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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4 -
이제경
스토킹 마스터 4권(76화)
Part 1. 엘프 마을(1)
난감하게도 우리는 포위당했다.
어느새 나타난 건진 몰라도 대략 1개 중대 병력은 되는 엘프들이 화살로 우리를 겨냥하고 있구먼.
엘프 자식들 제법 살기를 풍기는 게 여차하면 벌집으로 만들어 버릴 기세다.
맨앞에 떡대 좋은 엘프 녀석이 나를 째려 보더니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나무를 베러 침입하다니 배짱 한번 좋구나! 순순히 우릴 따라와라! 천인공노할 벌채꾼 녀석들!”
엉?
벌채꾼이라니, 이게 뭔 소리야?
“나무를 베러 왔다니, 무슨 말입니까? 우린 벌채꾼 같은 거 안 키웁니다만.”
“…….”
부정을 해 보았지만 엘프들이 다시 눈을 부라리며 화살을 겨누는군.
일단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엘프들은 우리를 그들의 주거지인 엄청 큰 나무들이 빽빽한 곳으로 데려왔다.
그 나무들의 밑동과 중간 가지에는 엘프들의 집이 지어져 있었다.
그렇게 나무들이 쭈욱 들어찬 중앙 공터의 의자에는 늙수그레한 엘프가 앉아 있었다.
비대한 몸에 졸린 눈매, 하품을 하는 저 폼. 원로랍시고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서, 정작 손가락도 까닥 안 하며 편하게 놀고먹는 전형적인 월급 도둑의 인상이 팍팍 풍기는구먼.
좌우간 그 앞에 우리를 갖다 놓은 떡대 엘프가 늙은이 엘프에게 말했다.
“촌장님, 벌채꾼 녀석들이 침입했길래 잡아 왔습니다.”
“아, 글쎄 우린 벌채꾼 아니라니까 그러네!”
“어디서 큰소리냐!”
다쓰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젊은 엘프들이 다시 화살과 창을 겨냥하며 을러댔다.
그러자 이른바 촌장이라는 엘프가 손을 저어 그들을 만류했다.
그리고는 자다가 방금 일어난 것 같은 눈으로 우릴 바라보았다.
“벌채꾼이 아니라면 그대들은 무엇하러 우리 엘프 마을에 침입을 한 겐가?”
“암흑제국으로 가는 길을 찾던 중에 우연히 이곳에 들어오게 된 겁니다. 맹세하는 데 절대로 고의로 들어온 게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나무 베는 도끼 같은 물건을 지니고 있나 보란 말입니다. 어딜 봐서 우리가 벌채꾼으로 보이냐고요!”
내가 자신 있고 당당하게 말하자 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표정이었다.
“그래? 우연히 들어온 거라고? 나무 베러 온 게 아니고? 그럼 고의로 들어온 게 아니면 여기서 나가면 되겠구먼. 지금 당장 말이지.”
“…….”
내가 난처한 표정을 짓자 촌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나? 일부로 들어온 게 아니면 나가라는데. 나가는 길 몰라서 그래? 걱정하덜 마. 우리 애들 시켜서 내보내 줄 테니까.”
이건 곤란하군.
아마 암흑제국으로 가는 길은 이 엘프 마을에 단서가 있을 것 같으니 말이지.
사실 미라쥬 길드의 이사도라한테 부탁해서 이것저것 알아낸 바로는 니녹스 산맥 어딘가에 위치한 걸로 추정되는 엘프 마을에 암흑제국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있다고 했거든.
울창한 삼림에다가 대형 몬스터들이 활개 치는 니녹스 산맥을 무작정 강행 돌파해서 암흑제국으로 들어가는 건 무모한 짓이라고 했다.
중간도 가기 전에 포기하거나 로그아웃 당할 정도로 험악한 환경이라더라고.
그러니 이 엘프 마을에서 어떻게든 비비적거려서 그 안전한 통로로 암흑제국으로 가야 한다.
아마 황 과장이 이야기한 힌트도 그런 의미일 가능성이 높고 말이지.
그런데 우릴 곱게 그냥 내보내 주겠다니 절대로 안 될 말이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여기서 비비적거려야 한다.
그러자면 뭐든 트집부터 잡고 늘어져야 한다.
