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스토킹 마스터 3권(59화)
Part 4.전나세를 죽여라!(3)


“흐흐흐, 잘 만났다. 감히 날 건드리고 무사할 줄 알았냐? 니들 숙소가 이곳 엘카니아 왕국에서 가장 험악한 감방으로 바뀔 테니 기대해라. 지금 당장 바꿔 주마!”
“사드, 시끄럽다. 난 이분들을 체포하러 온 게 아니다!”
“네? 아니, 당숙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 자식이 어저께 식당에서 저를 죽이려고 난동을 부렸단 말입니다!”
“시끄럽다, 난 이분과 할 이야기가 있으니 넌 나가 있도록 해라.”
“아니, 그래도!”
“허어, 그래도!”
당숙이면 오촌 아저씨란 말이네?
좌우간 노신사가 눈을 부라리자 사드는 머쓱해져서 나가 버렸다. 그런데 짜식이 나가면서도 날 째려보는 건 잊지 않는군.
근데 사드한테 당숙이라 불린 이 노신사는 누구람?
“나는 크레이브 공작이라 하오. 이곳 엘카니아 왕국 국왕 전하의 동생이기도 하고.”
“아, 그러시군요.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근데 어쩐 용건이신지요?”
여관 밖에 도열해 있는 기사들에게 슬쩍 눈길을 던지며 내가 물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우리 공주 저하께서 그대들을 만나고 싶어 하시네. 함께 왕궁으로 가 줬으면 좋겠어.”
“…….”
으음, 일단 말은 점잖게 하지만 내가 거절하면 아까 사드란 자식이 말한 대로 해 주겠다고 얼굴에 써져 있군.
저 기사들은 이 사람의 부하들이 틀림없을 텐데 공연히 끌고 온 건 아닐 테니까.
사실 사드처럼 겁도 없이 방방 뛰는 놈보다는 이런 사람이 훨씬 더 무섭다.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고 딱 할 말만 하는데, 입 밖으로 낸 말은 반드시 실천하기 때문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왕궁으로 가서 공주님을 만나겠습니다. 한 가지 조건만 들어주시면요.”
“조건?”
조건이라는 말에 공작은 눈을 치켜떴다.
으음, 이 아저씨 은근히 무섭네.
“우리 여관비를 공작님이 대신 좀 내주세요.”
공작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공주 저하, 말씀하신 그 파티를 데리고 왔습니다.”
“삼촌 수고하셨어요. 자, 거기 좀 앉으시겠어요?”
“초대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공주 저하.”
난 그럴 듯한 자세로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고개를 들었다.
근데 고개를 들어 공주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오옷! 이런 미인이 있나?
윤기 흐르는 금발에 도톰한 입술, 상아 같은 콧날, 보라색으로 빛나는 두 눈동자에 핑크빛 피부, 거기에 풍만한 가슴과 히프…….
꿀꺽! 이거 뭔가 사무 착오가 있는 거 아냐?
이런 미인 공주가 도대체 뭣 때문에 우리 파티를 부른 거지?
“만나서 반가워요, 여러분. 저는 이 나라의 공주 셀라인이라고 해요.”
셀라인? 셀라인…….
가만있어라.
어디서 들어 본 이름 같은데……. 혹시…….
나는 슬그머니 다쓰를 돌아보았다.
“……!”
이 자식 넋이 나갔군. 입을 쩍 벌리고 공주를 쳐다보는 꼴이 완전히 넋이 나갔다고.
젠장! 공주가 아무리 이뻐도 그렇지, 저렇게 노골적으로 바라보면 어쩌란 거냐. 크레이브 공작도 눈치를 채고 노려보잖냐고.
퍼억!
“억!”
나는 슬며시 메이스로 다쓰 녀석의 뒤통수를 후려쳐서 주의를 주었다.
근데 다쓰 녀석이 저러는 이유를 알 만하군. 다쓰가 딥 나잇 마켓에서 리치한테 압수한 물건 중 일부가 바로 이 셀라인 공주의 속옷이다.
꿈에도 그리던 속옷의 주인을 직접 만나다니 제정신이 아닐 수밖에.
“죄송합니다. 공주 저하. 제 무식한 부하 녀석이 공주 저하의 미모에 잠시 넋을 잃고 실례를 범해서 말이죠.”
“어머나, 불쾌하지 않으니 신경 쓰실 것 없답니다.”
니 미모가 내가 부하를 구타한 원인이라는 말에 셀라인 공주는 생긋 미소를 지었다.
