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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4권(78화)
Part 1. 엘프 마을(3)


“자, 좋은 계획 있으면 말해 봐라. 어떻게 공격을 했으면 좋겠냐?”
코란이 사라지자 난 파티원들을 빙 둘러앉히고는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란슬링이 손을 들었다.
“쉬익! 내게 좋은 생각이 있다. 저 벌채꾼들의 작업장은 주변이 온통 나무들이 가득한 숲 한가운데다, 쉬익! 그러니까 주변의 나무들에 모조리 불을 지르는 거다. 이곳 숲이 완전히 화염에 싸일 정도가 된다고 생각해 봐라. 저것들이 얼마나 당황하겠냐, 쉬익! 그래서 불에 타서 허둥거리는 것들을 쓸어버리면 된다, 쉬익!”
“…….”
“…….”
뭐, 뭣! 이 숲에다 불을 지르자고? 아니, 근데 이게 돌았나.
내가 째려보자 란슬링은 긴 혀를 날름거리며 태연한 표정이다.
“너 죽을래? 뭐 불을 질러서 저것들을 없애 버리자고? 엘프들이 쟤들을 없애 달라고 부탁한 이유가 뭐냐. 나무 베는 게 너무도 싫어서 그런 건데, 불을 질러서 이 일대의 나무를 모조리 다 태워 버리면 촌장이 우리를 어떻게 할 거 같냐? 우릴 모두 화형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드냐?”
“쉬익! 뭐 그런 걸 일일이 다 따지냐. 그냥 저지르고 나중 일은 천천히 생각해도 된다, 쉬익!”
퍼퍼퍼퍽!
“쉬이익! 크아악! 왜 때리고 지랄이냐, 쉬익!”
“왜 때리는지 모르겠거든 저 구석에 처박혀서 두 시간만 생각해 봐라. 자, 또 누구 묘안 없냐?”
내 말에 다쓰가 거만한 자세로 입을 열었다.
“제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우선 우리 중 한 명이 저 작업장의 정문으로 가는 겁니다.”
“가서 어쩔 건데?”
“나무 베는 작업을 모조리 중지하고 여기서 꺼지든가 아니면 나한테 죽든가 선택하라고 하는 거죠.”
“니 생각엔 저것들이 둘 중 한 가지를 선택할 거 같냐?”
“아, 돌았습니까? 쟤들이 순순히 말을 듣게. 도리어 죽이려고 달려들겠죠. 그럼 거기서 쟤네들 하고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겁니다. 그러면 모든 시선이 그쪽으로 쏠릴 테니 나머지 인원은 뒤로 침입해서 저 안의 식수와 식량에 독을 풀어놓는 겁니다. 그럼 저것들은 멋모르고 저녁 먹다가 오늘을 못 넘기고 모조리 저세상으로 갈 거구요. 어떻습니까 저의 천재적인 생각이!”
“니가 생각해 놓고 스스로 천재적이라고 칭찬하고 자빠졌냐? 그래, 좋다. 일단 좋은 생각이라고 치자. 근데 정문으로 가서 백 명도 넘는 쟤들하고 맞짱 뜨는 건 도대체 누가 할 건데?”
“아, 그야 당연히 우리들 중 가장 용감하고 잘생기고 정정당당한 우영 형님이 하셔야죠. 그 틈에 뒤로 침투하는 얍삽하고 치사하고 어렵고 힘들고 폼 안 나는 역할은 우리들이 할 테니 형님은 조금도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퍽! 퍼퍼퍼퍼퍽!
난 울화통이 치밀어서 다시 메이스를 신나게 다쓰 녀석한테 휘둘러 댔다.
짜식이 날 보내 버리고 싶다는 속셈을 요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내다니.
나는 슬그머니 파티원 중 한 명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 파티원도 기다렸다는 듯 나를 마주 응시하더니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것은 삽질에 필수적인 도구인 삽이었다!
“훗! 케브라 역시 넌 내 생각을 제대로 읽고 있었구나.”
“전 우영 님께서 제 능력을 써먹을 생각을 하고 계신 걸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어서 시작해라. 근데 저 안쪽 건물까지 파고들어가는 데 얼마나 걸리겠냐?”
