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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4권(90화)
Part 7.아르본 저택의 결전(2)


“어떻게 간단한데요?”
“저 고트맨들이 왜 우릴 공격 안 할까요?”
“아르본 자작이 저기를 지키라고 했잖습니까?”
내 말에 조핀은 머리를 끄덕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바로 그겁니다. 저기를 지키라고 했지. 우릴 공격하라고는 안 했다는 이유로 아마 저러고 있을 겁니다. 그렇다는 말은 저 고트맨들은 철저히 아르본 자작의 지시대로만 행동한다는 거죠.”
“그렇다는 것은…….”
“아르본 자작……. 혹은 아르본 자작을 해치우고 대신 그 지위를 차지한 인물이 내리는 명령이라면 두말없이 복종하지 않을까요?”
음……. 그거 말 된다.
아르본 자작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녀석들이니 아르본 자작이 사라진다면?
그럼 아르본 자작 후임의 명령을 그대로 따를 가능성이 크다.
“그렇군요. 그럼 아르본 자작을 제거하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될 수 있겠네요.”
“그게 바로 제 생각입니다.”
“후훗! 감사합니다. 명쾌한 해결책을 가르쳐 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조핀 님!”
내가 고마움을 표시하자 조핀은 흐뭇한지 두 볼에 홍조까지 띠었다가 내 다음 말에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역시 노회하고 음험한 중년 아저씨는 차원이 다르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해 주시는군요!”
“…….”

좌우간 우리들은 고트맨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아르본 자작의 방이 있는 건물로 이동했다.
허억! 그런데 이게 뭐야!
이 무슨 끔찍한 상황이란 말인가.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이건 당초의 내 예상과 너무나도 다르지 않냐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데 그러냐고?
와장창! 우장창! 꾸애액!
털썩! 우지끈!
윽! 꽤애액!
자, 이 소리 들었으면 짐작하겠지?
뭐라고?
소리로만 들으면 전혀 안 끔찍한 거 같다고?
제기……. 꼭 내가 설명을 해 줘야 하겠단 거야, 뭐야.
지금 아르본 자작이 있는 건물의 창이 깨지면서 요란하게 자이언트 오우거들이 건물 밖으로 나가떨어지고 있었다.
거의 피떡이 된 채로 말이지. 그 숫자를 세어 보니 대략 40마리가 넘는군.
즉, 안에 있는 케브라 녀석이 벌써 이 숫자의 자이언트 오우거들을 이 꼴로 만들었단 소리다.
이러니 내가 안 끔찍할 수가 있겠냔 거다.
이번 기회에 케브라 녀석을 아르본 자작과 함께 세트로 영원히 보내 버릴 꿈을 꾸었더랬는데 이건 완전히 예상과 다른 일이 벌어지게 생겼잖냐고!
즉 내 계획은 이런 거였다.

1. 즉, 압도적인 적들 속에 케브라를 남겨 놓는다.
2. 케브라는 그 속에서 죽도록 싸우고 싸우고 또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한다.
3. 그 정도면 적의 전력도 크게 타격을 입은 상태일 거다. 그럼 내가 파티원들과 함께 뛰어들어 유유히 몇 마리 안 남은 자이언트 오우거들을 다 해치우고 케브라의 장렬한 죽음을 애도한다.

