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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4권(89화)
Part 7.아르본 저택의 결전(1)


“훗! 이곳입니다. 바로 이 위가 아르본 자작의 방이 틀림없습니다!”
“…….”
“…….”
침을 튀기고, 튀기고, 튀기고, 튀기고, 튀기고, 또 튀겨서 드디어 막다른 곳까지 도착한 다쓰가 의기양양하게 주절거렸다.
근데 다른 파티원들은 하나같이 못 믿겠다는 표정들이다.
신뢰감이라고는 단 0.0000000000000001%도 없는 얼굴들이로군.
당연하지. 지금까지 줄창 침 튀겨서 선택한 길로 왔는데 그걸 어떻게 믿겠냐고.
우리 머리 위의 아르본 자작 저택에는 무려 2백여 개에 달하는 방이 있다 그 말이다.
그리고 케브라는 그 2백여 개에 달하는 방의 거의 바로 밑에까지 모조리 땅굴을 다 뚫어 놓은 상태다.
근데 다쓰 이 자식이 시종일관 침만 죽도록 튀겨 대서 고른 한 곳이 바로 아르본 자작이 있는 곳일 거라고?
그런 식이면 눈감고 마구 찍은 번호로 로또 1등 당첨 되는 것도 식은 죽 먹기일 거 아니냐고.
아르본 자작이 있는 곳이긴커녕 저번처럼 감옥 안으로 직행하지나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 위로 안 나갈 수도 없군. 어차피 어디로 뚫고 나가든 나가긴 나가야 하니까.
어차피 퇴로를 찾기도 불가능하고 말이지.
이 땅굴 속에서 천년만년 눌러앉아 살림 차리고 살 수도 없는 일이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 어떤 곳이든 나가긴 나가야 한다.