아아……. 이거 한눈에 반할 것 같다. 미인은 찌푸리고 있어도, 미소를 지어도 한결같이 그림이 되는구먼.
넋이 나갈 만도 하다.
다쓰 녀석의 심정도 이해가 간다.
억! 근데 갑자기 내 옆구리에 퍼지는 이 통증은 뭐냐?
세영아, 넌 또 왜 날 꼬집고 난리냐? 내가 딴 여자 넋 놓고 보는 게 그리도 못마땅하냐?
이 녀석, 숙소로 돌아가면 두고 보자는 표정일세?
젠장! 그러게 애초에 너를 우리 파티에 끼워 주는 게 아니었는데.
나와 파티원들 간의 신경전을 아는지 모르는지 셀라인 공주는 처량한 한숨을 쉬더니 말을 이었다.
“그대들을 부른 이유는 다른 게 아니랍니다. 최근 저에게 너무도 괴로운 마음의 고통이 있어서 그걸 해결하고자 하기 때문이랍니다. 그 일을 생각하면 가끔 자살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기 때문에…….”
처척!
“웃!”
“아니!”
크레이브 공작과 파티원들이 일제히 놀랐다.
내가 대뜸 한 발짝 앞으로 나가 무릎을 꿇고 공주의 두 손을 잡았거든.
난 최대한 느끼한 표정과 음성으로 말했다.
“이렇게 사랑스럽고 아름다우신 공주님께 마음의 고통을 안겨 준 악당이 도대체 누굽니까? 맹세코 제 목숨을 걸고서라도 그 천인공노할 악당을 제거해서 천벌을 내리고 말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쇼!”
“지금 그 말씀, 진심이신가요?”
내 말에 공주는 대뜸 내 손을 마주 잡고 기대에 들뜬 음성으로 물었다.
그러자 두 눈 부라리고 날 노려보던 크레이브 공작도 표정을 풀었다.
훗! 역시 여자의 마음은 이런 식으로 사로잡아야 한다니까.
뒤통수에 느껴지는 이 엄청난 살기는 세영이 녀석의 것이겠지만 신경 쓸 건 없지. 지가 내 마누라야 아니면 애인이야. 아무것도 아닌 관계인 주제에 왜 자꾸 내 행동에 신경 곤두세우는 거냐고.
“거듭 다짐합니다만 말씀만 해 주시면 공주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임무를 내려 주시죠.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들겠습니다!”
“그 정도 각오면 충분하겠군. 내가 공주 저하를 대신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해 드리지.”
물끄러미 보고 있던 크레이브 공작이 끼어들자 셀라인 공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녜요, 삼촌. 제가 직접 우영 님께 이야기할 테니 다른 분들과 함께 잠시만 나가 계셨으면 해요.”
“하지만 공주 저하…….”
나하고 단 둘이만 방에 있겠다는 말에 난감해하던 공작은 결국 파티원들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근데 뒤통수를 때리는 세영이의 살기는 아까보다 두 배로 더 증폭되었구먼.

모두 방을 나가자 공주는 눈물을 질질 짜면서 자세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흑……. 최근에 제가 니녹스 산맥을 무대로 암약하는 몹쓸 산적단에게 납치당한 건 아실 겁니다. 전나세란 잔인한 악당이 이끄는 산적단 말이죠.”
“아, 네…….”
그 전나세는 바로 제 조카인데요 라고 말하면 이 공주가 어떤 표정을 지을까 궁금하구먼.
“근데 납치당해 있을 때 산적단의 두목 전나세에게 몹쓸 수모를 당했답니다. 죽어도 잊지 못할 끔찍한 일을 당해서……. 그것만 생각하면 너무도 수치스럽고 분해서……. 지금도 미칠 것만 같아서……. 사실은 몇 번 자살 시도까지 했었답니다. 모두 다 아바마마와 어마마마한테 들켜서 수포로 돌아갔었지만……. 흑흑.”
말을 잇지 못하고 다시 울음을 터뜨리는 셀라인이었다.
가만있어 봐라. 근데 이게 뭔 소리야?
여자가 몹쓸 수모를 당했다면…….
젠장! 재경이 이노무 자슥! 설마 공주를 성추행하고 겁탈한 거냐?
그럴 수가 있나! 이건 정말 말도 안 된다!
아직 머리꼭지에 피도 안 마른 놈이 그런 못된 짓을 벌이다니.
아무리 가상현실 게임이라지만 이건 너무 심하게 막가는군.
