄룩들은 성인이 되면 부모의 품을 떠나서 짝을 만나 한곳에 정착해서 새끼들을 여럿 낳으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면 케브라 님도 어여쁜 부인과 귀여운 자식들이 있겠네요?”
“…….”
세영이의 질문에 케브라는 갑자기 말을 멈추더니 두 눈에서 눈물을 떨구었다.
“아니, 왜 그러세요? 제가 뭐, 못 할 질문이라도…….”
“그건 아닙니다. 그저 제 처와 자식들이 처참하게 죽어 간 일을 생각하니 그만 괴로워져서…….”
“흠, 그런 아픔이 있었구먼. 어떤 천인공노할 악당이 너의 가족에게 몹쓸 짓을 한 모양이군.”
내 말에 케브라는 가시가 수북이 난 손으로(사실은 손인지 발인지 헷갈렸다) 수건을 집어 눈물을 닦았다.
“네,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기만 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군요.”
“처와 자식들이 모두 참변을 당했다면 복수심이 하늘을 찌르겠군. 근데 도대체 어떤 자가 그런 만행을 저지른 거지? 범인은 알고 있는 거냐?”
“유감스럽게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지 알아내면 맹세코 처절한 복수를 할 겁니다.”
“남자라면 당연히 그래야지. 그런데 니가 처자식들을 데리고 살던 곳이 어딘데?”
겉으로 봐선 모르겠는데 은근히 뼈아픈 일을 겪은 놈이라 생각하니 안쓰런 생각이 들었다.
케브라는 격앙된 감정을 다스리려는 듯 잠시 숨을 고르다가 말을 이었다.
“아마 우영 님은 모르실 겁니다. 아내를 데리고 이곳저곳을 스멀거리며 돌아다니다가 아주 멋진 물방앗간을 발견해서 그곳을 우리의 보금자리로 삼기로 했었죠. 그곳에서 살림을 꾸리면서 수백 마리의 자식들도 낳았습니다.”
“그런데 네 행복이 넘치는 가정을 누군가 노리고 차마 못 할 짓을 저지른 게로군.”
“크으……. 누군진 몰라도 정말이지 너무도 비겁하고 잔인한 놈입니다. 제가 어쌔신 일을 나가느라고 장기간 집을 비운 사이에 침입해서 처와 자식들을 그토록 무참하게 학살을 하다니……. 으으…….”
케브라는 다시 생각해도 가슴이 찢어질 거 같은지 가시 잔뜩 달린 손(인지 발인지)로 눈물을 닦았다.
쯧, 저걸로 닦으면 눈동자에 기스 안 갈지 모르겠다.
“정말 가증스런 악당이네요. 근데 이건 말씀해 주기 어려우시겠지만 부인과 자녀분들이 어떻게 목숨을 빼앗긴 거죠?”
“흐흑! 어쌔신 일을 끝내고 선물을 가득 사서 물방앗간에 들어서는 제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너무도 끔찍했습니다. 방앗간이 화재라도 만난 듯 완전히 불에 타 버려서 잔해만 남은 상태였으니까요. 그리고 불에 탄 잔해 속에서 검게 그슬린 내 자식들의 시체가 수백 구나 쏟아져 나왔습니다. 난 그 충격으로 그만 기절을 하고 말았죠. 밤이 되어서야 깨어나서 통곡한 뒤에 찬찬히 자식들의 시체를 살펴보니까 뭔가 강한 둔기에 맞아 온몸이 으깨지고 터져 나간 아이들의 시체가 많았습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뻔했죠. 흉수는 물방앗간에 침입해서,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놀 듯 내 자식들을 흉기를 이용해서 마음껏 구타하고 짓밟아 터뜨려 죽이다가 싫증이 나니까 파이어 볼 같은 화염 세례를 퍼부어 물방앗간과 함께 내 자식들을 불태워 죽인 것입니다. 크흐흐흐흐흑!”
말을 마친 케브라는 다시 고조되는 감정을 이기지 못한 듯 통곡을 터뜨렸다.
