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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4권(96화)
Part 10.마토스의 국왕을 다시 만나다(2)
도와주겠으니 나한테 무슨 보상을 줄 건지를 들어 봐야겠다……는 말뜻을 알아챈 거지.
“좋습니다. 그럼 말이 나온 김에 지금 당장 모처에 은신하고 계신 투르펜 전하를 뵈러 가기로 하죠.”
말과 함께 조핀은 품에서 텔레포트 스크롤을 꺼냈다.
음……. 모양만 봐도 상당히 비싼 스크롤인 거 같다.
아마 상당한 장거리도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는 거겠지. 어쩌면 투르펜 왕과 그 수행원들은 여기서 상당히 먼 곳에 있는지도 모르겠군.
찌이익!
파팟!
조핀이 스크롤을 찢자 번쩍하는 불꽃과 함께 주위가 칠흑 같은 어둠으로 물들었다가 다시 밝아졌다.
“엇!”
“조핀 님이 아니오?”
“엇! 그대는…….”
석실로 된 방이었다.
차를 마시고 있던 방 안의 사람들은 갑자기 나타난 우리를 보고 조금 놀란 표정들이다.
궁정 마법사 챈들러와 친위기사단장 폴크 경은 전에 만났을 때와 비교해도 별로 변한 게 없군.
그런데 국왕인 투르펜은…….
“오오……. 이게 누구란 말인가? 그대는 우영이 아니오? 이렇게 오랜만에 만나게 되다니 반갑기가 한량이 없구려.”
여전하다.
여전히 개폼…… 아니, 왕폼을 잡으며 나의 어깨를 붙잡고 거창하게 주절대시는군.
“근데 어찌 된 건가? 부탁한 임무는 제대로 완수해 내신 건가?”
“저, 그게…….”
왕이 진지한 눈빛으로 묻자 난 슬쩍 조핀에게 고개를 돌렸다.
조핀은 한숨을 내쉬었다.
“전하……. 우영 님의 노력으로 암흑제국의 황제를 만났사옵니다만…….
“그건 심한 조건이군요. 조세수입의 절반을 매년 바치고, 자신이 전쟁을 일으킬 때마다 우리 군 병력의 절반을 동원시키라는 것은. 이래서야 나라를 되찾는다고 해도 우리 마토스는 암흑제국의 식민지와 다름없는 꼴이 됩니다.”
“하긴 암흑제국의 황제가 만만찮은 대가를 요구할 거라는 짐작은 했었습니다만.”
암흑제국의 황제가 했던 말을 들려주자 챈들러와 폴크도 어두운 표정이 되었다.
국왕 투르펜은 머리에 손을 얹고 고뇌에 찬 제스처를 취했다.
“오오……. 이 무슨 가혹한 요구란 말인가? 신은 어찌하여 짐에게 이다지도 가혹한 시련을 주시는 것인가…….”
방 안의 공기는 엄청 침울해졌다.
모두가 심하게 고뇌가 서린 표정이었다.
거참 나 혼자만 별로 안 고민스러운 입장인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
“…….”
“…….”
길고 어두운 침묵이 한참을 계속되다가 조핀이 입을 열었다.
“전하……. 하지만 암흑제국의 황제에게 대답을 해 주어야 합니다. 어찌할까요? 그가 요구한 조건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아니면 거절할까요?”
“이걸 어쩌면 좋다는 말인가? 패망한 나라의 상태를 방치하면서 국토 수복 전쟁을 벌여야 하는가, 아니면 반식민지 상태인 나라로라도 회복시켜야 한다는 말인가? 너무나 어려운 문제라서 나 혼자서는 결정을 내릴 수 없을 것 같군. 챈들러, 폴크 경 그대들의 생각은 어떠시오? 두 사람의 생각을 반영해서 결정을 내리고 싶군.”
잔뜩 폼은 잡더니만 고작 한다는 게 신하들의 의견을 묻고 자빠졌다.
