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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화)Part 6.던전, 망혼의 미로(3)
니들은 자기소개 안 하냐는 거겠지.
내가 턱짓을 하자 다쓰부터 입을 열었다.
“후훗, 이케루스 최고의 매력 팔라딘 다쓰팜스칼로프마이엘에트스트라프라고 하오.”
“쉬익! 나로 말하면 힐링 능력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프리스트 란슬링이다. 쉬익!”
두 녀석의 자기소개에 루한들은 ‘자뻑이 좀 심한 것들이구나’ 하는 표정을 짓더니 시선을 세영과 케브라에게 돌렸다.
“직업은 씨프고 쥬리아라고 해요.”
“어쌔신인 케브라입니다.”
세영이 녀석 본명은 안 밝히는군.
하긴 나 말고는 자기 이름을 가르쳐 준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케브라는 어느새인지 바바리코트에 장갑까지 다 갖춰 입고 지가 바퀴벌레인 게 안 드러나게 하고 있었다.
루한은 뭔가 더 생각하는 듯하더니 신중한 자세로 입을 열었다.
“이곳은 외부에서는 위치를 알기가 무척 힘든데 도대체 어떻게 들어오신 겁니까?”
“그건 제가 먼저 묻고 싶은데요? 이곳 위치를 알려 준 분 말에 따르면 여기를 아는 외부인들은 아무도 없다고 하던데…….”
나의 반문에 루한은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글쎄요. 뭐, 어차피 ‘태양 아래 비밀이란 없는 법이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훗! 그런가요? 하지만 여긴 태양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곳이니까요.”
“…….”
내 말에 루한들은 움찔하는 기색이었다.
내 말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태양이 들어오지 않는 깊은 지하 던전이니 너희들을 해치우고 던전을 뒤져서 나올 아이템들을 독식하겠다는 말로도 이해 가능했다.
“허허, 이것 참. 좀 노골적이시군요. 근데 방금 하신 그 말씀을 우리라고 못 하란 법은 없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루한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여기까지 오시는 동안에 상당히 힘드셨고 고초도 많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그러니까요. 또 이 4층은 이 던전의 최종 보스 몬스터가 있는 곳이 틀림없을 것 같으니 지금까지 겪은 것보다 더 힘든 싸움이 있을 거라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
루한의 말에 모두가 눈을 빛내며 귀를 기울였다.
나도 묵묵히 그의 말을 경청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겠다. 그리고 사실 나도 루한과 비슷한 제안을 하려고 마음먹고 있기는 했다.
“그러니 힘을 합치자?”
“그렇죠. 모르긴 해도 우리 두 파티 중 한 파티만이 이 문 안으로 들어갔다가는 전멸할 확률이 높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힘을 합친다면 목적을 달성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지지 않을까요?”
루한의 말에 뒤에 서 있던 에닉, 카린, 쉴드린도 눈을 빛내며 기대에 찬 시선을 던졌다.
나는 일부러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하는 척했다.
“파티원들과 의논해 봐야겠으니 조금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그렇게 하시죠. 좋은 답변 기대하겠습니다.”
나는 파티원들을 데리고 한쪽 구석으로 가서 의견을 물었다.
“자, 니들도 대화 들었지? 난 저 사람들하고 손잡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니 너희들도 민주적으로 ‘나도 찬성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해도 된다.”
내 말에 모두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군. 내 말이 마음에 안 드나 보다.
유일한 예외는 케브라다.
“우영 님의 뜻이 곧 제 뜻입니다. 어떤 결정을 내리셔도 저는 따르겠습니다.”
훗, 가장 꺼림칙하지만 가장 충성스런 녀석 같으니.
근데 이 바퀴벌레완 대조적으로 다쓰와 란슬링은 영 못마땅한 표정이군.
“우영, 형님, 어째 말씀이 이상하군요. 민주적으로 찬성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해도 된다뇨? 그럼 민주적으로 반대하겠다는 소리를 하면 메이스 찜질이라도 하겠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 쉬익! 우영 넌 정말 멋대로다! 파티장 오래 하고 싶으면 그러면 안 된다. 쉬익!”
