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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3권(74화)
Part 11.니녹스 산맥(1)
“하하하핫!”
“…….”
“후후후후훗!”
“…….”
“히히히히!”
“오빠, 어디 아파요?”
“그게 뭔 소리냐. 내가 왜 아픈데?”
“안 아프면 왜 아까부터 계속 실성한 사람처럼 실실 쪼개는 건데요?”
드디어 왁슨이 공부방 개조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책상과 탁자, 집기들이 새 것으로 갖춰지고 내부 장식도 끝났으며 이케루스를 하기 위한 서버와 헤드셋 등 일체의 장비도 마련되었다.
이제 동네 주민들에게 알리고 오픈만 하면 되는 거다.
기분이 좋아져서 이케루스에 접속해서도 실실 웃고 있는데 세영이 녀석이 또 태클이군.
“아니, 사실은 엄청나게 기분 좋은 일이 있어서 말이다. 그걸 생각하니까 계속 웃음이 나오는구나. 정말이지 기쁘고 행복해서 미칠 거 같다 그 말이다.”
“…….”
난 웃다가 놀라서 세영이를 바라보았다.
왜냐고? 이 녀석이 갑자기 날 잡아 먹을 것처럼 하고 바라보고 있으니까.
“헉! 아니, 너 오빠를 보는 눈이 그게 뭐냐! 왜 사람을 그렇게 째려보는 거냐고!”
“바른대로 말해요! 도대체 어떤 여자와 어디서 만나서 사귀기 시작했고, 지금 어디까지 진도 나갔어욧!”
허걱!
아니, 이 자식이 이게 무슨 소리래? 별 엉뚱한 상상을 다 하고 자빠졌네.
“세영이 너 돌았니? 내가 웃고 있으면 다른 여자하고 사귀어서 그런 거라는, 바퀴벌레만도 못한 단순한 상상을 하다니! 너 도대체 아이큐가 몇이냐?”
“우영 님, 저를 부르셨습니까?”
“…….”
화가 나서 세영이를 마구 닦달하는데 등 뒤에서 착 가라앉은 케브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스윽 뒤를 돌아보니 케브라의 표정이 미묘하군.
바퀴벌레의 얼굴 표정을 읽는 건 사람인 나로서는 무리지만 어쩐지 상처받은 표정이 아닌가 싶다.
“쩝, 미안하다 케브라. 바퀴벌레만도 못한 운운은 내 말실수였다! 앞으로는 조심하도록 하마.”
“…….”
사과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케브라의 표정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것 같다.
표정을 읽을 수 없지만 느낌이 뭔가 불만이 있는 것 같은데? 방금 내가 한 발언 때문만은 아닌 것 같은데 도대체 왜 그런 거지…….
앗! 그렇군!
“이런……. 그러고 보니 케브라 너의 의뢰를 미라쥬 길드의 길마한테 말한다는 걸 깜박하고 있었군!”
“이제야 생각해 내셨군요.”
쩝, 역시 그 일 때문에 이러는 거였군.
“말 나온 김에 당장 함께 미라쥬 길드로 가자. 또 잊어 먹기 전에!”
“…….”
음, 이거 분위기가 왜 이렇지?
세영이와 케브라와 함께 미라쥬 길드에 들어선 나는 이사도라의 집무실에 들어갔다.
근데 분위기가 좀 묘하군.
이사도라는 애기를 안고 있고 그 옆에는 로저가 심상찮은 표정으로 서 있다.
여전히 알코울 중독자+폐인 모드로 말이지.
이사도라는 방긋 웃으며 우릴 반겨 주었다.
“어머! 어서 와 우영.”
“마침 있었네. 로저 님도 계셨군요.”
“제가 있어서 죄송하군요, 우영 님. 이사도라만 있었어야 좋으셨을 텐데 말이죠. 이사도라 너도 그렇지 않냐?”
헉, 이거 무슨 말이 이래?
축 처진 어깨에 다크서클이 가득한 얼굴, 원망과 저주가 듬뿍 담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로저.
이사도라와 나를 번갈아 보면서 하는 저 말투는 영락없이 배반당한 남편이 바람을 피고 있는 두 불륜 남녀한테 하는 말투인데…….
지금 로저 성질 건드려 봐야 좋을 거 전혀 없다. 하지만 억울한 누명을 쓸지도 모르는데 가만있을 수야 없지.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로저 님이 계셔서 죄송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저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러게 말이야, 훗! 남자가 찌질하게 속은 좁아터져 가지고!”
“…….”
내 말만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사도라가 한껏 비웃는 어조로 말을 던지자 방 안의 분위기는 삽시간에 싸늘하게 변했다.
견디기 힘들었던 듯 로저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서서 비틀거리며 나갔다. 한마디를 남기면서 말이지.
“우영 님, 남의 화목한 가정에 함부로 돌을 던지면 밤길 가다가 바위에 뒤통수 맞고 즉사하는 수가 있답니다. 명심하세요.”
“…….”
아, 젠장! 찝찝해 미치겠군.
아무리 게임이지만 어째 이런 상황이 연출되냐.
왜 내가 안 한 짓을 가지고 불륜 의심에 이런 원망과 저주를 들어냐 하느냐고.
“그러니까 부인과 자식들을 처참하게 죽인 범인을 찾아 달라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른 희대의 살인마죠. 미라쥬 길드의 정보망이라면 꼭 찾아내 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로저가 나간 뒤 난 케브라의 의뢰를 이사도라에게 말했다.
그리고 이사도라가 질문을 던지자 케브라는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린다는 듯, 등 밑의 날개까지 파닥거려 가며 말했다.
