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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3권(66화)
Part 7.망혼의 기사(3)


세영이의 말이 의미심장한지 망혼의 기사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근데 세영이 녀석은 망혼의 기사에 대한 이야기를 좀 들어둔 게 있나 보군.
“그……대는…… 나를……알고…… 있군.”
“오래전에 대륙 최고의 기사로 인정받던 사람이 있었죠. 엘카니아의 유명한 기사 란그린! 그는 교황청의 요청으로 대륙에서 가장 우수한 기사 열 명 중에서 선발되어 교황을 경호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죠. 그런데 주신 이르하임 이외의 신을 섬기는 국가 켄드라한이 교황청을 침공하려 했어요. 켄드라한은 사전 공작으로 열 명의 교황청 경호 기사들을 매수하려 했죠. 그들을 매수하면 침공은 아주 쉬워지니까요. 당신만 제외하고 아홉 명의 기사가 매수되었어요. 당신은 그들이 켄드라한에 매수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그런데 켄드라한에서 정변이 생겨 교황청 침공은 취소되었어요. 그러자 아홉 명의 기사들은 자신들이 매수되었던 걸 당신이 교황에게 밀고할까 두려웠죠. 그래서 이곳 언데드들이 가득한 던전으로 당신을 유인해서 가두어 죽이려 했죠. 당신은 그들의 계략을 알고서도 이곳으로 왔어요. 아홉 명의 기사들 대다수는 절친한 친구였고 한 명은 누이동생의 남편이었으니까요. 그들의 배신을 교황에게 밀고할 수도 있었지만 당신은 그러지 않고 이곳까지 와서 우정과 누이동생을 위해 자신이 죽는 길을 택했어요. 타인의 부정을 밀고하지 않는다, 친구를 배신하지 않는다, 가족을 불행하게 하지 않는다는 기사도를 자신의 목숨을 내던져서까지 지킨 거죠.”
“…….”
세영이의 말에 나는 코끝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다. 엄청 흉악한 보스 몬스터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끝내주게 훌륭한 정신의 기사잖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울함과 회한이 안 생길 수가 없었겠지. 그래서 이곳에서 죽어서 유령이 되어서도 그 회한과 원념이 쌓여서 저런 대형 언데드인 보스 몬스터가 된 거로군.
망혼의 기사는 잠시 우리 쪽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가지…… 부탁하고……싶은…… 일이……있다. 나를…… 위해서…… 한 가지…… 일을…… 해……주겠는……가?”
나는 냉큼 한 발 앞으로 나서며 고개를 숙여 큰소리로 말했다.
“물론입니다. 기꺼이 들어 드리죠. 말씀만 하십쇼!”
가만 보고 있자니 이건 퀘스트 발생 건수인 거 같아서 말이지. 행여나 루한이 하겠다고 나설까 봐 내가 선수를 친 거였다.
뭐, 아주 어렵거나 곤란한 퀘스트면 어쩌려고 대뜸 맡겠다고 나서냐고?
사람 나름인데……. 저런 고결한 기사라면 터무니없는 퀘스트 의뢰를 할 가능성은 적지 않겠어?
“나……는…… 믿었……던 동료……기사……들에게…… 배신을……당했다……. 신뢰와……헌신의……맹세……로 우리들의……피를 담았던…… 챔피언의 컵……. 그것을……나에게 가져다 다오……. 챔피언의 컵에서…… 나의 피를 씻어내…… 그들과의……관계를……. 없던 것으로…… 하고…… 싶다…….”

띠리링하는 음향과 함께 창이 떠올랐다.

