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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4권(92화)
Part 8.귀족이 된 우영(2)
공손하게 머리 숙이고, 예의 바르게 말하는 건 좋은데, 왜 뭘 달라는 듯 두 손을 내밀고 간신 웃음을 웃는 거냐고?
“…….”
내가 멀뚱히 서서 모르는 척하자 조핀이 슬쩍 내 옆구리를 찔렀다.
젠장! 내가 뭐 진짜로 이 직원이 왜 이러는지 몰라서 가만있었는 줄 아냐? 옆구리 찌르기는…….
내 돈 또 나가는 게 싫어서 그랬지.
귀족이 되자마자 돈을 요구하는 인간들이 생기다니.
나는 명령조로 조핀에게 말하고는 관청을 나섰다.
“조핀, 그대를 내 재정 담당관으로 임명할 테니 이 사람에게 팁을 좀 주도록 하시오!.”
“헉! 아니, 제가 무슨 돈으로요?”
“돈 문제는 재정 담당관인 그대가 알아서 하시구려.”
“…….”
관청에서 작위증을 받고 내 저택―원래는 아르본의 저택―으로 돌아온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고?
내가 레달입으로 날려 버린 본관 건물을 다시 세우는 공사를 하고 있는 건 좋다 이거야.
근데 파티원들이 지가 마치 이 저택의 주인이고 자작인 양 거들먹거리며 하인, 하녀들한테 멋대로 지시하고 내부 개조 공사를 하고 있었으니…….
“그 커튼은 모두 뜯어내고 핑크빛으로 바꾸세요!”
“값싼 식기는 모두 버리고 은이나 금으로 된 것으로 교체하도록 하세요.”
“이쪽이다, 쉬익! 여기 이 방 여덟 개를 모두 허물어서 한 개로 만들어라, 쉬익! 용도가 뭐냐고? 내 침실로 쓸 거다, 쉬익!”
“저쪽 창고를 지금 당장 허물고 이르하임 신에게 예배드리는 성당으로 만들도록 하시오. 그 왼쪽 건물은 개조해서 팔라딘들이 여행 중에 쉬어 갈 수 있는 곳으로 만들도록 하고. 지금 당장!”
파티원들이 하고 있는 짓에 기가 막힌 나는 온 저택이 떠나가도록 빽 소리를 질렀다.
“야! 이것들아! 도대체 지금 뭐하는 짓들이냐!”
그제야 파티원들은 날 보고 당황스러워했다.
“어멋! 우영 오빠, 돌아오셨어요? 좀 더 있다 오셔도 되는데…….”
“아니, 우영 형님. 저희들이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왜 화를 내시는 겁니까?”
“그렇다, 쉬익! 우리가 알아서 다 할 테니, 우영 넌 그냥 폼 잡고 쉬고 있어도 된다, 쉬익!”
아니, 그래도 이것들이…….
이럴 수가 있나!
도대체 지금 내가 왜 화를 내는지도 모르겠단 거야?
이건 좀 심하잖느냔 말이다.
“니들 죽을래? 아무 쓸데없는 건물 내부 개조 공사를 왜 하냐? 뭐? 방 여덟 개를 허물어 한 개로 만들어서 침실로 쓰고, 팔라딘이 쉬어 갈 휴식처를 만든다고? 내 허락도 없이 뭔 지랄들이냐? 또 개조 공사할 돈은 어디서 나는데? 니들이 자작이냐, 내가 자작이냐!”
“…….”
“…….”
내가 펄펄 뛰자 다쓰와 란슬링은 못마땅해하면서도 입을 다물었다.
난 두 녀석에게 당장 인부들한테 작업 지시 내린 거 다 취소시키라고 내보낸 다음, 세영이와 에이프릴에게 시선을 돌렸다.
“훗! 저 두 녀석은 원래 걸어 다니는 폭탄이니까 그렇다고 치자. 세영이하고 에이프릴, 너희 둘은 왜 이러는 거냐? 뭐 잘못 먹었냐?”
“…….”
내 말에 세영이는 입술을 삐죽이면서도 눈을 내리깔았지만 에이프릴은 눈을 치켜떴다.
“어머! 우영 님, 저한테 갑자기 말이 짧아지셨네요? 관청에 갔다 오기 전까지만 해도 안 그러시더니?”