“으음……. 당신의 자식 수백 마리를 때려죽이고 밟아 죽이고 불태워 죽이다니……. 그것도 방앗간 건물과 함께……. 확실히 이건 초 사이코패스의 소행이라고 봐야겠군요. 변태적이고 가학적인 데다가 심성이 인간성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철저하게 뒤틀린 자의 소행이란 말이죠. 정말이지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치네요. 이런 사람이 우리 같은 정상적인 사람들의 곁에서 정체를 감춘 채 함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죠.”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친다는 듯 이사도라가 몸을 부르르 떨며 하는 말이었다.
그러자 케브라도 다시 눈물을 닦았다.
“크흑! 내 손에 잡히기만 한다면 그자의 사지를 토막토막 내어 처와 자식들의 무덤에 뿌려 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
후……. 이거 옆에서 듣고 있자니 참 착잡하구먼.
근데 케브라야 그렇다 쳐도 이사도라 너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냐?
아무리 게임 속이지만 바퀴벌레를 밟아 죽였다고 초 사이코패스라니?
물론 밟아 죽인 거 말고도 메이스로 두들겨 죽이고 파엘분으로 화끈하게 구워서 저세상으로 단체로 보내 버리긴 했다만…….
케브라가 한참을 더 손수건을 꺼내 들고 질질 짜자 난 위로하는 척하면서 녀석을 밖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이사도라와 마주 앉았다.
“…….”
음……. 그런데 이 날라리에 비행 소녀……는 아니군. 이제 결혼했으니.
좌우간 이 아줌마 태도가 어쩐지 이상하다. 아까 케브라가 있을 때와는 전혀 딴판으로 말이지.
볼을 슬쩍 붉히며 생긋 미소까지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저 눈빛!
이거 심상찮은데…….
아마 메인 컴퓨터의 농간으로 이사도라 역시 애기 아버지가 로저보다는 나라고 생각하는 거 아닌가?
젠장! 방 안의 공기까지 끈적끈적해지는 것 같다. 어서 이 어색하고 야시시한 분위기를 바꿔야겠군.
“이사도라, 저 케브라 녀석의 가족을 살해한 범인을 추적하는 문제에 대해서 말인데…….”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
“…….”
사실 그 범인이 나니까 범인을 추적하는 건 하지 말아 달라고 말하려던 나는 멈칫했다.
조금 전에 이사도라가 케브라한테 하던 말이 생각이 나서 말이지.
― 확실히 이건 초 사이코패스의 소행이라고 봐야겠군요. 변태적이고 가학적인 데다가 심성이 인간성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철저하게 뒤틀린 자의 소행이란 말이죠. 정말이지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치네요. 이런 사람이 우리 같은 정상적인 사람들의 곁에서 정체를 감춘 채 함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죠.
그런즉슨 범인이 나라고 말하면 이사도라는 나를 그야말로 바퀴벌레보다 더 혐오스런 존재, 초 사이코패스로 볼지도 모른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상대 안 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근데 범인이 나라는 걸 안 밝히면 케브라의 의뢰를 무시하라고 말할 수가 없으니…….
“우영, 왜 그래? 오늘 이상하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
“응 그게……. 아니, 그냥 말이지. 에 또……. 그러니까……. 그렇지! 케브라는 지금 우리 파티에서 굉장히 중요한 주 전력이거든.”
“그런데?”
“그러니까 범인이 밝혀져서 복수하러 간다고 파티에서 이탈하면 우리 일정에 큰 차질이 생긴다고. 그러니 케브라의 의뢰는 그냥 연기해 둬. 나중에 내가 범인을 찾아서 처리할 테니까.”
“…….”
내 말에 이사도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이상한 걸 느낀 모양이었다.
나는 이사도라의 집요한 눈초리에도 불구하고 애써 태연을 가장했다.
이사도라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알았어. 우영이 하는 부탁인데 당연히 들어줘야지.”
“훗, 고맙다, 이사도라.”
나는 미소를 지으면서 이사도라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가 그녀의 다음 말에 납덩어리처럼 굳어 버리고 말았다.
“고맙기는. 딴 사람도 아니고 우리 애기 아빤데.”
“…….”
“아니, 우영. 표정이 왜 그래? 설마 모르고 있었던 거야! 그때 여행하면서 내 침대 밑에 숨어들 때…… 그때 일로 생긴 아기잖아!”
이거 정말이지 완전 돌아 버리겠네.
이사도라는 도리어 야속하다는 표정까지 짓고 있으니.
저, 이보세요, 아줌마.
그때 있었던 일이라곤 아줌마가 침대 밑에 숨어들려던 나한테 평민 나부랑이라고 욕하고 얼굴에 오선지 그어 댄 게 전부거든요?
메인 컴퓨터가 그때 일을 이사도라의 기억에는 나하고 짝짜꿍을 한 걸로 각색해서 심어 준 게 틀림없군.
도대체 분명히 있었던 일을 왜 모르는 척하며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냐고 하소연하는 저 얼굴을 보니 틀림없다.
어절씨구. 이제는 아예 눈물까지 흘리려고 하네?
이 아줌마야, 니가 암만 그래 봐야 난 절대로 인정 못 한다.
조카 구하려고 뛰어든 게임인데 너하고 불륜을 벌여서 애나 만들고 자빠져 있게 됐냔 말이다.
그리고 새파란 총각인 내가 게임 속일 망정 애 아빠 소리 듣는 것도 기분 나쁘고.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이사도라한테 인사하고는 부리나케 미라쥬 길드를 뛰쳐나왔다.
나를 부르는 이사도라의 서글픈 외침을 뒤로하고 말이지.
앞으로 미라쥬 길드는 방문하지 않도록 해야겠다.
찾아갔다간 로저한테 칼침 맞거나 이사도라가 애를 보여 주며, 우리 둘이서 낳은 아이가 많이 컸다고 자랑하는 꼴이나 볼 게 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