“훗, 이거 심하시군요. 멀쩡한 사람을 벌채꾼이니 뭐니 해서 화살과 창으로 마구 겨냥해서 잡아 죽일 것처럼 살벌하게 굴더니, 이제 와선 별 볼일 없으니 그냥 나가라고요? 사과 한 마디도 없이? 엘프들은 원래 이렇게 경우가 없습니까!”
“아니, 저 인간이!”
“촌장님 앞에서 건방지게!”
우릴 끌고 온 젊은 엘프들 몇 명이 발끈해서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촌장은 여전히 그 졸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하품을 했다.
“그런가? 그럼 우리 애들이 사과하면 되겠군. 이봐, 코란 이 인간들에게 무례를 범한 걸 사과하거라.”
“…….”
음, 저 떡대 엘프 이름이 코란이었군.
코란은 자존심이 상하는 듯 못마땅한 표정으로 우릴 째려보았다. 그러나 촌장의 명령은 거스를 수 없는 듯 이를 아드득 물더니 우리에게 고개를 숙였다.
“내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벌채꾼이라고 한 건 미안하다. 사과한다.”
“훗! 그것참 간단하네. 사과하면 그걸로 끝이라고? 잘못한 게 말로만 다 해결되면 이 세상에 감옥이 도대체 왜 있는 겁니까?”
“뭐라고!”
내 말에 코란은 얼굴이 시뻘게져서 아드득 이를 물었고 다른 엘프들도 험악하게 눈을 부라리며 나를 쏘아보았다.
험악한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나 촌장은 여전히 하품을 하면서 귀를 후비적거렸다.
그러더니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가만 보니 자네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군. 나를 따라오게.”
촌장의 집은 마을에서도 가장 큰 나무의 허리에 지어져 있었다.
우리에게 차를 한 잔씩 대접한 촌장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한마디를 던졌다.
“암만 봐도 닮았단 말이야.”
“…….”
헉! 이게 무슨 소리람.
이거 어째 불안한 기분이 드는데.
“닮았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촌장님이 아는 누구하고 닮았다구요?”
“한 달 전에 우리 엘프 마을에 천인공노할 분탕질을 친 전나세란 꼬마 악당하고 자네가 어째 인상이 비슷해서 말이지. 혹시 그 악당하고 가족이나 친척이라도 되는 거 아닌가?”
촌장이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자 난 내심 뜨끔했다.
젠장! 이 늙은이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데, 뜻밖에 예리하군.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것참 우연의 일치네요. 사실 우린 전나세란 악당을 체포해서 처단하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추적 중인 사람들입니다. 엘카니아 왕국과 교황청의 의뢰죠.”
“호오……. 그래? 그럼 현상금 사냥꾼들인가?”
“꼭 그런 건 아닌데……. 좌우간 전나세를 없애 주면 보상을 받기로 한 건 맞거든요.”
“흠……. 그렇군. 그럼 이곳에 온 목적도 혹시 그 때문인가?”
“예, 그 악당을 쫓아서 암흑제국으로 가다가 우연히 들렀는데, 설마 전나세가 이곳에서도 말썽을 일으킨 건 몰랐습니다.”
“휴우……. 참으로 가증스런 악당이었지.”
“흑흑흑…….”
“……?”
한숨을 쉬며 하는 촌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벽 저쪽에서 젊은 여인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뭔 소리지……?
우리가 어리둥절해하자 촌장은 어색한 미소를 머금었다.
“허허허, 내 딸년이라네. 옆방에서 몸져누워 있지.”
“어머! 어디 몸이라도 불편하신가 보죠?”
세영이가 걱정된다는 투로 묻자 촌장은 웃음 + 울상의 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은 몸보다는 마음이 훨씬 더 불편한 상태라고 해야 할 걸세. 허허허허.”
마음이 불편하다니 이게 뭔 소린가라고 생각했지만 뭐 나하고 관계없는 여잔데 울고 자빠졌든 몸져누웠든 내가 알 바 아니지……라고 생각했는데 촌장의 이어지는 말을 들어 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그 전나세란 악당 때문에 내 딸이 저리되어서 말일세. 허허허…….”
“어머! 그 전나세가 따님께 무슨 못된 짓을 했는데요?”
“휴우! 차마 입으로 말하기조차 끔찍한 천인공노할 만행을 했답니다.”
“…….”
“…….”
“…….”
어느새 들어온 건지 난데없이 불쑥 얼굴을 들이밀고 하는 코란의 말에 우리 파티와 촌장까지 벙 찌고 말았다.
