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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화)Part 4.암흑제국 입성!(2)
성문 모양부터 꽤 살벌하다.
해골이 입을 쩍 벌리고 있는 형상이라서 말이지.
그리고 성문 앞에는 시커먼 갑옷을 입고 전과 30범쯤은 되어 보이는 흉악한 인상의 기사 두 명이서 체스를 두고 있었다.
겉으로 봐도 상종할 인상들이 전혀 아니어서 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저…….”
“뭐냐!”
“그러니까 암흑제국으로 들어갈려고 왔는데……. 들어가도 될까요?”
“흥! 들어가든지 말든지!”
“들어가도 되냐고? 그런 걸 물어보다니 별 웃기는 녀석을 다 보겠군.”
뭣!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들어가든지 말든지라니?
들어가란 소리야, 말란 소리야?
얼핏 들으면 들어가도 무방하다는 소리 같기는 하다. 하지만 말은 이렇게 해 놓고 그냥 들어갔다가 뒤에서 저 핼버드로 목을 베려는 거 아냐?
퉁명스럽게 나한테 대꾸한 기사 두 녀석은 다시 체스 두기에 여념이 없었다.
우리 파티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말이지.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서 엉거주춤하고 있는데 저 안쪽에서 후다다닥 이쪽으로 도망쳐 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자 기사들은 체스판을 접고 핼버드로 그자를 가로막았다.
“서랏!”
“누군데 감히 암흑제국을 나가려고 하느냐!”
“흐흐흐흑! 정말이지 이제 이 이상은 못 버티겠습니다. 우리 파티 중에 저 혼자 남았는데 죽어도 죽어도 이 안에서만 부활되니……. 벌써 99번째 부활인데 계속 이 살벌한 곳이니……. 제발 여기서 좀 나가게 해 주세요. 네?”
“이거 웃기는 녀석이군. 이 암흑제국이 니가 나가고 싶다고 멋대로 나갈 수 있는 곳인 줄 알았더냐?”
“좋게 말할 때 도로 들어가든가 아니면 우리 핼버드에 두 쪽 나든가 선택은 니가 해라.”
흠……. NPC가 아니고 유저로군.
그 유저는 수문장인 두 기사들의 발을 붙잡고 빌면서 애걸복걸하다가 결국 핼버드에 보기 좋고 예쁘게(?) 두 쪽이 나고 말았다.
쩝……. 이제 좀 알 것 같다.
이 암흑제국 내부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말이지.
아마 마구 죽이고 빼앗고 하는 처절한 생존경쟁의 환경인 게 틀림없다.
그리고 이 안에서는 죽어도 다른 곳에서 부활이 안 된다는 것도…….
그리고 이 수문장들이 왜 들어가려는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고 나가는 인간들만 족치는 건지 그 이유도 알 것 같다.
하도 살벌한 환경이니 들어가려는 인간보다는 나가려는 인간이 많겠지.
그러니 들어가려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막기는커녕 거들떠보지도 않는 거다.
하지만 나가는 사람들은 철저히 막거나 처단해 버리는 거지.
감 잡은 우리들은 두 수문장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유유히 성문을 통과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완전히 성문을 통과한 우리들은 이제는 쉽사리 이곳을 나가지 못할 거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무슨 빽이 있거나 고위층이 서명해 준 출국 명령서라도 가지고 있지 않은 다음에는 말이지.
근데 NPC인 다쓰와 란슬링, 그리고 케브라는 별로 심각하지 않은 표정이군.
어디서 죽어도 그 한 번으로 끝장이기 때문인가…….
그리고 이곳에 여러 번 와 봤다는 에이프릴은 이곳을 나가는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기에 저렇게 태연하겠지?
반면에 유저인 세영이는 좀 심각하다.
그리고 파티원 중에서 유일하게 같은 입장인 나를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세영이를 안심시켜 주었다.
그러자 세영이도 좀 전에 내가 약 올린 것도 까맣게 잊고 마주 방긋 미소 지었다.
오랜만에 우리 둘 사이에 화기애애하고 끈적끈적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
근데 그걸 본 에이프릴이 질투에 찬 표정을 짓더니 슬쩍 내 팔을 감싸 안았다.
엇! 이 물컹하는 감각은 마리사보다 더 탄력이 있는 것 같다.
음, 좋구먼.
역시 인간이든 엘프든 글래머가 바람직하다. 아무래도 절벽은 좀 그렇다.
내가 흐뭇해서 약간 당황스러워하자 에이프릴은 콧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저기……. 우영 니이임……. 우리 이곳에 왔으니 삼촌 댁부터 좀 들르면 안될까요오오오오.”