“훗! 귀족은 원래 말이 짧은 법이다. 불만 있으면 에이프릴 너도 귀족되면 된다. 나이도 별로 안 많고 새파랗게 어린 주제에 나한테 그리도 존대받고 싶냐?”
내 말에 에이프릴은 못마땅한 듯 입술을 삐죽 내밀고 조잘거렸다.
“뭐, 그건 그래요. 내 나이가 엘프 마을에선 꽤 어린 150살밖엔 안되니까 우영 님 말씀도 일리는 있어요. 그래도 지금까진 안 그러시다가 귀족됐다고 대뜸 하대를 하시니 좀 그러네요?”
허걱!
150살!
에이프릴이 150살이었다고?
난 겉모습만 보고 잘해 봐야 스물 갓 넘긴 줄 짐작했었는데…….
그러고 보니 엘프들은 원래 수명이 길지.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150이나 먹은 할망구가 내 꽁무니를 쫓아다니고 있었다니…….
어쩐지 에이프릴이 징그러워진 나는 세영이한테 슬쩍 화살을 돌렸다.
“에이프릴이야 엘프 마을에서만 살아서 세상 물정이 어두워서 그렇다고 치자. 넌 도대체 왜 나서서 식기를 다 귀금속으로 바꾸고 멀쩡한 커튼 다 뜯어서 교체하면서 난리냐? 할 짓이 그거밖에 없냐?”
내 말에 세영이는 고개를 쳐들고 반박했다.
“어머! 왜 할 짓이 그거밖에 없었겠어요. 내가 얼마나 바빴는데요! 에이프릴도 바빴지만…….”
“바빴다고? 도대체 뭐하느라 바빴는데?”
내 말에 세영이는 슬쩍 에이프릴을 돌아보았다.
에이프릴이 고개를 끄덕이자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에이프릴하고 같이 이 저택의 하녀들 중에서 인물 좋고 몸매되는 하녀들을 모조리 추려서 해고하느라고 얼마나 바빴다구요. 퇴직금 정산하고 밀린 임금을 이곳의 집기하고 귀금속을 팔아서 주는 것도 어디 보통 일이어야죠.”
허거거거거걱!
이게 무슨 뒤집어질 소리래?
아니, 뭐가 어쩌고 어째?
이 저택의 하녀들 중 몸매되고 얼굴 예쁜 애들은 모조리 추려서 다 쫓아내?
아니, 이것들이…….
내가 귀족이 되어서 누려 볼 수 있는 크나 큰 즐거움 한 가지를 송두리째 앗아가 버렸단 소리 아냐?
내 가슴속에서는 은은하면서 노도 같은 울분이 치밀어 올랐다.
얼굴에도 내 분노의 기색이 역력히 드러났나 보다. 세영이가 겁먹은 표정을 짓는 걸 보니까 말이지.
생각 같아서는 이 자리에서 당장 형틀에 묶어 놓고 물볼기를 치고 싶은 기분이다.
하지만 성질대로 했다가는 그 나름대로 또 후환이 있을 테니 그럴 수도 없군.
나는 치미는 울화를 꾹꾹 눌러 참으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억지로 부드러운 말투를 써서 입을 열었다.
“세영아, 이 이 오빠는 도대체 이해가 안 가는구나…….”
“…….”
“하녀들 중 얼굴 예쁘고 몸매 좋은 애들을 왜 다 쫓아낸 건데? 오빠가 알아듣게 설명 좀 해 주련?”
“아, 몰라서 물어요? 이제 귀족이 된 오빠가 권력을 이용해서 얼굴 예쁘고 몸매되는 하녀들을 찝쩍거리고 추근거릴 텐데, 그 꼴을 어떻게 봐요! 지금 에이프릴 하나만도 골치가 아프고 질투 나서 미칠 것 같은데! 미리 화근을 제거해야죠!”
역시……. 그런 단순한 이유에서였군.
난 에이프릴한테로 시선을 돌렸다. 너도 역시 같은 이유에서 하녀를 내쫓았냐는 뜻이지.
에이프릴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젠장!
별 도움이 안 되는 주제에 질투에는 눈이 멀어서 내 힘 빠지게 하는 일에는 온힘을 다 쏟고 자빠졌군…….
솔직히 그런 뽀대 나는 하녀들을 곁에 두어서 게임 생활의 피로를 풀고 위로를 받으려는 마음을 내가 먹고 있었다는 건 얘들한테는 말할 수는 없다만.
