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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3권(70화)
Part 9.다쓰의 비밀(2)
“교황청에서 전나세란 자를 공적으로 지목하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전나세를 잡는 일에 진척은 있습니까?”
“솔직히 말하면 그다지 진척이 없소. 어린애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어린애의 탈을 쓴 악마거나 대악당이라고 모두들 보고 있소. 애초에 우리 교황청의 그 삼엄한 경계를 뚫고 성배에 오줌을 눈 것만 봐도 그렇소. 그게 어디 코흘리개 어린애가 할 수 있는 일이겠소. 이건 우리 교황청과 이르하임 신을 모독하려는 아주 계획적이고 악의적인 짓이지, 절대로 어린애의 돌발적인 장난 따위가 아니라고 생각하오.”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경이 이노무 자식, 현실 속에서는 천덕꾸러기였는데 게임 세계 속에선 엄청 높게 평가받고 있구먼.
물론 좋은 쪽으로의 평가는 아니다만.
레디언트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더 난감한 건 그자가 우리 교황청과 외교 채널이 없는 암흑 제국으로 잠적한 것 같다는 사실이오. 우리 팔라딘은 그곳에 들어갈 방법이 없으니 말이오. 그렇다고 교황께서 정식으로 공적으로 지목한 자의 추적을 포기할 수도 없고.”
레디언트가 참 난감하다는 투로 말하자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제가 제안을 하나 하려고 합니다. 교황청의 고민을 풀 수 있는 제안을 말이죠.”
“제안?”
“훗! 우리 파티가 그 전나세를 해치워 드린다면 어떻습니까?”
“당신들이?”
레디언트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마치 내 실력을 가늠이라도 해 보겠다는 것처럼.
“으음……. 나쁜 이야기는 아니군. 하지만 공짜로 그 일을 해 주겠다는 건 아닐 테고…….”
“물론입니다. 이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습니까? 가는 게 있으면 당연히 오는 게 있어야죠.”
“맞는 말이오. 그래, 그대가 우리 교황청에 원하는 게 뭐요?”
레디언트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나는 빙긋 미소 지었다.
“챔피언의 컵이라는 게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챔피언의 컵이라고!! 설마 그 컵을 달라는 거요?”
레디언트는 입을 쩍 벌리고 당황스러워 했다.
그럴 만도 하지.
챔피언의 컵은 기사도의 화신이나 다를 바 없는 란그린을 상징하는 기념물처럼 되어 버렸다. 교황청은 물론 교황청을 보위하고 기사도를 숭상하는 팔라딘들에게는 그 의미가 무척 클 거라는 건 자명했다.
나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아주 달라는 건 아니거든요. 잠시 빌려 주시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빌려 준다고?”
“그럼요. 빌려 갔다가 잠시 쓰고 곧 돌려 드릴 겁니다. 교황청으로서는 공적 전나세를 힘들이지 않고 처치하면서도 잃을 건 전혀 없는 거죠. 이 정도면 그쪽에는 매우 유리한 제안 아닙니까?”
“으음…….”
내 말에 레디언트는 구미가 당기는 표정이었다.
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망혼의 미로 던전에서 만난 망혼의 기사 란그린은 분명히 말했다. 챔피언의 컵에서 자신의 피의 흔적을 깨끗이 지워 버리겠노라고. 가지거나 파괴하는 게 아니고 말이지.
그러니까 란그린의 피만 지워지면 도로 챔피언의 컵은 내가 이곳에 돌려주면 그뿐이라고.
그리고 재경이 자식은 어차피 셀라인 공주의 의뢰로 처치해야 하는 거고.
뭐 셀라인 공주의 의뢰가 없었어도 내가 그 녀석 캐릭을 여기서 말소해야 현실로 데려올 수가 있는 거니까.
그러니 나로서는 돌 하나로 두세 개의 표적을 잡는 효과를 볼 수 있는 거지.
이렇게 하면 챔피언의 컵을 훔치려고 교황청에 무리하게 침입할 필요도 없고 말이야.
그렇게 보면 돌 하나로 두 개가 아니라 세 마리의 새를 동시에 잡는 거로군. 흐흣!
한참을 더 생각하던 레디언트는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하지!”
“그럼 정식으로 저에게 전나세 처치를 의뢰하시는 건가요?”
난 다짐하듯 물었다.