“…….”
근데 이거 어째 좀 이상하네. 뭔가 남의 일 같지 않다는 생각이 자꾸 드니까 말이지.
동시에 불안한 마음이 가슴 한구석에서 새록새록 피어나려고 하는군.
나는 케브라가 울음을 그치기를 기다렸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케브라, 그 물방앗간 뒤로 산자락이 펼쳐져 있지 않았나?”
“그런데요.”
“그리고 혹시 물방앗간 왼쪽에는 커다랗고 근사한 성이 있지 않았냐?”
“헛! 우영 형님이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그, 그게……. 나도 여행하다가 우연히 그곳을 지나친 적이 있는 것 같아서 말이지. 그 성 이름이 혹시…….”
“네, 글래스 캐슬이죠. 상당히 아름다운 성입니다. 사실 그 물방앗간을 우리 부부의 보금자리로 정한 게 그 성이 옆에 있다는 것도 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게 너무도 큰 실수였던 것 같습니다. 설마 그토록 큰 불행을 불러오는 곳일 줄이야…….”
“…….”
다쓰가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맺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걸로 확실해진 거다.
글래스 캐슬 인근에서 마리사의 의뢰로 내가 바퀴벌레를 소탕했던 물방앗간은 바로 케브라가 처자식을 데리고 살던 보금자리였다!
제길……. 그 물방앗간에서 뻘뻘 기어 다니던 그 수백 마리 자이언트 바퀴벌레들의 아버지를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그리고 우리 파티에 가입까지 시키다니…….
근데 자기 자식들을 떼거지로 몰살시킨 인간이 나라는 걸 케브라가 알면 어쩌지?
그러고 보니 어째 자이언트 바퀴벌레 중에 유독 큰 바퀴벌레 한 마리가 있다 했더니 그게 바로 케브라의 마누라였나 보다.
어쩐지 때리고 또 때려도 물러서지 않고 작은 자이언트 바퀴벌레를 감싸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 같더라니.
쩝……. 이것 참 심란하구먼.



Part 3.엘카니아 왕국(1)


스스스스슥! 스스슥!
“헉, 이게 뭐야? 내가 왜 이런 곳에 있는 거야!”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 그리고 온몸을 감싸는 공포에 나는 전율했다.
어두운 실내, 바닥과 벽에는 온통 갈색으로 빛나는 두 눈들이 가득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곳은……. 그리고 저 눈들은…….
“헉, 말도 안 돼! 마리사의 의뢰로 이 물방앗간에서 자이언트 바퀴벌레들은 다 소탕했는데 내가 도대체 왜 이곳에 와 있는 거냐고!”
스스스스스!
내 비명은 아랑곳없이 자이언트 바퀴벌레들은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나를 향해 다가왔다.
어쩐지 저번보다 훨씬 커진 것 같고 묘한 독기까지 품고 덤벼드는 기분이 든다.
게다가 숫자도 훨씬 더 많잖냐고!
두다다다! 벌컥!
맞서 싸울까 하다가 불안한 기분이 든 나는 재빨리 문을 열고 밖으로 몸을 날리……려는 순간이었다.
“커억! 뭐, 뭐야? 당신 누구요!”
문 앞에서 바바리코트에 중절모를 쓰고 서 있던 사내는 서서히 중절모를 벗었다.
그의 정체를 확인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너 케브라 아냐? 다행이다. 난 또 괜히 놀랐잖아. 허억! 아니, 너 왜 이러냐!”
쉬익!
푸욱!
“아악!”
안도하던 난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케브라가 네 개의 손에서 꺼내 든 흉기로 나를 찔러 왔고 나의 가슴에 치명상이 생겨 버린 거다.
“크윽. 케브라……. 이럴 수가! 니가 나를 배신하다니…….”
“흥! 배신이라고! 내 처와 자식들의 철천지원수! 죽어라!”
케브라의 원한에 찬 부르짖음이 내 귀를 때렸다.
나는 흐려져 가는 의식을 애써 추스르며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