질문을 받은 챈들러와 폴크도 당황한 눈치다. 당연히 그렇겠지.
이거 잘못 결정 내렸다간 나중에 두고 두고 원망을 들을 수 있는 문제다.
그 정도면 다행이지. 어쩌면 역적으로 몰려서 목이 날아갈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마법사 챈들러는 난감한 듯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더니 입을 열었다.
“제 생각에도 이건 너무 민감한 문제라서요. 폴크 경과 조핀 시종장이 의견을 말하면 제 생각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쯧, 결국 폭탄 떠넘기기로군.
자신이 폭탄의 도화선에 불붙이긴 싫으니 슬쩍 남한테 그 결정을 미루는 거.
그리고 자신은 그 결정에 은근슬쩍 부화뇌동하면 나중에 책임을 크게 추궁당할 일은 없단 거지.
자, 그럼 폴크는 뭐라고 하나 들어 보자.
“음……. 정말 너무도 민감한 문제라는데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저는 조핀 시종장과 우영 자작의 생각을 들어 본 다음에 결정을 내릴까 합니다.”
젠장!
뭐, 이딴 인간들이 다 있어?
궁정 마법사에다 친위기사단장이라는 중책을 맡은 인간들이 나중에 책잡힐 일은 철저히 피하겠다는 수작들이다.
한심해서 뭐라고 해 주고 싶은데, 내가 투르펜의 신하도 아닌데 뭐라고 하기도 그러네.
자, 그럼 우리 변태 중년 아저씨는 뭐라고 하는가 들어 봐야겠군.
조핀은 고민스런 표정을 한참을 짓다가 입을 열었다.
“암흑제국의 황제의 요구 조건은 너무 심하지만 일단은 나라를 되찾고 봐야 합니다. 굴욕적이지만 그 제안을 수용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후일 우리 마토스 국의 국력이 커질 때에는 암흑제국의 황제에게 협상한 것을 변경하자고 요구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음……. 명쾌한 결론이군.
시종장이지만 제일 나은 거 같다.
조핀이 자신의 의견을 밝히자 국왕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참. 짐도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참으로 좋은 생각인 것 같군. 아니, 그렇소? 챈들러, 폴크 두 분?”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사실 저도 그런 생각을 품고 있긴 했었습니다.”
“누가 아니랍니까? 사실 그것 외에는 다른 대안은 없죠. 뭐니 뭐니 해도 우선 빼앗긴 나라를 되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한 결론이죠.”
“…….”
옆에서 보고 있던 나는 벙 찌고 말았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좀 맛이 간 왕이고 신하들이란 생각은 들었다만 어째 일개 시종장보다도 못하냐고.
근데 투르펜이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우영 자작은 아무 말도 없는데……. 혹시 다른 의견은 없는 건가?”
“뭐, 저도 조핀 님 의견에 동감입니다. 근데 저한테 뭐 따로 말씀하실 건 없으신가요? 부탁 같은 걸 하신다든가…….”
“…….”
내 말에 투르펜과 폴크, 챈들러 세 사람은 일제히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이 아저씨들, ‘우리가 너한테 부탁할 게 어떤 게 있었더라?’하는 표정들이로군.
이그……. 내가 말을 말아야지.
“조핀 님……. 제가 해야 할 역할이 있을 텐데…….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없다면 저는 그냥 돌아갈게요.”
좀 짜증이 나서 말하자 조핀이 서둘러 대답했다.
“없을 리가 있겠습니까? 우영 님께서 암흑제국의 황제께 요구 조건을 좀 완화해 줄 것을 부탁해 주시구요. 그리고 우영 님도 병력을 이끌고 우리의 국토 수복전에 참여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이건 제 의견이 아니고 국왕 전하의 생각이십니다. 전하, 그렇지 않습니까? 우영 자작께 보상도 듬뿍 해 주실 거죠?”
