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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화)Part 5.소녀 가장(2)

덜덜, 덜덜덜, 덜덜덜덜덜덜!
딱딱! 딱딱딱! 딱딱딱딱!
“야! 이 짜식들아! 니들 좀 적당히 안 할래? 도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떨고 있을 거냐!”
난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짜증이 솟구쳐 소리를 질렀다.
이곳은 던전 망혼의 미로다.
사드가 텔레포트 스크롤을 이용해서 우리 파티를 이 던전 입구까지 보내 주었다.
나와 란슬링, 다쓰, 세영이, 케브라의 다섯 명을 말이지. 조핀은 랑케를 만나야 한다면서 잠깐 우리 파티를 이탈한 상태다.
그리고 우리 파티는 던전 1층과 2층을 통과하고 3층으로 들어가는 문까지 온 상태다.
근데 파티원이란 놈들이 고작 2층까지 통과해 놓고서 저렇게 떨고 자빠졌다.
짜증나는 짜식들 같으니.
파티원 중에서 가장 크게 떠는 소음을 내고 있던 란슬링이 하소연하듯 말했다.
“쉬익! 우리가 안 떨게 됐냐. 쉬익! 지금까지 나온 몬스터들을 좀 봐라! 좀비와 블랙 미이라는 기본이고 흡혈 레이쓰에 도플갱어들까지 떼거지로 달려들고 있잖냐. 쉬익!”
“란슬링만큼 떨리지는 않습니다만 좀 빡센 던전 같긴 합니다. 이 망혼의 미로는 말이죠.”
“다쓰, 너 그걸 말이라고 하고 처자빠졌냐? 빡세니까 던전인 거다. 빡세지 않은 던전은 그냥 너네 집 뒷동산에 있는 토굴일 뿐이라고. 그리고 그런 토굴에선 백날을 삽질해 봐야 영양가 있는 아이템이나 돈되는 희귀 몬스터 같은 게 나올 리가 없단 걸 알아야지. 뭔가 가치 있는 걸 쟁취하려고 작정했으면 독한 마음을 먹어야 할 거 아니냔 말이다!”
“으음……하긴 그렇군요. 용기 있는 자만이 미녀의 속옷을 얻는다는 말도 있으니.”
“…….”
다쓰의 엉뚱한 대답에 난 잠시 벙 쪘다.
도대체 거기서 미녀 속옷이 왜 나오는 건지 모르겠구먼.
좌우간 다쓰는 결의를 다지는 듯했고 무서워하던 세영이도 심호흡을 하면서 자신감을 가지려는 듯 말했다.
“오빠, 말이 맞아요. 이왕 왔으니 죽을 각오를 하고 맨밑의 층까지 들어가 보기로 해요.”
뭐, 유저인 너야 죽어 봐야 로그아웃되는 거뿐이니 씩씩하게 말할 수 있는 거겠지만.
근데 나도 좀 걱정이 되긴 하네. 다쓰, 란슬링, 케브라, 이 녀석들은 모두 NPC라서 한 번 죽으면 부활이 불가능하니까 말이지.
케브라 빼곤 왕싸가지들이긴 하지만 그래도 파티의 소중한 전력이라서 행여나 죽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만 한다.
“자, 모두 자기 상태 점검해 봐라. 모두 다 멀쩡한 거냐?”
“오빠, 나는 피통이 반이나 달았어요. 이러다 죽으면 어쩌죠?”
아픈 어린애가 엄마한테 응석 부리는 투로 콧소리까지 내는 세영이의 말이었다.
느끼하게 이 자식이 왜 이러지?
그렇군, 우리가 사귀는 사이라고 지 멋대로 선언한 후부터 저러는구먼.
짜식, 사귀는 사이면 말이나 잘 들어야 할 거 아냐. 뭐, 내가 준 돈을 쓰레기통에 버리겠다고?
아까 일을 생각하니 세영이가 얄미워진 나는 퉁명스레 대답했다.
“그러냐? 뭐, 너야 금방 부활하면 되는데 죽든 말든 뭔 상관이냐. NPC인 얘네들이 문제지.”
“오빠!!”
“나 귀 안 먹었다. 귀 따가우니 소리 지르지 말고 라이프 포션 먹고 피통 채워! 이제 곧 2층 문을 열 테니까.”
“우영, 형님, 저는 레벨이 5가 다운되었습니다. 흡혈 레이쓰한테 한 번 물렸더니 그만…….”
“그럼 리스토레이션 스크롤을 사용해서 레벨을 정상화시켜. 그리고 더 이상은 당하지 않도록 조심해라. 레벨 드레인 공격을 하는 몬스터들하고 싸울 땐 조심 좀 하라고. 앞으로 얼마나 더 험한 상황이 될지 모르는데 스크롤을 아껴야 할 거 아니냔 말이다. 그리고 란슬링 너 마나 포션 작작 처마셔라. 도대체 그게 몇 병째냐? 마나 포션을 너 혼자서 다 바닥낼래?”
