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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3권(75화)
Part 11.니녹스 산맥(2)
밤은 어둡고 산속의 숲길은 더더욱 어두웠다.
맨앞에서 숲을 헤치며 걷고 있는 다쓰의 발걸음이 좀 느려진 것 같군.
“야! 다쓰!”
“…….”
“다쓰, 너 내 말 안 들리냐!”
“…….”
“이 자식이! 너 지금 개기는 거지?”
내가 목소리를 높이자 다쓰도 슬며시 불만을 털어놓았다.
“우영 형님이 제 말을 바퀴벌레 똥만큼도 안 들어주시니 저도 기분이 나쁘잖습니까! 교황청 성기사단에 다시 한 번 가서 임시로라도 내 팔라딘 지위를 회복해 달라고 한마디 해 달라는데 그걸 거절하고 이 니녹스 산맥으로 곧장 들어오다니요!”
“이 자식이! 전나세를 해결하면 넌 다시 정식으로 팔라딘이 되는 거잖아! 그때까지를 못 참는다는 게 말이나 되냐!”
“아, 그러니까 그동안 임시로라도 팔라딘의 지위를 회복하면 좋잖냐고요!”
“둘 다 조용히 해라. 쉬익! 몬스터들한테 우리가 여기 있다고 광고 낼려고 작정했냐. 쉬익!”
나하고 다쓰가 언성을 높이자 란슬링이 짜증스레 투덜거렸고 세영이와 조핀도 한마디씩 했다.
“정말이지 좀 조용히들 하세요. 이 니녹스 산맥은 그렇잖아도 발 들이밀기가 꺼림칙한 곳이라고 소문이 자자한데 마구 떠들면 어떡해요?”
“마토스 국 수복 작업의 성패는 제가 이 산맥을 넘어 암흑 제국에 제대로 잠입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으니 신중하게 행동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길, 꼭 한마디씩 듣게 만들다니.
난 다쓰한테 메이스를 슬쩍 들어 다시 한 번 더 시끄럽게 굴면 가만 안 둔다고 을러댄 다음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엄청 어둡네. 꽤 험하기도 하고.
이러다가 발 한 번 잘못 디디면 천 길 낭떠러지에 떨어져서 뼈도 못 추리……는 거야 아니지. 나하고 세영이야 죽으면 다시 게임에 접속하면 되는 거긴 하다만.
나머지들이 문제군.
죄다 NPC니까 죽었다가는 큰 손실이다.
그래서 나는 다쓰 녀석을 살살 달래서 행여나 제멋대로 행동하다가 사고 치지 않도록 해야 했다.
그렇게 신경을 써서 조심스럽게 산속을 걸어 나가자니 어느 정도 트인 곳이 나타났다.
그런데 이거 완전히 트인 곳은 아니군. 엄청난 크기의 나무들이 곳곳에 서 있으니.
나무들은 둘레가 30m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컸다.
우리들이 그 지역을 계속 걸어가는데 유독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는 나무가 있군.
내가 그 나무에 다가가자 파티원들이 짜증스레 말했다.
“쉬익! 우영, 엉뚱하게 어디로 가는 거냐!”
“오빠, 그 나무 쪽엔 뭐하러 가요!”
“조용하고. 니들 모두 이쪽으로 와 봐라.”
툴툴거리면서도 파티원들이 내 쪽으로 다 모이자 나는 그 나무에 슬그머니 손을 갖다 대면서 함정 탐색 스킬을 사용했다.
“트랩 서치!”
파앗!
주황색의 불빛이 반짝이더니 나무에 커다란 원형의 보랏빛이 마치 물결처럼 잔잔하게 빛났다.
“어머! 이건…….”
“이게 뭐냐, 세영아?”
“포탈 같은데요?”
“포탈이란 말이지…….”
재수가 좋다고 해야 하나.
뜻하지 않게 포탈을 발견하다니.
물론 이 포탈로 들어서면 어디가 나올지는 모르지만.
게임을 하다가 포탈을 발견하는 일이 아무에게나 생기는 건 아니다.
나는 슬그머니 조핀을 바라보았다.
“조핀 님께서는 이 니녹스 산맥을 넘어서 암흑 제국으로 들어가는 확실한 루트를 알고 계십니까?”
내 말에 이 중년 어린이……는 아니고 중년 아저씨는 지금 무슨 헛소리하고 자빠졌냐는 표정으로 나를 보는군.
“우영 님, 암흑 제국으로 들어가는 확실한 루트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고, 저 역시 마찬가지니까 우영 님 파티가 책임지고 저를 그곳에 들여보내 주셔야 한다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암, 그렇게 말한 거 알고말고.
그랬으니 당신을 암흑 제국 황제에게 보내 주는 퀘스트가 생성된 거지.
근데 내가 이 질문을 당신한테 한 이유가 딴 데 있는 게 아니지.