그렇게 안 하면 엄청 곤란해집니다란 표정으로 조핀이 말하자 투르펜은 멀뚱히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 물론이지. 마토스 국왕의 이름을 걸고 우영 자작에게 부탁하겠소. 그대가 직접 나서서 무력으로 우리 마토스 군대를 도와주시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우리 국토가 회복된다면 그 보상으로 공작의 작위와 우리 땅에서 제일 큰 영지를 그대에게 주도록 하지!”
허걱…….
마토스에서 제일 큰 영지를 주고 최고위 귀족인 공작 작위를 준다고?
이 아저씨 통 크게 나오는군.
뭐, 그 정도 보상을 해 주겠다면야 나도 거절을 할 수는 없지. 후후후후훗!
나는 90도 각도로 허리를 숙이며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미력한 힘이나마 최선을 다해서 돕겠습니다. 국왕 전하!”
내 말이 떨어지자 띠리링 하는 소리와 함께 창이 떴다.
- 마토스 왕국이 나라를 되찾을 수 있도록 하라!-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마토스 왕국에서 가뎀 왕국을 몰아내고 국토를 되찾을 수 있도록 해 주어라.
기한 : 6개월
보상 1 : 마토스에서 가장 큰 영지가 주어짐
보상 2 : 마토스 국의 공작 작위 부여
제한 사항 : 반드시 자신의 병력을 이끌고 참전해서 공을 세워야 한다. 즉, 외교적인 지원이나 술수만 부린다면 퀘스트는 실패한다.
페널티 : 성공하면 가뎀 왕국하곤 철천지 원수가 된다.
퀘스트 등급 : S급
음…….
이건 지금까지의 퀘스트와는 좀 다르군.
우선 퀘스트 등급이 S급이다.
지금까지는 1급이 가장 난이도가 높은 거였는데 이건 스페셜 급이라서 더 힘든 거란 말이겠군.
게다가 제한 사항이 만만찮다.
외교적인 지원이나 술수만으로는 마토스가 가뎀을 몰아내고 국토를 되찾아도 퀘스트 성공은 인정이 안 된다니.
병력을 이끌고 빡 세게 전투를 해야 한단 거 아냐?
제기…….
가만있어라. 근데 병력도 문제로군.
나한테는 지금 동원할 병력이란곤 없다.
이럴 경우를 대비해서 슬슬 준비를 해 놓은 건 물론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이건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퀘스트다.
무엇보다도 공작의 작위와 마토스에서 가장 큰 영지라는 게 매력적인 조건이다.
뭐, 이미 암흑제국에서도 받은 게 있긴 하지만 작위도 높지 않고 영지도 규모가 작은 편이라서 어디 성에 차야지.
그 이상으로 문제인 건 암흑제국에서는 지위고 재산이고 모두가 불안정하다는 거지.
너무 조직스러운 곳이라서 말야. 언제 칼침 맞고 귀족 자리를 빼앗기거나 가진 거 다 털릴지도 모르니까.
딴 놈들도 그렇지만 황제부터가 그러니…….
엉?
근데 재경인 언제 찾을 거냐고? 갑자기 영지나 작위에 집착하는 거냐고?
그게 아니지.
재경이 이놈의 자식이 자꾸 크게 일을 벌이고 거물이 된 느낌이라, 나도 지위와 권력을 크게 하지 않으면 재경이를 찾는 게 어려울 것 같아서 그러는 거라고.
이건 절대로 내가 지위와 권력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누리게 되는 단맛에 슬슬 빠져들어서 이러는 건 아니다……라고 강력히 주장하고 싶군.
솔직히 말해서 그런 면도 조금 작용하긴 한 것도 같다만.
그래도 아직 내가 재경이를 찾는 일이 최우선 과제라는 걸 망각하고 있는 건 절대 아니라고!
나는 국왕 투르펜에게 인사를 하고 텔레포트 스크롤을 써서 조핀과 함께 저택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