이 인간은 어느 틈에 여기 들어와서 천연덕스럽게 대화에 끼고 있는 거람.
이 방에 다시 들어오는 걸 보지도 못한 것 같은데 말이지.
“그런가요? 근데 그 천인공노할 만행의 구체적인 내용을 좀 알 수 있겠습니까?”
“흥! 누구 재밌으라고 그걸 알려 준다는 거요! 꿈 깨시오! 절대로 가르쳐 주지 않을 테니까!”
내가 조심스레 묻자 코란은 발끈 성질을 내며 쏘아 부쳤다.
아, 거참 이상하네.
자세한 내막을 알자는데 왜 성질을 내고 난리지?
“코란, 언성 높이지 말게. 내가 이분들께 모두 다 이야기할 참이니까.”
“촌장님 그건 안 됩니다. 그 참담한 일을 어찌 외인들, 그것도 엘프도 아닌 인간들에게 다 털어놓는단 말씀입니까!”
코란이 사뭇 처절하게 폼을 잡으며 말했다.
그러나 촌장은 물러설 마음이 없어 보였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이분들은 전나세를 처치할 임무를 띠고 그를 쫓는 중이라는군. 그렇다면 우리가 협조를 요청해도 될 만한 실력자란 말이 아니겠나? 협조를 얻으려면 먼저 사건을 자세히 알려 주어야 할 테고 말일세.”
“하지만 그래도…….”
“허어! 더 이상 끼어들지 말고 자넨 썩 나가 있게!”
촌장 할배가 두 눈을 부라리자 코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우릴 슬쩍 흘겨보고 나가 버렸다.
그가 나가자 촌장은 못마땅한 듯 투덜거렸다.
“거참. 약혼자면 무엇하나. 제 약혼녀 하나 제대로 돌봐 주지도 못한 녀석이!”
말을 들어 보니 코란은 이 촌장 할배 딸의 약혼자였던 것 같다.
좌우간 이후 촌장이 털어놓은 이야기를 다 들은 우리들은 입을 쩍 벌렸다.
“아니, 저 그러니까 재경이가……. 아니 전나세가 이 엘프 마을의 수호목에 불을 질렀단 말입니까?”
“그렇다네. 다행히 다 타지는 않았지만. 우리 엘프들의 목숨과도 바꾸지 못할 신성한 수호목을 훼손시켜려 하다니……. 이 이상의 대죄는 없을 걸세. 엘프들에게 있어서는 말이지.”
“근데 그 수호목에 불 지른 거하고 따님이 몸져 드러누운 거하고 무슨 상관인데요?”
“사실 내가 전나세의 몸에 살짝 교훈을 내려 줬거든. 그래서 그 녀석이 그런 못된 짓을 저지른 거지. 이를테면 아주 사악한 보복이었던 거지.”
“…….”
이 할배 말을 묘하게 하네.
몸에 교훈을 내려 줬다고?
그거 싸가지 없이 구는 놈을 실컷 두들겨 패 줬다는 말을 빙 돌려서 하는 소리 아냐?
“몸에 교훈을 어떻게 내리셨습니까?”
“뭐, 그냥 가볍게……. 멍석으로 말아서……. 저기 보이는 죽봉으로 몇 대 두들겨 줬지.”
“정확히 몇 댄데요?”
“아, 거참. 뭐 그리 자세히 알려 그러나? 전나세가 자네 조카라도 되나? 그냥 이백 대 정도밖에 안돼!”
“…….”
촌장은 짜증이 나는지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민망한 표정으로 구석의 죽봉을 가리켰다.
젠장! 무슨 이런 노인네가 다 있어. 저 죽봉은 둘레가 내 팔뚝만 한데 저걸로 이백 대를 두들겨 패?
아무리 멍석으로 만 상태라고 해도 그렇지. 저걸로 이백 대씩이나 맞았으면 나 같아도 그 원한이 뼈에 새겨지겠구먼.
뭐 그렇다고 성질내 봤자 뭔 소용이겠나 싶어진 나는 질문을 이었다.
“아니, 저……. 전나세가 뭔 짓을 했는데 그렇게 인정사정없이 두들겨 패신……. 아니, 몸에 교훈을 내리신 건데요?”
“휴우……. 사실은 그 녀석이 내 딸에게 몹쓸 만행을 자행해서 열 받아서 그랬다네.”
“그러니까 그 만행의 구체적인 내용이 어떤 거죠?”
“내 딸에게 아이스케키를 했다네.”
