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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4권(85화)
Part 4.암흑제국 입성!(4)


“그런데요…….”
“네?”
“그런데 어쩌면 저 삼촌을 찾아갈지도 모르거든요.”
허거거걱!
아니, 이 엘프 처자가 잘나가다가 이게 무슨 오크 허파에 공기 주입해서 족구하는 소리를 하는 거냐?
“아니, 도대체 또 왜 그러시는 겁니까? 이해하신다면서요?”
내가 울상을 지었으나 에이프릴은 내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 사실 우리 아버지가 우영 님께 저를 안내하라고 보낸 건 우영 님이 절 책임지라는 말씀이셨거더요. 창피한 꼴을 보인 저는 이제 엘프 마을에서 살기가 너무 싫어져서 말이죠. 그러니 아예 외지인 남자와 바깥 세상에서 새 삶을 설계해 보라고 그러신 건데……. 우영 님도 그건 아시죠?”
“…….”
난 속이 뜨끔했으나 그냥 침묵을 지켰다. 물론 그건 눈치채고 있었다만 넙죽 인정해 버리면 상황이 요상하게 될 수가 있으니까.
나의 그런 의중을 파악한 듯 에이프릴은 한 글자 한 글자 또렷하게 내뱉었다.
“그런데 우영 님이 그걸 인정 안 하시면 상당히 곤란하거든요. 그리고 아까 세영이란 여자하고 서로 다정하게 웃고 그러시던데……. 그런 거 보면 제 마음이 너무 아프거든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
젠장!
말을 끝까지 맺지는 않았지만 뭔 소린지는 충분히 알아듣고도 남겠다.
그러니까……. 넌 내 거니까 딴 여자한테 마음 줄 생각하지 마라, 행여 내가 보는 데서 또 그랬다간 삼촌을 불러서 경을 치게 만들어 주겠다는 협박이로군.
뭐, 노골적인 협박이야 아니지만 최소한 자기 의사는 아주 분명히 표시한 셈이다.
쩝…….
어쩔 수 없다.
여기서 딱 부러지게 예스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내가 당신을 책임져? 이보세요, 엘프 아가씨. 뭔가 착각이 심한 거 같은데 꿈 깨세요!’라고 면박을 줘서 최악의 상황을 자초할 생각은 없다.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우리 모두에게 가장 좋은 쪽으로 이르하임 신께서 보살펴 주시겠죠. 결국 모든 게 잘 될 겁니다.”
나는 빙긋 황희 정승처럼 미소 지으며 그렇게 말을 맺었다.
에이프릴이 듣든 세영이가 듣든 자기한테 유리하게 해석될 수 있는 내용으로 말이지.
일단은 이렇게 처리하는 수밖에.
그리고 이제부턴 가급적 여자가 있는 데서 다른 여자와 사이좋게 지내는 장면은 극력 피해야겠다.
휴……. 이거 피곤하게 됐다.



Part 5.깡패 엘프 등장(1)


“흐흐흐, 당신들이 우리 에이프릴의 동행들이로군. 바퀴벌레에, 꼬마 중년에, 리자드맨, 프리스트에, 변태 팔라딘에, 겉으로는 아주 멀쩡하게 생긴 스토커라……. 참으로 인상적인 몰골들이시군.”
“…….”
“…….”
케드릴은 쭈욱 우리를 둘러보며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으며 이죽거렸다.
키는 거의 2m는 되고, 어깨는 오우거 뺨치게 벌어졌고, 팔뚝은 미노타우로스만큼 튼튼해 보인다.
게다가 얼굴의 왼쪽 귀에서 입 밑까지 큼직한 칼자국이 새겨져 있는 데다가 눈은 광기로 번들거리는 게 전형적인 범죄자의 눈이다.
게다가 허리에 차고 있는 저건 뭐냐? 푸줏간에서 돼지나 소 잡을 때 쓰는 칼 같은데, 피까지 묻어 있다.
소 잡다가 왔을 리도 없으니 저 칼에 묻은 피의 출처가 궁금해진다.
내 살다 살다 이렇게 흉악하고 깡패 같은 엘프는 처음 본다.
파티원들은―에이프릴만 빼고― 하나같이 긴장된 표정이었다.
“네……. 말로만 듣던 에이프릴 님의 삼촌이신 케드릴 님이시로군요. 이렇게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나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으나 에이프릴의 삼촌 케드릴의 비웃음은 좀 더 짙어졌다.
“에이프릴한테 이야기는 잘 들었네. 아주 인상적인 일들을 우리 엘프 마을에서 벌이셨다고들 하더군. 감히 독을 뿌려서 우리 엘프들을 몰살시켜려 하다니,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지. 그 보답을 듬뿍 돌려주도록 하지. 흐흐흐흐.”
말과 함께 케드릴은 슬쩍 푸줏간용 칼을 움켜잡았다.
우리 파티들은 모두 긴장으로 몸이 굳어졌다.
근데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되었냐고?
분명히 에이프릴이 삼촌한테는 데려가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냐고?
쩝……. 그랬지.
그런데 그만 예기치 못한 돌발 사태가 생겨 버렸다.
그건 그러니까, 내가 에이프릴한테 현상 수배 전단 이야기를 한 그 다음날 아침의 일이었다.