음……. 예쁜 엘프 처녀가 애교를 떨며 말하니 거절하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긴다.
내 간이라도 내 달라면 내주고 싶은 충동이 치솟는단 말이지.
나는 동의를 구하려고 슬쩍 조핀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조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암흑제국 안에 들어왔으니 황제를 만나는 일이야 급히 서두를 건 없겠죠. 사실 우리가 불쑥 황궁으로 간다고 해서 금방 황제를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군요. 그럼 오늘은 에이프릴 님의 삼촌 댁에서 여장을 풀고 쉬기로 합시다.”
해서 우리들은 에이프릴의 뒤를 따랐다.
근데 이거 어째 눈에 들어오는 거리의 풍경이 다른 곳하고 꽤 다르긴 하군.
“죽여라!”
“찢어 버려!”
“사정 봐줄 거 없다!”
“숏 소드 노옴에 100골드 건다!”
“난 배틀 엑스 드워프에 150골드!”
길거리에서 죽기 살기로 칼부림을 하는 녀석들도 있었고 거기에 돈을 걸고 도박하는 놈들도 부지기수였다.
근데 가만 보니 NPC뿐만 아니고 유저들도 꽤 있는 것 같다.
그렇단 이야기는 여기서는 PK도 무제한 용인된단 거겠지.
아마 이곳의 PK 기록은 이곳을 나가면 자동적으로 삭제를 해 주는 걸 테고.
근데 그것만이 아니다.
“저놈 잡아라!”
두다다다다!
뚱뚱한 중년인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키 큰 청년을 쫓고 있었다.
“내 지갑을 훔친 살인강도요! 누가 저놈 좀 잡아 주시오!”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쫓는데도 누구 하나 도와줄 생각도 않고 있었다.
우리 파티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쩐지 섣불리 끼어들 일이 아닌 것 같아서 말이지.
그리고 그 판단은 이내 맞아떨어졌다.
“이 살인강도! 파렴치한 살인범!”
중년인이 고래고래 악을 쓰며 소리치자 도망가던 소매치기가 갑자기 뛰는 걸 멈추었다.
그리고 자신을 헐레벌떡 쫓던 중년인에게 다가갔다. 험악하게 인상을 쓰면서 말이지.
“어어……. 이거 뭐야? 왜 이래!”
뒤쫓던 중년인이 도리어 당황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소매치기 청년이 칼을 빼 들었으니 그럴 법도 하지만…….
“내가 살인강도라고? 난 소매치기일 뿐인데 살인강도라고? 사람을 그런 식으로 모함을 해! 넌 살인강도가 뭔지도 모른다는 것이냐. 똑똑히 알려 주마. 이렇게 해야 살인강도다!”
슈악!
“크아아악!”
청년이 휘두른 칼에 중년인은 분수처럼 목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우와! 이거 진짜 살벌하네.
아니, 근데 저건…….
청년이 칼로 중년인을 죽이느라고 그의 품에 있던 중년인의 지갑이 떨어졌다.
근데 그 속에 보이는 금화의 액수가 꽤 많아 보이는데?
청년이 쓰러진 중년인에게 비웃음을 던지고 지갑을 주우려는 순간 내가 그의 앞을 막았다.
“넌 뭐냐?”
“이 가증스런 살인마! 우리 당숙의 복수를 해 주마, 받아라!”
퍼억! 퍼퍼퍼퍼퍽!
“꽤애액!”
“오우거 거시기 할퀴기!”
퍼엉!
화르르!
“끄아아아악!”
전광석화!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소매치기 녀석을 내가 메이스로 죽도록 두들겨 패서 녀석이 소매치기한 지갑이 땅에 떨어진 것.
내가 그 지갑을 한쪽 발로 슬쩍 치움과 동시에 오우거 거시기 할퀴기로 쌈박하게 태워 재로 만들어 버린 것은 말이지.
나는 슬그머니 그 지갑을 챙겨 주머니에 넣으며 모두가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말했다.
“아니, 지갑이 있었다니! 이건 당숙의 유품이니 내가 잘 보관해야겠군!”
“…….”
“…….”
기가 막힌 눈으로 나를 보던 파티원들 중 조핀과 란슬링이 입을 열었다.
“그것참……. 우영 님께서는 참 여러 곳에 친척이 계시는군요. 근데 이곳에 당숙께서 사신다는 건 전혀 말씀 안 하셨지 않습니까?”
