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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4권(94화)
Part 9.암흑제국의 황제를 만나다(2)
어전 중간쯤에 엄청 큰 접시가 놓여 있는데, 그곳에 야구공만 한 크기의 푸르죽죽하고 야릇한 물체들이 가득 쌓여 있다.
철퍽!
웃! 내가 보고 있는 사이에도 또 하나가 날아와서 떨어졌다.
도대체 어디서…….
“……!”
물체가 날아온 쪽을 본 나는 기겁했다.
황제가 옥좌에 옆으로 길게 누워서는 코를 파고 자빠졌던 거다.
코에서 걸쭉하게 파낸 물체를 손으로 딱 튕기니 휘익하고 날아와서 ‘퍽!’ 하고 떨어지는군.
저건 황제의 코딱지였다.
젠장!
자이언트라서 코딱지의 사이즈도 보통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르게 크군.
웃! 근데 저건 뭔 짓이지?
시종이 코딱지가 가득 쌓인 접시를 들고 귀족들한테로 간다.
그리고 그 접시를 들이미니 귀족들이 한 개씩 들고 집어먹는구먼.
욱! 보고 있기만 해도 올라올 것 같다.
그런데 모두 다 집어먹지는 않는데……. 먹는 귀족은 뭐고, 안 먹는 귀족들은 또 뭐야?
알 수가 없구먼…….
좌우간 언제까지 서서 구경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나는 황제한테로 다가가서 꾸벅 절을 했다.
“새로 자작이 된 우영이 황제 폐하께 인사 드립니다!”
그제야 황제는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물론 여전히 옥좌에 삐딱하게 누워서 코를 후벼 파는 채로.
“우영이라고? 그럼 아르본의 목을 따고 새로 자작이 된 게 바로 자넨가?”
“목을 따지는 않았습니다만…….”
“아르본의 목을 딴 게 자네가 아니라고?”
“네……. 목은 안 따고 그냥 새까맣게 태워 버렸습니다. 그 편이 내 손에 피도 안 묻고 더 간단하고 깔끔하게 보낼 수가 있어서요.”
내 말에 황제는 피식 웃었다.
재미있는 놈이구나라고 생각하는 얼굴이다.
근데 황제 주변의 귀족들은 은근히 날 야리는군.
이것들은 황제와는 반대로 나를 건방진 놈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다.
하지만 딴 귀족 나부랭이들 반응이야 신경 쓸 거 없다. 문제는 오로지 황제니까.
근데 첫 대면에서 하는 황제의 말이 역시 조직스럽다.
“그래, 귀족이 됐으니까 앞으로 상납 잘할 거지? 아르본은 딴 건 몰라도 그것만큼은 별문제없었거든.”
“저……. 근데 만약에 제가 폐하께 상납을 제대로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건데요?”
내가 궁금하다는 투로 묻자 황제는 좀 황당해하다가 다시 피식 웃었다.
“그냥 가는 거지 뭐.”
“근데요. 상납 제대로 해도 어차피 어떤 듣보잡한테 칼침 맞을지 모르는 게 이곳 암흑제국 아닙니까? 귀족의 자리를 노리는 놈들이야 많을 테니까요. 이래도 가고 저래도 간다면 굳이 피 같은 돈을 폐하께 바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딴 나라 같으면 황제한테 요따위로 주절거렸으면 불경죄로 치도곤을 당했을 거다.
근데 과연 이곳은 아스트랄한 곳이라 누가 날 말리지도 않고 황제도 별로 대수롭잖다는 듯이 대꾸한다.
“그건 아니지. 나한테 상납 잘해서 귀족의 작위를 박탈 안 당하면 최소한 공공장소에선 안전하거든. 자기 저택이야 공격당할 수 있지만 말이지. 귀족은 공공장소에선 절대로 못 건드리거든.”
음……. 이제 보니 그런 룰이 있었군.
귀족의 작위를 빼앗고 싶으면 저택을 습격하되 공공장소에선 불가하다는 거군.
하긴 시도 때도 없이 공격당한다면 귀족이나 거지나 별 차이가 없을 테니까.
“어쨌거나 폐하께 상납을 제대로 안 하면 귀족 작위를 박탈할 수도 있단 거네요?”
“아무렴. 나는 뭐 흙 파서 황제 자리 유지하는 줄 아나? 나도 생기는 게 있어야 할 거 아냐? 그렇다고 내가 일반 백성들한테 삥을 뜯으면 모양이 어떻겠나? 황제나 되어 가지고 그딴 쪼잔한 짓을 하면 체면이 어찌 되겠냐고. 귀족들을 족쳐서 돈을 뜯어야 폼이 좀 날 거 아니겠나?”
“…….”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당히 노골적인 말이긴 하다만 그럭저럭 납득이 되는 말이긴 하다.
황제는 날 유심히 보더니 다시 한마디를 던졌다.