“…….”
이제경
스토킹 마스터 4권(76화)
Part 1. 엘프 마을(1)
난감하게도 우리는 포위당했다.
어느새 나타난 건진 몰라도 대략 1개 중대 병력은 되는 엘프들이 화살로 우리를 겨냥하고 있구먼.
엘프 자식들 제법 살기를 풍기는 게 여차하면 벌집으로 만들어 버릴 기세다.
맨앞에 떡대 좋은 엘프 녀석이 나를 째려 보더니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나무를 베러 침입하다니 배짱 한번 좋구나! 순순히 우릴 따라와라! 천인공노할 벌채꾼 녀석들!”
엉?
벌채꾼이라니, 이게 뭔 소리야?
“나무를 베러 왔다니, 무슨 말입니까? 우린 벌채꾼 같은 거 안 키웁니다만.”
“…….”
부정을 해 보았지만 엘프들이 다시 눈을 부라리며 화살을 겨누는군.
일단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엘프들은 우리를 그들의 주거지인 엄청 큰 나무들이 빽빽한 곳으로 데려왔다.
그 나무들의 밑동과 중간 가지에는 엘프들의 집이 지어져 있었다.
그렇게 나무들이 쭈욱 들어찬 중앙 공터의 의자에는 늙수그레한 엘프가 앉아 있었다.
비대한 몸에 졸린 눈매, 하품을 하는 저 폼. 원로랍시고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서, 정작 손가락도 까닥 안 하며 편하게 놀고먹는 전형적인 월급 도둑의 인상이 팍팍 풍기는구먼.
좌우간 그 앞에 우리를 갖다 놓은 떡대 엘프가 늙은이 엘프에게 말했다.
“촌장님, 벌채꾼 녀석들이 침입했길래 잡아 왔습니다.”
“아, 글쎄 우린 벌채꾼 아니라니까 그러네!”
“어디서 큰소리냐!”
다쓰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젊은 엘프들이 다시 화살과 창을 겨냥하며 을러댔다.
그러자 이른바 촌장이라는 엘프가 손을 저어 그들을 만류했다.
그리고는 자다가 방금 일어난 것 같은 눈으로 우릴 바라보았다.
“벌채꾼이 아니라면 그대들은 무엇하러 우리 엘프 마을에 침입을 한 겐가?”
“암흑제국으로 가는 길을 찾던 중에 우연히 이곳에 들어오게 된 겁니다. 맹세하는 데 절대로 고의로 들어온 게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나무 베는 도끼 같은 물건을 지니고 있나 보란 말입니다. 어딜 봐서 우리가 벌채꾼으로 보이냐고요!”
내가 자신 있고 당당하게 말하자 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표정이었다.
“그래? 우연히 들어온 거라고? 나무 베러 온 게 아니고? 그럼 고의로 들어온 게 아니면 여기서 나가면 되겠구먼. 지금 당장 말이지.”
“…….”
내가 난처한 표정을 짓자 촌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나? 일부로 들어온 게 아니면 나가라는데. 나가는 길 몰라서 그래? 걱정하덜 마. 우리 애들 시켜서 내보내 줄 테니까.”
이건 곤란하군.
아마 암흑제국으로 가는 길은 이 엘프 마을에 단서가 있을 것 같으니 말이지.
사실 미라쥬 길드의 이사도라한테 부탁해서 이것저것 알아낸 바로는 니녹스 산맥 어딘가에 위치한 걸로 추정되는 엘프 마을에 암흑제국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있다고 했거든.
울창한 삼림에다가 대형 몬스터들이 활개 치는 니녹스 산맥을 무작정 강행 돌파해서 암흑제국으로 들어가는 건 무모한 짓이라고 했다.
중간도 가기 전에 포기하거나 로그아웃 당할 정도로 험악한 환경이라더라고.
그러니 이 엘프 마을에서 어떻게든 비비적거려서 그 안전한 통로로 암흑제국으로 가야 한다.
아마 황 과장이 이야기한 힌트도 그런 의미일 가능성이 높고 말이지.
그런데 우릴 곱게 그냥 내보내 주겠다니 절대로 안 될 말이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여기서 비비적거려야 한다.
그러자면 뭐든 트집부터 잡고 늘어져야 한다.
