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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4권(86화)
Part 5.깡패 엘프 등장(2)


“흐흐, 에이프릴 이야기를 들어 보니 꽤 한 수가 있는 것 같더군. 지금까지 저지르고 다닌 일들이 엄청나다면서?”
케드릴은 탁자에 거만하게 두 발을 척 올리고는 시거를 피워 물었다.
이거 외국 조폭 영화에서 많이 보던 광경이구먼.
하지만 여기서 쫄면 안 된다.
나는 배에 힘을 주고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건 과찬이시구요. 그냥 우리 파티가 힘을 합치면 대형 몬스터 하나 정도는 가볍게 두들겨 잡을 능력은 있죠…….”
내 말에 케드릴은 눈썹을 움찔했다.
우릴 손보려고 날뛰면 이쪽도 가만히 당하지는 않겠다는 뜻인 걸 알아챈 거지.
그는 한참을 나를 노려보다가 살기를 거두고는 입을 열었다.
“사실 에이프릴 이야기를 듣고 우리 엘프 마을에 독을 푼 보복을 하려고 왔지만…….”
그 말에 나는 에이프릴을 노려보았다.
“이거 정말 유감이네요, 에이프릴 님. 이런 분인 줄은 몰랐는데, 설마하니 삼촌께 쪼르르 달려가서 고자질을 하실 줄이야!”
내 말에 에이프릴은 기겁을 하면서 손사래를 쳤다.
“저 고자질 안 했어요! 우영 님께서 제 편을 안 들어주시는 게 너무 서운해서, 삼촌을 찾아가서 그냥 우영 님들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모두 다 털어놓은 것뿐이에요!”
“…….”
이거 돌아 버리겠군.
바로 그런 걸 고자질이라고 하는 거란다. 이 대책 없이 가슴만 들입다 큰 엘프 처녀야!
나는 해 볼 테면 해 보라는 투로 케드릴의 두 눈을 마주 응시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우리가 잘못한 거 없습니다. 벌채꾼들 제거하려고 독을 푼 음식과 식수를 아무 의심 없이 덥석덥석 먹어 치운 엘프 마을 사람들……. 구체적으로 지목하자면 엘프 마을 지도자인 촌장께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봐야죠. 그러니 손볼려면 엘프 마을에 가서 그 양반 손이나 실컷 봐주시죠!”
“…….”
그 말에 케드릴의 표정이 다시 험악해졌다.
긴장된 공기가 방 안을 팽팽히 메웠지만 시간이 좀 더 흐르자 냉정을 찾은 듯한 케드릴은 결국 어조를 누그러뜨렸다.
“휴우……. 듣고 보니 형님한테도 책임이 없진 않군. 그 양반이 요즘 들어 노망기가 보이는 건 틀림없어. 옛날에 내가 옆에 있을 때만 해도 안 그랬는데…….”
음, 이제야 납득을 하는가 보군.
난 가까스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아직 상황이 종료된 게 아니었다는 말이지.
내 말을 알아들은 척하던 케드릴이 다시 날 노려보면서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최초의 원인 제공자는 역시 너희들이야! 제일 먼저 그 독을 푼 건 너희들이 틀림없잖은가!”
“아, 글쎄! 벌채꾼들을 제거해 달라는 촌장님의 의뢰 때문에 한 거라니깐요! 좋습니다. 그럼 우리도 약간의 책임은 있다고 치고 도대체 뭘 어쩌란 겁니까? 내 목이라도 드려요?”
“…….”
그 말에 케드릴은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슬며시 입을 열었다.
“좋다. 사실 너희들을 손봐 주려고 단단히 벼르고 왔다만 대신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없던 일로 해 주지. 그리고 아직 엘프 마을에서 사망자가 나오지는 않았으니까.”
부탁이라고?
이거 퀘스트 발동인가?
근데 이렇게 되면 보상이 고작 케드릴이 엘프 마을 사건으로 보복하지 않는다는 것뿐이잖아?
엘프 마을 촌장이 보복을 포기한다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내가 별로 내켜 하지 않는 표정을 짓자 케드릴은 슬며시 나를 구슬렸다.
“내 부탁을 들어주면 좋은 점이 하나 있는데 말이지. 이곳의 귀족이 될 수가 있지.”
귀족, 귀족이라고?
뭔 부탁인지는 몰라도 그걸 들어주면 귀족이 될 수가 있다니…….
근데 여기서 귀족이 되어 봐야 딱히 좋은 점이 있을까 싶어 거절을 하려고 마음먹은 순간이었다.
갑자기 조핀이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더니 내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무조건 받아들이세요. 드래곤 레어에 침입해서 잠자는 드래곤 눈썹 스무 개쯤 뽑아 오라는 부탁이라도 무조건 들어준다고 하세요!”
아니, 근데 이 아저씨가…….
내가 기가 차서 말을 잇지 못하는데도 조핀은 계속 눈짓을 하면서 케드릴의 부탁을 받을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저 정도면 분명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러는 건 틀림없다.
