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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3권(68화)
Part 8.교황청으로!(2)
“칫! 꽝이다. 쉬익!”
“저도 꽝이라고 씌어 있군요.”
“꽝입니다.”
“…….”
세 녀석이 투덜거렸는데 세영이만은 자신이 뽑은 종이를 펼친 뒤에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슬쩍 물었다.
“세영이는 뭐 뽑았냐?”
“…….”
말 없이 나를 바라보는 세영이의 눈빛이 어째 시선을 마주하기가 부담스럽다.
왜 그런 눈으로 보냐고, 다 너를 위해서 한 일인데.
“당……첨……이네요.”
“그러냐 축하한다! 5천 골드는 세영이 거다! 자, 니들 봤지? 내가 돈독 오른 파티장이 아닌 거 확실하지? 이렇게 파티원들한테 풀 줄도 알잖냔 말이다.”
내가 너스레를 떨자 다쓰와 란슬링은 마지못한 듯 고개를 끄덕였고 케브라는 이를 말이냐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세영이는 계속 물끄러미 나를 응시하는군. 내 가슴속을 꿰뚫을 것 같은 시선이다.
설마 내 계략을 들킨 건가?
녀석……. 모른 척 속아 주면 좋겠구먼.
나는 세영이가 나를 보는 눈길이 부담스러워서 화제를 돌렸다.
“자, 그리고 우리의 다음 목적지가 교황청인 건 알고 있지? 내일 아침에 출발하기로 하자.”
응? 근데 다쓰 녀석 왜 갑자기 표정이 변하는 거지?
엄청나게 불편하고 당혹스런 것 같은데…….
“저……. 우영 형님. 우리가 교황청을 꼭 방문해야 합니까? 전 그곳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만.”
“너 그걸 말이라고 하냐? 우리가 망혼의 기사한테 챔피언의 컵을 갖다 줘야 하는데 그 챔피언의 컵이 어디에 있냐?”
“교황청입니다.”
“그럼 너는 교황청에 안 가고 그 컵을 손에 넣을 방법이 있다는 거냐?”
“그, 글쎄요. 잘은 몰라도 잘 생각하면 교황청에 안 가고도 손에 넣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를테면…….”
“이를테면?”
“주신 이르하임께 일주일 밤낮으로 쉬지 않고 챔피언의 컵을 내려 주십사 하고 기도를 한다든가……. 또는…….”
“또는?”
“대륙 최고의 도둑 길드에 의뢰해서 교황청에서 챔피언의 컵을 훔쳐 달라고 의뢰를 한다거나…….”
“그래? 그런데 그 의뢰를 하려면 돈이 얼마나 들 거 같냐?”
“다른 곳도 아니고 교황청의 기념물을 훔치는 거니까 최소한 2만 골드는 달라고 할 겁니다.”
“너 죽을래? 날 알거지로 만들려고 작정했냐! 그걸 아는 놈이 그딴 헛소리하고 처자빠졌냐고!”
“…….”
이 자식이 하는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짜증이 마구 치솟는다.
근데 교황청에 가는 걸 다쓰 이 녀석이 왜 기를 쓰고 피하고 싶어 하는지 조금은 짐작이 될 거 같긴 하다.
“다쓰! 팔라딘은 모두 교황청에 소속된 기사이지? 너도 한때는 그곳에서 근무했을 테고?”
“그렇습니다만…….”
“솔직히 말해 봐라. 너 교황청에 있을 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거 아니냐?”
“…….”
내 말에 다쓰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역시 그렇구먼.
팔라딘은 일정 기간 동안 교황청에서 교황을 위시한 대주교 등의 성직자들을 경호하고 경비를 서는 임무를 맡는다.
그리고 그 뒤에 각지를 순례하면서 기사 생활을 하고 주신 이르하임의 뜻을 전파하는 동시에 그 이름을 수호한다고 했다.
근데 교황청에 가기 싫어한단 건 이 자식이 그곳에 있을 때 뭔가 사고를 쳐서 그럴 가능성이 높다.
“훗, 뭐, 대답 안 해도 상관없겠지. 거기 가서 물어보면 될 테니까.”
“…….”
음, 내 말에 다쓰 녀석의 낯빛이 급격하게 창백해지는군. 그리고 이를 악물며 뭔가 결심을 하는 눈치다.
이거 심상찮은 예감이 드는데…….
자기 전에 케브라한테 한마디 해 주고 자야겠다.
응? 근데 얘가 왜 이러지?
다들 자기 방으로 돌아가는데 세영이 혼자 남아 나를 물끄러미 보고 있으니.
“세영아, 내가 미남인 줄은 나도 잘 아는데 그래도 그렇게 노골적으로 바라보면 쬐끔 민망하지 않니?”
“농담하지 마요, 오빠.”
아니, 이 녀석이 왜 정색을 하고 이런담…….
“솔직하게 말해 줘요. 아까 제비뽑기한 거 오빠가 조작한 거죠? 나한테 돈 주려고 일부러 내가 당첨되게 한 거 맞죠?”
웃, 아니, 이 자식이 다 알고 있었다니 눈치 한번 빠르군. 하지만 절대로 그걸 인정할 순 없지.
