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스토킹 마스터 4권(95화)
Part 9.암흑제국의 황제를 만나다(3)


당신이 바친 엄청난 값어치의 이실리움 선물 때문에 암흑제국 황제와의 친밀도가 크게 상승했다!

젠장! 워낙 비싼 걸 바친 탓인지 친밀도가 상승했어도 별로 기쁘지도 않네.
좌우간 이런 거액의 선물을 바친 인간은 지금까지 없었던 모양이다.
황제가 저다지도 흐뭇해하는 거 보면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
나는 좀 주저하다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 꼭 만나 주셨으면 하는 사람이 있거든요.”
“누군데?”
“마토스 국왕의 밀서를 가지고 온 조핀이라는 사람입니다만.”
그 말에 황제는 고개를 갸웃하며 좀 생각하더니 물었다.
“마토스 왕국이라고? 그럼 가뎀 왕국한테 망한 그 나라 말인가? 듣자 하니 국왕은 아직도 안 잡히고 도망 다니고 있다고 들었네만.”
“맞습니다. 마토스 국의 블루 울프 기사단은 아직도 산발적인 게릴라전을 펼치며 저항하고 있구요.”
“우영 자작, 자네 설마 마토스 국왕의 신하인가?”
황제가 두 눈을 가늘게 만들며 하는 말에 난 펄쩍 뛰는 시늉을 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전 단지 마토스 국왕의 신하를 폐하와 만나게 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거 뿐이거든요.”
“그래? 그거 다행이군. 딴 나라의 신하이면서 우리 암흑제국에서 작위를 받으면 처형시키는 게 이곳 법이라서 말이지.”
난 등골이 서늘해졌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고 비서실장에게 황궁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을 조핀을 불러 줄 것을 부탁했다.

암흑제국 황제의 집무실로 자리를 옮긴 황제는 여전히 하품을 하면서 우릴 바라보았다.
조핀은 정중하게 무릎을 꿇으면서 인사를 했다.
“마토스 국왕의 황실 시종장 조핀이 국왕이신 투르펜 전하의 밀서를 암흑제국의 황제 폐하께 전하고자 합니다.”
“…….”
나와 조핀은 긴장된 표정으로 황제를 주시했다. 황제의 반응이 궁금했던 거지.
먼 길을 잘 왔다든가, 밀서의 내용이 무어냐고 묻거나 뭐 그러지 않을까?
한참 동안 조핀을 뚫어져라 보던 황제는 이윽고 입을 열었다.
“달랑 밀서만 가지고 왔나? 뭐 나한테 줄 다른 건 없나? 돈 아니면 금이나 보석이라도 상관없는데.”
“…….”
“…….”
나와 조핀은 말문이 막혀서 한 5분 동안을 벙 찌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 또 뇌물 달란 거냐?
황제란 인간이 돈 밝히는 것도 정도가 있어야 할 거 아니냔 거다.
우리가 황당한 표정을 짓자 황제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농담이었네. 자네들은 참 유머 감각도 없군그래. 농담 한마디에 그렇게 정색을 하면 내가 무안해지지 않는가?”
농담이었다고?
근데 농담이었다면서 입가의 그 아쉬운 미소는 도대체 뭐냔 말이다.
좌우간 조핀은 공손한 자세를 흩트리지 않으면서 입을 열었다.
“역시 듣던 대로 암흑제국의 황제 폐하께서는 유머를 즐기시는 드높은 인격을 지니셨군요. 여기 이것이 국왕 전하의 밀서이옵니다!”
“으음…….”
황제는 ‘이런 거 말고 돈이나 줄 것이지’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마지못한 듯 밀서를 받아서 펼쳤다.
그리고 읽어 내려갔는데…….
옆에서 보고 있자니 밀서 내용에 별로 감흥을 받는 것 같지는 않다.
슬쩍 조핀을 보니 상당히 초조한 표정이다.
무리도 아니지.
자기 나라의 운명이 걸려 있으니 저럴 수밖에.
조핀을 만난 이후 처음으로 조핀이 지닌 임무의 막중함이 피부로 느껴지는 것 같다.
그것참. 지금까지는 그냥 순수한 어린 소년의 탈을 쓴 속 검고 엉큼한 변태 중년 아저씨로만 생각했었는데.