“훗, 이거 심하시군요. 멀쩡한 사람을 벌채꾼이니 뭐니 해서 화살과 창으로 마구 겨냥해서 잡아 죽일 것처럼 살벌하게 굴더니, 이제 와선 별 볼일 없으니 그냥 나가라고요? 사과 한 마디도 없이? 엘프들은 원래 이렇게 경우가 없습니까!”
“아니, 저 인간이!”
“촌장님 앞에서 건방지게!”
우릴 끌고 온 젊은 엘프들 몇 명이 발끈해서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촌장은 여전히 그 졸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하품을 했다.
“그런가? 그럼 우리 애들이 사과하면 되겠군. 이봐, 코란 이 인간들에게 무례를 범한 걸 사과하거라.”
“…….”
음, 저 떡대 엘프 이름이 코란이었군.
코란은 자존심이 상하는 듯 못마땅한 표정으로 우릴 째려보았다. 그러나 촌장의 명령은 거스를 수 없는 듯 이를 아드득 물더니 우리에게 고개를 숙였다.
“내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벌채꾼이라고 한 건 미안하다. 사과한다.”
“훗! 그것참 간단하네. 사과하면 그걸로 끝이라고? 잘못한 게 말로만 다 해결되면 이 세상에 감옥이 도대체 왜 있는 겁니까?”
“뭐라고!”
내 말에 코란은 얼굴이 시뻘게져서 아드득 이를 물었고 다른 엘프들도 험악하게 눈을 부라리며 나를 쏘아보았다.
험악한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나 촌장은 여전히 하품을 하면서 귀를 후비적거렸다.
그러더니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가만 보니 자네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군. 나를 따라오게.”
촌장의 집은 마을에서도 가장 큰 나무의 허리에 지어져 있었다.
우리에게 차를 한 잔씩 대접한 촌장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한마디를 던졌다.
“암만 봐도 닮았단 말이야.”
“…….”
헉! 이게 무슨 소리람.
이거 어째 불안한 기분이 드는데.
“닮았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촌장님이 아는 누구하고 닮았다구요?”
“한 달 전에 우리 엘프 마을에 천인공노할 분탕질을 친 전나세란 꼬마 악당하고 자네가 어째 인상이 비슷해서 말이지. 혹시 그 악당하고 가족이나 친척이라도 되는 거 아닌가?”
촌장이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자 난 내심 뜨끔했다.
젠장! 이 늙은이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데, 뜻밖에 예리하군.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것참 우연의 일치네요. 사실 우린 전나세란 악당을 체포해서 처단하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추적 중인 사람들입니다. 엘카니아 왕국과 교황청의 의뢰죠.”
“호오……. 그래? 그럼 현상금 사냥꾼들인가?”
“꼭 그런 건 아닌데……. 좌우간 전나세를 없애 주면 보상을 받기로 한 건 맞거든요.”
“흠……. 그렇군. 그럼 이곳에 온 목적도 혹시 그 때문인가?”
“예, 그 악당을 쫓아서 암흑제국으로 가다가 우연히 들렀는데, 설마 전나세가 이곳에서도 말썽을 일으킨 건 몰랐습니다.”
“휴우……. 참으로 가증스런 악당이었지.”
“흑흑흑…….”
“……?”
한숨을 쉬며 하는 촌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벽 저쪽에서 젊은 여인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뭔 소리지……?
우리가 어리둥절해하자 촌장은 어색한 미소를 머금었다.
“허허허, 내 딸년이라네. 옆방에서 몸져누워 있지.”
“어머! 어디 몸이라도 불편하신가 보죠?”
세영이가 걱정된다는 투로 묻자 촌장은 웃음 + 울상의 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은 몸보다는 마음이 훨씬 더 불편한 상태라고 해야 할 걸세. 허허허허.”
마음이 불편하다니 이게 뭔 소린가라고 생각했지만 뭐 나하고 관계없는 여잔데 울고 자빠졌든 몸져누웠든 내가 알 바 아니지……라고 생각했는데 촌장의 이어지는 말을 들어 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그 전나세란 악당 때문에 내 딸이 저리되어서 말일세. 허허허…….”
“어머! 그 전나세가 따님께 무슨 못된 짓을 했는데요?”
“휴우! 차마 입으로 말하기조차 끔찍한 천인공노할 만행을 했답니다.”
“…….”
“…….”
“…….”
어느새 들어온 건지 난데없이 불쑥 얼굴을 들이밀고 하는 코란의 말에 우리 파티와 촌장까지 벙 찌고 말았다.
