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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3권(73화)
Part 10.불륜의 씨앗?(3)


“지금 말해 주긴 곤란한가 보군. 그렇게 하게. 나야 물건을 완성해 주고 돈을 받으면 되는 거니까. 그리고 물건을 완성하는 과정의 즐거움이 대장장이로서의 내 보람이지.”
장인 정신에 투철한 대장장이답게 고든은 고개를 끄덕이며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아직 아이템들을 다 꺼내놓은 게 아닌데…….
“저……. 고든 영감님. 아직 더 있거든요.”
“엉? 수리할 아이템들이 또 있다는 말인가?”
“네, 저 이것들도 부탁합니다.”
나는 어비스 백에서 나머지 잡동사니들을 우르르 쏟아 냈다.
“가만있어라. 이건 식별과 환상 탐지의 안경이구먼. 이건 길 잃은 영혼들의 부츠, 단장의 검. 헉! 그리고 이건 전설로만 전해지는 망혼의 반지가 아닌가? 자네 망혼의 미로에 들어갔었던 건가?”
“네, 꽤 애를 먹기는 했는데 운이 좋아서 괜찮은 것들을 좀 건졌습니다.”
“그렇구먼. 허허, 자네 덕분에 나도 이 대단한 물건들을 만지는 즐거움을 당분간 쏠쏠하게 누려 보겠군그래.”
고든은 연신 웃음을 지으며 눈앞에 널려 있는 아이템들을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신중하게 말을 이었다.
“수리비는 모두 얼마나 드려야 할까요?”
“어디 보세. 숏소드 80개, 방패가 50개, 숏보우 40개……. 이건 도합 790골드. 그리고 데몬 나이트의 투핸디드 소드는 150골드, 랑기스의 숏보우는 내구력을 회복시키는 것 이외에 모양을 새로 단장해야 하니 400골드, 다크 와이번의 껍질이 50개, 뱀파이어의 이빨이 200개, 만티코어의 꼬리가 60개……. 이것들을 모두 가공해서 갑옷과 화살촉 채찍으로 만드는 비용은 모두 1,200골드로군. 식별과 환상 탐지의 안경의 수리비는 60골드, 길 잃은 영혼들의 부츠는 100골드, 단장의 검은 50골드……. 마지막으로 단장의 검은 400골드. 그래서 총 합계가……. 어디 보자. 모두 3,150골드가 되겠군그래.”
“그걸 모두 다 받으실 생각은 아니겠죠?”
“허헛, 아무렴. 자네한테는 특별 할인을 해 줘야 하는 건 나도 알지. 40% 할인이니 1,890골드만 지불하면 되네.”
고든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하는 말이었다.
케파추아라의 눈물을 구해다 주고 메이스의 수리를 할 때 조수 노릇까지 하며 봉사해 준 덕으로 친밀도가 상승해서 생긴 혜택이었다.
“그러면 언제쯤이면 작업이 다 끝나겠습니까?”
“음……. 넉넉잡아 한 달은 필요할 것 같군. 물론 그동안에는 다른 곳에서 의뢰한 작업은 다 취소하고 이 물건들에만 매달려야 하겠지.”
“잘 알겠습니다. 그럼 500골드를 선금으로 미리 드리겠습니다.”
“그래 주면 고맙지. 그럼 한 달 뒤에 오게. 그때 이 아이템들이 완벽한 상태가 되어 있는 걸 보게 될 걸세.”
다른 대장장이한테 맡기는 것보다 월등히 싼 가격으로 아이템 수리와 재료를 병기로 완성하는 작업을 맡긴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고든의 대장간을 나왔다.

“가만있어라, 약속 장소가 이 카페지…….”
이케루스에서 로그아웃을 하고 나온 나는 조 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시내에서 만나기로 하고 서둘러 나왔다.
조 부장은 카페의 구석진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우영 씨, 여깁니다!”
“어쩐지 꽤 오랜만에 뵙는 것 같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하하하. 그래, 조카분을 찾는 작업은 잘 진척되고 있습니까?”
“네, 간신히 재경이의 행적에 대한 단서를 잡아서 열심히 추적하는 중입니다. 그 와중에 다른 일들도 같이 처리를 하게 되어서 힘듭니다만. 뭐, 가상현실 게임이 어차피 그런 거니 그건 감수를 해야겠죠.”