“자네도 아랫것들을 부지런히 쥐어짜라고. 돈 만들려면 딴 방법이 별로 없으니까. 부지런히 착취하고 갈취해서 나한테 상납을 하게. 그럼 내가 듬뿍 총애를 해 주지.”
“근데 부지런히 착취하고 갈취하고 쥐어짜면 원성 안 들을까요??”
내가 다시 질문하자 황제는 다시 피식 웃었다.
“자네 또라이인가? 사람이 부당하게 갈취당하고 착취당하는데 원성 안 내뱉는 사람이 어딨나?”
“그럼 제가 폐하께 상납할려고 부지런히 쥐어짜다 원성을 듣다못해 아랫것들한테 칼침 맞으면 어쩝니까?”
“그건 자네가 알아서 할 일이지. 내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니지 않는가? 뭐, 내 등에 칼 꽂히는 것도 아닌데 내가 왜 그런 문제까지 신경 써야 하나?”
“…….”
젠장! 말인즉슨 다 맞는 말인데, 듣고 있자니 슬슬 약이 오르려고 한다.
좌우간 황제의 말을 종합해 보자면 이렇다.
1. 귀족 자리 유지하고 싶으면 부지런히 상납해라.
1. 부지런히 상납할 돈을 만들려면 부지런히 아랫것들을 착취하고 갈취하고 세금 물리고 쥐어짜라.
1. 그러자면 원성이 자자할 테고, 등에 칼 꽂으려고 덤비는 인간들도 있을 거다.
근데 죽든 살든 그건 니가 알아서 하고 황제인 나하곤 무관하니 그걸로 날 귀찮게 하진 마라.
젠장! 진짜로 조직스럽다.
조폭의 중간 간부가 두목한테 상납하고, 제자리 유지하려고 발버둥 치는 거하고 어쩜 이리도 비슷할 수가 있냐고.
미녀 메이드들한테 둘러싸여서 시중받고 아첨 듣는 생활을 유지하려면 대가가 만만찮구먼…….
맥이 빠져서 좀 허탈해하다가 난 다시 황제한테 말을 걸었다.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질문하게. 돈 안 드는 거라면 대답 못해 줄 거 없지.”
“저기 폐하의 그 코…….”
“코딱지 말인가?”
“네……. 근데 그걸 이 귀족들 가운데 어떤 분은 드시고, 어떤 분은 안 드시는 겁니까?”
“내 코딱지에는 좀 특별한 성분이 있어서 말이지. 그게 필요한 사람만 먹게 되어 있다네. 어떤 성분인지 궁금하면 자네도 하나 집어먹어 보라고.”
“…….”
제기, 아무리 궁금해도 그렇지. 그걸 집어먹느니 목매고 자살하겠다.
내 얼굴에서 궁금증이 사라지지 않자 황제는 보충 설명을 해 주었다.
“나한테 이번 달에 낼 돈을 상납 못한 귀족들은 이 코딱지를 강제로 먹어야 하네. 제대로 상납한 자들은 안 먹어도 되고.”
그런 거였군.
역시 이 코딱지를 먹는 건 벌칙이었다.
근데 하나 이상한 건 코딱지를 먹는 귀족들이 특별히 굴욕스럽거나 어두운 표정이 아니란 거다. 오히려 아주 자신만만한 얼굴이다.
나는 슬쩍 황제에게 물어보았다.
“이 코딱지, 제가 좀 가져도 됩니까?”
“좋고말고. 공짜니까 필요하면 말하게. 얼마든지 파 줄 수 있네.”
말과 함께 황제는 다시 콧구멍에 손가락을 넣어서 열심히 후벼 파기 시작했다.
보고 있자니 다시 속이 울렁거린다.
난 슬쩍 코딱지 위에 손바닥을 드리우고 감정 스킬을 시전했다.
“아이덴티파이!”
파팟!
성냥을 키는 듯한 음향과 함께 오렌지색의 빛이 번쩍이더니 창이 떴다.
- 암흑제국의 황제의 코딱지 -
암흑제국의 황제가 코에서 손가락으로 파낸 코딱지. 때와 장소에 무한하게 얼마든지 파낼 수 있다.
분류 : 분비물, 또는 약재.
내구력 : 30/30
특징 : 간을 팅팅 붓게 해 주는 효능이 있다. 너무 많이 먹으면 눈에 뵈는 게 없어지는 증세도 추가로 발생한다.
마법의 약의 재료로도 긴요하게 사용된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도 있다.
응? 이거 뭐 이래?
약재로 사용된다고?
그리고 간을 붓게 해 주는 효능이 있다고?
이제 알겠구먼.
황제한테 상납도 못한 주제에 저리도 당당하고 태연하게 버티고 있는 귀족들을 말이지.
