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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4권(97화)
Part 10.마토스의 국왕을 다시 만나다(3)


“이거 피곤하군…….”
저택에 돌아온 나는 내 방으로 향했다.
미녀 메이드 군단들의 극진한 서비스를 받으며 오늘 쌓인 피로를 풀 생각이었다.
“어머! 우영 님 돌아오셨어요!”
근데 난데없이 나타나서 날 가로막는 존재가 있었으니, 엘프 소녀……는 아니고 엘프 할망구 에이프릴이로군.
“…….”
이 할망구가 아침에 이상한 약을 만들고 있다는 말을 들은 터라 난 꺼림칙한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한 발 뒤로 물러났는데, 에이프릴은 손에 들고 있던 접시를 나한테 들이밀었다.
“아니, 이게 뭐야?”
“제가 오늘 온종일 정성껏 구운 커틀릿이랍니다. 우영 님께 드리려고 아직 아무한테도 안 줬거든요. 어서 한 입 드셔 보세요. 네?”
“…….”
젠장!
아침에 니가 뭔 소리하면서 주방에서 죽치고 있었는지를 들었는데, 니가 나라면 그걸 먹겠냐?
“저……. 사실 저녁 먹은 지가 얼마 안 되어서 그런지 별로 생각이 없는데…….”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거절하자 에이프릴의 눈이 흉험하게 빛났다.
헉! 제법 무섭다.
“뭐라고요! 그러니까 지금, 제가 오늘 하루를 투자해서 정성껏 만든 요리를 거절하시겠다, 그런 말씀인가요! 지금 저를 모욕하시겠다 이거죠!”
끙……. 이거 끝끝내 거절했다가는 부엌칼로 날 절단 낼 거 같은 얼굴이군.
어쩔 수 없지. 뒷일은 어찌 되더라도 지금 당장은 거절해선 안 된다.
“알았어. 그럼 내가 먹도록 할게. 고마워, 에이프릴…….”
“호호호호! 진작에 그러시지 않고. 그럼 맛있게 드세요. 가급적 맛을 음미하면서 꼭꼭 씹어 드세요. 아셨죠?”
“알았어. 근데 자리 좀 피해 줄래? 난 누가 날 보고 있으면 먹는 게 제대로 목구멍으로 안 넘어가는 습관이 있거든?”
“어머! 세상에. 별 걸 다 부끄러워하시네요. 우리 우영 님은 참 귀엽기도 하시지. 알았어요. 그럼 난 방에 들어가 있을 테니 맛있게 드세요?”
에이프릴이 룰루랄라거리며 자기 방으로 사라졌다.
나는 한숨을 쉬며 접시에 가득 들어 있는 커틀릿을 내려다보았다.
젠장! 얼핏 봐도 정성껏 요리한 것 같긴 하다. 도대체 속에 뭐가 들었는지가 영 꺼림칙한 게 문제지만.
어쨌거나 이거 후딱 버려야겠다. 가만있어라 쓰레기통이 어디 있었더라…….
옳거니, 바로 저 정원수 뒤로군. 그럼 후딱 저쪽으로 가서 버려야지.