“케브라!”
내가 눈짓을 하자 케브라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삽을 꺼내서 천장을 향해 가볍게 휘둘렀다.
퍼석하는 소리와 함께 흙이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밝은 빛이 우리에게 쏟아지자 나는 짧지만 굵게 소리쳤다.
“모두 나가라! 최대한 빨리 나가서 이실리움이 있으면 탈취하고 혹시라도 적의 기척이 있으면 재빨리 은폐를 해라!”
불쑥! 불쑥! 불쑥! 불쑤쑤쑤쑤쑥!
순식간에 나와 파티원들은 지상으로 솟아올랐다!
근데…….
“허거거거거거걱!”
우리들은 기겁을 하고 말았다. 전혀 뜻밖의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단 탓이다.
화려하고 큰 홀이었다.
길다란 직사각형의 테이블에 금으로 된 식기들과 온갖 진수성찬을 차려 놓고 느긋이 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 배불뚝이에 대머리를 한 중년인이 있었다.
그리고 사방 벽 쪽으로는 갑옷을 걸치고 무기를 손에 든 오십 마리의 고트맨들과 백 마리의 자이언트 오우거들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이 넓은 식탁에서 지 혼자 밥 먹을 준비를 하던 중년인은 갑자기 방 한복판에서 솟아나온 우리를 보고 놀라서 입을 쩍 벌렸다.
근데 저 중년인의 인상착의는 사전에 조핀이 입수해 준 정보로 본다면…….
“아르본 자작이다! 쉬익!”
란슬링이 놀란 듯 소리 질렀다.
젠장! 나도 놀랐다.
다쓰 이 자식이 침을 튀겨서 멋대로 골라 도달한 곳이 정확히 아르본 자작의 방이었다니.
이르하임 신의 가호를 받는다고 주절거린 게 농담이 아니었단 말야?
근데 뭔 놈의 신이 침 튀겨서 길을 인도하는지 퍽이나 비위생적인 신이구먼.
좌우간 아르본 자작은 푸짐하게 먹던 걸 중단하고 우릴 잡아 죽일 듯 야리며 물었다.
“네놈들은 뭔데 이 몸이 식사하시는데 감히 방바닥을 뚫고 솟아올라 와서 지랄들이냐? 네놈들 때문에 놀라서 내 혀를 씹을 뻔하지 않았냔 말이다!”
“…….”
아니, 근데 이 인간이 초면에 다짜고짜 욕을 하다니…….
마주 욕을 퍼부어 주려다, 같은 인간이 될 것 같아서 나는 공손하게 물었다.
“저 실례지만 혹시 아르본 자작님 되십니까?”
“알면서 왜 처물어보는 거냐!”
“혹시 가짜 아닌가요?”
“무엇! 이런 찢어 죽일 놈들이 있나! 내가 가짜가 왜 필요한데? 그리고 이 잘생긴 얼굴을 무슨 수로 똑같이 만들 수 있다는 거냐!”
젠장, 이거 지가 귀족이랍시고 말끝마다 욕설을 하고 자빠졌네.
꼴에 잘생겼다고 헛소리하는 건 더 황당하다만 그렇다고 따지고 들기도 귀찮다.
“하긴 그것도 그러네요?”
“그러나 저러나 간에 니들은 뭔 놈들이고 왜 바닥에서 솟아올랐느냔 말이다! 뭐하는 놈들이냐!”
아르본은 식탁을 두들기고 삿대질을 하면서 꽥꽥거렸다.
하지만 아르본이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슬그머니 다쓰를 돌아보았다.
“다쓰, 너 돌았냐? 아르본 자작이 두 눈 부릅뜨고 있는 곳으로 우릴 끌고 오면 어쩌냐?”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분명히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 위가 바로 아르본 자작의 방이 틀림없다고 말이죠. 지금까지 아무 말 없다가 들어와 갖구선 저한테 따지고 들면 어쩝니까?”
“야! 이 자식아! 설마 더럽게 침만 튀겨서 잡은 방향으로 아르본 자작 방을 이렇게 절묘하게 찾아낼 줄은 몰랐으니 그렇지!”
“아, 왜 욕을 하고 지랄입니까! 내가 분명히 말했잖습니까! 주신 이르하임께서 돌봐 주시니까 제대로 오게 될 거라고욧!”
내가 열불이 터져 다쓰한테 떽떽거리자 다쓰도 침을 튀기며 언성을 높였다.
자신은 거들떠도 안 보이고 다쓰와 내가 대판 싸우자 아르본은 당혹해하다가 얼굴을 붉히며 울화통을 터뜨렸다.
“이것들이 난 니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게냐! 내 말은 어디로 씹고 니들끼리만 계속 찧고 까불고 싸우는 거냐! 아무리 내가 존재감이 없어도 그렇지 지금 뭐하는 짓이냔 거다! 여봐라! 안 되겠다. 사정 봐주지 말고 이것들을 모조리 쓸어버려라!”
아르본 자작은 대화에서 소외받은 울분을 마구 터뜨리며 부하들에게 우릴 죽일 것을 명령했다.
제기……. 대화에서 좀 따돌렸다고 삐치다니, 쪼잔하기는 에이프릴과 세영이하고 동급이로군.
좌우간 벽 쪽에 서 있던 자이언트 오우거, 그리고 산양의 머리에 상체는 인간, 하체는 산양의 몸인 고트맨들이 그레이트 배틀 엑스를 든 채 우릴 향해 덤벼들기 시작했다.
대화에서 소외시켜 마음의 상처를 준 데 대한 미안함의 표시로 나는 파티원들에게 할 말을 아르본 자작도 들을 수 있게 커다랗게 소리쳤다.
“안되겠다! 이대로 가면 작전은 실패한다. 그러니까 최초에 세웠던 계획대로 팀을 나눠 임무를 수행한다. B팀은 아르본 자작을 척살하고 A팀은 이실리움을 훔친다. 빨리 움직여라!”
알아듣기 쉽게 내가 소리 높여 떠들어주자 아르본 자작은 얼굴이 햐얗게 질려서 나한테 뒤질세라 빽빽거리며 소리 질렀다.
“허거거거걱! 무어라? 나를 죽이고 이실리움을 훔치겠다고? 이놈들이 이제 보니 간땡이가 팅팅 부은 놈들이구나! 얘들아 나도 방금 내린 명령을 취소한다! 자이언트 오우거들은 모두 남아 나를 지키고 고트맨들은 이실리움 보관소로 가서 그곳을 지켜라! 어서 서둘러라!”
“…….”
“…….”
그의 명령에 순식간에 모두가 어리둥절했다.
우릴 잡아 죽이라는 명령을 취소하고 반은 남아서 자길 지키고 반은 이실리움 보관소로 가서 지키라고?
도대체 머리를 어떻게 굴리면 명령을 고따위로 바꿀 수가 있는 거냐!
뭐, 우리야 엄청나게 고맙다만.
듣는 우리도 벙 쪘으니 자이언트 오우거들과 고트맨들은 더 벙 찐 거 같다.
하지만 월급 주는 놈의 명령을 안 들으면 돈을 어디서 받겠냐고?
자이언트 오우거들은 우르르 몰려가서 아르본 자작을 포위하듯 감쌌다.
우르르르!
그리고 고트맨들은 일제히 방 밖으로 마구 쏟아져 나갔다. 이실리움 보관소로 가려는 거겠지.
난 케브라의 어깨를 툭 쳤다.
“케브라, 저 머리 나쁜 중년 뚱땡이를 부탁한다! 확실히 보내 버려라!”
“알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쇼!”
두다다다다!
휘잉―!
파티원들을 모두 데리고 고트맨들 뒤를 따라 순식간에 방을 나서는 내 귀에 아르본 자작의 황당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케브라의 대답도.
“뭐, 뭐냐? 어째서 모두 사라지고 네놈 혼자만 남는 거냐?”
“B팀은 나 혼자니까!”