어쩌면 내가 마토스 국왕으로부터 의뢰받은 조핀의 퀘스트에도 영향을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들어줄 수밖에.
“뭐 좋습니다. 케드릴 님의 요청을 받기로 하죠.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내가 케드릴 님이 무서워서 이러는 건 절대 아닙니다.”
“흐흐 내 말대로 하겠다니 잘됐군. 그렇잖아도 내 부하들을 밖에 대기시켜 놨는데 철수시켜야겠군그래.”
젠장! 역시 혼자 온 건 아니었군.
하긴 인상 험악한 걸로 봐선 만만찮은 조직을 이끌고 있을 거 같긴 했다만.
케드릴은 마치 승리자인 양 느긋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좀 아니꼽긴 했지만 우리들은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당신들한테 부탁하고 싶은 일은 별거 아냐. 아르본 자작이라고 귀족이 하나 있는데……. 이실리움이라는 매우 희귀하고 고가인 금속을 원석으로 잔뜩 가지고 있지. 근데 내가 그 금속을 매우 간절히 원하고 있거든? 그러니 그걸 빼앗아서 내게 주면 되네.”
“…….”
어째 이상하네.
언뜻 들으면 간단한 것 같다만…….
세영이가 슬쩍 물었다.
“그 금속이 고가라고 하셨는데 얼마나 비싼 거죠?”
“같은 무게의 다이아몬드보다 두 배는 더 비싸지. 이걸로 무기나 갑옷, 마법 아이템 등을 만들면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팔아먹을 수 있지.”
“…….”
순식간에 방 안 공기가 썰렁하게 바뀌었다.
금도 아니고……. 그 비싼 다아아몬드보다도 두 배는 더 비싼 금속이라면, 이건 지키는 쪽이나 빼앗는 쪽이나 모두 목숨을 걸어야 한다.
거절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뒤늦게 뇌리를 스쳤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우리들의 표정이 똥 밟은 듯 일그러졌지만 케드릴은 유들유들하게 대꾸했다.
“난 그것만 원하니까 그 귀족한테 빼앗는 다른 건 모두 다 가져도 좋아. 난 아주 후한 사람이니까 돈이든 다른 귀금속이든 모조리 다 주도록 하지.”
젠장!
형이란 인간은 우릴 현상 수배하면서 현상금은 우리한테 빼앗아 가지라고 하고, 그 동생이란 인간은 남의 물건을 강탈하면서 마치 자기 걸 주는 듯 선심을 쓰고 자빠졌네.
이거 속이 아주 시커먼 내력을 지닌 집안이다.
내가 못마땅한 표정이자 케드릴은 선심 쓰듯 한마디를 더 던졌다.
“그래도 마음이 안 동하나? 그럼 우리 형님이 자네들한테 내건 현상 수배를 모두 취소시켜 주고 필요할 때 딱 한 번에 한해서 내 조직의 힘을 빌려 주겠네.”
으음……. 골치 아픈 거 하나 해결해 주겠단 소리군. 그리고 조직의 힘을 빌려 준다라…….
난 과히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크게 구미가 당기지는 않습니다만……한번 해 보죠.”
“좋았어!”
드디어 퀘스트는 발동되었다.
띠리링하는 음향과 함께 창이 떴다.

- 이실리움을 탈취하라!-
엘프 케드릴은 암흑제국의 아르본 자작에게 이실리움을 빼앗아 줄 것을 요청했다.
아르본 자작은 그 전직에 어울리게 살벌한 부하들의 경호를 받고 있다.
쉽게 빼앗기 어려울 거라는 거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기한 : 일주일
보상 1 : 암흑제국의 귀족이 된다.
보상 2 : 엘프 마을 촌장이 내건 현상 수배의 취소
보상 3 : 엘프 케드릴이 거느린 조직의 힘을 한차례 빌려 쓸 수 있다.
제한 : 아르본 자작을 살려 두면 퀘스트는 실패다. 반드시 죽여라!
퀘스트 등급 : 3급

죽이라고?
아르본 자작을 살려 두면 퀘스트 실패라니, 이건 또 뭔 소리야?
케드릴은 내가 자신의 요구를 받아들이자 기분이 무척 좋은 듯했다.
“흐흐흐, 그럼 난 가 볼 테니 곧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올 거라고 믿겠네. 이실리움의 황홀한 감촉을 내가 마음껏 맛보게 될 거라고 알고 있겠단 이야기지.”
“최선을 다해 보죠…….”
마지못해서 내가 대답하자 그는 내 어깨를 정답게 다독이며 방을 나갔다.
“흐흐, 자네 처음엔 몰랐는데 가만 보니 은근히 마음에 든단 말이야.”
쩝! 언제 봤다고 이렇게 정답게 구는지 모르겠네.
근데 그가 나가면서 한 말이 다시 방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들었다.
