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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3권(57화)
Part 3.엘카니아 왕국(3)
케브라가 손가락 사이즈 정도로 몸을 줄이는 순간 발로 질끈 밟아서 단번에 해치워 버리려고 했는데. 내 불안감의 근원을 영원히 제거할 수 있게 말이지.
하지만 지금의 어른 손바닥 사이즈인 상태에서는 그런 섣부른 시도를 하기는 좀 그렇다.
한 방에 끝장내지 못하면 도리어 보복을 자초하게 될 테니까.
“좋다, 그럼 다시 여정을 재촉하자. 엘카니아 국경에서 란슬링은 팻으로 등록하기로 하고 말이지.”
“케브라는? 케브라는 어쩔 건데? 쉬익!”
“케브라는 내 주머니에 넣은 채로 들어간다! 저 사이즈면 내 주머니에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으니까. 팻 등록 비용을 아껴야 할 거 아냐.”
“자, 줄을 똑바로 서요! 여러분들이 협조 안 해 주면 그만큼 입국 수속이 지연된다는 거 명심하시오! 빨랑 들어가고 싶으면 협조를 잘해 주셔야 한다 그 말이오!”
엘카니아 왕국으로 들어가는 성문 앞에서 경비대장이 입국자들에게 크게 외쳤다.
입국 수속은 뭐, 별다른 건 없네.
형식적인 짐 검사 정도…….
그런데 수인족이나 몬스터가 동행인 경우는 예외다. 조핀이 말한 대로 팻으로 등록하고 등록비를 내야 입국 수속이 허락되는군.
엉? 근데 저건 뭐야? 저 아스트랄한 광경은…….
나는, 아니, 우리 파티는 모두 시선을 그쪽으로 집중했다.
우리처럼 몬스터나 수인족을 동행하는 사람들이 등록 비용을 경비병들에게 내고 증명서를 발부받는 것까진 좋았다.
근데 목줄을 받아서 그걸 동행인 수인족이나 몬스터의 목에 씌우는구먼.
즉, 개 줄인 셈이다.
경비병들의 보충 설명에 의하면 그 목줄은 항상 사람이 잡고 있어야 한댄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목줄을 잡고 있지 않은…… 즉 주인 없는 몬스터나 수인족이 눈에 띄면 즉시 경비병들에게 사로잡혀서 즉결 처분된다고 한다.
쩝. 이거 몬스터나 수인족들한테는 엄청 살벌한 곳이로군.
어쨌거나 우리들의 시선은 모두 란슬링에게로 쏠렸다.
“쉬익! 설마 나한테도 저 목줄을 씌우려는 건 아니겠지. 쉬익!”
“왜 아니겠냐? 저거 안 쓰면 못 들어간다고 하지 않냐? 후훗! 란슬링, 내가 너라면 그냥 자살하겠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엘카니아 왕국에 있는 동안만 좀 참으세요.”
“란슬링, 너무 걱정하지 마라. 금으로 된 목줄도 있는 것 같으니 돈 좀 들어가도 그걸로 해 주마. 그냥 금 목걸이 걸고 다닌다 생각하라고.”
우리들이 일제히 위로랍시고 한마디씩 던졌으나 란슬링은 지그시 두 눈을 감고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분노 조절이 안 되는 게로군.
하지만 어쩌겠냐.
이런 동네도 있고 저런 동네도 있는 건데. 내 입맛에 안 맞는다고 거절할 수만은 없잖냐고.
이윽고 우리 차례가 되었다.
경비대장은 우리 파티를 훑어보다가 란슬링을 발견했다.
“팻치고는 상당히 징그럽게 생겼군.”
“쉬익! 뭐라고? 당신 말 다했냐. 쉬익! 고작 경비대장 주제에. 쉬익! 도대체 내가 어딜 봐서 팻이라는 거냐. 쉬익! 죽고 싶은 거…….”
그렇잖아도 기분이 최악이던 란슬링이 발작하려 하자 나는 재빨리 메이스로 녀석의 뒤통수를 어루만져 주었다.
퍼억!
“꽤액! 쉬익!”
“훗! 이거 죄송합니다. 제가 팻을 잘못 키워서 툭하면 아무한테나 반항을 하는군요.”
“생긴 대로 성격이 더러운 팻이구려. 자, 등록 비용은 50골드요. 대신 목줄은 무료니까 이 중에서 마음에 드는 걸로 하나 골라서 채우시오.”
내가 금색으로 빛나는 목줄을 하나 건네받아서 목에 씌우려 하자 란슬링은 다시 반항했고 나는 메이스로 란슬링의 뒤통수를 예닐곱 대쯤 더 두들겨 준 다음에야 목줄을 씌울 수 있었다.