- 챔피언의 컵을 망혼의 기사에게! -
망혼의 기사는 자신과 동료들의 피를 함께 넣어 맹세한 챔피언의 컵에서 자신의 피를 없애 과거 동료 기사들과의 관계를 영원히 씻어 버리고 싶어 한다.
망혼의 기사에게 챔피언의 컵을 가져다주어라.
기한 : 무한정
보상1 : 망혼의 기사가 지닌 보석인 망혼의 눈물
보상2 : 망혼의 기사를 소환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단 밤에만 가능하다.
퀘스트 등급 : 2급

음……. 그 챔피언의 컵에 열 명의 기사가 피를 흘려 넣은 뒤 돌아가며 마시면서 배신하지 않을 것을 맹세했단 이야기군.
근데 나머지 녀석들이 배신했으니 그 컵을 회수해서 자신의 피는 씻어 내어 영원히 그들과의 관계를 지워 버리겠단 거군.
쩝, 아무리 좋은 사람이지만 그래도 역시 한이 단단히 맺히긴 했군.
근데 그 챔피언의 컵만 갖다 주면 된다니 꽤 쉬운 퀘스트네.
엉? 근데 루한은 지가 이 퀘스트 안 맡은 걸 전혀 아쉬워하는 표정이 아니잖아? 거 묘하구먼.
망혼의 기사는 말을 마치고 어느샌가 사라져 버렸다.
근데 세영이가 아주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다.
“오빠, 어쩌자고 그 퀘스트를 맡으셨어요?”
“왜? 뭔 문제라도 있냐?”
“그 챔피언의 컵이 어디 있는 건지는 아세요?”
“모르지. 어디에 있는데?”
“교황청이요. 그건 교황청에서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는 역사적인 기념품이에요.”
“…….”
나는 벙 찌고 말았다.
하긴 교황청의 경호 기사였으니 교황청에 있는 게 당연하겠군.
그럼 이 퀘스트를 완수하려면 교황청에서 그걸 훔쳐야 한단 소리네?
그렇지 않고 이러저러해서 컵을 가지러 왔으니 좀 내주시죠 한다고 해서 줄 리가 없으니까.
왜 안 주냐고?
아, 생각을 해 봐. 그 나머지 아홉 명의 기사는 그 후로도 교황청의 경호 기사로서 역사에 남아 있는데, 이제 와서 옛날 일이 다 까발려져 보라고. 그건 그들의 명예만 떨어지는 게 아니고 교황청의 위신에도 손상을 입히는 거라고. 교황청에선 절대로 그 컵을 주지 않을 거란 얘기지.
그러면 훔쳐 내는 수밖에 없단 이야긴데 무려 교황청이나 되는 곳에서 소중히 보관하고 있는 컵을 훔쳐 내야 하다니.
쩝……. 골치 아프군. 의외로 어려운 퀘스트를 맡아 버렸으니.
그때 루한이 다가와서 입을 열었다.
“보스 몬스터인 망혼의 기사도 사라졌으니 이제 아이템을 모아서 분배를 해 보도록 하죠.”
“뭘 한다고요?”
“분배요. 아이템 분배 말입니다. 같이 싸웠으니 공평하게 나눠야 할 거 아닙니까?”
“훗!”
나는 슬며시 케브라와 다쓰, 란슬링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그들은 재빨리 에닉과 카린, 쉴드린의 목에 무기를 들이댔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루한이 화가 나서 고함을 질렀으나 나는 태연했다.
“우리가 왜 이러는지는 당신이 더 잘 알 텐데?”
“그, 그게 무슨…….”
“시치미 떼지 마! 사드의 지시를 받고 이곳에서 우리를 만난 거잖아!”
내가 공갈 협박 스킬을 써서 을러대자 루한은 반박을 못하고 침을 꿀꺽 삼켰다.