“그럼 조핀 님께선 내가 여기서 어떤 길을 택하든 전적으로 따라오실 거죠? 어차피 확실한 길을 모르시니까 말이죠.”
“휴……. 보아하니 우영 님께선 저 포탈로 들어가 보고 싶으신 거군요.”
“안 됩니까?”
“우영 님이 인도자인데 제가 안 되고말고 할 순 없겠죠. 좋을 대로 하십쇼. 단 결과에 대해서는 분명히 책임을 지실 거라고 믿겠습니다.”
조핀이 두 눈을 부릅뜨면서 하는 말이었다.
말속에 뼈가 있는 거 보니 역시 중년 아저씨라니깐.
근데 세영이가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근데 저 포탈로 들어갔다가 아주 엉뚱한 곳이면 어떡해요? 괜히 암흑 제국으로 가는 여정이 크게 틀어지기라도 하면…….”
“설사 그렇다고 해도 할 수 없지. 우리들 중 누구도 암흑 제국으로 들어가는 확실한 방법을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 무작정 헤매고 다니는 것보다야 이런 의미심장한 포탈이라도 건드려 보는 게 훨씬 낫다.”
“그건 그렇지만…….”
내가 자신 있게 말하자 세영이는 말을 흐렸다.
나는 조금 큰 목소리로 모두에게 말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순서대로 이 포탈 속으로 들어가기로 한다!”
“쉬익! 우영, 왜 그러냐. 어째서 조핀과 세영이의 의견만 묻고 우리들은 무시하냐. 쉬익!”
“그렇습니다 우영 형님. 조금 기분이 나빠지려고 하는군요.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독재는 곤란합니다.”
근데 이것들이 꼭…….
나는 메이스를 슬며시 치켜들어 두 녀석이 깐죽거리는 걸 뭉개 버리고는 눈앞의 포탈로 씩씩하게 걸어 들어……가려고 하니까 좀 겁이 나는군.
혹시 멋모르고 저 보랏빛 물결 속으로 뛰어들었다가 곤죽이라도 되는 거 아닐까?
영화에 보면 가끔 그런 장면이 있던데 말이지.
그래서 나는 한 걸음 물러서서 다쓰와 란슬링에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독재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다소 전횡을 한 감이 없지는 않구나. 이번 기회에 그걸 반성하는 의미로 우선권을 니들에게 양보하겠다. 다쓰, 란슬링, 어서 저 속으로 들어가라!”
“뭣, 뭐라고? 쉬익!”
“아니, 왜 꼭 저런 데를 우리가 먼저 들어가라고 하시는 겁니까!”
그렇지, 시킨다고 한 번에 군소리 없이 들어먹으면 니들이 란슬링과 다쓰가 아니지.
난 두 녀석의 엉덩이를 메이스로 두들겨 패서 억지로 포탈 속으로 집어넣었다.
두 녀석은 비명을 지르면서 보랏빛 물결 속으로 쏙 사라졌다.
음, 일단 들어가는 데 불상사가 생기지는 않는군.
그럼 이 몸도 들어가 보실까?
파앗!
부드럽게 나를 감싸는 기운에 나는 아찔하고 잠시 정신을 잃었다.
그러나 금방 그 기운은 사라졌고 조금 전까지 맡았던 밤의 차가운 공기와는 다른, 꽃 내음이 섞인 청량한 기운을 느끼고 눈을 번쩍 떴다.
“여기는…….”
눈앞에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싱그럽고 경쾌한 연녹색의 풀과 꽃들, 우아하게 잘 뻗어 있는 나무들과 그 나무들의 위에 멋지게 지어져 있는 앙증맞고 예쁜 집들이 나의 눈에 들어왔다.
조금 전의 니녹스 산맥에서 본 깊고 음침한 숲 속 정경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게다가 그곳은 밤이었는데 여긴 환한 대낮이군.
파티원들 모두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데, 조핀이 입을 열었다.
“엘프의 숲이군요.”
“엘프의 숲이라고요?”
“네, 엘프들만이 사는 숲입니다. 이곳은 인간들이 함부로 들어 올 수 없죠. 자연을 함부로 훼손하고, 나무를 베어 목재로 삼고, 꽃을 꺾는 짓을 하는 인간들을 엘프들은 무척 싫어하니까요. 니녹스 산맥 어딘가에 엘프의 숲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실제로 제가 오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음……. 엘프의 숲이라.
어쩐지 예쁘고 앙증맞은 풍경이라 했더니 엘프들이 사는 곳이었군.
그런데 엘프들이 사는 숲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자마자 뭔가 상당히 마음에 걸리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슬그머니 파티원들을 돌아보았다.
세영이와 조핀은 전혀 관계없다.
뭐 다쓰도 별 문제없지. 속이 시커먼 변태기는 하지만 겉으로야 멀쩡한 놈이니까.