“어절씨구. 그럼 니들 생각은 뭔데? 쟤들하고 맞짱 뜨자고? 근데 그러면 확실히 이길 수나 있겠냐? 또 이긴다고 해도 그렇지, 우리들 중 누가 다치거나 죽기라도 하면 어쩔래. 전력에 큰 손상이 생긴 채로 저 안에 있을 몬스터들을 상대할 수나 있겠냐? 저 안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도로 엘카니아에 돌아가야 할 거 아니냔 말이다.”
“…….”
“…….”
내가 두 눈 부릅뜨고 딱딱거리자 두 녀석도 할 말이 없는지 입을 다물었다.
이것들이 그저 나한테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싶어 안달이 난 거로군.
척하면 계산이 뻔히 나오는구먼. 무턱대고 맞짱 뜨자는 소리부터 하면 어쩌냐고.
곰곰이 생각하던 세영이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우영 오빠 말씀이 맞아요. 저들과 손잡는 건 지금 상황에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에요. 근데 한 가지 큰 문제가 있는데, 힘을 합쳐서 이겼을 때의 아이템 분배는 어떻게 하죠?”
“그게 문제긴 하지.”
내가 세영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다쓰와 란슬링이 두 눈을 빛내며 주절거렸다.
“문제긴 뭐가 문제냐. 쉬익! 이긴 다음에 안면 몰수하고 모두 죽여 버리면 된다. 말끔하게 배 따 주면 된다, 아주 간단하다. 쉬익!”
“그렇습니다. 보는 사람이 없는데 뭐가 걱정입니까? 이겼다고 마음 턱 놓고 있을 때, 일제히 달려들어 마구 썰어 버리고 다굴한 다음, 이곳 땅을 깊이 파서 묻어 버리고 뜨면 되는데요. 얼마나 간단하고 쉽습니까.”
“…….”
우와, 이 자식들 정말 나쁜 놈들이네.
이것들이 이 정도로 막가는 놈들인 줄은 몰랐다.
이러고서도 니들이 프리스트고 팔라딘이냐? 주신 이르하임 보기 부끄럽지도 않냐!
뭐, 나도 니들하고 같은 생각하고 있었다는 건 말할 수 없다만…….
근데 케브라도 고개를 끄덕이는군.
“저도 찬성입니다. 그리고 암습은 어쌔신인 저의 특기이기도 하니까 방심한 상태에서 저들을 해치우는 건 어렵지 않을 것도 같습니다.”
으음……. 케브라 너까지 타락의 구렁텅이에 빠진 거냐?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나는 어디까지나 민주적인 파티장이니까 다수결의 원칙에 의거, 니들의 의견에 따를 수밖에.
내가 결정한 게 아니고 어디까지나 니들의 의견에 따르는 거라고. 크흐흐흐흐흐흐.
Part 7.망혼의 기사(1)
“그그그그긍…….”
석문이 웅장한 소리와 함께 열렸다.
드디어 망혼의 미로 던전 마지막 층인 4층, 이곳 최강의 보스 몬스터가 버티고 있으리라고 짐작되는 곳이 우리 눈앞에 열렸다.
“음…….”
모두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엄청나게 넓은 홀이었다. 이거 꼭 무슨 돔으로 지은 경기장 비슷하다.
원형의 벽은 스테인드글라스였다.
그 밑에는 조각들이 가득 놓여 있는데 만티코어, 하피, 미노타우로스 등 꽤 다양하다.
근데 홀 가득히 놓여 있는 게 요상하다. 커다란 알들이 좌르르 놓여 있구먼.
근데 알의 끝 부분이 조금 열려 있고 가볍게 끓어오르고 있다.
이거 분위기가 어째 심상찮은데…….
“이거 뭐냐? 쉬익. 신기하다. 쉬익!”
란슬링은 대거로 알들의 열려진 부분을 쿡쿡 찔러 대고 있었다.
아무거나 마구 건드리지 말라고 소리 지르려고 하는데, 마법사 소년 에닉이 뭔가 발견한 듯 외쳤다.
“이거 보세요. 관이 있어요!”
시선을 돌려 보니 정말 알들 사이에 일정한 간격으로 관들이 놓여 있었다.
