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스토킹 마스터 3권(61화)
Part 5.소녀 가장(1)
산동네였다.
세영이는 기운차게 걸음을 놀려 좁은 골목 사이의 산동네 길을 한참을 더 올라갔다.
헉헉! 에고 지친다.
이 나이에 이 정도로 벌써 맥이 빠지다니 나도 게임 폐인이 되어서 이런 건가?
근데 세영이 녀석은 뭐가 그리 기분 좋은지 씩씩하게 발걸음을 놀리더니 어떤 허름한 집으로 쏙 들어갔다.
음, 이 산동네에서도 꽤 낡은 집이군.
난 슬쩍 그 집 대문 옆에 몸을 붙이고 안쪽의 동정을 살폈다.
“어? 누나 이거 뭐야?”
“자, 햄버거야. 오늘 저녁 대신이니까 실컷들 먹어.”
“우와! 햄버거다!”
“누나 최고다!”
“누나 오늘 월급 탔어?”
“응? 으응……. 월급 탔어. 그래서 사 온 거니까 실컷들 먹어. 누나가 다음 달에 월급 타면 또 사 줄게.”
방 안에서 들려오는 애들의 목소리가 대략 다섯 명이었다. 근데 어른 목소리는 없군.
설마 세영이가 소녀 가장이었던 건가?
재수생이라는 것도 사실이 아니겠군. 부모도 없는 소녀 가장이 저 동생들을 다 먹여 살리려면 공부 같은 건 할 여유도 시간도 없을 테니.
어쩐지 이케루스 속에서도 게임 머니에 집착하더라니……. 도둑 길드인 미라쥬 길드의 부길마를 한 것도 그래서였군.
일반 유저보다도 게임 머니를 더 벌 수 있을 테니까.
근데 이사도라 때문에 열 받아서 미라쥬 길드를 나와 버렸으니, 요 근래는 동생들 먹여 살릴 돈이 없어 꽤 쪼달리겠군.
쯧, 햄버거 가게에서 ‘햄버거 좀 사 줄까?’라고 할 때 굉장히 좋아하더라니. 동생들 주려고 그랬던 거군.
음……. 세영이 녀석 은근히 안쓰러운 놈이었구먼.
“누구슈?”
“허억!”
난데없이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난 기겁했다.
엉거주춤 돌아보니 지팡이 짚은 할머니 한 분이 날 수상쩍은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뉘신데 남의 집을 흘끔거리고 있는겨? 이 집은 워낙 가난해서 집어 갈 것도 없을 텐데.”
“아니, 저 그게 아니고요. 동사무소 직원입니다.”
“동사무소?”
“네, 이 근처에 소년 소녀 가장이 꾸리는 집이 혹시 있습니까? 그럼 나라에서 지원해 주는 지원금을 받을 수가 있는데…….”
“아이구, 바로 이 집이여. 세영이가 동생 여섯을 먹여 살리고 있잖여.
허걱! 다섯이 아니고 여섯이었냐?
“그래요? 그것참 대견한 학생이네요.”
“대견하다마다 고등학교 갓 졸업한 것이 지 동생들 먹이고 입히고 꾸려 가는 거 보면 얼마나 기특한지. 이보슈 동사무소 선상. 지금 세영이 불러올까?”
“아, 아니, 됐습니다. 근데 세영이란 학생은 원래 부모님이 안 계신 건가요?”
“웬걸. 아버지가 빌딩 건설 현장에서 추락하는 바람에 다쳐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지. 그런 판에 지 에미도 돈을 벌어 오겠다며 새끼들 놔두고 훌렁 집을 나가 버렸고. 그래서 졸지에 세영이가 소녀 가장이 된 겨. 에그 불쌍한 것……. 동생들 밥 굶기지 않으려고 어찌나 애를 쓰는지, 옆에서 보면 얼마나 가엾은지 몰러.”
음, 그리 된 거였군.
나는 주머니를 뒤졌다. 햄버거 사고 남은 돈이 10만원이로군.
나는 그걸 할머니 손에 쥐어 주었다.
“아니, 이건 무슨 돈인겨?”