이런 시나리오였다고.
근데 이래서야 시나리오가 완전히 엉망이 되는 쪽으로 가고 있단 거다.
근데 나의 타는 속을 모르는 파티원들은 일제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기색들이다.
“이거 정말 예상 밖이군요. 케브라가 저렇게나 잘 싸워 주다니!”
“솔직히 오래 못 버티고 죽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누가 생각해도 그랬겠지만…….”
조핀과 에이프릴이 안도하면서 하는 말에 난 가슴이 뜨끔했다.
근데 세영이도 한마디 보탰다.
“우영 오빠의 명령이라지만 단 한마디 불평도 하지 않고 저 많은 적들 속에서 홀로 사투를 벌이다니. 정말 용감해요! 내 평생에 바퀴벌레가 멋있다고 생각되긴 처음이에요.”
심지어 케브라를 눈에 가시처럼 여겼던 다쓰와 란슬링까지도 태도가 바뀌었다.
“사실 제가 케브라를 꽤 갈구긴 했는데 이제 생각하니 제 잘못이었던 것 같군요.”
“그렇다, 쉬익! 이제부터 나도 맘잡고 다친 케브라를 사랑스럽게 힐링해 줄 거다, 쉬익!”
젠장! 이렇게 순식간에 파티원 중 한 명에 대한 평가가 치솟을 수도 있다는 건가?
이러다가 파티장을 나 대신 케브라로 하자는 말이 안 나올까 모르겠군.
은근히 케브라에 대한 질투심이 스멀스멀 내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는구먼.
결정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이제 더 이상 케브라를 놔둘 수가 없다 그 말이지.
나는 슬며시 메이스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파티원들에게 말했다.
“모두들 좀 물러나 줬으면 좋겠는데. 후폭풍의 영향이 꽤 있어서 다칠지 모르니 말이지.”
“…….”
“…….”
어리둥절하던 파티원들은 내가 뭘 하려는 건지를 눈치채고 비명을 질렀다.
“아니, 설마. 레드 드래곤의 달콤한 입맞춤을 시전하려는 겁니까!”
“우영 님!”
“우영 형님! 제정신입니까?”
“오빠 미쳤어요!”
“돌았냐, 쉬익!
젠장! 오랜만에 레달입 한 번 시전할려고 했더니 이 난리들이네.
파티원들은 흥분해서 일제히 펄펄 뛰고 꽥꽥거렸다.
나는 차분히 설명을 했다.
“아니, 도대체 왜들 이러는 거지? 그러니까 지금 내가 레달입 쓰면 절대 안 된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건가? 그런 겁니까, 조핀 님?”
“당연하죠. 저 안에 있는 자이언트 오우거들, 아르본 자작과 함께 케브라도 잿더미가 될 텐데 어떻게 그런 일을 하려고 하십니까?”
“오빠, 게임 오래 했더니 피로가 누적되어서 좀 맛이 간 거 아녜요?”
“훗! 내가 왜 레달입을 쓸 수밖에 없는지 설명해 줄 테니 모두 귀를 씻고 잘 듣기 바랍니다.”
내가 잔뜩 진지한 척 폼을 잡자 파티원들은 못마땅해하면서도 귀를 기울였다.
“사실 내가 투시안이라는 새로운 스킬을 습득했거든. 그래서 지금 저 건물 안의 상황이 보이는데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라 그 말이다.”
“심각한 상황이라니 그게 뭐냐, 쉬익!”
심각한 상황이라는 말에 파티원들의 얼굴에는 일제히 호기심의 빛이 떠올랐다.
난 짐짓 한숨을 쉬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케브라가 너무 잘 싸우니까 아르본 자작이 네크로맨서를 시켜서 피트엔드라는 악마를 소환했다. 근데 피트엔드라는 악마는 결계 마법을 시전한 상대를 제외하고는 모조리 공격하거든? 결계 마법은 네크로맨서하고 아르본 자작 두 사람만 시전했으니 피트엔드는 그 두 사람은 안 건드리고, 자이언트 오우거들과 케브라를 닥치는 대로 공격하고 있다 그 말이다.”
“설마…….”
“악마 피트엔드라고?”
“네크로맨서? 근데 아르본 자작이 언제부터 네크로맨서를 키웠죠?”
파티원들은 미심쩍어 하면서도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저 피트엔드는 너무 강해서 이대로 가면 어차피 자이언트 오우거와 함께 케브라는 죽는다. 그리고 우리도 피트엔드의 상대가 되기 힘들다고. 그럼 아르본 자작을 제거하는 임무는 완전히 수포로 돌아가고 이실리움 탈취도 실패한다 그 말이지. 자, 조핀 님 어쩔까요? 케브라가 다치면 안 되니까 레달입 쓰는 거 관둘까요? 피트엔드가 저 안에서 뛰어나오면 그땐 우리도 끝이거든요?”
“돌았습니까! 작게는 우리 파티의 안녕과 크게는 마토스 국의 안위가 걸려 있는데 관두다뇨! 어서 쓰세요! 다른 분들은 빨리 물러나세요! 후폭풍의 영향이 있다잖습니까!”
역시 아저씨의 목적의식은 강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안면 몰수하고 레달입을 쓰기를 강력히 권했다.
조핀이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파티원들은 별수 없이 입 다물고 물러섰다.
나는 메이스를 건물을 향해 겨냥했다. 서서히 몸속의 마나를 돌리기 시작했다.
서서히 온몸에 열기가 가득 차서 이윽고 그 정점에 도달하자 마나가 맹렬한 기세로 메이스로 흘러들어갔다.
쿠콰콰쾅!
와지끈! 우르르!
천지가 찢겨지는 듯한 폭음과 함께 엄청난 화염이 건물을 직격하자 엄청난 먼지와 돌가루가 일대를 뒤덮더니 건물은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나는 휘청거리다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레달입을 쓴 뒤의 탈진 상태.
세영이의 재촉에 다쓰와 란슬링이 버프를 마구 걸어 주었고, 포션을 마구 마셔서 약간은 체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익숙한 음향과 더불어 창이 떴다!

이름 : 우영
직업 : 광란의 스토커
레벨 : 120 악명 : 50
명성 : 80 지식 : 35
힘 : 135 체력 : 100
민첩 : 55 행운 : 60
지혜 : 55 매력 : 80
HP : 180 MP : 150

