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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3권(71화)
Part 9.다쓰의 비밀(3)


“이게 네가 자부하는 삽질 스킬이냐?”
“그렇습니다. 1단계는 삽질계의 새싹, 2단계는 삽질계의 기린아, 3단계 삽질계의 대스타, 4단계는 삽질계의 영원한 오빠입니다. 마지막 4단계가 궁극적인 삽질 마스터인 거죠. 저는 3단계 삽질계의 대스타까지 도달한 상태고요.”
“흠, 잘은 모르겠다만 3단계까지 올리는 게 무지 힘든 스킬로 보이는데?”
“그렇습니다! 엄청 힘들고 다른 종족이라면 불가능에 가깝죠. 하지만 저는 손이 네 개라서 삽 네 개로 삽질을 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빠른 시간에 3단계까지 오르고 이제 궁극의 4단계 삽질계의 영원한 오빠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케브라는 그야말로 자부심에 가득 차서 자랑스럽게 말했다.
난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견스러워 했다.
하지만 모두가 다 나와 같은 생각은 아니었나 보다.
“흥! 그래 봐야 삽질은 삽질일 뿐이지. 삽질계의 스타는 무슨 얼어 죽을! 삽질 잘한다고 바퀴벌레가 개똥벌레로 바뀌기라도 하냐?”
“그렇다. 쉬익! 정말로 삽질하고 자빠졌다. 쉬익! 여관 주인이 볼까 봐 겁나니 이 흙 파낸 거나 빨리 메워라. 쉬익!”
내가 참 기특하다는 눈으로 케브라를 보자 다쓰와 란슬링이 또 질투하면서 케브라를 갉는군.
쪼잔한 자식들, 여자도 아닌 주제에 시기하기는.
케브라는 확실히 쓸모가 많은 놈이다. 어쌔신으로서의 암습 능력에다가 은닉과 잠입에도 뛰어나고 이런 천부적인 삽질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니…….
파티원으로서 정말 놓치기 싫은 녀석이지만 내가 저질러 놓은 마리사의 물방앗간 사건 때문에 데리고 있기도 꺼림칙하니 참 딜레마로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조핀이 슬며시 말을 걸어왔다.
“우영 님, 그러면 여기 교황청에서의 볼일도 모두 끝난 겁니까?”
“그렇죠. 챔피언의 컵을 얻을 목적으로 온 거고 그게 잘 해결되었으니까요.”
“그럼 이제 슬슬 암흑 제국을 향해 움직여 보는 게 어떨까요? 다른 곳에 더 갈 일이 없다면요. 암흑 제국으로 들어가려면 니녹스 산맥을 넘어야 하니 내일이라도 당장 그곳으로 향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음……. 하긴 마토스 국의 국왕 투르펜이 의뢰한 퀘스트에 전력을 기울일 시점이긴 하군.
난 조금 더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물론 그렇게 해야죠. 근데 딱 한 군데만 더 들렀다가 그쪽으로 움직입시다.”
“꼭 가야 할 곳이 있으신가 보군요. 그럼 그렇게 하죠. 근데 그곳이 어딥니까?”
“하하……. 사실은 비기닝 시티에 좀 들렀으면 해서요.”
내 말에 조핀은 고개를 끄덕였고 다른 파티원들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유독 케브라의 두 눈이 갑자기 빛이 난다.
“케브라, 너 갑자기 왜 그러냐?”
“우영 님, 지금 비기닝 시티를 방문한다고 그러셨습니까?”
“응, 그런데 왜?”
케브라의 반응에 난 어리둥절했다. 비기닝 시티에 혹시 숨겨 둔 자식이라도 있는 건가?
“그곳에 꽤 능력 있는 도둑 길드들이 있다는 말을 들어서 그럽니다. 개인적으로 좀 의뢰할 일이 있어서 말이죠.”
“…….”
이거 어째 또 가슴 한구석에서 불안한 생각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군.
“케브라, 그 의뢰할 일이 뭔지 내가 알면 안 되겠냐?”
“안 되긴 왜 안 되겠습니까? 글래스 캐슬 옆에 있던 물방앗간에서 내 가족을 처참하게 학살한 주범이 누군가를 찾아내 달라는 의뢰를 하려고 말이죠.”
“…….”
음……. 한동안 조용하길래 이제 죽은 가족들은 잊었나 했더니 아니었군.
하긴 나라도 잊지 못하긴 하겠다만.
근데 이걸 어쩌지.