이 코딱지를 먹고서 간이 부어 저러고 있는 거다. 근데 이거 나름대로 심각한 효능이긴 하군.
과다 복용할 시에는 눈에 뵈는 게 없어지기까지 한다니…….
상납도 못한 주제에 간이 부어 얼굴까지 뻣뻣이 들고 다니고, 눈에 뵈는 거까지 없어져서 황제한테 마구 개긴다면…….
음……. 이제 알겠군.
이건 상납 제대로 안 하는 귀족들을 죽여 없애려는 목적으로 먹게 하는 거로구먼.
단순히 돈 제때 못 바친다고 마구 죽여 버리면 좀 찝찝하고 여론도 나쁘게 될 수 있을 테니, 이걸 먹여서 돈도 못 내는 주제에 건방지게 굴기까지 하다고 트집을 잡는 거다.
그리고 그 건방짐에 개김성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 황제의 권한으로 사약이라도 내려서 죽이는 거겠지.
음…….
감탄했다.
이 코딱지 하나에 그렇게 심오한 뜻과 계략이 담겨져 있다니.
난 한숨을 쉬며 그 코딱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시 황제를 바라보며 나지막히 말했다.
“이거 단순한 코딱지가 아니군요. 놀랐습니다.”
“후훗……. 자네도 그 코딱지에 담긴 의미를 파악한 게로군.”
“그렇습니다.”
“그럼 알아서 상납 잘해. 그럼 그거 먹을 일 없을 테니까. 나도 돈 꼬박꼬박 잘 바치는 귀족한테 그거 먹여서 일부러 개김성 키우고 싶은 생각 전혀 없거든?”
“명심하죠. 그런데요…….”
내 말에 황제는 하품을 했다.
“그런데 뭐? 또 할 말이 남았나?”
“제 부탁 하나 들어주셨으면 하는데요…….”
“…….”
내 말에 황제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날 내려다보았다.
쩝……. 어째 기분이 좀 나빠진 표정인데?
“전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처음, 귀족이 돼서 날 보러 오는 자들은 간혹 선물이나 돈 갖고 오는 사람도 있네. 근데 자네는 빈손으로 태연하게 찾아와 갖고 주절주절 잘도 떠들어 대더니 이제는 부탁까지 하겠다고? 아무것도 주는 거 없이? 참 넉살도 좋구먼. 가만 보니 자넨 내가 일부러 코딱지 먹일 필요도 없을 것 같군그래.”
허걱…….
이게 무슨 뜨끔한 소리냐.
간단히 말해서 ‘너 지금 나한테 찍혔어! 코딱지 안 먹어도 알아서 보내 줄 테니, 기대해라.’ 이 소리 아냐?
나는 황급히 변명을 했다.
“아니, 저……. 그건 오해시거든요? 사실은 폐하께 드리려고 선물을 준비해 놨습니다만…….”
“그래?”
선물이라는 말에 황제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입이 귀밑까지 벌어져서 흐뭇해하는구먼.
“근데 어떤 선물인가?”
“네, 저 그게…….”
내가 머뭇거리는데 비서실장이 다가와서 슬쩍 말을 건넸다.
“밖에서 우영 자작님의 부하라면서 웬 수레를 갖고 온 사람이 있는데요.”
“내 부하니까 수레 갖고 들어오라고 전해 주시죠. 폐하께 드릴 선물입니다.”
내 말에 비서실장은 다시 나갔고 고트맨들이 수레를 가지고 들어왔다.
황제와 귀족들은 호기심에 찬 표정으로 수레를 주시했다.
내가 수레를 덮은 천을 훌러덩 벗기자 장내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오오…….”
“척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실리움입니다. 제가 목숨보다 아끼는 건데 황제 폐하께 제 충성의 표시로 드리겠습니다.”
“후후후후훗! 우영 자작, 자네 정말 충성스런 인물이군그래. 근데 나한테 할 부탁이란 게 뭔가? 겸손해할 거 없으니 후딱 말해 보게. 내 웬만하면 다 들어주도록 하지.”
아니, 뭔 놈의 황제가 비싼 선물 바쳤다고 금방 태도가 돌변하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날 역적 취급할 듯한 기세더니만 이제는 간이라도 내줄 것 같다.
그리고 사실 이 이실리움 바치는 거 나로서도 쉬운 결단이 아니었다.
자그마치 같은 무게의 다이아몬드보다 두 배는 더 비싼 물건이라고.
케드릴한테 주고 남은, 나머지 금고 하나에 들어 있는 이실리움의 절반을 여기 갖고 온 거다.
생각하면 피눈물이 흐르는 것 같군.
근데 암흑제국 황제의 협조에 따라서 내가 이 게임하는 목적이 이루어지느냐 마느냐가 달려 있으니 어쩔 수 없다.
나로선 과감한 카드를 쓸 수밖에.
순간 경쾌한 음향과 함께 창이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