나는 깊은 한숨을 쉬며 동정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충격이 크셨겠군요. 그런데 몸에 아무런 이상은 없었던 겁니까?”
내 말에 공주가 훌쩍거리는 걸 멈추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몸에 이상이라뇨?”
“그러니까 태기가 있다든가…….”
“태기라니, 무슨 말씀이신지…….”
“아니, 저 그게 그러니까……. 임신의 징후가 있으셨나 그 말씀이죠.”
“…….”
이거 어째 뭔가 이상하네. 공주 표정이 자꾸 험악해지고 있잖아?
“임신의 징후가 왜 생기는데요?”
“아니, 저 공주님께서 몹쓸 일을 전나세에게 당했다고 하셔서…….”
“…….”
공주는 지금까지 울먹이던 표정이 싹 사라지고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째려보았다.
음, 째려보는 표정조차도 매혹적인 미인이군.
근데 이거 아무래도 내가 뭘 잘못 짚었나 보다.
“뭔가 크게 오해하신 것 같군요. 내가 전나세에게 당한 몹쓸 일은 언어폭력이었답니다.”
“…….”
언어폭력이라고?
고작 그런 걸로 마음의 상처니, 죽어도 잊지 못할 끔직한 일이니 몹쓸 수모니 하며 울고 난리 친 거였냐?
난 어이가 없어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다.
근데 생각해 보니 공주니까 몹쓸 수모의 범주가 보통 사람과 다를 법하기도 하군.
“쩝……. 죄송하군요. 제가 엉뚱한 상상을 해서. 근데 전나세한테 어떤 언어폭력을 당하셨는데요?”
“흑……. 생각하면 할수록 끔찍하고 치가 떨려서…….”
“…….”
공주는 한참을 더 손수건이 물수건이 될 정도로 질질 짜다가 말을 해 주었다.

“저……. 그러니까 전나세 그놈이 공주님을 납치하고 있는 기간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얼레리 꼴레리 비만 공주!’, ‘뒤룩뒤룩 살찐 뚱땡이’, ‘너는 왜 그렇게 돼지세요?’, ‘내가 너같이 뚱뚱하면 자살하고 만다.’, ‘허벅지 두께가 내 허리둘레하고 똑같네?’ 등등의 욕을 했단 말이죠?”
“네……. 세상에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못 들어 본 그런 험한 말을……. 아바마마께서는 나처럼 날씬한 여자는 본 적도 없다고 하셨는데……. 어마마마도 그러셨고, 궁전의 사람들이 하나도 빼놓지 않고 입을 모아 내 체격이 이 세상에서 제일 날씬하고 모든 여자들의 이상형이라고 그랬는데, 내가 그런 말을 듣다니……. 흑흑!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목매고 자살하고 싶은 충동에 괴롭답니다.”
“…….”
젠장!
평민 여자가 공주병에 걸리면 귀엽기라도 하지. 이건 진짜 공주가 자신도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공주병에 중독된 경우로군.
고작 뚱뚱하고 돼지 같다는 소리 들었다고 자살 충동에 시달릴 정도로 모욕감을 느꼈다니.
하긴 셀라인 공주가 좀 풍만하긴 하다. 영화 타이타닉의 히로인이었던 케이트 윈슬렛 정도?
하지만 내 관점으론 여자는 저 정도는 풍만해야 딱 좋은데, 재경이 녀석한테는 풍만이 아니라 비만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하긴 TV건 잡지건 성냥개비같이 가는 몸매의 여자가 가장 이상적인 몸매인 것처럼 떠들어 대는 세상이니 선입견이 그렇게 생긴 걸 테지만.
어쨌거나 지금까지 진지하게 공주의 말을 듣고 있었던 내가 한심해 미칠 것 같다.
하지만 한심한 건 한심한 거고 게임 진도를 나가는 건 무시할 수 없는 거다.
이건 분명히 퀘스트가 발생할 건수라고.
“그래서 공주님게서는 제가 어떻게 해 주었으면 좋겠습니까? 전나세를 찾아서 사과라도 받아 올까요?”
그러자 공주는 울음을 멈추고 눈을 번쩍 빛냈다.
오옷! 저 두 눈에 번득이는 무서운 여자의 원한!
“그 정도론 안 돼요! 죽여요! 전나세를 죽여주세요. 전나세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제 마음의 상처는 결코 아물지 않을 테니까요!”
띠링!
경쾌한 음향과 함께 창이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