으응?
레벨이 20이나 단번에 올라서 120이 되다니!
자이언트 오우거들뿐이었는데 걔들이 그렇게 강적이었나?
아니면 설마 아르본 자작이 보스 몬스터?
뭐가 좀 이상하구먼.
근데 가루가 되어 폭싹 주저앉은 건물을 보더니 세영이가 눈물을 흘렸다.
“흑……. 이럴 수가……. 케브라 님이 장렬하게 전사하시다니.”
그러자 다쓰와 란슬링까지 울먹이기 시작했다.
“크으……. 케브라! 내가 바퀴벌레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게 될 줄이야!”
“쉬익! 잘 가라, 케브라. 너의 빛나는 삽질은 절대로 잊지 않을 거다, 쉬익!”
녀석들이 좀 오버하는 것 같다만 말리고 싶진 않군. 케브라는 좋은 바퀴벌레였으니까 말이지.
뭐라고? 어떤 바퀴벌레가 좋은 바퀴벌레냐고?
아, 몰라서 물어?
이 세상에 좋은 바퀴벌레는 딱 한 종류가 있는데 죽은 바퀴벌레가 거기에 속한다고.
어쨌거나 좀 찝찝하긴 하군.
자식과 아내는 이미 몰살시켰고 이제 남편까지 형체도 안 남게 태워 버렸으니…….
굳이 바퀴벌레인 거 생각 안 하고 따져 보자면 내가 엄청 나쁜 놈이라도 된 거 같다.
하지만 난 애써 그런 생각을 지우려고 하면서 건물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케브라의 잔해라도 확인하려고 말이지.
뭐, 레달입 정도의 초대형 화염 공격이니 시신의 형체가 보관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리겠지만.
그래도 케브라가 완전히 재가 되어 버렸다는 걸 확실히 확인을 해야 홀가분해질 것 같다.
완전히 가루가 되어 주저앉은 건물엔 아직도 열기가 후끈거리고 타서 숯덩이가 되다시피한 자이언트 오우거들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때 한쪽 구석에서 들뜬 목소리로 조핀이 크게 소리쳤다.
“아르본 자작이 죽었습니다! 성공했군요, 우영 님!”
파티원들도 그쪽으로 몰려들어 환호했으나 나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닌지라 계속 다른 쪽을 뒤졌다.
가만……. 이 돌덩이 아래 저것은…….
허걱!
난 그만 굳어 버렸다.
시커멓게 타긴 했지만 그 화염 공격에서 아주 형태가 잘 보존되어 있는 케브라의 시신이 내 눈에 들어온 거다.
근데 이 자식이 확실히 간 건가?
허거거거거거거걱!
나는 숨이 멎을 뻔했다.
케브라의 더듬이가 슬쩍 움직였던 거다.
그리고 다리들도 파르르 떨렸다.
젠장! 이런 바퀴벌레 같은 자식이 있나!
자그마치 드래곤 브레스와 맞먹는 화염 공격 레달입을 당하고도 아직도 안 죽고 살아 있었다.
질렸다.
이 정도면 정말로 바퀴벌레처럼 질긴 생명력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지구가 망해도 유일하게 살아남을 생물은 바퀴벌레라고 어느 과학자가 그러더니…….
근데 지구가 망해도 살아남는 건 좋은데 게임 속에선 좀 죽어 달란 말이다, 이 징그러운 바퀴벌레 자식아!
“우……영……님!”
나의 그런 타는 속마음을 모르는 케브라는 가늘게 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케브라 살아 있었구나!”
“네……. 제…… 임무를 다하기…… 전에는 죽으면…… 안 되니까요…….”
“그러냐? 근데 아르본 자작을 해치웠으니 이젠 죽어도 되는데…….”
“네? 그게 무슨…… 말씀…… 입니까?”
“아니, 뭐 별말은 아니고……. 헉! 근데 저기 저쪽에 저게 뭐냐?”
“네……. 저기에…… 뭐가…….”
케브라가 슬쩍 내가 가리킨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나는 번개같이 메이스로 15연타 공격을 케브라의 뒤통수에 퍼부었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퍽!
다시 한 번 케브라를 기절시킨 나는 좀 거리를 두고 다시 메이스를 겨눴다.
레달입 시전으로 마나가 고갈 상태이긴 해도 무리하면 오거할 정도는 쓸 수 있을 거 같다.
이 정도 가까운 거리면 오거할로도 케브라를 보낼 수 있겠지. 녀석도 이제 거의 다 숨이 끊어져 가는 상태이기도 하니까.
흐흐흐, 케브라 날 위해서 이젠 그만 좀 죽어 다오.
제발 나도 두 발 편히 뻗고 게임 좀 해 보잔 말이다!
언제까지 너 때문에 전전긍긍하면서 지내긴 싫단 말이다.
너 충성스런 놈인 거 잘 알고 나하고 원한 쌓인 거만 없으면 엄청 총애하겠다만 그렇지가 못하다고.
그러니 제발 영원히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말아 다오!
내가 서서히 메이스를 케브라의 머리에 겨누는 순간, 뒤에서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머머! 거기 누워 있는 거 케브라 아녜요? 더듬이 떨리는 거 보니 살아 있었네! 모두 이리 와 봐요. 케브라예요. 케브라가 살아 있어요. 조핀 님, 다쓰 님 모두 와 보세요!”
젠장! 하필 세영이 자식이 눈치 없게 등장하다니.
어쩔 수 없군.
아쉬워서 피눈물이 날려고 한다만 일단 케브라 제거 작전은 포기할 수밖에.
예정했던 대로 이실리움을 탈취하고 아르본의 자작 작위나 접수해야겠다.
“쩌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