두다다다다다!
고트맨은 상체만 인간이고 머리와 하체가 산양인지라 달리는 속도가 빨랐다.
젠장! 저 무거운 그레이트 배틀 엑스를 들고도 잘도 뛰네!
어쨌거나 놓치면 안 된다.
이 고트맨들을 따라가야 이실리움이 있는 곳의 위치를 알 수가 있으니까.
그것참, 일이 이렇게 쉽게 풀릴 줄은 몰랐다.
우리가 암살해야 할 아르본 자작 덕분에 이실리움이 있는 곳을 생각보다 쉽게 알아내게 되다니!
산양 떼처럼 먼지를 일으키며 이동하던 오십 마리의 고트맨들은 저택의 한복판에 있는 회색빛 건물 앞에 멈춰 서서 그레이트 배틀 엑스를 쳐들고 막아섰다.
바로 저곳이다!
근데 건물을 확인한 나와 파티원들은 다시 한 번 벙 쪘다.
왜냐고?
건물 정문에 거대한 팻말이 붙어 있으니 그렇지. 저 정도면 1km 밖에서도 보일 것 같다.

― 아르본 자작의 이실리움이 가득 있는 곳!

“…….”
젠장! 고트맨들이 일제히 멈춰 서서 이곳을 방위할 태세를 갖추는 거 보니 정말로 이실리움이 보관되어 있는 모양이다.
근데 저따위 팻말을 붙인 이유가 뭐냔 말이다.
이건 귀금속 있는 곳 위치를 친절하게 온 세상에 광고하고 훔쳐 가길 권장하는 거와 별 다를 바가 없잖냐고.
근데 어찌 생각하면 이실리움을 감추는 꽤 좋은 방법인지도 모르겠군.
진짜로 이실리움 훔치러 들어온 놈들이래도 저 팻말을 보면 도리어 코웃음을 치면서 이곳은 그냥 지나칠 테니…….
100% 함정일 거라고 생각하고 말이지.
나도 그냥 왔으면 절대로 저 팻말을 안 믿었겠다만 이제는 믿는다.
절대로 믿는다! 암 믿고말고!
왜냐고?
아, 몰라서 물어? 아르본 자작의 머리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봤으니까 그렇지.
하도 머리가 안 돌아가서, 머리 좋은 놈들이 지레 자기 꾀에 속아 넘어가는 수준이란 말이지.
어쨌거나 이제 목적지에 도달했으니 저 안의 이실리움만 가져가면 되는 거다.
난 두 눈에 힘을 주고 고트맨들을 한껏 야리면서 목소리를 깔았다.
“내가 너희들에게 딱 세 가지를 제안하겠다. 그 세 가지 전부 다 받아들일 필욘 전혀 없다. 마음에 드는 거 딱 한 가지만 선택해라.”
“…….”
오십 마리나 되는 고트맨들은 아무 말없이 두 눈을 굴리면서 그레이트 배틀 엑스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첫째, 우리가 저 안에 들어가는 동안 눈 질끈 감고 있는다. 둘째, 우리가 저 안에 들어가는 동안 딴 데 보고 있는다. 셋째 우리가 저 안에 들어가는 동안 아르본 자작한테 갔다 온다!”
“…….”
이것들이 내 말을 씹는군. 어째 들은 척도 안 하냐?
근데 다행인 건 고트맨들이 그나마 우릴 먼저 공격하려는 기색이 없다는 거다.
뭐, 우리가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자기들도 가만있겠다는 것 같군.
하지만 우리가 천년만년 이러고 있을 순 없다고.
난 파티원들을 뒤로 물러서게 한 다음, 저 안에 들어갈 좋은 방법이 없을지 의견을 내보라고 말했다.
“그냥 맞짱 뜨죠. 저것들이 뒈지든 우리가 모두 장렬히 전사하든 결판이야 확실히 나지 않겠습니까?”
“다쓰, 너 죽을래? 내 사전에 장렬한 전사란 건 없거든? 그렇게도 장렬한 전사가 소원이면 너 혼자서 실컷해라. 다른 사람 의견은?”
“뭐, 이런 걸로 고민하고 그러냐, 쉬익! 케브라더러 저 안으로 땅굴 뚫게 해라. 이 정도 거리면 아무리 길치라도 절대로 엉뚱한 곳으로 뚫을 리가 없다, 쉬익!”
“너 죽을래? 케브라는 아까 아르본 자작 경호하는 자이언트 오우거 백 마리하고 싸움 시작하던데 무슨 수로 걔를 부른다는 거냐? 니가 가서 불러올래?”
“돌았냐! 자이언트 오우거 백 마리 있는 데를 내가 왜 가냐, 쉬익! 난 죽기 싫다, 쉬익!”
이 두 녀석은 평생 도움이 안 되는구먼. 뭐 질투에 눈이 멀어 신경전이나 벌이면서 날 피곤하게 하는 두 처자도 별 다를 바 없긴 하다만.
내가 뭐 좋은 수가 없냐는 눈빛을 던지자 조핀은 두 눈을 빛냈다.
“사실 이건 간단한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