이 녀석이 도둑 길드에 의뢰해서 지 가족들 몰살시킨 게 나라는 걸 아는 순간에 난 이 게임 하는 거 끝장나게 될 텐데.
이 자식이 나를 죽이고 또 죽여서 로그아웃당하고 또 당하는 사태가 벌어질 테고, 그럼 난 결국 캐릭을 완전히 지울 수밖에 없게 되지 않겠냐고.
잠깐 머리를 굴리던 나는 일부러 쾌활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케브라, 그곳엔 내가 아는 유능한 도둑 길드가 있거든. 내 안면을 이용해서 니가 그곳에 의뢰를 할 수 있게 해 주마.”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역시 우영 님은 파티원들을 소종하게 생각하고 배려를 아끼지 않는 훌륭한 파티장이십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그, 그러냐?”
그렇게 감사하면 니 가족 죽인 범인 추적하는 건 중단해 주면 안 되겠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려고 한다.
별 수 없다. 미라쥬 길드에 케브라를 소개해 주는 수밖에.
물론 미라쥬 길마인 이사도라에게 케브라의 의뢰를 사실과 다르게 알려 주라고 말해야지.
제길, 애초에 그 퀘스트를 맡을 때 창에 뜨길 ‘바퀴벌레는 밟아 터뜨리면 기분 찝찝하게 될 거다!’라고 하더니만…….



Part 10.불륜의 씨앗?(1)


드디어 도착했다!
비기닝 시티의 중앙 광장에는 아기자기하고 앙증맞은 분수대가 무지갯빛을 만들어 내며 물을 뿜어내고, 길에는 주황색 벽돌이 곱게 깔려 있었다.
처음 이 게임을 시작할 때 그랬던 것처럼 곳곳에서 좌판을 늘어 놓고 장사하는 사람들과 흥정하는 사람들,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로 활기에 넘치는 모습이었다.
“이거 마치 고향에 온 기분이군. 세영아, 그렇잖냐?”
“…….”
내 말에 세영이는 입을 다문 채 별 반응이 없다.
그러고 보니 비기닝 시티에 오기로 한 때부터 별로 기분 좋은 표정이 아니었던 것 같다.
왜 그러는 걸까?
아마 이사도라 때문인가 보군.
이곳에 다시 왔으면 미라쥬 길드를 방문을 안 할 수가 없으니 말이지.
왜냐하면 세영이는 미라쥬 길드 부길마 자리를 완전히 사직한 건 아니거든.
그러니 미라쥬 길드에 얼굴을 들이밀면 이사도라를 만나서 상관 대접을 해야 하는 데 그게 싫은 걸 테지.
뭐 품행 불량한 날라리 여고딩한테 굽신거리는 게 기분 좋을 리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어쩔 도리 없다.
그곳에 안 들를 수는 없으니까.

“오옷,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부길마님! 그리고 길드전의 학살마 우영 님! 그리고 그 외 분들이 아니십니까?”
“…….”
미라쥬 길드의 입구를 지키는 경비병 녀석이 우릴 보더니 제 딴엔 반가운지 호들갑을 떨어댔다.
근데 부길마라고 확실히 직함이 불리운 세영이 빼고는 모두 표정이 떨떠름하군.
제길……. 길드전의 학살마란 호칭은 조금 그렇지 않냐? 공식적으로 붙여진 거라서 어쩔 순 없겠다만.
그래도 난 조금 낫군.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고 ‘그 외 분들’로 불리워진 파티원들은 일제히 인상을 썼다.
하지만 경비병 갈궈 봤자 뭐하겠냐고. 나는 파티원들을 데리고 성큼 길드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성큼 로저의 방문을 열어젖혔다!
“이야! 이게 누굽니까! 로저 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신혼 재미에 깨가 쏟아져서 정신 못 차리시겠……죠!”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호들갑스럽게 떠들던 나는 말을 흐려야 했다.
세영이와 다른 파티원들도 당황한 표정이다.
왜냐고?
로저가 저번에 봤을 때하고는 완전히 다른 상태라서.
고개를 떨구고 침대에 앉아서 술병과 잔을 들고 있는 폼이 제법 마셔 댄 것 같다.
근데 얼굴은 면도도 안 한 듯 온통 수염투성이고 뭔 고민이 있었던 건지 얼굴은 퀭하고 다크서클이 가득하다.
옷은 며칠을 안 갈아입었는지 퀘퀘한 냄새까지 나는군.