“잘 있게 조카사위. 그리고 가급적이면 우리 에이프릴을 화나게 하지 말라고. 한 번 삐치면 나보다 더 겁나는 존재거든. 이제 결혼한 사이니 자네만 믿고 살 아이인데 잘해 줘야 할 거 아닌가 말이야.”
조카사위!
조카사위라니, 이게 무슨 소린가?
그게 무슨 헛소리냐? 난 절대로 에이프릴과 결혼하겠다고 한 적 없다고 항의하려 했으나 그럴 틈도 없이 케드릴은 사라져 버렸다.
모든 파티원들이 날 도둑놈 보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중에서도 세영이가 가장 심하군.
“오빠, 이제 보니……. 설마……. 엘프 마을에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에이프릴과 비밀 결혼을 한 건가요?”
“뭐, 뭐, 뭣! 세영이 너 지금 그게 뭔 소리냐. 너 죽을래! 왜 멀쩡한 총각을 유부남으로 만들고 자빠졌냐! 그리고 에이프릴 님도 뭐라고 좀 해요. 우리가 비밀 결혼을 하다니 말이나 되냐구요! 억울한 누명을 쓰면 나나 에이프릴 님이나 기분이 좋을 리가 없잖냐구요!”
내가 기겁하며 부인했으나 파티원들은 별로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게다가 에이프릴은 얼굴을 붉히며 수줍은 척 두 손을 비비 꼬았다.
이 왕가슴 엘프 처녀야! 이 상황에서 그런 액션을 취하면 어쩌냐. 오해가 풀리긴 커녕 더 심해질 거 아니냔 말이다!
나의 타들어가는 속은 아랑곳없이 에이프릴은 마치 마음 뺏기고 몸 뺏긴 처녀처럼 가녀린 태도로 한껏 내숭을 떨면서 말을 이었다.
“전 뭐라고 딱히 할 말 없어요. 굳이 삼촌이 하신 말씀을 부인할 생각은 전혀 없구요. 부인한다고 해서 사실이 사실이 아닌 게 되는 것도 아니고. 사실이 아닌 것이 사실이 될 수도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어쨌거나 엘프 마을에서 저와 우영 님 사이에 있었던 일은 너무 적나라해서 차마 여기서 여러분들께 밝힐 수는 없어요. 그냥 여러분들의 상상에 맡기겠어요. 그럼 전 제 방에 자러 갈게요. 하도 분해서 어젯밤에 한잠도 못 잤거든요.”
허거거거걱!
아니, 세상에 이런 황당한 왕가슴 엘프녀를 봤나.
아무것도 안 밝히겠다면서도 정작 이상한 오해 부르기 딱 좋을 야리꾸리한 말만 폭포수처럼 마구 쏟아 내고 나가 버리다니!
에이프릴이 바람처럼 사라져 버리자 파티원들은 일제히 두 눈을 가늘게 뜨고 가증스럽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뭐, 이 정도면 확실하군요. 여자 입에서 저런 소리가 나오면 뻔할 뻔자 아닙니까? 우영 님도 참 여간하지 않으십니다. 부인할 걸 하셔야죠.”
“훗! 도둑 결혼을 하다니. 우영 형님, 참 손이 빠르시네요…….”
“흥! 마리사도 건드리고, 이사도라하고는 불륜으로 애까지 만든 것도 모자라서, 이번엔 엘프 처녀와 비밀 결혼을 했냐, 쉬익! 우영, 너도 인간이냐? 이 세상 여자란 여잔 다 건드리다니! 넌 남자의 적이다, 쉬익!”
조핀이 빙글거리면서 한마디를 던지자, 란슬링과 다쓰의 질투 어린 코멘트가 뒤따랐다.
단지 케브라만이 나를 생각해서 침묵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근데 가장 걱정되는 건 이 녀석들 반응이 아니고 세영이다.
세영이는 한참을 부들부들 떨더니 간신히 냉정을 찾은 눈으로 날 노려보았다.
난 다급히 입을 열었다.
“아, 글쎄 저 아가씨 말 믿지 말란 말야. 난 비밀 결혼 같은 건 안 키우는 사람이야. 내가 뭐가 겁나서 결혼을 비밀스럽게 하냐고.”
“그럼 지금 에이프릴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맹세할 수 있어욧!”
“암, 맹세하지 맹세하고말고!”
“흥! 맹세한다고? 하지만 만약 사실이면 어쩔 건데요? 에이프릴이 한 말이 사실이라면! 그땐 내 손으로 오빠를 게임하고 현실 양쪽에서 모두 영원히 로그아웃 시켜도 좋죠?”
“…….”
아니, 근데 이노무 자슥이!
듣자 듣자 하니 좀 그렇잖아.
게임 속에서만이 아니고 현실에서도 영원히 로그아웃 시켜도 좋냐고?

듣고 있자니 슬슬 스팀이 머리꼭지까지 올라올려고 하는군그래.
“훗! 아무렴! 좋고말고. 내가 거짓말 하는 거 없는데 겁날 거 뭐 있게냐? 너 좋을 대로 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