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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4권(91화)
Part 8.귀족이 된 우영(1)


커억!
이럴 수가…….
난 놀란 표정을 감추려고 애써 굳은 얼굴을 했다.
근데 파티원들은 모두 감탄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하긴 눈앞에 새카맣게 탄 물체를 보니 파티원들이 이런 표정을 짓는 게 이해가 간다.
그게 뭐냐고?
피트엔드가 새카맣게 탄 시체로 나자빠져 있었다.
즉, 아르본 자작이 진짜로 악마 피트엔드를 불러냈었다는 거지.
쩝…….
난 레달입 시전할 구실을 찾으려고 생각나는 대로 둘러댄 거였는데 진짜로 피트엔드가 소환되어서 날뛰고 있었다니…….
어째 레벨이 20이나 단번에 뛰더라니……. 피트엔드를 건물과 함께 날려 버려서 그런 거였구먼.
란슬링의 다섯 시간여에 걸친 정성스런 힐링으로 어느 정도 상태가 회복된 케브라 녀석도 구사일생이었다는 투로 말했다.
내가 지 뒤통수 후려갈겨서 기절시켰던 것도 잊고서.
“정말 놀랐습니다. 자이언트 오우거들은 상대할 만했는데 아르본 자작이 네크로맨서를 시켜 피트엔드를 소환할 줄이야……. 저 악마가 자이언트 오우거들을 마구 해치우면서 나한테로 저 소름 끼치는 발톱을 휘두르며 덮쳐들 땐 꼼짝없이 물레방앗간에서 학살당한 처자식들 곁으로 가게 되는 줄 알았습니다.”
제기……. 그러게 말이다.
내 말이 바로 그 말이다.
확실히 니 가족들 곁으로 보내 줄 수 있었는데…….
케브라의 말에 나도 내심 안타까운 신음성을 흘렸다.
“어머! 그러면 결과적으로 우영 오빠가 레달입을 써서 케브라를 살린 거네요?”
“그렇습니다. 우영 님은 이제부터 제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영원히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허걱!
케브라 이 자식이 감격을 못 이기겠다는 듯 네 개의 팔로 나를 껴안을려고 한다.
돌았냐, 이 자식아!
그 가시 잔뜩 난 손―인지 발인지―으로 날 껴안아서 날 피떡을 만들고 싶냐!
근데 조핀이, 케브라를 슬쩍 피하는 내 귀에 대고 낮게 속삭였다.
“우영 님께 사과드려야겠군요.”
“사과라니, 뭔데요?”
“사실 우영 님을 의심했었습니다. 피트엔드가 날뛰고 있다는 거……. 구라 치시는 건 줄 알았거든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케브라를 없애려고 레달입을 일부러 쓰려고 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거 투시안 스킬도 그냥 구라로 지어내신 사기라고 봤고 말입니다.”
“…….”
이 아저씨 확실히 예리하구먼.
정식 파티원이었으면 케브라 이상으로 날 골치 아프게 했을지도 모르겠군.
나도 슬그머니 그의 귀에 대고 낮게 속삭였다.
“조핀 님, 저한테 호기심을 너무 많이 가지시는 것 같군요. 조금 곤란한데요?”
“후후후훗! 별걱정을 다 하시네요. 우영 님께서 암흑제국의 황제와 절 만나게만 해 주시면야 다른 건 어찌 되든 좋습니다.”
“…….”
젠장!
그건 말을 뒤집으면 결국 그 퀘스트 성공 못 시켜 주면 재미없을 수도 있단 거잖아?
케브라는 물론이지만 이 아저씨도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내 곁에서 사라지게 만들어야겠다.
그러자면 밀사 퀘스트를 빨리 성공시켜야 하고, 그거 성공시킬려면 이실리움을 확보해야 한다.
나는 다쓰를 재촉했다.
“야! 양 대가리 두목은 아직 안 왔냐?”
“아까 말 전했으니 올 겁니다. 아, 저기 왔네요.”
고개를 돌려 보니 양 대가리들의 두목……. 아니, 고트맨들의 두목인 보스 고트맨이 어느새 왔는지 그레이트 배틀 엑스를 들고 날 바라보고 있다.
머리와 하반신은 산양이고 상체만 벌거벗은 인간이니 퍽 엽기적인 몬스터다.
게다가 표정이 없으니 좀 섬뜩하기까지 하군.
좌우간 난 조심스레 그의 표정을 살핀 다음, 입을 열었다.
“너희들의 고용주인 아르본 자작은 죽었다. 원칙대로라면 너희들은 이제부터 새로운 자작이 되는 내 명령을 따라야 한다.”