“사드가 그랬잖아! 눈에 가시 같은 놈들이 있는데, 이곳에서 우연히 만난 척하고 합류해서 몬스터들하고 싸우면서 최대한 그들의 피를 흘리게 해라. 그래서 그들의 전력이 바닥났을 때 모두 죽여 버려라. 하고 말이야.”
“그, 그걸 어떻게?”
“훗, 이곳을 우연히 발견했다고 했나? 그런데 당신들은 이곳 니녹스 산맥을 배회하던 자들치곤 너무 깨끗했어. 이곳 좌표를 미리 알고 텔레포트해 왔다는 이야기지. 그리고 우리 정체를 미리 알았던 것처럼 전혀 놀라지 않는 것도 이상했고. 나의 메이스에 대해서 알려 준 게 없는데도 단번에 젤라즈니의 메이스인 걸 알더군. 그럼 뻔한 거지.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왔다는 거지!”
“제길…….”
나의 으름장에 루한은 얼굴을 붉히며 이를 갈았다.
“쉬익! 모두 다 죽여 버리자, 우영!”
“우영 형님, 이것들 전부 다 곱게 썰어서 파묻어 버리죠.”
“지시만 내리십쇼.”
란슬링과 다쓰, 케브라가 목에 바싹 무기를 들이대며 하는 말에 루한들은 일제히 창백한 낯빛이 되었다.
나는 조금 생각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렇게까지 하진 않겠다. 좌우간 같이 힘을 합쳐 몬스터와 싸웠고 아직까진 우리를 해친 것도 아니니까. 뭐, 그럴 마음이 없었던 게 아니고 기회를 찾지 못한 거였겠지만.”
“그렇소. 사실입니다. 당신들 파티의 전력이 생각 외로 강해서…….”
루한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긍정했다.
“그러니 조금은 호의를 베풀어서 가진 거 절반만 빼앗도록 하지.”
“절반이라고?”
“뭘 그리 눈을 둥그렇게 떠? 남의 뒤통수치고 가진 거 다 털어먹으려고 마음먹었으면 반대의 꼴이 될 위험도 감수를 해야 할 거 아냐?”
“으음…….”
그들은 하나같이 억울해 죽겠단 표정을 지었지만 그렇다고 봐줄 내가 아니지.
가지고 있는 무기와 갑옷은 그냥 봐주고 가지고 있는 돈은 모조리 빼앗았다.
모두 합해서 1천 5백 골드로군.
“순 날강도들!”
쉴드린이 분한 듯 내지른 말에 나는 썩소를 날려 주었다.
“날강도라고? 이 정도로 끝내준 걸 고마운 줄 알고 그딴 소리는 사드한테나 가서 해라!”
내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던지 루한은 가벼운 한숨을 쉬고는 쉴드린을 만류했다.
“저분 말이 맞다. 우리가 이런 일을 당해도 사실 할 말은 없어. 무기와 갑옷까지 빼앗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다.”
“그래도…….”
“우영 님, 이렇게 되어서 유감입니다. 의뢰주의 지시라 우리도 어쩔 수가 없었소.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들이 홀 밖으로 사라지자 나는 파티원들에게 지시를 내려 아이템들을 모두 모으게 했다.
자, 보자. 대충 어떤 것들이 있나?
우리가 해치운 것들 중에는 다크 와이번이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로는 뱀파이어, 미노타우로스, 만티코어, 하피, 나가의 순이었다.