“쉬익! 내가 뭐, 먹고 싶어 마시는 줄 아냐? 힐링하느라고 마나가 자꾸 바닥이 나는 데 어쩌란 거냐. 쉬익! 내가 힐링 안 해 주면 모두 어떻게 될지 생각이나 해 봤냐. 쉬익!”
“알았다. 알았으니까 목청 높이지 마라. 이 도마뱀 대가리야!”
근데 케브라는 어떤 상태지?
내가 슬쩍 바라보는 데도 별 반응이 없다.
“케브라 너는 다친 데 없냐?”
“전혀 없습니다. 어쌔신한테 이런 던전은 아주 익숙합니다. 어쌔신 교육받을 때 흔히 이런 장소를 사용하니까요.”
“그거 다행이구나. 다쓰, 란슬링 너도 케브라를 좀 본받아라. 한 군데 다친 곳도 없고 ,포션하고 스크롤도 전혀 낭비 안 했잖냐고!”
“흥! 어쩌다 운이 좋아서 그런 거겠죠.”
“쉬익! 기분 나쁘니까 자꾸 바퀴벌레하고 비교하지 마라. 쉬익!”
짜식들 꼴에 내가 케브라를 편애한다고 느꼈는지 은근히 눈꼴시어 하는군.
쪼잔한 것들 같으니.

“준비 다 되었냐? 문 열어도 되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거대한 석문에 움푹 새겨진 해골 조각에 손을 갖다 댔다.
그러자 그 해골 조각이 붉게 빛나더니 석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그그그그긍!
파티원들이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짜식들 꽤나 긴장했군.
뭐 별다른 게 있을려구. 그래 봐야 던전이지…….
윽! 저건 뭐냐?
“저거 도대체 몇 마리……. 아니, 몇 명이죠? 대략 잡아도 수백 명은 될 거 같은데.”
기가 질린 표정으로 다쓰가 중얼거렸고, 다른 파티원들도 말을 잇지 못했다.



Part 6.던전, 망혼의 미로(1)


3층의 문이 열리고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건 수백 명의 스켈레톤 병사들이었다.
해골 뼈다귀들이 투구에 방패, 그리고 숏소드를 들고 있거나 활과 화살을 들고 있다.
삭아서 날이 다 빠진 듯한 핼버드를 든 녀석들도 있구먼.
압도적인 쪽 수에 우리가 넋을 잃고 있는데, 놈들은 기분 나쁜 뼈다귀 마찰음을 내면서 우리들을 향해 돌진해 왔다.
기기기기기!
정신이 퍼뜩 든 나는 파티원들에게 냅다 소리를 질렀다.
“뭣들하고 자빠졌냐! 해골바가지 첨 보냐? 빨랑 싸워야 할 거 아니냔 말이다!”
말과 함께 나는 내 쪽으로 달려드는 놈들을 향해서 메이스를 냅다 휘둘렀다.
파직!
한 녀석을 박살 냈는데 세 놈이서 달려든다. 나는 다시 한 놈에게 한 대씩 가뿐하게 메이스 공격을 먹여 주었다.
근데 이번엔 다시 여섯 놈이서 나를 향해 다가오시는군.
젠장…….
쉴 새도 없이 메이스를 휘둘러서 해골바가지들을 무찌르면서 나는 곁눈으로 파티원들을 살펴보았다.
다쓰와 케브라가 전면에서 스켈레톤 병사들을 박살 내고 있었고 란슬링은 뒤에서 힐링과 원기 회복 마법을 걸어 주고 있었다.
세영이 녀석은…… 음, 원거리 공격을 해 주고 있는데 좀 난감하다.
세영이는 채찍을 마구 휘둘러 대고 있었다. 그런데 스켈레톤뿐만 아니라 간혹 다쓰와 케브라, 란슬링까지 그 채찍에 얻어맞고 있었다.
“아프다. 쉬익! 뭐하는 짓이냐! 할 짓 없으면 차라리 놀고 있어라. 쉬익!”
“그렇습니다. 방해할 거면 차라리 뒤에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잠이나 주무시죠. 삽질도 상황을 봐 가면서 해야지 우리 모두 스켈레톤한테 파묻힐지도 모르는 판에 그러면 되겠습니까?”
“미……안해요.”
두 녀석이 하는 말에 세영이는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엄밀히 말하면 세영이가 덜떨어져서가 아니라 저건 순전히 무기 탓이다.
채찍은 근접 전용 무기는 아니지만 채찍의 범위 안에 우군을 두고 쓰는 무기가 아니라서 말이지.
