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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3권(56화)
Part 3.엘카니아 왕국(2)
응? 웬 햇빛?
그리고 천장의 벽지는?
이건 어저께 묵었던 여관의 벽지 아냐?
나는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휴! 꿈이었군.”
안도의 한숨을 쉰 나는 이마의 땀을 닦았다.
“쩝, 악몽도 하필이면 그런 악몽을 꾸다니. 찝찝해도 엄청나게 찝찝하군. 어쨌거나 꿈이라서 다행이었다.”
악몽을 꾸다가 깨어나서 그 위험과 전혀 무관한 상태라는 자각이 들 때의 안도감. 그 안도감을 즐기던 나는 뭔가 불길한 소리에 귀를 쭈빗 세웠다.
이거 꿈에서 듣던 그 소리 아냐?
스스스슥! 스스스스!
“…….”
가만있어라. 이 소리의 진원지는…….
시선을 슬쩍 침대 밑으로 돌리던 나는 심장이 멎을 뻔했다.
바퀴벌레가 움직일 때 나는 소리와 함께 케브라가 침대 밑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우와 이거 진짜로 어제 저녁 먹은 거 올라올 거 같다.
어제까지는 그래도 두 다리로 걸어 다니느라 못 느꼈는데, 다리 여섯 개로 스멀스멀 기어서 침대 밑에서 나오는 꼴을 보니 케브라가 바퀴벌레라는 사실이 새삼 뼈저리게 느껴진다.
나는 메슥거리는 속을 애써 진정시키면서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케브라, 잘 잤냐?”
“우영, 님도 잘 주무셨습니까?”
“너 설마……. 어젯밤 내내 그 침대 밑에 있었던 거냐?”
“네, 여기 있었습니다. 밤중 내내요.”
케브라가 태연히 하는 말에 나는 벙 쪘다. 이 자식 정말로 바퀴벌레로구나 하는, 너무나 당연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너 돌았냐? 멀쩡한 니 방 침대 놔두고 왜 거기서 잔 건데?”
“훗! 우영 님을 노리는 자들의 그 어떤 암습이나 공격에도 대비하기 위해섭니다. 제가 지키고 있는 한 우영 님께서는 절대적으로 안전합니다!”
와, 이 자식. 엄청나게 진지하고 충성스럽게 말하네.
근데 말이다. 사실 케브라 너를 빼면 나를 암습하거나 굳이 공격할 이유가 있는 놈들은 별로 없거든?
케브라가 밤중 내내 내 침대 밑에 있었다는 사실이 매우 찝찝했지만 난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다.
“케브라 넌 정말로 충성스럽구나. 근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다음부턴 그 밑에서 자지 마라. 소중한 파티원이 나 때문에 고생한다고 생각하면 파티장으로서 내가 너무 가슴이 아프잖냐.”
“아닙니다! 어쌔신으로서 침대 밑에 숨어 있는 건 기본입니다. 같은 자세로 최소한 48시간을 버티지 못하면 그건 어쌔신 자격이 없는 거죠. 저 같은 고급 어쌔신에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으음……. 정말 어쌔신답군. 비록 바퀴벌레지만.
근데 날 지키겠다고 할 때는 무지무지 미더운 존재인데, 정반대로 이 자식이 날 죽이겠다고 작정하면 그때부터는 난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는 거 아냐?
이런 숙련된 어쌔신한테서 피할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지.
물론 죽어도 다시 로그인하면 되는 건데 뭘 그리 걱정이냐고 할지 모른다.
그런데 케브라처럼 충성스런 놈은 집요한 면도 강할 테니, 철천지원수란 걸 알면 날 한 번 죽이는 걸로 직성이 풀리겠냐고.
로그인할 때마다 찾아와서 죽이고 또 죽이길 멈추지 않을 거란 말이지.
처자식을 죽인 원한이 뼈에 사무치고 있을 테니까.
그러면 엄청나게 골치 아프게 되는 거다.
아예 게임 진행이 불가능해지는 사태가 초래될지 모르니까.
아, 이것 참…….
앞으로 이 녀석을 어떻게 할 건지를 슬슬 생각해 둬야겠군.
언젠가 내가 한 짓을 알게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어쨌거나 수고 많았다. 그럼 1층으로 내려가서 아침을 먹도록 할까?”
스스스스슥! 스스스!
“…….”
“…….”
“…….”
“…….”
1층의 식탁에서 식사를 하려던 다쓰와 란슬링, 세영과 조핀은 기겁하며 우리 쪽을 바라보았다.