아침을 먹으려고 파티원들이 식탁에 모여 앉았다.
응? 그런데 왜 란슬링 이 자식만 안 보이는 거지?
내가 수저를 들다 말고 의아해하자 세영이가 설명해 주었다.
“란슬링 님은 어젯밤에 술을 좀 마셔서 피곤하다고 아직도 침대에 누워 있어요. 대자로 뻗어서 그 드래곤 콧털만큼이나 긴 혀를 날름거리면서요. 침 튀기는 거 묻을까 봐 기겁했지 뭐예요.”
“훗, 그 자식은 자면서까지 침을 마구 뿌려 대고 자빠졌단 거냐? 우리 세영이가 놀랐겠구나. 그 염산 같은 침이 옷에 튀지는 않았니?”
나와 세영이의 화기애애한 대화가 약간 길어질 기미를 보이자 에이프릴이 슬쩍 눈초리를 추켜올렸다.
“그런데 세영 님의 말씀이 좀 이상하네요. 란슬링 님의 혓바닥이 아무리 길어도 어떻게 드래곤의 콧털만큼이나 되겠어요. 어림도 없죠. 란슬링 님의 혓바닥은 드래곤 콧털의 반의 반의 반도 안됩니다. 세영 님이 틀림없이 잘못 보신 거예요.”
여기서 세영이가 그냥 넘어만 갔어도 좋았을 텐데 그렇지가 못했다.
나를 두고 은근히 에이프릴과 경쟁심을 불태우고 있었으니 말이지.
‘너는 그걸 눈이라고 달고 다니냐? 시력검사 한 번 해 봐라’라는 말투에 세영이는 발끈하고 말았던 거다.
“흥! 그렇게 말하는 에이프릴 님은 드래곤의 콧털을 실제로 보신 적이 있어요? 실제로 봤어야 비교할 수 있을 거 아녜욧!”
“네, 봤어요. 보고말고요! 저는 실제로 드래곤 콧털을 봤답니다.”
“흥! 도저히 못 믿겠군요. 그걸 어디서 봤다는 거죠? 도대체 어디에 드래곤 콧털이 보관되어 있어서 그걸 봤다는 건데요?”
뻥이기만 해 봐라 널 가만 안 둔다는 식으로 세영이가 을러댔지만 에이프릴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말을 받았다.
“어디긴 어디겠어요. 우리 엘프 마을의 촌장실 금고 안에 보관되어 있답니다. 의심스러우면 직접 보러 가실래요? 아버님한테 말씀드려서 언제든지 보여 드릴 테니까.”
“…….”
“…….”
이건 에이프릴의 KO승이로군.
돌았다고 우리가 그거 확인하려고 죽을 각오하고 그곳에 가겠냐고.
결국 할 말이 없어진 세영이는 슬쩍 나를 바라보았다. 나더러 역성 좀 들어 달란 소리지.
그런데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세영이 편을 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냔 거다.
나는 외면하고 시선을 슬쩍 식탁에 놓인 음식들 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포크로 음식을 찍어서 맛을 보며 음식 감평을 시작했다.
“오늘 아침은 고블린 뒷다리 볶음하고 오크 눈알을 식용유로 튀긴 요리가 특히 맛있는 것 같군. 얘들아, 그렇지 않냐?”
“그렇군요. 다음번 식사에선 양념 듬뿍 바른 리자드맨 혓바닥 요리를 한 번 먹어 보기로 하십시다.”
“뭐, 뭣! 무슨 요리? 앞으로 나한테 힐링받기 싫거든 그딴 소리해라, 쉬익!”
내가 화제를 바꾸려 하자 다른 파티원들도 슬쩍 호응을 해 주었다.
그들도 에이프릴의 비위를 거슬러서 좋을 게 없다는 걸 절실히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러자 세영이는 나를 한참을 쏘아보며 울먹울먹하더니 후다닥 밖으로 뛰어나가 버렸다.
에이프릴은 승리의 만족감에 뿌듯해하면서 사악한 미소를 지었고.
젠장! 여자들의 신경전은 참 피곤하군.