어쨌거나 파티원들에게 계속 신경을 쓰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삼십 놈쯤 쓰러뜨린 것 같은데 스켈레톤 검사들은 꾸역꾸역 달려들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스켈레톤 아처들이 화살까지 쏘아 대기 시작했다.
푸슉! 푸슈슉!
“우욱!”
“악!”
파티원들이 화살에 맞아 상처가 생기기 시작하자 란슬링이 바빠졌다.
그러자 세영이가 채찍을 허공으로 휘둘러서 날아오는 화살들을 막아 내기 시작했다.
그 틈에 다시 죽어라 하고 무기를 휘두른 덕분에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엉, 저건?”
뭔가 강렬한 기운이 느껴지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스켈레톤들의 뒤쪽에서 검은 그림자가 서 있었다.
데몬 나이트!
온몸을 칠흑 같은 검은 갑옷과 망토를 휘감은 채, 투핸디드 소드를 양손으로 짚고 있는 저 모습!
겉모습만으로도 포스가 철철 넘친다.
저 녀석이 바로 이 3층의 보스 몬스터가 틀림없다! 그렇다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놈을 해치워야 한다.
나는 파티원들에게 외쳤다.
“다쓰는 앞으로 전진하지 않아도 좋다. 현 위치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만 말고 싸워라. 란슬링은 다쓰한테 힐링과 원기 회복 마법 계속 걸어 줘라! 세영이는 화살 공격을 지금처럼만 막아내라. 알았냐? 모험은 하지 말고 현 위치만 사수하라는 거다. 케브라는 나를 따라와라!”
나는 말을 마치고 냅다 점프를 해서 스켈레톤 검사들의 머리 위로 뛰어올랐다.
그와 동시에 가속의 부츠를 가동했다.
시간은 단 5분! 가속의 부츠의 스피드를 이용한 나는 질풍처럼 스켈레톤의 맨뒤에 있는 데몬 나이트에게로 돌진했다.
스켈레톤들은 내가 자신들의 머리를 밟고 맹렬히 뛰어가자 당황해서 허둥거렸다.
슬쩍 케브라를 보니 스켈레톤들의 다리를 마구 베어 넘기며 기어서 나를 따르고 있었다.
이제 데몬 나이트와의 거리는 10m!
투구 속에 짙게 드리워진 칠흑 같은 어둠. 그 속에서 붉은 두 개의 빛이 어른거렸다.
나는 마지막 스켈레톤의 머리를 있는 힘을 다해 밟고 점프했다.
파직 하는 소리와 함께 스켈레톤의 머리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허공에서 메이스를 양손으로 잡고 떨어지는 속도를 이용해 내리쳤다.
데몬 나이트도 투핸디드 소드를 들어 올려 나의 메이스 공격을 막았다.
까깡!
우욱!
엄청난 반탄력에 나는 뒤로 튕겨 쓰러질 뻔했지만 간신히 몸을 가눴다.
확인해 보니 레벨이 150인 몬스터다. 나는 고작 80을 넘은 상태.
버거운 상대가 분명하다. 그러나 이기지 못할 것도 없다.
“15연타 공격!”
퍼퍼퍼퍼퍼퍼퍽!
나의 메이스가 불꽃을 튀기며 갑옷을 두드리자 데몬 나이트는 잠시 움찔하더니 이내 자세를 바로잡고 투핸디드 소드를 휘둘러 왔다.
우웃, 이렇게 날렵하게 반격을 하다니!
내가 몸의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자 케브라가 데몬 나이트에게 네 가지 무기를 휘두르며 덤벼 들었다.
덕분에 데몬 나이트의 투핸디드 소드는 내 머리카락만 자르고 허공을 스쳤다.
휴! 위험했다.
하지만 오래 마음 놓고 있을 수가 없었다.
어차피 어쌔신인 케브라는 치고 빠지는 전법을 쓸 수밖에 없었기에 정면 승부는 무리였다.
데몬 나이트는 이내 나를 공격해 왔다.
나는 죽을 힘을 다해 무기를 휘둘렀고 나의 메이스와 데몬 나이트의 투핸디드 소드는 불꽃을 튀기며 맞부딪혔다.
제길 언데드 주제에 힘 엄청 좋네!
가속의 부츠를 이용해서 스피디하게 공격하는 게 효과가 있어서 아직은 데몬 나이트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다.
하지만 5분은 금방 지나간다.
뭔가 다른 수를 생각해야 한다고.
그렇다고 레달입이나 파엘분, 오거할을 사용할 수도 없다. 한 번 쓰면 재충전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말이지.
다음이 4층인데 미리 그걸 쓰면 제일 빡셀 다음 층에선 그야말로 몽땅 다 전멸하기 딱 좋다.
뭔가 이 보스 몬스터의 약점을 공격해야…….
약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