내가 때려서 생긴 혹 때문에 목줄이 잘 안 들어가서 한참을 고생한 다음에야 간신히 목줄을 채울 수 있었다.
목줄을 찬 란슬링은 그야말로 죽고 싶은 표정이었지만 나는 모른 척하고 경비대장에게 인사했다.
“그럼 수고하세요. 우린 가 보겠습니다.”
“잠깐! 그 주머니에 있는 건 뭐요? 이리 내보시오!”
경비대장의 말에 나는 당황하는 척하면서 주머니에 들어 있는 케브라를 슬며시 꺼내서 보여 주었다.
“으응? 이건 바퀴벌레 아냐? 이건 왜 신고하지 않은 거요!”
“천만에요. 이건 진짜가 아니고 제가 만든 바퀴벌레 피규어입니다. 자, 보세요. 더듬이조차도 꼼짝 안 하잖습니까? 살아 있는 게 아니고 제가 제작한 피규어라니까요.”
나는 능청을 떨면서 케브라를 한 손으로 흔들어 보였다.
내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케브라는 정말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렇소? 하지만 뭔가 이상한데?”
경비대장은 내 손에서 재빨리 케브라를 잡아채더니 땅에 내던졌다.
그리고는 발로 사정없이 꾹꾹 밟아 눌렀다.
“아니, 지금 뭐하는 거요! 그게 얼마짜리 피규어인지나 압니까? 망가지면 책임지실 거냐고요!”
난 울화통을 터뜨리는 척하면서 언성을 높였다.
경비대장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케브라를 집어서 나에게 넘겨주었다.
“미안하오. 피규어가 맞긴 한가 보군. 전혀 반응이 없는 걸 보니 말이지. 하지만 가끔 수인족이나 몬스터를 교묘한 방법으로 데리고 들어오는 자들이 있어서 그런 거니 이해하시오.”
“참 나, 이럴 수가…….”
나는 투덜거리면서 파티원들을 데리고 성문을 통과했다.
휴,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손바닥 사이즈의 케브라를 한 발에 밟아 끝장내는 건 역시 불가능하다.
한 발은커녕 경비대장이 대여섯 번씩이나 마구 짓밟았는데도 끄덕 없잖냐고.
아까 케브라를 보내 버리려고 했다가는 큰일 날 뻔했네.
경비대장의 눈에 일부러 띄게 하려고 주머니에 어설프게 케브라를 집어넣은 건 아무도 모를 테지.
“하루 묵는 데 얼마죠?”
“네, 모두 네 분과 팻 한 마리니까 3골드로군요.”
엘카니아에 무사히 입국한 우리는 번화가 한 켠에 위치한 여관에 들어가 숙박비를 묻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숙박비가 계산되는 거죠?”
“사람은 한 분당 50실버, 팻은 한 마리당 1골드니까 그렇게 됩니다.”
“아니, 어째서 팻이 사람보다 숙박비가 더 비쌉니까?”
“모르시는 걸 보니 외지인이시군요. 엘카니아에서 팻은 일종의 사치품입니다. 귀족들의 장난감이기도 하니까요. 평민들이 팻을 기르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비용이 많이 들기도 하고 팻 등록비가 비싸서 감당을 못하거든요.”
흠, 그게 그렇군. 주인 없는 팻은 즉결 처분한다고 하더니 그런 엄격한 제한이 도리어 팻의 희소성을 높이는 이유인지도 모르겠군.
난 금화를 쥔장에게 던져 주었다.
“알겠습니다. 여기 3골드 있습니다.”
“헤헤, 감사합니다. 편히 지내시길.”
파티원들이 방에 모두 들어오자 다쓰더러 문을 잠그게 한 나는 주머니에서 케브라를 꺼냈다.
바닥에 내려놓자 케브라는 비틀거리며 한 바퀴 돌더니 펑 소리와 함께 폴리모프해서 원래 사이즈로 돌아왔다.
근데 정상적인 몸 상태가 아닌 것 같은데…….
“헉!”
“부상이군요.”
“어머! 어쩌면 좋아…….”
쯧, 아까 성문에서 경비대장이 발로 밟을 때 아무 탈이 없었던 게 아니군.
뒷다리 한 개와 앞다리 하나가 부러져 있었다.
“케브라 너 고통스러우면 소리를 질러야 할 거 아냐? 그냥 참고 있으면 어쩌냐?”
나의 말에 케브라는 고통을 전혀 내색하지 않으며 평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쌔신 임무를 수행하다 보면 이 정도 부상은 흔한 일입니다. 놀라실 건 전혀 없습니다. 다만…….”