케브라가 다리 여섯 개로 계단을 기어서 내려오는 모습이 그들로서도 충격적이었나 보다.
“케브라, 웬만하면 두 다리로 서서 움직이면 안 되겠냐? 니 몸동작이 너무 눈에 띄어서 말이다.”
“바퀴벌레라면 여섯 개의 다리로 움직이는 게 사실 더 편합니다만 우영 님께서 명령하시는 거라면 당연히 따라야죠.”
케브라가 두 다리로 걸어서 자리에 앉자 비로소 파티원들은 정상을 되찾고 식사를 시작했다.
근데 란슬링이 수저를 들려다 말고 입을 열어 조잘대기 시작했다.
“쉬익! 그런데 케브라를 보니까 그때 일이 생각이 난다. 쉬익!”
“무슨 말이냐, 란슬링? 뭐가 생각난다는 건데?”
“다쓰, 너도 알잖냐! 그 물방앗간에서의 일 말이다. 쉬익!”
“아, 그때 그거? 지금 생각하니 장관이었지. 우영이 그때 수많은 바…….”
퍽! 퍼퍼퍽!
그야말로 눈 깜짝할 순간이었다.
내가 다쓰와 란슬링 두 자식의 뒤통수에 혼신의 힘을 다해서 메이스를 여섯 대씩 후려갈긴 건 말이지.
이 자식들이 돌았나.
케브라 있는 데서 마리사의 물방앗간에서 내가 바퀴벌레들을 소탕한 이야기를 하려 하다니.
니들은 내가 케브라한테 척살당하는 거 보는 게 그토록 소원이냐?
케브라와 조핀은 내가 때리는 걸 봤겠지만 세영이는 그제야 둘이 쓰러진 걸 발견하고 의아한 듯 물었다.
“어머! 다쓰, 란슬링, 왜 식사하다 말고 그렇게 바닥에 누워 있어요? 어디 피곤해요?”
세영이 두 녀석을 보고 이상하다는 듯 묻자 조핀이 설명을 해 주었다.
“세영 님, 이 두 사람은 피곤해서가 아니고 머리에 강한 충격을 받고 쓰러진 겁니다만.”
“머리에 강한 충격을 받다뇨? 어째서요? 식사하다 말고 왜 머리에 충격을 받는데요?”
“…….”
세영이 음식을 꾸역꾸역 먹으면서 이상하다는 듯 묻자 조핀은 대답 대신 날 바라보았다.
내가 설명하란 거냐?
그건 그렇고 세영이는 아무것도 못 보다니, 얘는 정말 먹을 때는 다른 건 전혀 신경 안 쓰는 타입이구먼.
“훗, 세영아. 잠시 사고가 있었단다. 하늘에서 갑자기 운석이 떨어져서 이 두 녀석의 머리에 명중했지 뭐냐? 그래서 잠시 의식을 잃은 거니 걱정할 거 없다.”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져요?”
세영이는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뭐 그래 봐야 보이는 건 나무로 된 천장뿐이지 뭐가 있겠냐?
“위가 저렇게 막혀 있는데 도대체 어디서 운석이 떨어졌단 거죠? 최소한 구멍이라도 있고 천장이 뚫리는 소리라도 나야 운석이 떨어졌다는 게 증명될 텐데……. 그리고 운석이 떨어졌다면 그 운석은 도대체 어디로 갔고요? 지금 여긴 운석은커녕 돌 조각도 안 보이잖아요?”
“…….”
아, 그 자식, 그렇다면 그런 줄 알 거지 쓸데없이 자세하게도 묻네!
내가 짜증스러운 듯 인상을 쓰자 케브라가 입을 열었다.
“세영 님, 파티장인 우영 님께서 그렇다고 하시면 그런 겁니다. 천장이 뚫린 곳 하나 없이 멀쩡해도 운석이 떨어졌다면 떨어진 거고 우영 님과 드래곤 로드가 초등학교 동기 동창이라면 100% 확실한 사실입니다. 그러니 질문은 그만하시고 하시던 식사나 계속 하시죠!”
“네? 아, 네…….”
케브라의 말에 세영은 움찔했으나 마지못한 듯 식사를 계속했다.
훗! 이것 참 아이러니군. 이런 상황에서도 케브라의 도움을 받다니.
어쨌거나 다쓰와 란슬링 이 두 자식들은 입단속을 단단히 시켜야겠다. 방심했다간 아주 큰일이 날 거 같으니까 말이지.