“아직 아니다, 인간. 그대가 암흑제국으로부터 정식으로 이곳 자작의 작위를 받을 때 널 우리 주인으로 인정하겠다! 아르본 자작의 모든 걸 넘겨받아야 한다는 거다.”
음……. 작위부터 받아야 주인으로 인정하겠다고?
말은 되는 것 같은데…….
그렇다는 건 지금 당장은 이실리움 보관소를 넘겨줄 수 없단 얘기로군.
겉보기에도 완고할 것 같은데 실제로도 아주 고지식한 몬스터들이다.
길게 얘기해 봐도 다른 대답이 나올 것 같진 않구먼.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조핀도 날 재촉했다.
“그럼 어서 암흑제국의 귀족관리부에 갔다 오십시다. 그곳에서 작위를 넘겨받았다는 증서를 받으면 됩니다. 그때는 우영 님께서 이 저택의 주인이자 자작이 되시는 거죠.”
음……. 자작……. 우영 자작이라…….
왠지 근사할 것 같은 느낌이다. 이 몸이 드디어 귀족이 되신다니.
뭐 하긴 평소에도 매우 귀족적입네 어쩌네 하는 소리를 제법 들어오긴 했다만.
“알겠습니다. 그럼 후딱 다녀옵시다. 야! 양 대가리! 우리가 비울 동안 이 저택을 잘 지키고 있어!”
“인간 니가 이곳 주인이 되기 전엔 우리는 이실리움 보관소만 지킨다. 아르본 자작한테 마지막으로 받은 명령이 그거였으니까. 나머지는 우리가 알 바 아니다.”
이런 제길!
건성으로라도 알았다고 할 것이지 말이야.
융통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것 같으니…….
저걸 그냥 댕강 목이나 잘라서 양고기 국을 끓여 먹었으면 좋겠다.
좌우간 더 말해 봐야 입만 피곤할 것 같다.
그렇다고 그럼 어디 한판 붙어 보자고 싸움을 시작할 수도 없고.
후딱 이곳 관청에 가서 증서나 받아 와야지.

“아르본 자작의 작위와 재산, 기타 일체…… 등등 모조리 다 물려받게 된 사람입니다. 작위증 받으러 왔거든요.”
암흑제국의 관청인 귀족관리부의 작위증 발급처다.
아이스크림이라도 사러 온 것처럼 창구에서 내가 주절거리자 직원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아르본 자작을 죽이셨다는 말씀이군요. 증거 사진 캡쳐해 오셨습니까?”
“물론이죠. 이건 아르본 자작 저택 화염 공격으로 다 날려 버린 거, 이건 아르본 자작 새까맣게 탄 시체……. 이건 그 경호원들인 자이언트 오우거들 고꾸라져서 나자빠진 거……. 등등 모두 여기 있습니다.”
내가 말하면서도 찝찝하군.
이런 만행을 저지르고서 무슨 상이라도 타러 온 모양이 되어 버렸으니, 확실히 이 암흑제국은 웃기는 나라이긴 하다.
직원은 내가 제시한 사진을 모두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흠, 틀림없군요. 그럼 접수비와 작위증 발급 비용 1천 5백 골드 주시죠.”
“얼마요?”
“1천 5백 골드요.”
“…….”
나는 기가 막혀서 잠시 숨을 멈췄다.
아르본 자작을 해치워서 저세상으로 보내 버렸으니 그냥 내가 자작이 되는 게 아니고 접수비와 작위증 발급 비용으로 1천 5백 골드나 내야 된다고?
내가 어이가 없어 하자 옆에서 조핀이 슬쩍 거들었다.
“놀라실 거 없습니다. 원래 암흑제국이 이런 곳입니다. 황제는 귀족들에게 상납받고, 그 귀족을 죽이는 자가 나서면 다시 돈을 받고 죽은 귀족의 작위를 넘겨주는 것이죠. 그리고 중간에서 접수비 또 따로 챙기고……. 아마 모르긴 해도 저 직원이 중간에서 절반 정도는 삥땅할 겁니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해서 이건 국가라기보다는 어둠의 조직이군요?”
“그렇게 이해하시는 게 빠르겠죠.”
“젠장! 억울한 건 이 비싼 돈 주고 내가 귀족이 되어도, 나도 아르본처럼 누군가에게 당하면 그냥 그걸로 끝이잖냐구요! 지금 내는 1천 5백 골드는 보상도 못 받고 그냥 날아가 버리는 거잖냐구요.”
“당연한 걸 뭘 물어보고 그러십니까? 그러니까 귀족으로 있을 때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축재를 해서 한 재산 모아야 하는 겁니다. 그래야 나중에 본전 생각이 안 나는 겁니다. 알겠습니까? 해 먹을 수 있을 때, 해 먹어라! 이 암흑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철학이랍니다. 고위층일수록 더 그렇구요…….”