“다만?”
“힐링 좀 해 주시면 안 될까요?”
“당연히 해 줘야지. 야, 란슬링!”
“허억! 쉬익!”
내가 부르자 란슬링은 사색이 되어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쯧, 자신이 가장 두려워 하던 사태가 의외로 빨리 온 거로군.
“뭐하는 거냐? 파티원이 다쳤으면 최대한 신속하고 완벽하게 힐링하는 건 프리스트의 의무 아니냐? 뜸 들이지 말고 빨랑 케브라 힐링해 줘라.”
“…….”
힐링을 거부했다간 재미없을 거라는 암시를 마구 풍기며 말했지만 란슬링은 말을 들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싫다, 절대로 싫다! 죽으면 죽었지 난 바퀴벌레한테는 혀 못 댄다. 쉬익!”
“그러냐? 그럼 파엘분 맞고 도마뱀 구이 되는 건 할 수 있겠네?”
“그, 그것도 싫다. 쉬익!”
“훗! 웃기지 마라.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다고? 니가 뭐든지 다 결정할 거면 파티장이 무슨 필요 있고 파티원들이 서로 도울 필요는 또 뭐가 있냐? 10초 내로 결정해라. 파엘분을 맞고 도마뱀 구이가 되어서 이 여관 뒷마당에서 목줄 걸고 잘지, 케브라 힐링해 준 다음에 편하고 따뜻하게 이 방 침대에서 잘 건지 말이다.”
내가 두 눈을 부릅뜨고 을러대자 란슬링은 울상을 지으며 불평을 터뜨렸다.
“쉬익! 우영 넌 악마다. 쉬익!”
“훗! 악마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툭하면 나한테 반항하고 개기면서 내 성질을 더럽게 만든 게 누군데 불평이 그리 많냐? 당장 힐링 시작해! 케브라가 얼굴 찡그리는 것 봐라.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저러겠냐고!”
나의 협박과 강압에 못 이긴 란슬링은 치를 떨면서도 힐링을 시작했고 케브라의 부상은 20분의 힐링 끝에 회복되었다.
힐링하는 동안 잠시 졸았던 내가 눈을 뜨자 케브라는 머리를 연신 조아리며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말끔하게 부러진 다리가 모두 회복된 것 같습니다. 이게 모두 우영 님 덕분입니다!”
“훗, 당연히 할 일을 한 건데 감사는 무슨. 엇, 근데 란슬링은 어디 갔냐?”
“힐링 끝나자마자 양치질해야 한다며 빛보다 더 빠른 속도로 밖으로 뛰어나가더군요.”
Part 4.전나세를 죽여라!(1)
스스스스슥! 스스슥!
“우걱우걱!”
“쩝쩝!”
“…….”
“…….”
“…….”
귀를 불편하게 하는 소음에, 나와 세영이, 그리고 조핀은 식사를 하면서도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무슨 소음이냐고?
우걱우걱은 란슬링, 쩝쩝은 다쓰 녀석이 밥 먹으면서 내는 소음이었다.
스스스슥은 테이블 밑에서 은폐한 상태로 케브라가 식사하는 소리이고 말이지.
이곳은 엘카니아 왕국의 번화가에서도 상당히 화려한 식당이다. 조핀이 한턱 쏘겠다고 해서 이리 들어온 거였다.
란슬링은 상관없지만 팻 등록을 안 한 케브라가 공공연하게 함께 식사했다가는 문제가 생길 거 같아서 테이블 밑에 숨어서 식사하도록 한 거였다.
근데 이 녀석들의 식사 매너가 좀 그렇구먼.
평소에 매우 매너 좋은 케브라도 밥 먹는 소리만큼은 상당히 바퀴벌레답다.
그리고 란슬링이야 어차피 인간이 아니니 그렇다 쳐도 다쓰 저 자식은 왜 저렇게 게걸스럽게 처먹는지 원.
“우영, 형님, 왜 그러십니까? 밥 먹다 말고 갑자기 응가라도 마렵습니까? 왜 그렇게 찝찝한 표정을 지으시는 겁니까?”
“그야말로 다쓰 너답구나. 레이디도 있는 식사 자리에서 응가를 운운하고 자빠졌냐?”
“훗! 저는 가슴이 절벽인 여자는 레이디로 보지 않습…….”
퍼억!
“우욱!”
열 뻗힌 세영이가 던진 수저가 눈두덩에 적중하자 다쓰는 얼굴을 감싸 쥐고 비명을 질렀다.
짜식이 꼭 매를 번다니깐.
근데 갑자기 입구 쪽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났다.
저건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