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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3권(69화)
Part 8.교황청으로!(3)
“야! 다쓰!”
“…….”
“계속 입 처닫고 있을 거냐? 한마디도 안 할 거냐고!”
난 짜증스레 목청을 높였다.
이곳은 엘카니아에서 교황청으로 가는 관도.
우리 일행은 말을 탄 채 목적지로 향하고 있는 중이다.
다쓰 자식도 물론 말을 타고 있다. 다른 파티원과의 차이점이라면 이 자식은 꽁꽁 묶인 채 말에 실려 있다는 거지.
하지만 파티에서 달아나려고 했다고 해서 버리고 갈 수는 없고 하여 잘 구스르려고 하는데, 이 자식이 통 말을 안 들어먹는군.
벌써 12시간째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런저런 사탕발림을 모조리 동원해도 지그시 눈을 감고 입을 다문 채 지가 무슨 십자가에 묶인 순교자라도 된 것처럼 하고 있다.
“휴우……. 세영아!”
세영이더러 다쓰를 설득해 보라고 눈짓을 했다.
그런데 세영이도 영 탐탁지 않은 얼굴이다.
“흥! 절벽 가슴 소녀 따위가 설득한다고 해서, 고귀하고 매력이 넘쳐 나며 고결한 취미를 가지신 팔라딘께서 눈이나 꿈적하겠어요? 난 자신 없으니까 자꾸 압력 넣지 마요!”
젠장……. 세영이 이 녀석도 다쓰가 편지에 쓴 ‘절벽 가슴 소녀’라는 단어 때문에 삐친 상태다.
젠장……. 파티원들이란 것들이 왜 하나같이 이 모양이야!
한 녀석은 변태에다가 툭하면 개기다가, 나중엔 아예 파티에서 도망을 치려고 하지를 않나. 또 한 녀석은 나하고 사귀기로 작정해 놓은 주제에 툭하면 삐치고 토라지면서 짜증나게 하질 않나. 또 한 놈은 힐링 능력 아니면 당장에라도 쫓아내고 싶고. 그나마 유일하게 나한테 사심 없이 충성스런 녀석은 사실은 내가 그 처자식을 몰살시킨 철천지원수 관계니…….
열불이 나서 슬그머니 인상을 쓰자 란슬링이 슬쩍 다쓰에게 말을 걸었다.
“야! 다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쉬익! 우영한테 아부하고 앞으론 잘하겠다고 해라. 쉬익! 그러면 혹시 아냐. 교황청에 널 안 데리고 갈지도……. 쉬익!”
“……?”
이것 봐라, 교황청에 안 데려갈지도 모른다는 말에 다쓰 자식의 두 눈이 번쩍 뜨이네?
그래서 난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란슬링 말이 맞다. 내 말 한 가지만 들으면 교황청에 널 안 데려가는 걸 고려해 볼 수도 있다.”
“그게 뭡니까?”
어절씨구. 어젯밤에 붙잡혀서 늘씬하게 맞은 이후 처음으로 입을 여는군.
교황청에 안 데려갈 수도 있다는 한마디가 그리도 솔깃하냐?
“네가 교황청에서 어떤 짓을 했던 건지 실토해 봐라.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말이지. 그거 말하면 널 교황청에 데리고 가는 건 재고하겠다.”
“…….”
“다시 묵비권 행사냐? 어쩔 수 없구나. 교황청에 가서 물을 수밖에. 그러니 계속 입 처닫고 있으렴.”
죽어도 자기가 한 짓을 밝히는 건 싫은 거로군.
다시 입을 다무는 다쓰에게 열 받은 나는 이를 아드득 물었다.
어디 누가 이기나 두고 보자!
“모두 다섯 분이신가요?”
“그렇죠. 세 명과 두 마리, 아니, 다섯 명이 맞습니다.”
내 말에 고개를 갸웃하던 성문 앞의 경비병은 묶인 채로 말에 실려 있는 다쓰를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말에 실려 있는 사람은 왜 그런 겁니까?”
“네, 교황청에 들어가는 사람 중에 묶인 채로 말에 실려 가는 사람은 지금까지 없었다는 말을 듣고, 그럼 자기가 최초로 한번 해 보겠다며 저러는군요. 유달리 도전 정신이 강한 사람이라서.”
“도전 정신치고는 상당히 쓰잘머리 없는 도전 정신이군요. 어쨌거나 좋습니다. 다섯 분 모두 교황청의 영역으로 들어오시는 걸 허가하겠습니다. 주신 이르하임의 가호가 있기를!”
“감사합니다. 주신 이르하임의 가호가 있기를!”
교황청으로 들어가는 성문 입구를 통과한 우리는 순례자들로 가득한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다 조핀과 만나기로 약속한 여관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이미 조핀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도착하셨군요. 그래 망혼의 기사 던전은 제대로 털어먹고 오셨……. 아니, 제대로 탐험하고 오셨는지요?”
“물론입니다. 조핀 님도 랑케 님과 만나서 일을 잘 처리하셨는지요.”