“저, 할머니 이건 정부에서 소녀 가장 지원금으로 나오는 돈이거든요. 할머니가 그 세영이란 학생한테 좀 전해 주세요.”
“아니, 그건 선상이 직접 하시잖고.”
“전 바빠서 딴 곳으로 가 봐야 하거든요. 소녀 가장이 여기 한 곳뿐이 아니잖습니까? 그럼 부탁합니다.”
“그건 그렇지만서두……. 그럼 내가 전해 줄 테니 잘 가슈!”
나한테 연신 인사하는 할머니를 뒤로하고 나는 산동네를 내려왔다.
“…….”
“???”
“…….”
“!!!???”
미치겠군. 현실 세계에서 햄버거 잔뜩 사다 주고 좋게 헤어졌으면 게임 속에서 만났을 때 ‘하이 방가 방가!’ 정도는 아니더라도 생긋 미소는 지어 줘야지 왜 도리어 인상을 쓰는 거냐고!
“우영, 오빠가 동사무소에 근무하시는 줄은 전혀 몰랐네요.”
“아니, 이게 무슨 소리냐? 동사무소라니? 난 그런 데 다니지 않는다. 잘나가는 IT 회사의 직원이라니까.”
“훗, 그럼 어젯밤 옆집 할머니가 가져온 8만원을 준 사람이 우영 오빠가 아니라 그 말인가요?”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8만원이라고?
10만원이 아니고?
젠장! 그 할망구가 2만원을 삥땅 쳤구먼.
“난 너의 집이 어딘지도 모르는데?”
“아, 그래요? 근데 동사무소에 가서 물어보니 우리 집에 지원금 나온 건 전혀 없다고 하던데, 그럼 그 돈을 준 사람은 유령인가? 임자가 없는 돈이니 그 8만원은 그냥 쓰레기통에 버려도 되겠네요?”
세영이가 하는 말에 화가 난 나는 슬며시 인상을 썼다. 이 녀석 말하는 투를 보니 자존심이 상했다는 거로군.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돈을 쓰레기통에 버리겠다니…….
“훗! 좋을 대로 하렴. 그런데 아까운 돈을 버리겠다니 너 사고방식이 도대체 어찌된 녀석이냐? 돈이 썩어 나서 주체를 못 할 지경이냐? 그러지 말고 급한 데다가 써라. 그 돈을 준 사람이 누군진 몰라도 그렇게 하라고 준 걸 테니까 말이다.”
“역시 그 동사무소 직원은 오빠였군요. 그렇죠?”
“아니라니깐 그러네? 그런데 혹시 그 돈 꼭 버려야겠다면 차라리 나한테 다오. 나야 공돈 생기면 고맙지.”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슬쩍 고개를 돌려 세영이의 시선을 외면했다.
아무래도 내가 섣부른 행동을 한 모양이군.
도움을 줘도 세영이 마음에 상처 안 나게 도움을 줬어야 했는데…….
쩝, 조카인 재경이도 아직 못 찾고 있는 판에 이 녀석한테까지 신경을 써야 하게 되었군.
내심 한숨을 쉬고 있는데 다쓰가 들어왔다.
“우영, 형님, 손님이 왔습니다.”
“손님이라니?”
“사드라는 인물이 또 왔습니다.”
“그래? 이번엔 몇 명이나 끌고 왔냐?”
“혼자 왔는데요.”
낯짝도 마주치기 싫은 인물이어서 안 만나 주고 돌려보낼까 하다가 들어오라고 했다.
인생에 있어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만나고 다닐 수는 없는 것처럼 게임 생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저번엔 실례가 많았습니다.”
“실례한 줄을 아시니 다행이군요.”
“…….”
까칠한 내 말투에 사드는 당혹스런 표정이었다.
하지만 상관없지. 당혹스러우라고 던진 말에 태연스러우면 되겠냐고.
“너무 그러실 거 없잖습니까? 우영 님께서 셀라인 공주 저하를 만나셨다고 들었는데, 그게 다 내 덕분이란 말입니다.”
“뭐라고요?”