“30분이면 충분합니다!”
“좋다, 당장 시작해라!”
쿠콰콰콰!
푸파파파파!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케브라의 손에 들린 네 자루 삽이 춤을 추었다.
그러자 흙과 풀뿌리가 가득히 허공을 수놓아서 얼굴을 가려야 했다.
그리고 케브라의 모습은 땅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Part 2.벌채꾼 제거 작전(1)


불쑥!
우루루!
뭔 소리냐고?
뭔 소린 뭔 소리겠어. 케브라가 판 땅굴을 통해 우리가 벌채 작업장 안의 건물로 뚫고 나오는 소리지.
다행히 이 안에는 아무도 없구먼.
대충 만든 나무 침대와 도끼, 곡괭이 등의 작업 도구와 운반 도구들이 구석에 널려 있었다.
“야! 란슬링은 밖에서 누가 안 들어오나 망 좀 봐라. 그리고 다쓰는 그거 좀 꺼내 봐라.”
“뭘 꺼내는데요?”
“아, 모조리 독을 먹여서 깔끔하게 해치워 버리자며? 니가 좀 전에 말했잖냐. 너한테 독이 있으니까 한 소릴 거 아냐? 그러니까 빨리 꺼내 보라고. 용액으로 되어 있건 분말이건 정제건 그건 관계없다. 좌우간 독이면 된다!”
내가 재촉하자 다쓰 이 자식은 아주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 독 없는데요. 그런 거 안 가지고 다닙니다. 그리고 생각을 좀 해 보세요. 저같이 성스런 팔라딘이 독 같은 음험하고 사악한 물건을 도대체 왜 가지고 다니겠습니까.”
“…….”
아니, 근데 이 자식이 너무도 당연하지 않느냐는 표정이네?
난 열 받아서 이성의 끈이 끊어지려는 걸 꾹 참고 물었다.
“아, 그러냐? 성스런 팔라딘이라서 독 같은 건 안 키운다고? 그럼 왜 아깐 한 명은 정문에서 방방 뛰면서 주의 끌고 그사이에 나머지 인원이 이곳 식수와 음식에 독을 타서 해치우자고 했냐? 독도 없는 주제에 그런 계책을 꺼낸 이유가 뭐냐고!”
“아, 형님도 참. 그걸 말씀이라고 하세요.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 그랬죠. 도대체 그런 당연한 걸 묻는 이유가 뭡니까? 초딩입니까!”
어절씨구……. 이 자식이 도리어 지가 답답해 죽겠단 표정을 지으며 방방 뛰네?
더 이상은 못 참겠다.
이걸 그냥 메이스로 아예 쥐포처럼 납작하게 두들겨 줘야지.
그때 조핀이 슬며시 내 옷깃을 잡았다.
“우영 님, 저 좀 보실래요?”
“지금 조핀 님 봐서 뭐하게요?”
내가 삐딱하게 대꾸했지만 조핀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저한테 독이 있습니다만.”
엉?
내가 미심쩍은 표정을 짓자 조핀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주머니를 꺼내서 시커먼 가루를 보여 주었다.
“이 안에 든 게 모두 독입니다. 이 절반만 풀어도 이곳의 벌채꾼들을 모두 쓰러뜨리는 건 아주 간단합니다. 초딩들 손목 비틀기 정도로요.”
“감사합니다, 조핀 님! 세상에 이 많은 독을 몸에 지니고 다니시다뇨. 역시 음험하고 노회한 중년 아저씨는 다르시군요!”
내가 고마워서 손을 잡고 마구 흔들며 감사를 표시하자 조핀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좌우간 독이 있으니 이젠 일은 다 해결된 거나 다름없다.
나는 당당하게 파티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좋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작전을 시작한다. 일단 파티를 A팀과 B팀으로 나누겠다!”
내 말에 파티원들은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A팀은 나와 조핀 님, 그리고 세영이와 케브라, 란슬링이다.”
“그럼 B팀은…….”
다쓰가 뭔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 다쓰 너 혼자다!”
“나 혼자서 뭘 하란 겁니까?”