“…….”
조핀이 천진난만한 눈동자를 샛별처럼 빛내며 하는 말에 난 다시 벙 쪘다.
참 저렇게 때 묻은 어른들의 말을, 천사 같은 소년의 얼굴을 해 가지고서 하다니.
엄청 위화감 느껴진다.
어쨌거나, 왜 이 암흑제국이 아직 모든 유저들에게 완전히 개방되지 않고 있는지 알겠다.
청소년 유저들한테 교육상 별로 좋지 않아서가 틀림없다.
이 암흑제국에서 귀족이 되는 순간, 모든 불법, 부정, 비리를 마구 저지를 테니까.
그 밑에 있는 녀석들이라고 가만히 있겠어? 나름대로 못된 머리 굴려서 한밑천 마련하려고 할 테고.
좌우간 내가 뭐 그런 거까지 다 신경 쓸 건 없지.
나는 피 같은 돈 1천5백 골드를 넘겨주고 작위증을 발급받았다.
띠리링하는 소리와 함께 음향이 울렸다.

자작의 작위를 획득했다!
당신은 암흑제국의 자작의 작위를 받고 정식 귀족이 되었다. 아르본 자작이 소유하던 저택과 재산, 그리고 영지가 모두 당신 게 되었으니 국 끓여 먹든 죽 만들어 먹든 알아서 해도 된다.
단 니가 했던 것처럼, 누구든 널 죽이고 귀족의 작위를 빼앗을 수 있단 거 명심해라. 단 지금부터 한 달간은 안전하니 그동안은 귀족의 생활을 맘껏 누려도 된다.

음…….
귀족이 된 첫 한 달 동안은 아무도 못 덤비게 해 놓았나 보군.
하긴 비싼 돈 내고 귀족이 되자마자 웬 듣보잡의 칼침 맞고 죽어서, 귀족이란 게 어떤 건지 즐기지도 못하고 쫑 나면 너무 억울하겠지.
어쨌거나 내가 귀족이 된 거라 이 말이지.
귀족이라, 귀족…….
음…….
아! 감개무량하고 감격스럽다.
귀족의 서열은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의 순이다. 공작만큼 막강한 귀족은 아니지만 좌우간 대저택과 영지, 그리고 많은 하인과 영지민이 주어지며, 꽤 쏠쏠한 부와 권력, 그리고 많은 미녀들을 누릴 수 있는 신분인 건 틀림없다.
후후후훗! 후후후후훗! 후후후후후후훗!
“저, 손님! 아니……. 자작님! 지금 입에서 침이 마구 흐르는데요?”
웃! 이런…….
창구 직원의 지적에 난 공상에서 깨어 현실로 돌아왔다.
나도 모르게 흐뭇해져서 눈을 게슴츠레 뜨고 침까지 흘리며 좋아했군.
난 급하게 침을 닦고 자작답게 근엄한 척했다.
그리고 좀 전과 180도 다르게 반말로 대꾸했다.
“흠……. 내가 잠깐 딴생각을 하다 실수했군. 알려 줘서 고맙네…….”
“뭘요. 근데 황궁의 황제 폐하한테는 언제 가실 겁니까?”
“황제 폐하를 만나야 하나?”
무심결에 한 말에 조핀이 눈에 쌍심지를 켰다. 내 말이 황제를 뭐하러 만나냐는 말로 들렸나 보다.
“네, 황제한테 자작의 작위를 받는 절차를 하셔야 되거든요. 그거 안 해도 귀족된 게 취소되는 건 아닌데 그래도 중요한 요식행위라서요. 그리고 황제 폐하께서 새로 작위를 받는 귀족들께 하실 말씀도 있고 해서…….”
음……. 알 만하군.
새로 귀족이 된 기쁨으로 충성하고 열심히 돈 만들어서 부지런히 황제인 나한테 상납해라. 뭐 대충 그 소리하려고 굳이 작위를 내리는 절차를 가지는 거겠지.
그렇다고 해도 황제를 안 만날 순 없다.
돈만 갖다 바치면 더 볼일이 없는 황제라고 해도 그 권력을 무시할 순 없다.
그리고 조핀의 밀사 퀘스트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도 황제를 만나는 건 필수니까. 이건 오히려 내가 먼저 나서서 만날 걸 요구할 일이다.
“알았네. 지금은 접수한 저택과 영지 현황을 좀 파악해야 할 테니 사흘 뒤 정오에 폐하를 알현하기로 하지.”
“알겠습니다. 그럼 황궁에 그렇게 통보해 놓겠습니다. 저 그리고……. 헤헤헤헤.”
응?
이 사람이 왜 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