나는 화장실에 가는 척하면서 슬그머니 나와서 여관 후원에 있는 세영이한테 갔다.
그냥 모른 척하면 후환이 있을 테니 위로해 주는 척이라도 하려고.
“훗! 세영아.”
“흥!”
“아깐 내가 일부러 니 말 씹은 거 아니거든? 어디까지나 우리 파티의 평화를 위해서 잠시 침묵을 지킨 거뿐이란다!”
“아니긴 개뿔이 아네욧! 이 변태에, 스토커에, 바람둥이! 나하고 사귄다면서 내 편은 전혀 안 들어주고! 그 왕가슴 엘프 계집애가 그리도 좋아욧!”
“아니, 너 애가 자꾸 왜 이러냐? 난 나대로 머리가 복잡하고 파티원들 때문에 골치가 아픈데, 너까지 이래야 되겠냐?”
나는 슬쩍 인상을 쓰면서 을러댔지만 이번엔 세영이도 꽤 화가 났는지 물러설 기색이 아니다.
“오빠가 우유부단하니 그렇잖아요! 분명히 말해 줘요. 란슬링 님 혓바닥이 드래곤 콧털보다 더 길어요 안 길어요!”
쩝……. 얘도 참 쓰잘머리 없는 데 집념이 강한 녀석이구먼.
란슬링 혓바닥이나 드래곤 콧털이나 지금 우리 입장에선 국 끓여 먹을 일도 없는 하찮은 물건들일 뿐인데…….
하지만 이 상황에서 ‘당연히 더 안 길지. 너 시력검사 한 번 받아 봐라.’고 할 만큼 내가 머리가 안 돌아갈 인물이 아니지.
무엇보다도 여긴 에이프릴이 없으니 세영이의 비위를 맞춰 준다고 해서 문제될 것도 전혀 없다.
“얘도 참 뭘 당연한 걸 묻고 그러냐. 란슬링 그 자식의 혓바닥은 뽑아서 줄넘기를 해도 우리 파티 전체가 한꺼번에 다 할 수 있을 거고, 빨랫줄로 사용하면 이 여관 투숙객 전원의 빨래를 다 널고도 남을 거다. 그러나 드래곤 콧털은 아무리 길어 봐야 내 이쑤시개로 밖에 쓸 수가 없지.”
“그렇죠? 지금 그 말 틀림없죠?”
세영이가 얼굴을 활짝 펴면서 확인하자 나도 마주 미소를 지어 주었다.
“아, 그럼 틀림없고말고. 니 말에 반대하는 사람은 눈알을 장식품으로 박아 넣고 다니는 게 틀림없지.”
그러자 세영이는 내 뒤쪽을 향해서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지금 우영 오빠 이야기 잘 들으셨죠? 그런데도 자꾸 우길 거예요?”
내가 기겁을 해서 돌아보니 거기에는 에이프릴이 서 있었다.
“허거거거걱!”
다급히 변명을 하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날 노려보던 에이프릴이 질질 짜면서 얼굴을 감싸 쥐고는 여관 밖으로 뛰어나가 버렸으니까.
그리고 한나절이 지나서 재경이 녀석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려고 거리를 쏘다니다가 온 우리들 앞에 이 문제의 엘프, 즉 자기 삼촌인 케드릴을 데리고 나타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