밀서를 다 읽은 황제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조핀에게 말했다.
“뭐, 별 내용 아니구먼. 마토스 왕국에서 가뎀 왕국 군대를 몰아내게 원군을 보내 달라 그거로군.”
“…….”
“…….”
나와 조핀은 다시 황당한 얼굴이 되었다.
그게 별 내용이 아니면 어떤 게 별 내용이 되는 겁니까?
하지만 황제의 이런 반응은 꼭 부정적으로만 볼 일이 아닐지도 몰랐다.
원군을 빌려 주는 걸 별 게 아니라고 말할 정도니까 어쩌면 화끈하게 병력을 내어 줄지도…….
“근데 우리 암흑제국이 원군을 보내 주면 마토스 국왕은 나한테 뭐해 줄 건가?”
“그건…….”
너무도 단도직입적인 황제의 말에 노회한 중년 아저씨 조핀도 일순 당황스러워했다.
하지만 황제는 너무도 당당하게 재차 물었다.
“설마 공짜로 도와 달라는 건 아니겠지? 암, 그렇고말고. 일국의 국왕이나 되는 사람이 그런 머리도 안 돌아가서 그냥 무턱 대고 도와 달라고 타국의 황제한테 요청할 리가 있나.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말고. 진짜로 그 정도 머리라면 그건 국왕이 아니고 마을 촌장도 못 해 먹을 머리니까 말일세. 안 그런가?”
“…….”
그러나 국왕의 생각과는 달리 조핀이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아무 대답도 못하는 걸로 봐서는 마토스 국왕이 이른바 ‘촌장도 못 해 먹을 머리’의 소유자인 게 맞는 것 같군…….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조핀을 보는 황제의 눈빛이 다시 사나와지려고 했다.
“아니, 설마……. 정말로 아무 조건 없이 도와 달라는 소리를 하러 온 건가!”
“죄송합니다! 사실은 국왕 전하께서 조건을 제시하셨습니다만 그 밀서는 제가 분실하는 바람에 가지고 오지 못했습니다. 황제 폐하께서 요구 조건을 말씀해 주시면 제가 국왕 전하께 전하겠으니 즉시 원군을…….”
“그건 곤란하지. 흥정이 맞아야 매매가 이루어지고, 협상은 서로 동의해야 병력을 빌려 주는 거니까! 우선 내 조건부터 전하겠으니 똑똑히 듣고 자네 국왕한테 전하라고. 첫째, 마토스 왕국을 되찾은 다음에 조세 수입의 절반을 매년 나한테 바칠 것. 둘째, 우리 암흑제국이 전쟁을 일으킬 때는 무조건 마토스 왕국 군대 절반을 징발해서 보낼 것. 셋째, 마토스 왕국의 모든 항구는 우리 암흑제국이 언제든 사용할 수 있게 할 것. 이 세 가지네.”
“그, 그건 좀…….”
황제의 말에 조핀은 당혹스러워했다.
내가 듣기에도 이건 상당히 부담스러운 조건이다.
조세 수입의 절반을 바치고 전쟁을 일으키면 군대 절반을 무조건 보내라고?
이건 심해도 너무 심하잖냐고.
하지만 당장 아쉬운 건 마토스 왕국이니 저런 조건이라도 받을 수밖에 없겠지.
나라를 되찾지 못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조핀은 입술을 깨물며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지금 폐하께서 하신 말씀 그대로 우리 마토스 국왕 전하께 전해 올리겠습니다.”
“그 조건 중 한 가지라도 안 받아들이면 군대 못 보낸다고 자네 국왕한테 말하라고. 이쪽은 아쉬울 거 전혀 없으니까.”
“알겠사옵니다, 폐하.”



Part 10.마토스의 국왕을 다시 만나다(1)