내가 실망과 허망함으로 말없이 분노하고 있을 때, 내 어깨를 다둑이는 손이 있었다.
돌아보니 조핀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군.
“걱정 마세요, 우영 님. 두 분이 자른 하녀들을 다시 재고용한다는 연락을 모조리 다 보냈습니다. 아마 내일쯤 다시 이곳에 다 올 겁니다.”
오오…….
“조핀 님!”
난 감격해서 조핀의 두 손을 마주 잡았다.
물론 세영과 에이프릴은 잡아먹을 듯 조핀을 째려보았지만.
“그러니 딴 건 신경 쓰지 마시고 저를 암흑제국의 황제와 만나게 하는 일에 차질이 없게 해 주세요. 아시죠?”
그 이유에서였나?
하긴 나에 대한 충성심으로 움직일 이유도 없는 조핀이니 당연히 그렇기도 하겠지.
어차피 세상은 기브 앤 테이크니까 당연한 거다.
나는 거듭 조핀에게 치하를 하고는, 세영과 에이프릴을 야려 준 다음에 아르본 자작의 침실이었던 방으로 가서 잠에 떨어졌다.
“흠, 틀림없군. 아르본 자작의 모든 걸 인수했군. 인정한다! 이제부터 우영 자작, 그대는 우리 주인이다!”
내가 내민 작위 증명서를 본 보스 고트맨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을 하자 이실리움 보관소를 에워싸고 있던 고트맨들이 일제히 이실리움 건물에서 물러섰다.
보스 고트맨은 나에게 웬 검은색으로 된 고동을 건네주며 말했다.
“위급한 상황일 때 이걸 불면 언제든 즉시 달려오겠다! 그럼…….”
말을 마치고는 고트맨들과 함께 저택 주변의 나무와 숲으로 몸을 감췄다.
애초에 아르본 자작과 어떻게 얽혔는지는 몰라도 제법 믿음직하긴 하다.
난 케드릴을 돌아보며 말했다.
“자, 그럼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아무렴. 흐흐흐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 왔던지 모르겠군.”
건물 속으로 들어가니 나선형의 계단이 지하로 나 있었다.
한 백 미터가량 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육중한 두 개의 대형 금고가 있었다.
아르본 자작의 침실에서 발견한 열쇠를 꺼내서 돌려 보니 둔한 금속음과 함께 금고가 열리고 칙칙한 묵빛의 금속들이 직사각형의 형태로 가득 차 있었다.
음……. 포스가 넘치는 거 보니 대단한 금속 같긴 하군.
케드릴은 아예 두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 이실리움이 모두 내 것이 되다니! 흐흐흐흐흐!”
“모두 다 내 것이라니, 무슨 말씀입니까? 이실리움을 전부 다 드린다고 한 적 없는데요?”
“엉?”
내 말에 케드릴은 두 눈을 부라렸다.
“아니, 자네 지금 그게 무슨 소린가? 다 주겠다고 한 적 없다니? 분명히 약속하지 않았나!”
“말한 그대론데요? 이 금고 하나에 든 것만 가져가세요. 이쪽 금고의 이실리움은 제 거니까 건드릴 생각하지 마시고.”
내가 태연하게 말하자 케드릴은 두 눈에 살심을 담고 날 노려보았다.
“지금 배신을 때리겠다는 건가?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은가!”
젠장! 이러면 내가 쫄 줄 아는가 보군. 난 틀린 말 한 거 없대도 이러는군.
“난 배신 때리는 거 없거든요? 이실리움을 드리겠다고 했지. 언제 전부 다 드리겠다고 했습니까? 결정하세요. 이 금고 하나분의 이실리움을 다 가지고 내가 약속을 지켰다고 인정하든가, 내가 약속을 어겼다고 하실 거면 그냥 빈손으로 돌아가든가…….”
케드릴은 두 눈을 부라리며 한참을 노려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군. 약속을 지킨 거 인정하지. 쳇! 풋내기인 줄 알았는데…….”
“세상에 어떤 바보가 이 비싼 금속을 모두 다 줍니까? 반이라도 주는 걸 고맙게 아셔야지.”
순간 띠리링 하는 음향과 함께 퀘스트가 성공했음을 알리는 창이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