근데 케브라와 다쓰가 문제군.
이 아름다운 풍경 속에 서 있는 한 마리 도마뱀과 바퀴벌레의 모습이라니…….
그때 뭔가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웬 엘프 소년이 우릴 바라보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반가워서 손을 들어 인사를 하려는데 그 소년은 후다닥 소리를 내면서 도망쳤다.
그러자 케브라가 재빠르게 칼을 빼 들며 그 뒤를 쫓으려 했다.
“안심하십쇼! 제가 해치워서 입을 막겠습니다!”
그 말에 기겁을 한 나는 몸을 던지다시피 해서 간신히 케브라를 붙잡았다.
“해치우다니 누굴 해치우냐? 케브라, 너 우릴 엘프들한테 몰매 맞아 죽게 하려고 작정했냐?”
“하지만 저 소년이 엘프들을 데리고 나와 우릴 잡으려 들면 어쩝니까?”
“그때는 상황을 봐서 대처하면 된다. 그러니까 오바 하지 마라. 알겠냐?”
다쓰와 란슬링보다는 훨씬 머리가 잘 돌아가는 줄 알았더니 역시 바퀴벌레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군. 엘프의 숲에 들어와서 다짜고짜 엘프를 죽이려 하다니 말이지.
“설마 엘프들이 우릴 해롭게 하기야 하겠냐? 이렇게 멋있는 곳에 사는 존재고, 조각 같은 얼굴을 한 초미인들이니 심성도 당연히 좋을 거 아니겠냔 거다.”
그때 엘프의 다리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아까 그 소년 엘프가 말해서 어른 엘프가 왔나 보군.
근데 미니 스커트 밑에 드러난 우람한 다리가 엄청 위화감을 주는군.
저 드럼통 같은 굵직한 다리통에 송곳처럼 난 털하며…….
난 슬그머니 시선을 위로 이동했다.
뭔가 불안한 예감을 느끼면서.
그리고 내 예감은 적중했다.
네모진 얼굴에 턱에서 귀밑까지 더부룩하게 수염이 난 여자 엘프!
난 기가 막혀서 한숨을 쉬면서 그에게 말을 걸었다.
“도대체 황 과장님이 여기는 왜 계신 겁니까?”
“그건 제가 묻고 싶은 말입니다만……. 저야 엘프니까 엘프의 숲에 있는 게 자연스런 일이지만 우영 님은 여기 어쩐 일이신데요? 뒤에 분들은 파티원들이신가 보죠?”
“…….”
그렇지 당신도 엘프였지.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운 초엽기 엘프지만 좌우간 엘프로 행세하고 다니는 건 분명하니까.
“우리는 우연히 포탈을 발견해서 이곳으로 왔습니다. 사실은 암흑 제국으로 가야 하는데, 니녹스 산맥에서 이리저리 헤매다 보니 우연히 포탈이 눈에 띄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한 가닥 기대를 걸면서 말을 흐렸다.
그러나 황 과장은 씨익 얄미운 미소를 지었다.
“훗, 제가 암흑 제국으로 가는 길을 알려 드리면 좋겠지만 그건 왁슨의 직원으로서 지켜야 할 직무 규정 위반이라는 건 우영 님도 잘 아시죠?”
“…….”
내가 뾰루통해하자 황 과장은 파티원들이 못 듣게 슬쩍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하지만 힌트 정도는 드리겠습니다.”
“힌트라고요?”
“예, 뭐, 자세한 힌트는 말씀 못 드리지만…….”
나는 솔깃해서 귀를 기울였다.
좌우간 지금 기대할 거라곤 황 과장뿐이니까.
“우영 님이 포탈을 발견한 건 엄청난 행운이거든요. 이 엘프 마을에서 끝까지 버티세요. 아마 엘프들이 반가워하지는 않겠지만요. 끝까지 버티고 있으면 나쁘지는 않게 될 겁니다…….”
“…….”
나는 실망스러워서 입맛을 다셨다.
그런 막연한 소리가 무슨 힌트냐고.
황 과장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언제나 그랬듯이 미니스커트 사이로 분홍빛 팬티를 보여 주는 만행을 자행하면서 쫄랑쫄랑 달음질쳐서 우리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쩝! 이거 한숨 나오네…….”
“우영, 이제 어쩔 거냐. 쉬익!”
“우영 오빠. 아까 그 엘프가 왁슨 직원인가요? 그럼 좀 도와 달라고 하시잖고.”
“잘못하면 자기가 회사에서 잘릴지도 모르는데 무슨 소리냐. 좌우간 마을 안으로 들어가 보자. 죽든 살든 뭔 수가 생기겠지.”
내 말에 파티원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내 뒤를 따랐다.
얼마나 더 걸었을까.
뭔가가 움직이는 소음이 나서 우리들은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일제히 놀라 굳어 버리고 말았다.
“웃, 저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