“그렇다, 쉬익! 그리고 당숙의 시체를 저렇게 내버려두면 어쩌냐. 그건 말도 안 된다. 정중히 모셔서 장례 치뤄 줘라, 쉬익!”
“맞습니다! 우영 형님이 장례를 치뤄 줘야 합니다. 장례 비용은 그 지갑의 돈으로 하면 되겠네요. 원래 당숙님의 돈이니 그걸로 하시는 게 옳죠.”
근데 이것들이…….
인간들이 쪼잔하게 시비 걸기는.
금화가 두둑이 들은 지갑을 내가 가지는 게 퍽이나 배가 아픈 게로군.
난 슬쩍 중년인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모두가 듣게 소리 높여 떠들었다.
“응? 그런데 자세히 보니 당숙이 아니고 딴 분이네? 내가 잠시 착각을 했었나 보다. 근데 내가 복수를 해 줬으니 저 사람도 내가 이 돈을 가지는 걸 기뻐할 거라고 생각되는데? 안 그렇습니까, 에이프릴 님?”
“네? 아,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호호호홋!”
“역시 그렇군요. 모두가 찬성인 것 같으니 이 지갑은 당연히 제가 갖겠습니다. 그럼 어서 삼촌 댁으로 가십시다. 후후훗!”
나는 벙 쪄서 말을 잇지 못하는 파티원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걸음을 재촉했다.
근데 이번에는 어째 거리 곳곳마다 벽보가 붙여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 앞에는 사람들이 쫘악 모여서 수군거리고 있었다.
저건 도대체 뭐지?
“야! 케브라! 저 벽보가 무슨 내용인지 한 번 보고 와라!”
“알겠습니다, 우영 님!”
다쓰와 란슬링과는 달리 케브라는 내 명령에 군소리 없이 벽보 쪽에 가서 이곳저곳 훑어보더니 돌아왔다.
“저 벽보들은 현상 수배 공고였습니다.”
“무엇? 현상 수배 공고라고?”
좀 이상한 생각도 들었지만 조핀이 설명을 해 주었다.
자신도 들은 이야기라고 하면서.
즉 이곳 암흑제국은 약육강식의 사회니까 다른 나라에서 범죄자들이 피신하러 오는 일이 많다고 했다.
암흑제국 정부에서 범죄자들을 체포할 일이 없으니까 말이지.
당연하지. 길거리에서 사람 죽고 죽이는 거 빤히 놔두는 정부가 외국에서 들어온 범죄자라고 체포를 할 리가 있겠어?
근데 알아둘 건 그렇다고 암흑제국 정부가 그 범죄자들을 보호해 주는 것도 아니라는 거다.
외국에서 그 범죄자에게 내건 현상 수배는 여기서도 유효하다는 거지.
즉, 그 범죄자들을 여기서 죽이거나 체포해서 그 나라에 갖다 주면 현상금을 받을 수 있다는 거다.
근데 밖으로 못나가게 한다고 했잖냐고?
아니, 그건 아니라는군.
현상 수배범을 체포하거나 또는 죽인 시체를 휴대하면 성문도 무사통과라고 한다.
그런 사람들은 이곳에 다시 들어와서 또 현상 수배범을 잡으려고 할 확률이 높으니까 그렇다는군.
즉 한 번 나가서 다시 이곳에 안 돌아올 녀석들은 철저히 못 나가게 하지만 이곳에 들락거릴 이유가 있는 사람들은 안 막는단다.
듣고 보니 말 된다.
근데 정말 벽보가 많이 붙어 있다. 한두 장이 아니란 말이지.
어떤 거리는 아예 벽마다 모조리 현상 수배 전단으로 도배가 되어 있다시피 하다.
근데 케브라가 좀 심각한 표정으로……라고 해 봐야 사실 바퀴벌레가 짓는 표정이 어떤 게 심각한 표정인지 감이 잘 안 오지만……. 좌우간 어쩐지 느낌만으로도 좀 심각해 보이는 기색으로 나에게 한 장의 전단을 건넬까 말까 망설였다…….
“우영 님, 이거 굉장히 의미심장한 전단이 하나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그러냐? 솜씨 좋은 화가가 그리기라도 했냐? 뭔가 예술적인 현상 수배 전단이냐? 어디 한 번 보자.”
“…….”
케브라의 손에서 날름 전단을 받아 든 나는 한 10분간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벌린 채로 있었다.
그러자 뭔가 심상찮은 기색을 눈치챈 파티원들도 그 전단을 기웃거리더니 역시 동일한 반응을 보였다.
그 전단의 내용은 이렇게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