“몰라서 묻냐? 바로 니가 말한 계획을 그대로 사용할 거다. 다쓰 넌 지금 당장 여기서 나가서, 벌채꾼들이 모두 보는 데서 크게 외쳐 대라. 당장 여기서 벌채 작업을 중단하고 썩 안 꺼지면 모두 죽여 버리겠다고 방방 뛰란 말이다. 알겠냐!”
“그럼 그사이에 우리는 주방을 찾아서 음식과 물에 이 독을 푼다는 거죠?”
“물론입니다, 조핀 님. 자, 그럼 서둘러 움직입시다!”
내가 재촉을 해 댔으나 다쓰는 말도 안 된다는 듯 인상을 써 댔다.
“말도 안 됩니다! 어째서 나 혼자서만 벌채꾼들의 눈길을 끄는 위험한 역할을 해야 합니까!”
짜식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거지, 또 개김성을 발휘하고 자빠졌네.
다시 쥐어 팰까 생각하다가 여기서 시끄럽게 굴었다간 밖에 있는 벌채꾼들에게 들켜서 작전 개시도 하기 전에 산통 다 깨질지도 모른다.
나는 설명을 시작했다.
“훗! 왜 너 혼자서만 그 역할을 해야 하냐고? 간단하지. 첫째, 그 계획은 니가 세웠으니까. 둘째, 벌채꾼들의 이목을 끄는 역할을 하는 건 한 명이면 된다고 니가 그랬으니까. 그리고 셋째, 파티장인 내가 그 역할을 할 순 없으니까. 그리고 중년 아저씨인 조핀 님한테 그런 험한 일을 맡기는 건 경로사상에 위배되니까. 그리고 여자인 세영이가 그걸 했다간 이목도 끌기 전에 한 방에 가 버릴 테니까, 아예 소용이 없다고. 그리고 란슬링은 우리 중 누가 다치면 힐링해 줘야 하니 어차피 안 된다.”
내가 숨도 안 쉬며 단숨에 말했지만 다쓰는 여전히 승복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그럼 저 바퀴벌레는요! 케브라는 왜 빠지는 거냔 말입니다!”
그 말에 나는 다쓰의 어깨에 척 손을 얹고 달래듯 말했다.
“다쓰, 너 초딩이냐? 우리가 독을 풀다가 들키면 케브라가 땅굴 파서 여기서 달아나야 할 거 아니냐고! 넌 어찌 되든 모르겠다만 우린 죽으면 안 되잖냔 말이다!”
내가 유들유들 비웃듯 말하자 다쓰의 얼굴엔 불만과 반항의 표정이 가득 어렸다.
이 자식이 지금 속으로 무슨 생각하는 건지 알 것 같다.
그렇다면 한마디 해 줘야지.
“뭐 알아서 해라. 우리가 이 작전 성공 못 시키면 암흑제국으로 못 가거든? 그리고 암흑제국 못 가면 전나세 못 만나고, 걔 못 만나면 해치울 수도 없거든? 그리고 걔 못 해치우면 니가 팔라딘 자격을 다시 얻는 것도 영영 불가능이거든? 평생 파문당한 채로 살고 싶거든 알아서 하라고.”
내 말에 다쓰의 표정이 싸악 바뀌었다. 그리고 겸손한 척 입을 열었다.
“뭐 새삼스러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저도 잘 안다니깐요. 형님이 그러시니까, 마치 내가 배반할 마음을 먹고 밖에 나가자마자 ‘여기 독울 풀려고 들어온 자들이 있다! 한 명도 빼놓지 말고 모두 처치해 버려라!’고 고자질이라도 하려던 것 같지 않습니까? 우영 형님도 참.”
“…….”
“…….”
다쓰의 말에 우리 모두는 벙 찐 표정이 되었다.
짜식이 지가 뭔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를 제 입으로 다 실토하다니……. 속은 시커먼 놈이 왜 이렇게 단순한 건지 모르겠네.
좌우간 다쓰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큰 크게 외쳐 대는 목소리에 이어서 벌채꾼들의 욕설과 고함이 들려왔다.