루한과 에닉이 조심스레 관의 두껑을 열자 긴 송곳니를 드러낸 채 잠들어 있는 뱀파이어의 모습이 보였다.
“음…….”
가만있어라. 알들 사이에 널려 있는 관의 숫자를 세어보니 대략 30개가 넘는군.
그럼 뱀파이어가 30명이란 소린데…….
루한은 좀 더 생각하다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정석대로라면 뱀파이어들의 가슴에 나무 말뚝을 박아 넣어야 하겠지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조금 더 이곳을 뒤져 본 다음에 결정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하죠. 우리가 지레 먼저 건드렸다가 이 알들이 다 부화되고 뱀파이어들이 관에서 모두 다 일어나면 상당히 심란해질 것 같으니 가급적이면 조용히 아이템 수집을 합시다.”
내 대답에 루한도 고개를 끄덕여 맞장구를 쳤다.
“동감입니다. 이 안에 있는 것들이 다 깨어나면 우리 모두 로그아웃당하기 딱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드니까 말이죠. 더군다나 보스 몬스터는 아직 모습도 드러내지 않은 것 같으니…….”
“나도 그게 궁금한데, 보스 몬스터는 어디 있는 걸까요?”
그때 홀의 한쪽 끝에 마련된 제단을 조사하고 있던 다쓰가 크게 소리쳤다.
“우영 형님, 여기 이상한 종과 문서, 그리고 양초와 부싯돌이 있습니다!”
“뭐라고 씌어 있냐?”
“위대한 망혼의 주인을 만나고 싶으면 양초에 불을 붙이고 종을 세 번 쳐라! 그리고 망혼의 주인께 경배를 드리도록 하라고 씌어 있는데요? 그리고 이건 무슨 글자지…….”
잘 안 보이는지 다쓰가 문서에 눈을 바싹 대고 읽으려 하는데 옆에 서 있던 다쓰가 냉큼 부싯돌로 양초에 불을 붙이고 종을 집어 들었다.
“불 붙이고 종 치라면 그렇게 하지 뭘 그리 열심히 읽기만 하냐. 쉬익!”
“야! 란슬링! 너 잠깐…….”
난 기겁을 해서 란슬링에게 소리쳤다.
그러나 이미 양초에 불을 붙인 란슬링은 종을 마구 흔들었다.
딩! 딩! 딩…….
기분 나쁜 종소리가 가득 울려 퍼지자 오싹한 분위기가 홀 안을 감돌았다.
그때 다쓰가 놀란 듯 소리쳤다.
“헉! 우영 형님, 이 문서의 마지막 글자를 읽는 데 성공했습니다.”
“뭐라고 씌어 있냐?”
“‘그럼 이제부터 그대가 망혼의 주인께 공물로 바쳐지는 의식이 시작될 것이다. 가련한 제물이여!’ 라는데요?”
“젠장! 너희 둘 당장 이리 돌아와라! 그리고 모두들 빨리 관 뚜껑 열고 뱀파이어들 가슴에 말뚝 꽂아. 어서!”
“아니, 우영 님!”
루한들은 나의 다급한 고함에 당황한 듯했다.
그러나 세영과 케브라는 미리 준비한 말뚝을 가지고 관 뚜껑을 열고 뱀파이어들의 가슴에 마구 박기 시작했다.
근데 이미 늦었다.
펑! 펑!
아직 손도 못 댄 관들이 벌떡 일어서더니 관 두껑이 폭죽처럼 터져 나갔다.
그리고 뱀파이어들이 그 안에서 걸어 나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알들이 쩌적 소리를 내면서 깨지더니 와이번들이 튀어나왔다.
와이번이라고 해도 그냥 와이번들이 아니고 반쯤은 언데드화되어 흡혈을 하는 다크 와이번들이었다.
알에서 갓 태어난 놈들이라 날지는 못했지만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보이며 우리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막아! 케브라, 다쓰 저지해라! 란슬링은 힐링과 원기 회복 마법 준비해. 루한 님 그쪽도 부탁합니다!”
내 말에 케브라, 다쓰는 앞으로 튀어 나가 무기를 휘두르며 뱀파이어와 와이번들을 베어 넘기기 시작했다.
루한도 앞으로 튀어 나가서 바스타드 소드를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