이 인간은 어느 틈에 여기 들어와서 천연덕스럽게 대화에 끼고 있는 거람.
이 방에 다시 들어오는 걸 보지도 못한 것 같은데 말이지.
“그런가요? 근데 그 천인공노할 만행의 구체적인 내용을 좀 알 수 있겠습니까?”
“흥! 누구 재밌으라고 그걸 알려 준다는 거요! 꿈 깨시오! 절대로 가르쳐 주지 않을 테니까!”
내가 조심스레 묻자 코란은 발끈 성질을 내며 쏘아 부쳤다.
아, 거참 이상하네.
자세한 내막을 알자는데 왜 성질을 내고 난리지?
“코란, 언성 높이지 말게. 내가 이분들께 모두 다 이야기할 참이니까.”
“촌장님 그건 안 됩니다. 그 참담한 일을 어찌 외인들, 그것도 엘프도 아닌 인간들에게 다 털어놓는단 말씀입니까!”
코란이 사뭇 처절하게 폼을 잡으며 말했다.
그러나 촌장은 물러설 마음이 없어 보였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이분들은 전나세를 처치할 임무를 띠고 그를 쫓는 중이라는군. 그렇다면 우리가 협조를 요청해도 될 만한 실력자란 말이 아니겠나? 협조를 얻으려면 먼저 사건을 자세히 알려 주어야 할 테고 말일세.”
“하지만 그래도…….”
“허어! 더 이상 끼어들지 말고 자넨 썩 나가 있게!”
촌장 할배가 두 눈을 부라리자 코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우릴 슬쩍 흘겨보고 나가 버렸다.
그가 나가자 촌장은 못마땅한 듯 투덜거렸다.
“거참. 약혼자면 무엇하나. 제 약혼녀 하나 제대로 돌봐 주지도 못한 녀석이!”
말을 들어 보니 코란은 이 촌장 할배 딸의 약혼자였던 것 같다.
좌우간 이후 촌장이 털어놓은 이야기를 다 들은 우리들은 입을 쩍 벌렸다.
“아니, 저 그러니까 재경이가……. 아니 전나세가 이 엘프 마을의 수호목에 불을 질렀단 말입니까?”
“그렇다네. 다행히 다 타지는 않았지만. 우리 엘프들의 목숨과도 바꾸지 못할 신성한 수호목을 훼손시켜려 하다니……. 이 이상의 대죄는 없을 걸세. 엘프들에게 있어서는 말이지.”
“근데 그 수호목에 불 지른 거하고 따님이 몸져 드러누운 거하고 무슨 상관인데요?”
“사실 내가 전나세의 몸에 살짝 교훈을 내려 줬거든. 그래서 그 녀석이 그런 못된 짓을 저지른 거지. 이를테면 아주 사악한 보복이었던 거지.”
“…….”
이 할배 말을 묘하게 하네.
몸에 교훈을 내려 줬다고?
그거 싸가지 없이 구는 놈을 실컷 두들겨 패 줬다는 말을 빙 돌려서 하는 소리 아냐?
“몸에 교훈을 어떻게 내리셨습니까?”
“뭐, 그냥 가볍게……. 멍석으로 말아서……. 저기 보이는 죽봉으로 몇 대 두들겨 줬지.”
“정확히 몇 댄데요?”
“아, 거참. 뭐 그리 자세히 알려 그러나? 전나세가 자네 조카라도 되나? 그냥 이백 대 정도밖에 안돼!”
“…….”
촌장은 짜증이 나는지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민망한 표정으로 구석의 죽봉을 가리켰다.
젠장! 무슨 이런 노인네가 다 있어. 저 죽봉은 둘레가 내 팔뚝만 한데 저걸로 이백 대를 두들겨 패?
아무리 멍석으로 만 상태라고 해도 그렇지. 저걸로 이백 대씩이나 맞았으면 나 같아도 그 원한이 뼈에 새겨지겠구먼.
뭐 그렇다고 성질내 봤자 뭔 소용이겠나 싶어진 나는 질문을 이었다.
“아니, 저……. 전나세가 뭔 짓을 했는데 그렇게 인정사정없이 두들겨 패신……. 아니, 몸에 교훈을 내리신 건데요?”
“휴우……. 사실은 그 녀석이 내 딸에게 몹쓸 만행을 자행해서 열 받아서 그랬다네.”
“그러니까 그 만행의 구체적인 내용이 어떤 거죠?”
“내 딸에게 아이스케키를 했다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