다음부턴 이 자식들이 바퀴벌레의 바 자도 꺼내지 못하도록 해야지.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내심 다짐을 한 다음 식사를 시작했다.
“자, 그럼 앞으로 30km만 더 가면 엘카니아 왕국이란 거냐?”
“그래요, 오빠. 이제 얼마 안 남았어요.”
내 질문에 세영이는 명랑하게 대답했다.
근데 조핀이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하군.
“저, 우영 님. 미리 알아 두셔야 할 게 있습니다.”
“그게 뭔데요?”
“엘카니아 왕국은 몬스터나 수인족들의 행동을 제한하는 곳입니다.”
“…….”
조핀의 말에 나는 이해가 안 돼서 고개를 갸웃했다.
몬스터나 수인족들의 행동을 제한한다니 어떻게?
“그게……. 몬스터나 수인족들은 인간과 동등한 개체로 보지 않고 인간의 팻…… 그러니까 애완동물로 취급됩니다. 따라서 몬스터나 수인족이 엘카니아 왕국에 들어가려면 인간의 팻으로 등록하고 등록 비용을 내는 절차를 거쳐야 하는 거고요. 인간이 데리고 다니지 않는 팻은 그 즉시 처분되는 곳입니다.”
“음…….”
딴 건 모르겠는데 돈을 내야 한다니 그건 신경 쓰이네.
근데 우리 파티에서 몬스터나 수인족은 전혀…… 없지 않고 두 명, 아니, 두 마리나 있군.
다쓰와 케브라 말이다.
“쉬익! 내가 팻으로 등록을 해야 한단 거냐! 이건 모욕이다. 쉬익!”
“이봐, 란슬링 그 정도 일로 뭘 그러냐? 엘카니아 왕국에 있는 동안만 참으면 된다.”
“흥! 다쓰 너는 팻으로 등록할 일이 없으니까 그런 소리할 수 있는 거다. 쉬익!”
“훗! 분하냐? 그럼 인간으로 태어나지. 왜 리자드맨으로 태어나서 말썽인 건데?”
“지금 나를 약 올리는 거냐. 쉬익!”
두 녀석, 아니, 한 녀석과 한 마리가 서로 언성을 높이자 케브라가 나섰다.
“너희 둘, 우영 님 앞에서 도대체 언제까지 언성을 높일 거냐!”
“흥……. 꼴에 군기 반장이라고!”
“쳇, 쉬익!”
가만 그러고 보니 란슬링도 팻으로 등록을 해야 하지만 케브라도 문제네?
“그러고 보니 케브라 너도…….”
“팻으로 등록을 해야 함께 엘카니아 왕국에 입국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죠.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
그 말에 나는 가슴 한구석이 환해지는 것을 느꼈다.
케브라가 그냥 우리 파티를 떠나겠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닌가 했던 거다.
그렇게 해 준다면야 난 고민과 불안에서 영원히 해방이지!
그러나 그 바람은 케브라의 다음 말에 곧 무너졌다.
“팻으로 등록하지 않고 엘카니아 왕국에 들어갈 방법이 있으니까요.”
“어떻게?”
“후후후훗! 폴리모프!”
케브라는 제자리에서 몸을 회전시켰다.
그리고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모습은 우리 시야에서 사라졌다.
“엇! 아니, 얘가 어딜 간 거야?”
“우영, 오빠! 발밑 조심하세요!”
“엉?”
세영이의 말에 발밑에 시선을 던진 나는 화들짝 놀랐다.
내 손바닥만 한 크기의 바퀴벌레 한 마리가 빨빨 기어 다니고 있지 않은가.
설마?
“후후훗! 어떻습니까? 제 능력이 말입니다.”
“으음…….”
케브라 녀석, 자기 몸을 축소하는 재주도 있었군. 어쌔신 임무 수행할 때 엄청 유용한 재주로군.
“……!”
순간 내 머릿속에 기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케브라가 있음으로 해서 증폭될 나의 불안감을 떨쳐 버릴 사악한 묘안이 말이지.
“케브라, 너 그 사이즈보다 더 작게 몸을 축소할 순 없겠냐?”
“그건 어째서입니까?”
“응? 그냥 너무 신기해서 그래. 어디까지나 니 몸을 줄일 수 있나 보려고 말이지. 최대한 몸을 축소해 봐라.”
“이게 한계입니다. 이 상태에서 더 작게는 불가능한 걸요.”
“…….”
으음……. 좋다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