“물론이죠. 잠적 도피 중이신 국왕 전하도 뵙고 가뎀 왕국을 우리 마토스에서 몰아낼 계획도 좀 더 진전을 시켰습니다. 아니, 그런데……. 다쓰 님은 왜 저런 상태입니까?”
조핀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난 짐짓 한숨을 크게 쉬면서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훗! 재미있겠군요.”
“재미있다뇨?”
짜증나는데 이 아저씨가 지금 뭔 소린가 하는 표정으로 조핀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조핀은 싱긋 미소 지었다.
“다쓰 님은 팔라딘이었으니까 교황청에서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알아보려면 교황청 소속 성기사단에 가면 됩니다. 그곳에 가면 아주 자세하게 알려 줄 겁니다.”
아드드드드득!
조핀이 말을 마치자마자 다쓰가 이를 바드득 가는 소리에 우린 기겁했다.
다쓰 녀석, 묶인 상태에서도 이를 아드득 갈면서 조핀을 쏘아보고 있네.
하지만 조핀은 능글맞게 빙긋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훗, 다쓰 님. 그러니까 그냥 털어놓으시지그래요. 그럼 우영 님이 그곳에 안 데려갈지 혹시 압니까?”
“싫어!!! 절대로 싫어! 그리고 우영이 그곳에 날 안 데려갈 리가 없어! 다 털어놓으면 도리어 더 데려가고 싶어 할 거란 말야! 그러니 날 죽여! 차라리 죽이라고, 이것들아!”
조핀의 말에 다쓰 녀석은 묶인 상태에서 마구 몸부림을 치면서 고래고래 악을 써 댔다.
와……. 이 자식 좀 봐라?
이거 X-BOX나 닌텐도 Wii 안 사 준다고 백화점 매장에서 울고 뒹굴며 패악 떠는 초딩 저리 가라다.
훗, 결정했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파티의 중요한 전력이니까 가능하면 다쓰가 원하는 대로 해 줄 마음도 있었거든.
근데 이따위로 꼴사납게 날뛰면 괘씸해서라도 니가 하자는 대로는 못 해 주지.
각오해라, 다쓰!
Part 9.다쓰의 비밀(1)
“여기가 성기사단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오셨는지요?”
“이곳의 기사단장님을 뵈러 왔습니다만.”
교황청의 팔라딘들의 거처 성기사단.
나는 파티원들과 함께 입구에서 방문 요청을 하는 중이다. 다쓰 녀석도 물론 우리와 함께 있다.
도살장에 들어가는 소처럼 죽을상을 쓰고 있구먼.
입구를 담당하는 팔라딘은 앳된 모습인 걸로 봐서 성기사가 된 지 얼마 안 된 모양이다.
“기사단장님과 사전 약속을 하지 않으셨으면 만나실 수 없습니다만…….”
“다쓰를 데리고 왔다고 말씀해 주세요. 그러면 들여보내 주실 겁니다.”
“다쓰가 누군데요? 정확한 이름을 말해 주셔야지, 애칭으로 말씀하시면 누군지 모를 수가 있습니다.”
“정확한 이름을 말하자면 다쓰…… 다쓰…… 다쓰…… 쯧! 이름이 다 기억이 안 나네. 야, 다쓰 너 풀 네임 말해 봐라.”
“…….”
“말 안 할래?”
“…….”
내가 채근했지만 다쓰는 입을 굳게 다물고 ‘돌았냐! 내가 너 원하는 일을 해 주게?’라는 표정을 지었다.
“할 수 없군. 야, 란슬링, 다쓰 가방 이리 갖고 와라. 그 안에 뭐가 들어 있나 한번 보자. 구경할 사람들 많으니 여기서 한번 활짝 열어 보자고.”
“다쓰팜스칼로프마이엘에트스트라프!”
란슬링이 가방을 여는 시늉을 하자 다쓰 입에서 총알처럼 자신의 풀 네임이 튀어나왔다.
나는 경비병에게 말했다.
“들으셨죠? 기사단장님께 연락해 주세요.”
“저……. 다쓰…… 뭐라고요? 죄송하지만 한 번만 더…….”
“훗! 이것 참……. 방문객 이름도 한 번에 기억 못하면서 어떻게 입구 담당을 하고 있습니까? 딱 한 번만 더 말씀드릴 테니 잘 들으세요.”
하지만 멍청한 경비병 녀석은 다섯 번이나 다쓰의 풀 네임을 더 듣고서야 기사단장에게 그 이름을 통보했고 우리는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아니, 이게 누구냐?”
“너 잘 만났다!”
“다쓰, 이 자식! 여기가 어디라고 그 뻔뻔스런 낯짝을 들이미는 거냐?”
“너를 죽여서 우리 팔라딘들의 명예를 회복해야겠다!”
이거 살벌하네. 기사단 내부의 중앙 홀. 열 명 정도의 팔라딘들이 수련을 하고 있다가 우리 파티에 섞여 있는 다쓰를 발견하고는 저주와 욕설을 퍼부으며 우르르 몰려왔다.
개중에는 칼을 빼 들고 달려드는 녀석도 있었다.