그리고 뒤이어 욕설과 무기 부딪치는 소리 등이 살벌하게 마구 들려왔다.
그러자 세영이가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다쓰 님, 괜찮을까요?”
“안 괜찮으면 어쩔 건데? 그럼 세영이 니가 나가서 도와주기라도 할래? 자, 다쓰의 고귀하고 거룩한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도 서두르자. 케브라, 어서 주방으로 생각되는 곳으로 땅굴을 파라!”
다쓰가 이미 죽기라도 한 것처럼 말하자 모두 어이없는 표정이었으나 케브라만은 재빨리 땅을 파기 시작했고 우리는 모두 그 뒤를 따랐다.
그냥 뒷문으로 나가서 주방을 찾을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케브라가 판 땅굴로 이동하는 게 안 들킬 확률이 더 높을 거 같아서 말이지.
푸파파파팟!
불쑥!
철퍼덕!
“으아악! 이게 뭐야!”
“어머! 여긴!”
“야! 케브라 너 죽고 싶냐, 쉬익! 하필 뚫고 나올 데가 없어서 변기통을 뚫냐! 쉬익!”
“후퇴해라. 빨리 다른 쪽으로 뚫고 빠져나가자고! 으윽! 이 냄새!”
우리들은 일제히 비명을 터뜨리며 밀려드는 똥물 속에서 몸부림을 쳤다.
웬 똥물이냐고?
케브라 녀석이 이곳의 화장실 밑 쪽으로 뚫은 때문이었다.
거대한 변기통 속에 담겨 있던 똥물이 밀물처럼 우리에게 몰려든 거지.
다행히 케브라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굴착 방향은 바뀌었고 우리는 똥물 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라고 해 봐야 이미 온몸은 분뇨로 목욕한 것과 다름없는 상태였다.
에잇! 게임 속에서 똥물을 뒤집어쓴 기분도 엄청 찝찝하네.
이놈의 게임은 현실감이 너무 지나쳐서 문제라니까. 이렇게 더러운 건 적당히 좀 처리할 것이지.
이 질척거리는 똥의 느낌하며 악취까지 너무도 생생하잖냔 말이다.
그런데 다른 쪽으로 맹렬히 삽질을 해서 파 들어가면서 케브라가 한마디했다.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왜들 표정이 그러십니까? 별로 역겨울 건 없잖습니까?”
“…….”
그 말에 우리 모두는 벙 찌고 말았다. 별로 역겨울 거 없잖냐고?
그렇군.
케브라 이 녀석 바퀴벌레였지.
구석지고 냄새나는 곳으로 다니는 게 취미인 바퀴벌레가 똥오줌 정도 몸에 묻는 게 대수겠냐고.
같이 생활하면서 어느새 이 녀석을 인간으로 착각한 우리들이 문제인 거였다.
젠장, 충성스러운 건 좋지만 바퀴벌레는 역시 바퀴벌레다.
“알겠다. 알겠으니까 빨리 파라. 근데 이번엔 방향 제대로 잡아라!”
푸파파파파팟!
불쑥!
“욱!”
“여기는…….”
이번에는 똥물을 뒤집어쓰지는 않았는데 역시 황당하긴 마찬가지군.
철창 안이잖냐고.
하필 감옥 안으로 파 들어오다니.
난 케브라를 째려보았다.
“케브라, 너……. 설마 길치였냐?”
“죄송합니다.”
푹 고개를 떨구는 케브라를 보니 화도 못 내겠군. 젠장! 이 녀석이 길치였을 줄이야.
순식간에 신들린 듯한 삽질로 마구 굴을 뚫는 좋은 기술에 이런 핸디캡이 있다니.
하긴 저 충성심에, 싸움 실력에, 신의 경지에 달한 삽질에, 방향까지 제대로 잡는다면 그건 사기 캐릭터겠지.
“죄송할 거 없고 빨랑 딴 데로 파라. 파고 또 파면 설마 그중에 하나 정도는 이곳 주방이 걸리겠지.”
“알겠습니다. 파고 또 파겠습니다!”
내 말에 비로소 힘을 얻은 듯 케브라는 폼 잡으면서 맹렬한 삽질을 다시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