휴, 이것 참. 이케루스는 너무도 현실적으로 구현되어 있어서 실제 생활하는 그대로의 모든 상황을 다 만들어 주는군.
면도 안 하면 수염이 자라고, 세탁을 따로 안 시키면 퀴퀴한 냄새까지 풍기게 되어 있으니까.
어쨌거나 지금 로저의 상태는 완전 폐인 모드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길래 새신랑이 저런 꼴이지?
내가 아무리 말을 붙이려 해도 로저는 말없이 나를 지그시 노려보다가 속이 터지는 듯 술을 마구 들이킬 뿐이었다.
머쓱해진 나는 그냥 인사만 꾸벅하고 방을 나와 버렸다.
뭔 일이 있었는지는 이사도라한테 물어봐야겠구먼.
로저의 방을 나와 2층에 있는 이사도라의 집무실로 향했다.
근데 계단에서 웬 갓난아이를 어르고 있는 간부2와 맞닥뜨렸다.
“까꿍∼ 우리 예쁜 아기∼ 얼렐레 까꿍 까꿍∼”
“…….”
욕을 마구 내뱉으면서 개기다가 이사도라한테 참수당했던 간부2가 있는 재롱 없는 재롱 다 떨면서 애기를 보고 있는 광경이라니.
위화감이 들어도 상당히 심하게 드는군.
이 인간도 게임 속에서 결혼해서 애를 만든 건가?
근데 왜 자기 애를 직장에 와서 보고 있는 거지?
공사도 구분 못하는 인간 같으니.
그러니까 이사도라한테 참수나 당하지.
한심한 눈으로 쏘아보고 있자니 간부2도 우리를 발견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헉!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학살마와 그 일당들 아니십니까?”
“…….”
나는 열이 뻗쳐서 말없이 쏘아보았다.
‘길드전의’란 단어도 빼고 그냥 학살마냐? 그거 붙이고 안 붙이고에 따라서 얼마나 느낌이 다른 줄이나 아는 거냐고.
졸지에 ‘학살마의 일당’이 된 파티원들도 간부2를 째려보았다.
근데 세영이는 여자라서 그런지 생긋 웃으며 애기를 보고 어르기 시작했다.
“어머∼ 참 귀여운 애기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하하하 제가 요즘 이 애 보는 재미로 게임을 한다니깐요. 아, 세상에 도둑 길드에 가입해 갖고선 어쩌다 애를 보는 신세가 되었는지 황당한데, 그래도 막상 애가 귀여워서 애 보는 게 지루한 생각이 전혀 안 드는 거 있죠?”
보고 있자니 어째 짜증이 나는지라 슬그머니 쏘아붙였다.
“아, 당연하잖습니까. 자기 애니까 지루한 생각이 안 들고 귀여운 거죠.”
“내 아이 아니거든요.”
“…….”
난 어이가 없었다. 자기 애가 아니면 그럼 남의 집 애를 유괴해서 보고 있는 거냐?
근데 애기 얼굴을 유심히 보던 세영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상당히 이상하네…….”
“응? 넌 또 그게 뭔 소리냐, 세영아. 뭐가 이상하단 건데?”
“이 애기 어쩐지 우영 오빠하고 비슷하게 닮았어요.”
“…….”
난 얘가 무슨 헛소리를 하나 싶어서 세영이를 째려봐 주었다.
근데 파티원들은 헛소리로 생각 안 했는지 일제히 애기한테 우르르 몰려가서 애기 얼굴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정말이다! 우영과 꼭 닮았다. 쉬익!”
“훗! 저런 얍삽하고 치사스럽고 때려 주고 싶은 인상을 한 남자와 닮다니 너도 참 불쌍한 녀석이구나.”
“그것참 안 그런 척하면서 애를 만들고 다니다니, 우영 님도 겉으로는 아닌 척하면서 은근히 호박씨 까는 스킬이 뛰어나신 분이었군요. 존경스럽습니다.”
아니, 근데 이것들이 정말…….
“모두 돌았냐? 왜 멀쩡한 총각을 애 아버지로 만들고 지랄들이냐고! 쓰잘머리 없는 농담 따먹기 할 시간 없으니까 빨랑들 움직여!!”
나는 화가 나서 파티원들의 등을 마구 떠밀어서 이사도라의 방으로 향했다.
로저가 왜 저렇게 폐인 모드로 있는 건지 간부2한테 물어보려던 것도 잊고서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