퀘스트 발생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말이지.
띠리링 하는, 언제 들어도 가슴 짜릿짜릿한 음향과 더불어 창이 떴다.
- 전나세를 처단하라! -
교황청을 지키는 팔라딘들의 캡틴 성기사단장 레디언트가 교황청에서 공적으로 지목한 전나세를 처단해 줄 것을 요청했다. 처단의 방법은 체포해서 교황청에 인도하는 것과 살해하는 것 어느 쪽을 택해도 관계없다.
기한 : 6개월
보상 1 : 챔피언의 컵을 1주일간 빌려 준다.
보상 2 : 성기사단에서 파문당한 팔라딘 다쓰팜스칼로프마이엘에트스트라프에게 팔라딘의 지위를 다시 부여한다.
퀘스트 등급 : 1급
허걱!
이거 뭐 이리 사람 벙 찌게 만들지?
보상이 달랑 내가 요구한 챔피언의 컵을 빌려 주는 거 한 가지뿐이냐?
보상 2도 있지 않느냐고?
하지만 보상 2는 엄밀히 말하면 나한테는 별로…… 아니지 별로가 아니고 전혀 도움되는 일이 아니니까 문제지.
다쓰 녀석에게 다시 팔라딘 자격이 주어지든 아니든 지금하고 달라질 건 없을 테니까.
파문당했다가 팔라딘의 지위에 다시 오른다고 해서 그 극성맞은 개김성이 사라질 것도 아니고 말야.
명색이 교황청쯤 되면 팍팍 쏴야지 뭐가 이런지 모르겠네.
내가 불만에 찬 눈으로 레디언트를 보자 그는 민망한 듯 웃었다.
“우리 교황청은 주신 이르하임의 은총만으로 살아가는지라 가진 게 별로 없소. 그러니 우영 님께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흥, 가진 게 없기는 개뿔.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교황청의 주교들께선 몰려드는 헌금으로 쏠쏠히 배불리고 산다고 하더라만, 가진 게 없긴 뭐가 없냐.
하지만 여기서 그런 거 따져 봐야 나만 이상한 놈이 되니 어쩔 수 없지.
챔피언의 컵을 손에 넣는다는 방문 목적을 달성한 것만으로 만족해야지.
나는 레디언트에게 인사를 하고 그곳을 나섰다.
“크흑! 우영 형니이이이이이이임!!”
다쓰 녀석은 눈물과 콧물을 동시에 철철 흘리며 나에게 달려들어 기쁨의 함성을 터뜨렸다.
파티와 함께 숙소로 돌아온 내가 잔뜩 폼 잡으면서 말했거든.
성기사단장 레디언트에게서 받은 퀘스트를 성공하면 다쓰한테 팔라딘 자격을 다시 주기로 약속받았다고 말야.
내가 먼저 요청한 건 절대로 아니다만 그걸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지.
예상했던 대로 다쓰 녀석이 엄청 감동하는구먼. 팔라딘인 거 하고 아닌 게 이 녀석한테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인 것 같다.
근데 눈물은 참아 주겠다만 내 옷에 콧물은 그만 묻히면 안 되겠냐?
“훗! 다쓰. 다시 팔라딘이 될 가능성 열린 게 그토록 좋으냐? 그게 그토록 너한테는 중요한 거냐?”
“당연하죠. 우영 형님. 중요하고말고요. 저에게 팔라딘인 게 빠지면 도대체 뭐가 남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무슨 소리 하냐. 쉬익! 엄청나게 여러 가지 남지 않냐. 쉬익! 시도 때도 없이 발휘되는 개김성, 개 같은 성격, 여자 속옷이나 밝히는 변태적인 취미에다, 팔라딘이었다고는 절대로 안 믿어지는 싸가지 없는 매너까지 말이다. 쉬익!”
“뭐야, 이 도마뱀 대가리야! 정녕 내 칼 맛을 보고 싶은 거냐! 그러나 오늘은 너무 기쁘니까 특별히 참아 주겠다.”
두 녀석이 그렇게 찧고 까부는데 케브라는 어쩐지 어깨가 처져 있군.
“케브라, 너 왜 그러냐?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냐?”
“아닙니다, 우영 님.”