다쓰 이 녀석, 얘네들한테 뭔가 단단히 잘못하긴 한 모양이군. 두 눈을 질끈 감고 아무 소리도 않고 있는 거 보니깐.
난 슬쩍 앞으로 나서서 그들을 만류했다.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우린 기사단장을 만나러 온 사람이오! 다쓰하고 할 말이 있으면 나에게 허락부터 받아야 한다는 말이지!!”
내 말에 그들은 팔라딘답지 않게 두 눈을 부라렸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파티를 데리고 기사단장의 방으로 향했다.
“…….”
교황청 산하 팔라딘들의 총수이자 성기사단의 단장인 레디언트는 자기 방에 우리가 들이닥치자 대뜸 다쓰를 보면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럴 수가……. 넌, 다쓰 아니냐?”
“우영이라고 합니다. 레디언트 단장님.”
“다쓰와는 어떻게 되시는 사이신지?”
“다쓰는 제가 이끄는 파티의 파티원입니다. 그의 공에 힘입어 우리 파티는 성공적인 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
내 말에 레디언트는 ‘절대로 못 믿어!’라는 표정으로 다쓰를 흘깃 보았다.
하긴 나도 별로 안 믿기는군. 다쓰 녀석의 평소 때 모습을 생각하면은.
“사실 처음엔 전혀 신뢰가 안 갔습니다만, 그래도 이 친구가 할 때는 하더라고요.”
“…….”
내 말에 다시 한숨을 푹 쉬며 다쓰를 바라보는구먼. 그 눈길에는 대략 분노+회한+증오+연민+괘씸 의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좌우간 우리도 손님은 손님인지라 레디언트는 팔라딘들을 시켜서 차를 내오게 했다.
“드시지요!”
근데 차 심부름을 하는 팔라딘 녀석까지 슬쩍 다쓰를 노려보면서 나가는군.
레디언트는 착잡한 표정으로 다쓰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나에게 돌렸다.
“우영 님이라고 하셨던가? 당신은 다쓰가 왜 이렇게까지 이곳에서 미움받는지 궁금하지 않으시오?”
“그러니까……. 다쓰가 평소 동료 팔라딘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갔을 때마다 그들의 부인이나 여동생의 속옷을 열심히 수집해서 보관해 왔는데……. 어느 날 그게 들통이 나서 소동이 벌어진 거 아닌가요? 단순한 다쓰의 취미 활동으로 간주되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렇지가 못했겠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집한 속옷의 주인인 여자들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상상했을 겁니다. 그 결과 그녀들은 다쓰와 이상한 관계를 가진 것이 아닌가 의심받았고, 추문이 나서 고통을 겪었으며, 심지어 자살을 시도한 여자들까지 있었고……. 그녀의 오빠나 남편인 팔라딘들은 그 때문에 이중으로 명예에 큰 상처를 입었고 말이죠. 그 결과 다쓰는 집중적인 비난의 표적이 되어 결국 이곳에 있을 수가 없게 되어 쫓겨났겠죠…….”
“!!!”
“!!!!!!”
내 말에 다른 파티원들은 눈만 껌벅껌벅하면서 고개를 갸웃했지만 단 두 사람만은 입을 쩍 벌리며 놀라워했다.
“우영 형님, 그걸 어떻게!!!”
“다쓰, 니가 미리 얘기했던 거냐?”
“전혀 아닙니다! 레디언트 단장님!”
다쓰가 강하게 부정하자 난 피식 썩소를 날렸다.
“대충 머리 굴려 보니 그거밖에는 니가 여기 안 오려는 이유가 없더라고. 그리고 너 여기서 그 책임을 물어 파문되었겠지? 지금은 팔라딘이 전혀 아니지? 지금도 팔라딘인 것처럼 우리한테 큰소리쳤던 거 다 구라지?”
“…….”
내 말에 다쓰는 고개를 푹 떨구고 이를 아드득 물었다.
훗! 역시 그랬군.
사실 다쓰는 자신이 팔라딘, 성기사임을 엄청나게 자부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녀석이었다.
그런데 사실은 파문당해서 이제는 전혀 팔라딘이 아닌 게 우리에게 밝혀지는 게 죽기보다 싫었겠지.
아마 동료나 상관의 부인이나 누이동생들의 속옷을 수집하다 들켜서 큰 말썽을 일으켰던 것보다 우리에게 그 일이 알려지는 게 더 싫었던 걸 거다.
“나이도 많지 않은 분이 꽤 예리하시군.”
레디언트가 감탄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후훗! 이 아저씨 사람 볼 줄 아는군.
이왕 칭찬하려면 조금 더 칭찬해 줘도 되는데.
“사실 제가 여길 찾아온 이유는 은밀히 의논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섭니다만…….”
“은밀히?”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건 저뿐만 아니라 교황청으로서도 꽤 도움이 되는 일이니까요.”
“으음…….”
그 말에 레디언트는 나와의 독대를 허락했다.
파티원들을 모두 옆방에 가 있게 한 다음 나는 이곳을 찾은 용건을 털어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