“너무 실망하진 마세요 조핀 님. 황제가 원군을 안 보내 준다고 한 건 아니잖습니까?”
“…….”
황궁을 나와서도 조핀이 계속 침울한 표정이길래 위로를 했지만 여전히 굳은 얼굴이다.
“어쨌거나 국왕 전하께 빨리 갔다 오셔야겠군요. 자신의 조국을 위한 일이긴 하지만 조핀 님도 참 고생이 많으십니다.”
“…….”
내 말에 조핀은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근데 어째 이 아저씨 눈빛이 좀 섬뜩한 느낌이다.
“우영 님?”
“네?”
“이제부터야말로 우영 님의 도움이 중요하니 잘 좀 부탁드립니다.”
“아니, 저……. 그게……. 조핀 님을 암흑제국의 황제와 만나게 해 드렸으니 제가 할 일은 끝났다고 봅니다만.”
좀 매정한 것 같지만 난 딱 부러지게 말했다. 또 그 말이 사실이기도 하고.
분명히 퀘스트에 요구된 조건은 황제를 만나게 해 주는 것까지였으니까.
그리고 인정과 그동안 함께 여행한 정에 이끌려서 무한정 조핀을 위해서 봉사할 순 없는 일이니까.
근데 조핀은 나와 생각이 다른 것 같다.
“우영 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우리 마토스 왕국은 우영 님의 도움이 여전히 필요합니다! 우영 님, 부디 저와 우리 국왕 전하를, 우리 마토스 왕국을 도와주십시오!”
“아니, 저 그렇게 말씀하셔도…….”
순간 띠리링 하는 소리와 함께 창이 떴다.
퀘스트 완료 창인가 보군.
분명히 조핀을 암흑제국의 황제와 만나게 하는 임무는 달성했으니까…….

조핀을 암흑제국의 황제와 만나게 해 주어라! 퀘스트가 완료되었다.
당신은 조핀을 암흑제국의 황제와 만나게 하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그 결과로 마토스 국왕과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하게 되었고 마토스 왕국의 수호기사 자격이 주어졌다.
그리고 퀘스트 성공시 발생되는 페널티로 인해 가뎀 왕국에게 적대적인 인물로 찍히게 됐다. 앞으로 가뎀 왕국이나 그 근처를 지나갈 때 쬐끔 애로 사항이 있을 거다.

충고 : 근데 마토스 왕국이 나라를 찾을 가능성이 희박해지는데 저 보상들이 의미가 있겠냐? 보상을 제대로 누리려면 마토스 왕국이 가뎀 왕국의 수중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하니까 잘 생각해 봐라.

젠장!
이거 갈등 때리는군.
마토스 왕국이 이대로 쫄딱 망한 상태에선 주어진 보상들이 별 의미가 없다고?
설명 창의 충고를 보니 그건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이대로 마토스 왕국이 저 모양 저 꼴이면 마토스 국왕과의 친밀도가 늘어나 봐야 그게 뭔 소용이냐고.
그냥 대장간 쥔장이나 마법 상점 점원하고 친밀도 있는 게 차라리 더 낫지.
쫄딱 망한 나라의 국왕 같은 건 그야말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거다.
그리고 마토스 왕국의 수호기사 자격 역시 마찬가지다.
그 권력을 누리려면 마토스 왕국이 지금의 사실상 망한 상태에서 다시 버젓한 국가로 회복되어야 가능하다.
사실 이 퀘스트의 보상은 조핀이 암흑제국의 황제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얻어서 마토스가 나라를 되찾는다는 전제하에서나 의미가 있는 거였다.
일이 잘 풀려서 그렇게 될 줄 알았는데, 이렇게 꼬일 줄이야…….
근데 이미 암흑제국의 자작이 되었는데 굳이 마토스 왕국에도 한 다리 걸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난 잠시 생각해 보았지만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왜 그런고 하니 이 암흑제국은 하도 살벌하고 조직스러운 나라라서 도대체 언제까지나 귀족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으니 말이지.
그렇다고 황제를 만날 때마다 이실리움 같은 비싼 걸 바칠 수도 없는 일이고.
가능하면 권력의 기반은 여러 나라에 만들어 두는 게 유리하긴 할 거 같다.
머릿속에서 계산을 끝낸 나는 짐짓 한숨을 쉬며 조핀을 바라보았다.
“휴, 이것 참……. 분명히 제가 약속한 건 다 이행했고, 더 이상의 의무는 없습니다만…….”
“…….”
“그런데 조핀 님께서 그렇게까지 사정하시니 마음이 약해지는군요. 가능하면 돕도록 해 보긴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우영 님!”
조핀이 크게 기뻐하자 나는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았다.
“아니, 그렇다고 100% 도와 드리기로 마음먹은 건 아직 아니거든요? 일단 국왕이신 투르펜 전하를 함께 만나 보죠. 그래서 이것저것 말씀을 들어 보고 어떻게 도와 드릴까를 결정하기로 하죠.”
내 말에 조핀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