“짜식, 니가 기분이 처져 있으면 나도 덩달아 우울해진다는 걸 알아야지. 뭐, 마음에 걸리는 게 있으면 말해라. 파티장인 내가 적극적으로 해결해 주마.”
내가 부드럽게 말하자 케브라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사실 교황청에서 챔피언의 컵을 빼내는 작업에 저의 스킬을 최대한 발휘해서 파티에 보탬이 되려고 마음먹었더랬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일이 간단히 해결되어 버리니 너무 맥이 빠지는군요.”
케브라가 말을 마치자 다쓰가 버럭 성질을 냈다.
“뭐가 어째! 이 바퀴벌레 같은 자식아! 넌 일이 잘 되어서 내가 다시 팔라딘이 되는 게 그리도 못마땅하냐! 그냥 챔피언의 컵을 교황청에서 훔쳐 냈어 봐! 내가 다시 팔라딘이 될 기회는 전혀 없었을 거 아냐!”
“흥! 팔라딘이 밥 먹여 주냐! 파티한테는 파티 공통의 목표를 달성하는 게 천배는 더 중요하다!”
두 녀석이 언성을 높이자 나는 뜯어말린 다음 케브라에게 물었다.
“근데 케브라. 니가 도대체 무슨 수로 챔피언의 컵을 훔쳐 낼 작정이었다는 거냐? 너한테 어떤 특수한 스킬이 있길래?”
정말로 궁금해서 묻는 말이었는데 케브라는 내가 그걸 물어 준 게 무척 기쁜 듯했다.
가만 보니 이 바퀴벌레 녀석도 꽤나 과시욕이 있구먼.
“우영 님께서 그 질문을 해 주시길 기다렸습니다! 그럼 저의 특수 스킬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케브라는 벌떡 일어서더니 바바리코트를 활짝 벗어젖히고는 손에 무언가를 척 잡았다.
엇?
아니, 저것은…….
삽! 케브라의 손에 들린 것은 삽이었다.
케브라는 그 네 자루의 삽으로 땅을 마구 파기 시작했다. 일진광풍이 일 정도로 맹렬한 동작으로 말이지.
쿠콰콰콰!
푸파파파파파!
허거거거걱!
이럴 수가 있나.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케브라의 삽질!
그 삽질에 파티원들은 모두 입을 쩍 벌리고 경악했다.
맹렬하게 흙 파는 소리와 더불어 숙소의 바닥을 순식간에 파고들던 케브라의 모습이 구멍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열심히 흙 퍼내는 소리는 점점 더 멀어져 갔고, 그 소리도 5분 뒤에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아니, 이 자식이 도대체 어디까지 파 들어간 거지?”
“정말 잘 파네요. 그죠, 오빠?”
“나도 놀랐다. 쉬익!”
“훗……. 정말 대단한 바퀴벌레에, 대단한 삽질입니다.”
“기가 막히네. 어찌나 삽질이 빠른지 네 손으로 휘두르는 삽이 아예 보이지 않을 정도였으니.”
하나같이 입을 모아 감탄을 터뜨렸다.
아니, 근데 이 바퀴벌레 자식은 도대체 어디까지 파 들어갈 속셈이람.
적당히 삽질하고 이제는 돌아올 것이지. 여관 주인이 행여나 들어왔다가 바닥 파 제낀 거 보면 길길이 날뛰면서 쫓아내려고 할 텐데…….
벌컥!
갑자기 문 열리는 소리에 난 여관 주인이 들어오는 줄 알고 움찔했다.
그런데 여관 주인이 아니고 케브라군.
네 자루 삽을 보무도 당당하게 잡은 채 흙투성이가 되어 돌아왔다.
“케브라, 너 도대체 어디까지 파 들어갔던 거냐?”
내가 벙 쪄서 묻자 케브라는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훗! 교황청에 들어오는 입구인 성문까지 파고 왔다면 믿으시겠습니까?”
“헉! 너 정말 대단하구나. 그 짧은 시간에 거기까지 팠단 말야?”
나는 놀라서 혀를 내둘렀다.
살다 살다 이 정도로 삽질 잘하는 녀석은 처음 보는군.
케브라 이 녀석, 정말로 챔피언의 컵을 삽질로 훔쳐 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제 그럴 필요는 사라졌지만.
그래도 뭔가 다른 퀘스트를 할 때는 이 스킬이 엄청 필요하게 될 거라는 예감이 팍팍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