“너 지금 뭔 소리 하냐? 너도 본 것처럼 조작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제비뽑기였는데. 너 말이지, 쬐끄만 게 벌써부터 생사람 잡으면 나중에 좋은 데 시집 갈 확률이 크게 줄어드는 수가 있단다.”
“그럼 아니란 말이에요? 바른대로 대요! 그딴 제비뽑기 조작하는 건 세 살 먹은 어린애 사탕 빼앗는 것만큼이나 쉽단 거 나도 다 안단 말예요! 빨랑 사실대로 말 못해요?”
이거 봐라, 이 녀석이 쌍심지를 돋우고 따져 묻다니!
이거 완전히 바람난 남편 을러대는 와이프 모드다. 조금 괘씸해지려고 한다.
“얌마, 오빠가 아니라면 아닌 줄 알아! 그리고 너 쪼그만 게 어른한테 두 눈 부릅뜨고 따지고 들어도 되는 거냐?”
“흥! 내가 주민증 나온 게 언젠데 뭐가 쬐끄만해요? 그리고 서른도 안 넘은 오빠가 무슨 어른이람?”
“아니, 이 자식이 정말!”
“어쨌거나 오빠가 아니라고 하니 일단은 그렇게 믿어 주죠. 근데 다음에도 이런 식으로 나한테 돈 주면 절대로 가만 안 있을 거예요! 난 오빠한테 이런 식으로 동정받고 싶지 않아요, 절대로!”
웃, 조금 놀랐다. ‘절대로!’라고 말하는 세영이의 두 눈에서 불이 번쩍 했기 때문이다.
세영이는 복잡한 눈으로 날 더 바라보다가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는 방을 나갔다.
“안녕히 주무세요, 오빠!”
아, 덴장. 좋은 일 하고서 싫은 소리 듣다니 은근히 화가 나려고 하는군.
뭐, 내가 세영이 녀석의 자존심에 조금 상처를 준 건지는 모르겠다. 이웃에 사는 할망구를 통해서 돈 주는 것도 들켰고 이런 식으로 도움을 주는 것도 간파당하다니…….
다음에 도움을 줄 때는 뭔가 다른 방법을 써야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침대에 누웠다.
근데 깊이 잠들진 못하겠군. 분명히 밤중에 상황이 벌어질 테니까.
그냥 가볍게 눈이나 붙이고 있어야겠다.
“예상했던 대로군.”
새벽 2시가 넘은 시각.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밖에서 들리는 고함과 투닥거리는 소리에 잠이 깬 것이다.
나는 일어나서 다쓰의 방으로 가서 불을 켰다.
예상했던 대로 다쓰는 방에 없고 편지 써 놓은 것만 침대 위에 놓여 있다.
어디 읽어 볼까?
― 후후훗! 건방지고, 꼴 보기 싫고, 싸가지 없고, 왕재수에 밥맛에다가, 얍삽하고 치사하며, 나의 고결한 취미 활동을 변태적이라면서 틈만 나면 매도한 무식한 우영, 똑똑히 보거라. 웬만하면 아버지의 맹세를 지키기 위해서 참으려고 했다.
아니꼽고 치사한 거 다 참고 너한테 충성하려고 했다 그 말이다. 그런데 사사건건 나를 깔아뭉개고 모욕하고 오크 발톱의 곰팡이처럼 취급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교황청에 나를 데려가려 하다니 그것만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이 시간부로 파티를 떠나 너와 영원히 이별하려고 하니 도마뱀 대가리와 바퀴벌레, 그리고 절벽 가슴 소녀와 평생 잘 먹고 잘살아라.
니들 꼬라지 더 볼 일 없다 생각하니 속이 다 시원하군.
대륙에서 가장 위대하고 고결하고 매력적인 팔라딘 다쓰팜스칼로프마이엘에트스트라프가 최후로 남긴다.
나는 다 읽고 길게 하품을 했다.
‘고결’과 ‘매력’이란 단어가 모진 시련을 당하는구나 생각하면서 말이지.
그리고 머리를 긁적거리며 투닥거리는 소음이 들렸던 케브라의 방으로 갔다.
그곳에는 야반도주하려다가 케브라한테 붙잡혀 온 다쓰가 실컷 두들겨 맞아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 채 자빠져 있었다.
란슬링과 세영이도 자다가 깼는지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난 케브라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케브라, 수고했다.”
“천만에요. 다쓰가 밤에 우리 파티를 배반하고 달아날지 모르니 잘 감시하라는 우영 님의 말씀을 유념했을 뿐입니다.”
“…….”
케브라의 말에 세영이와 란슬링은 비로소 알겠다는 얼굴이로군.
반면에 다쓰는 들킨 게 분한지 이를 아드득 물었다.
짜식, 니가 튈려고 마음을 먹은 걸 내가 눈치 못 챈 줄 아냐? 너하고 같이 지낸 시간이 얼만데 그걸 모르겠냐고.
후훗, 어디 교황청에 다쓰를 데리고 가서 그곳 팔라딘들에게 직접 물어봐야겠다.
다쓰가 도대체 뭔 짓을 했던 건지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