어이가 없어 인상을 쓰자 사드는 수그러드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저, 그게 내가 식당에서 여러분들한테 혼이 난 이야길 당숙인 크레이브 공작께 말씀드렸더니 그분이 여러분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공주님께 소개했던 겁니다. 공주님의 의뢰를 해결할 능력이 되는 분들이라고 판단했던 거죠.”
“근데 크레이브 공작한테 고자질했던 건 공작의 위세를 빌어 우리들을 작살내려고 했던 거 아뇨? 우릴 잘되게 해 주려고 한 게 아니고 말이지.”
“그,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로 여러분들한테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까?”
“…….”
난 잠시 말을 잊고 벙 쪘다.
무슨 인간이 사고방식이 이 따윈지 모르겠군.
지가 악의로 한 짓이지만 결과가 좋게 나왔으니까 은혜를 베풀었단 투로군.
이것 참 모든 걸 지 편리한 대로 해석하는 사고방식을 지닌 녀석이다.
“그래, 날 찾아온 용건이 뭡니까? 공주님의 의뢰도 받아서 여러모로 바쁘니까 후딱 말하고 사라지시기 바랍니다. 안 그랬다간 우리 일정을 방해했다고 크레이브 공작한테 알릴 테니까.”
“알겠습니다. 사실은 여러분들한테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드리려고 찾아왔습니다.”
“큰돈을 벌 기회?”
내가 관심을 보이자 표정이 밝아진 사드는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으음…….”
“어떻습니까? 한번 모험을 해 볼 마음이 들지 않습니까?”
사드의 설명은 이랬다.
엘카니아 왕국이 니녹스 산맥과 접한 깊은 숲 속에 던전이 있다는 거다. 망혼의 미로라는 이름이 붙은 던전이라는군. 근데 자기가 운영하는 나바트리아 경매장만 그 위치를 알고 있고 전혀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곳이란다.
그래서 그 던전에서 희귀 몬스터와 아이템들을 입수해서 경매장에 내놓고 큰돈으로 낙찰을 시켜서 쏠쏠하게 재미를 봐 왔다는 거다.
“던전은 모두 지하 4층으로 추정되는데 2층까지만 들어갈 수 있었다고요?”
“네, 강력한 몬스터들이 많아서요. 3층을 돌파하진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영 님의 파티에서 3층과 4층까지 들어가서 손에 넣은 희귀 몬스터나 아이템을 우리 나바트리아 경매장에게 넘겨주셨으면 합니다. 당연히 대가는 드릴 겁니다.
으음……. 이것도 퀘스트 발생이겠군.
아니나 다를까, 띠리링 하는 음향과 함께 창이 떴다.
- 던전 ‘망혼의 미로’를 탐험하라! -
나바트리아 경매장의 주인 사드는 던전 망혼의 미로를 4층까지 탐험해서 희귀 몬스터와 아이템을 넘겨줄 것을 요청했다.
기한 : 딱히 없음.
보상1 : 입수한 몬수터나 아이템 경매 낙찰가의 60%
보상2 : 던전 망혼의 미로에 무한정 출입해서 사냥할 권한. 단 입수한 몬스터나 레어 이상의 아이템은 나바트리아 이외의 다른 경매장에 넘길 수없다.
제한 : 던전의 위치를 외부에 발설하면 나바트리아가 의뢰한 어쌔신들에게 영구적인 암살 목표가 되어 쫓기게 된다.
퀘스트 등급 : 2급
나는 조금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망혼의 미로에서 잡은 몬스터들은 경매장에서 어느 정도 가격에 낙찰됩니까? 평균 잡아서 말이죠.”
“평균이라면 2천에서 4천 골드 사이입니다. 희귀한 것은 1만 골드를 넘는 것도 있습니다…….”
조금 더 생각하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 제안 받아들이죠.”
“…….”
내가 흔쾌히 말하자 사드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쉽게 승낙을 할 줄은 짐작 못했던 거군.
하지만 나도 돈 버는 일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아서 말이지.
도와줄 사람이 있는데 현실 세계에서 도와주는 걸 그 사람이 싫어한다면 게임 속에서 도와줄 수밖에 없으니까.
근데 내 착각인가?
인사를 하면서 헤어질 때 사드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걸렸던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