“네, 그러시군요. 이거 우리 왁슨이 도움을 많이 드려야 되는데 그렇지를 못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조 부장은 말과 함께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래? 그렇게 죄송하다면 내가 그 죄송함을 받아 주도록 하지.
“그래서 말인데요. 사실은 왁슨에서 좀 도움을 주셨으면 하는 일이 있습니다.”
“네에?”
“아, 뭘 그리 놀라세요. 절 못 도와줘서 죄송하다면서요. 그래서 도와 달라고 말씀드린 건데 왜 그리 놀라십니까? 설마 말로만 때우시려던 거였습니까?”
“아, 아니. 그게 아니고…….”
내가 빈정거리자 조 부장은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 사람이 실천할 의지 없이 말로만 때우려 들면 안 된다는 거다.
“이건 왁슨 측의 대외적인 이미지도 향상시킬 수 있는 일인데요, 여기 종이에 적은 이 산동네에 공부방을 하나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네에?”
내 말에 조 부장은 어이없어 했다. 하긴 다짜고짜 공부방이라니 이해가 안 될지도 모르긴 하군.
“가상현실 게임 회사한테 공부방을 만들어 달라니 좀 이해 안 되실지도 모르겠네요. 근데 요즘은 가상현실 게임에서 일정 기간 생활해서 레벨을 올리면 그걸 학력 평가 점수에 반영하는 제도가 있지 않습니까? 특히 고레벨이 되는 아이들이면 장학금도 나오고 말이죠. 교육부에서 한 달 전에 그런 제도를 만든 거 조 부장님도 아시죠?”
“그건 그렇습니다만…….”
조 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상현실 게임이 현실과 별 차이 없을 정도로 리얼해지자 게임 속에서 고레벨을 올리는 건 치밀한 두뇌와 행동력, 그리고 원만한 대인 관계를 만드는 인성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그 점에 착안해서 교육부에서는 가상현실 게임에서 고레벨을 올리는 아이들은 실제 생활에서도 우수한 행동을 한 것과 같다고 간주해서 그에 따른 혜택을 주기로 한 것이다.
학력 평가 점수에 반영해서 장학금은 물론 대학 입시에서 가산점을 주는 방법까지 만들어진 거였다.
물론 아무 가상현실 게임이나 다 되는 건 아니다. 현실과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잘 만들어진 극히 일부의 가상현실 게임에만 해당되었는데 이케루스는 물론 그런 게임이었다.
“그러니 산동네에서 사는 불우한 가정의 아이들의 학력 평가에 도움이 되는 일을 왁슨이 해 주십사는 겁니다. 공부방을 만들고 그 건물에다가 학생들이 이케루스를 할 수 있는 설비를 준비해서 집단으로 이케루스를 하게 하는 겁니다.”
“으음…….”
“그러면 그 애들은 가상현실 게임도 즐기고 학력 성취도도 높이고, 왁슨은 사회봉사를 하게 되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두게 되는 거죠. 어떻습니까?”
내 말에 조 부장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반문했다.
“그런데 왜 하필 그 지역의 산동네죠? 다른 곳도 불우한 아이들이 사는 곳은 꽤 있을 텐데…….”
거기에 대한 답변은 좀 궁색하다만 그래도 대답을 아니 할 순 없겠군.
“사실은 제가 잘 아는 게임 속의 지인이 그 동네에 삽니다. 부모 없이 혼자서 동생들을 먹이고 학교에 보내고 애를 쓰고 있는데 제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서요. 자존심이 강한 놈이라 제가 개인적으로 도움을 주려고 하면 안 받으려고 하거든요. 그래서 이런 방법을 생각한 거죠. 그러면 걔 동생들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도 많은 도움을 받을 테니 좋지 않습니까?”
내 말에 조 부장은 한참을 더 생각하다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일단 취지가 좋으니까 제가 한번 사장님께 적극 건의해 보겠습니다.”
“적극 건의하시는 정도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성사되게 해 주세요. 전 분명히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거절은 절대 용납 못한다는 투로 단호하게 말하자 조 부장은 머쓱한 표정이다.