- 다크 와이번의 껍질 -
분류 : 갑옷이나 방어구의 재료 등급 : 30
내구력 : 100/200
가격 : 50골드
설명 : 다크 와이번의 껍질은 가볍고 단단한 케르틴이라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이 껍질로 갑옷을 만들어 입는다면 가벼우면서도 방어력이 높은 훌륭한 갑옷으로 무장할 수 있을 것이다.

- 뱀파이어의 이빨 -
분류 : 화살촉으로 가공할 수 있는 재료 등급 : 15
내구력 : 30/50
가격 : 5골드
설명 : 뱀파이어의 이빨은 가공해서 화살촉으로 쓰면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적에게 중상을 입히는 놀라운 위력을 발휘한다.

- 만티코어의 꼬리 -
분류 : 채찍으로 가공할 수 있는 재료 등급 : 20
내구력 80/90
가격 : 70골드
설명 : 만티코어의 꼬리는 강력한 독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채찍으로 만들어 사용하면 상대에게 강한 독 피해를 입히는 악랄한 무기가 된다.

으음, 다크 와이번의 껍질과 뱀파이어의 이빨, 그리고 만티코어의 꼬리가 각각 이런 쓸모가 있었군. 그밖에 미노타우로스나 나가, 가고일 등의 몬스터 역시 그런 재료를 떨구고 재가 된 상태였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아이템은 이 정도가 아니다. 파티원들의 목숨을 모두 희생할 뻔한 대가를 충분히 지불받을 수 있는 아이템이 있어야 할 텐데…….
이리저리 몬스터들의 잔해를 살피던 나의 눈에 반짝거리는 물건이 포착되었다. 그것은 싸늘한 냉기가 흐르는 투명한 반지와 한 자루의 칼, 그리고 낡아 빠진 부츠, 그리고…… 안경이었다!
젠장! 웬 안경이 이런 데 떨어져 있는 건지 모르겠네. 웃, 근데 이건…….

- 식별과 환상 탐지의 안경! -
분류 : 감정, 환상 탐지
내구력 : 30/40
가격 : 200골드
설명 : 이 안경을 사용하면 강력한 마법 결계로 보호된 아이템을 제외한 모든 아이템의 정체를 식별할 수 있다.
모습을 감춘 언데드나 변신체의 실체를 파악할 수도 있다.
제한 : 착용 시 민첩성이 10% 감소한다.

좀 황당했지만 이거 제법 쓸 만한 물건이군. 이것만 있으면 아이템 식별하는 데 엄청 편리할 것 같다.
제길, 진작 이런 게 있었으면 미라쥬 길드의 보물 창고에서 내가 직접 끝내주는 아이템들을 골랐을 텐데.
그 다음은 부츠로군.

- 길 잃은 영혼들의 부츠 -
분류 : 부츠 등급 : 20
방어력 : 50/70 내구력 : 75/300
가격 : 300골드
설명 : 이 던전에서 죽어 간 영혼들의 원념이 깃든 부츠. 신고 있으면 언데드의 공격에 대한 방어력이 증가한다.
옵션 1 : 20분간 언데드에게 탐지되지 않음.
옵션 2 : 언데드의 공격에 대한 저항력을 30% 상승시켜 줌.
제한 : 냉기에 대한 저항력이 20 감소함.

- 단장의 검 -
분류 : 무기 등급 : 25
공격력 : 50 내구력 : 50/250
가격 : 150골드
설명 : 파티를 끌고 이곳에 들어왔으나 현혹 마법에 걸려 적으로 변한 파티원들을 모조리 죽여야 했던 불행한 파티장의 검.
옵션1 : 같은 파티원들을 공격할 때에 한해서 공격력이 두 배로 상승한다.
제한 : 지니고 다니면 파티원들이 당신에게 원한을 품을 확률이 15% 증가한다.

허걱!
아니, 무슨 이런 찝찝한 칼이 다 있냐.
그냥 버릴까 생각했으나 그래도 가격이 150인데 생돈을 버리자니 아깝다.
그리고 내구력이 50이니 수리하면 훨씬 더 받고 팔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팔지 않아도 언젠가 내가 사용하게 될 일이 있을 것도 같군. 그렇다면 보관해 두는 게 나을지도…….
나는 케브라에게 슬쩍 시선을 던진 다음, 단장의 검을 인벤토리에 넣을……려고 하다가 도로 뺐다.
지니고 있으면 파티원이 나한테 원한을 품을 확률이 15% 증가한다니 영 찝찝하다.
지금도 나한테 개기고 대들고 난리도 아닌데 이걸 지니고 다녔다가는 언제 뒤에서 칼 맞을지도 모르잖냐고.
젠장…….
가지고는 있어야 되는데 내가 지니고 있자니 찝찝한 물건을 어떻게 처리한다…….
나는 잠시 머리를 굴리다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다쓰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