부탁을 안 들어주면 재경이 문제를 가지고 언론사에 달려갈지도 모른다는 뜻을 내가 비치고 있다는 건 이 사람도 뻔히 알 테지.
결국 조 부장은 백기를 들었다.
“휴……. 알겠습니다. 반드시 이 건이 실행되도록 하겠습니다. 실행 안 되면 제가 사표 쓰죠 뭐.”
“조 부장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믿음직하군요. 기대하겠습니다.”
“저, 그런데 그 공부방이 세워지면 운영은…….”
“아, 그건 걱정 마세요. 제가 운영할 거니까 운영할 사람을 따로 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 말에 조 부장은 약간 놀란 표정이었다.
“그럼 게임은 어떻게…….”
“제가 그곳에서 먹고 자면서 게임도 거기서 할 겁니다.”
그 말에 조 부장은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그 지인을 무척 아끼시는가 봅니다.”

조 부장과 헤어진 나는 세영이가 사는 산동네에 도착했다.
공부방을 세울 건물을 알아보려고 말이지.
영세민들과 결손가정이 대부분인 곳이니까 공부방이 만들어지면 분명히 아이들이 많이 몰려들 거다. 그러니 어느 정도 큰 곳을 골라야 한다.
근데 왁슨에서 공부방 안 만들어 주면 어쩔 거냐고?
무슨 소리! 안 만들어 줄 리가 없지. 100% 만들어 준다고.
그거 안 만들어 주면 내가 재경이 일을 언론에 터뜨릴 텐데, 왁슨이 자기 회사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는 걸 택하겠어?
차라리 돈 조금 들여서 공부방 만들어 주는 걸 택하지. 그리고 공부방 만들어 주는 건 자기네 회사 이미지 향상과 선전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니까.
세영이 집으로 향하던 나는 위쪽의 좁은 골목에서 걸어오는 할머니와 마주쳤다.
“아니, 선상은…….”
“할머니는 저번에…….”
“동사무소 직원 선상 아뉴?”
무심결에 ‘반갑습니다, 삥땅 할머니! 그 돈 꼬불쳐서 뭐 사 드셨어요?’라는 말이 나올 뻔했다.
하지만 지금 이 할망구한테 2만원 삥땅친 거 따지는 건 아무 쓰잘머리 없는 짓이다.
“할머니, 혹시 이 근처에 애들을 많이 수용할 수 있는 곳이 있을까요?”
“애들을? 뭐하려고 그러슈?”
할머니는 고개를 갸웃하며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차분하게 설명을 해 나갔다.
“이 동네에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아이들이 공부할 곳을 모 게임 회사의 지원을 받아서 만들려고 말이죠.”
“움메, 그거 좋은 생각이네? 그렇잖아도 공부방이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었는디 모두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이라서.”
“그러니 말씀 좀 해 주세요. 공부방을 할 만한 건물을요.”
“아, 내가 잘 아니께, 나만 따라오슈!”
삥땅 할머니는 신바람이 나서 걸음을 재촉했고 나는 그 뒤를 따랐다.

“흠……. 이 건물이란 말씀이죠?”
“원래 마을 회관이었는데 동네 사람들이 먹고 살기도 바쁜데 마을 회관에 모일 시간이 있어야제. 그래서 이렇게 방치되어서 요 모양 요 꼴 아니겄소.”
가만 보니 제법 크긴 한데 문짝은 녹슬고 지붕은 뚫어진 곳도 있고, 안을 들여다보니 의자와 책상은 먼지가 가득 쌓인 채로 방치되어 있다.
그리고 거미줄도 가득하구먼.
이 마을 회관을 공부방으로 개조하려면 돈 좀 들어가긴 하겠군.
그러나 내 돈 들어가는 거 아니니까 상관없지. 나는 당장 휴대폰으로 조 부장에게 연락해서 마을 회관의 위치를 알려 주고 건물을 인수해서 공부방으로 개조하라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공부방을 할 좋은 장소를 알려 주어서 삥땅 할머니한테 인사를 하고 그곳을 떠났다.
근데 이 할머니가 뭐 또 안 주나 하는 눈으로 바라보는군. 지갑에서 만 원이라도 꺼내서 줄까 하다가 관뒀다.
이러다가 내 돈에 맛 들이면 나중에 공부방 할 때도 계속 찾아올 거 같아서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