스스스슥!
허걱!
아니, 이게 뭐야? 뭐가 갑자기 쓰레기통 뒤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거냐?
꼭 바퀴벌레처럼……이 아니고 진짜 바퀴벌레잖아!
“우영 님 돌아오셨습니까?”
“아니, 너 케브라 아니냐? 쓰레기통 근처에서 도대체 뭐하고 있었던 거냐?”
내가 어리둥절해하자 이 녀석은 손―인지 발인지―으로 지 뒤통수를 긁으며 어색해했다.
“네……. 왠지 전 쓰레기통 뒤라든가 방구석의 장롱 밑이라든가 하는 곳이 친숙해서 무의식중에 자꾸 파고드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런 곳에 틀어박혀 죽치고 있으면 엄청 아늑하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사실 남들이 보면 이상한 버릇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서 저도 고치려고 하는데, 잘 안 되는군요.”
쩝……. 이해된다.
니가 뭐 달리 바퀴벌레겠니? 장롱 밑 구석이나 쓰레기통이 전혀 정겹지 않다면 그건 바퀴벌레라고 할 수가 없지.
그나저나 내가 지금 이 자식하고 노닥거릴 때가 아니지. 어서 저 쓰레기통 속에 후딱 이 커틀릿들을 집어던져야…….
“…….”
난 동작을 취하려다가 멈칫했다.
그리고 케브라를 바라보았다.
내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던 거다.
에이프릴이 내일 아침 이 쓰레기통 속에 커틀릿이 버려진 걸 발견하기라도 하면 또 난리 날 거다.
그러니 다르게 처리해 버려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던 거지.
커틀릿도 처분하고, 나의 목숨이 위협당할지 모르는 위험 요소도 제거하는 아이디어가.
난 케브라한테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등판을 툭툭 두들겼다.
“훗! 케브라. 그동안 나한테 충성하느라고 고생이 많았지?”
“네? 아니, 우영 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갑자기 왜 그런 말씀을…….”
“아니, 사실은 말이지. 그동안 내가 너의 노고를 너무 모르고 있었던 게 아닌가……. 너한테 너무 신경을 안 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야.”
“크흑……. 우영 님께서 저를 그렇게까지 생각해 주시다니…….”
이런 단순한 녀석이 있나.
내 칭찬 몇 마디에 눈물을 흘리려고 하다니.
이런 녀석한테 못할 짓 하는 거 같아서 난 잠시 속으로 망설였다.
그러나 지금 이러지 않으면 내가 무사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독한 마음을 먹기로 했다.
나는 슬그머니 커틀릿 접시를 케브라에게 내밀었다.
녀석은 어리둥절했다.
“이게 뭡니까?”
“응, 방금 에이프릴한테 선물받은 커틀릿인데. 굉장히 정성 들여서 만들었다고 하더라고. 나 혼자 먹기에는 너무 과분한 음식 같아서 말이지. 내가 가장 아끼고 신뢰하는 사람과 나눠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러니 어서 사양하지 말고 먹어라. 내가 먹을 건 내 방에 따로 떼 놨으니까 이건 니가 전부 다 먹어라.”
“크흑……. 우영니이이이임!”
케브라는 커틀릿 접시를 받아 든 채 나를 껴안으려고 했다.
“허억!”
나는 녀석의 과감한 프리허그 시도를 황급히 피하며 그 자리를 떴다.
한마디를 케브라한테 남기면서 말이지.
“그 커틀릿 한 개도 남기면 안 된다? 모조리 다 먹고 내일 보자!”
“네에! 우영 님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그럼 내일 뵈어요!”
내일 보자고?
후후후훗! 아마 너한테 내일은 찾아오지 않을 거다. 영원히 말이지! 잘 가렴 케브라.
좀 미안하긴 하다만 맛있는 거 먹고 죽는 게, 죽는 것 중에선 꽤 행복한 방법일 거다.
오늘 밤은 유난히 잠이 잘 올 것 같다.

“아함, 잘 잤다!”
상쾌한 아침을 맞은 나는 미녀 메이드들의 시중을 받으며 식당으로 내려갔다.
어디 보자.
세영이, 조핀, 다쓰가 있군.
그럼 케브라는……. 역시 없군. 그럼 역시…….
그때 다급하게 란슬링이 뛰어들며 소리쳤다.
“쉬익, 쉭, 쉬익! 큰일 났다, 쉬익!”
“뭐냐? 무슨 일인데 아침 식사도 못하게 지랄인 거냐!”
다쓰가 짜증이 나서 소리쳤으나 란슬링은 아랑곳하지 않고 호들갑을 떨었다.
“큰일 났다. 저기 정원 쓰레기통 옆에 바퀴벌레가, 바퀴벌레가 쓰러져 있다, 쉬익!”
그 말에 세영이와 다쓰가 눈살을 찌푸렸다.
“어머! 뭐 그런 거 가지고 이렇게 시끄럽게 하고 그러죠? 쓰레기통 있는 곳에 바퀴벌레 꼬이는 건 당연하고, 한 마리쯤 죽어 있을 수도 있지. 그게 호들갑 떨 일이나 되요?”
“그러게 말입니다. 나도 무슨 큰일이라도 일어난 줄 알았네. 아무리 평소에 아무 생각 안 하고 지내는 도마뱀 대가리라고 해도 그렇지. 참 한심하군.”
둘이 빈정거리자 란슬링은 소리를 꽥 질렀다.
“누가 그걸 모르냐, 쉬익! 그 바퀴벌레가 케브라니까 그렇지, 쉬익!”
“뭐라고요! 아니, 그러면 진작에 케브라라고 해야 할 거 아녜욧!”
“어서 빨리 가 봅시다. 어쩌면 누군가 이 저택에 자객을 침투시킨 건지도 모릅니다.”
어쩌구 하면서 우리는 황급히 뛰어나갔다.

“어머! 이럴 수가!”
“세상에……. 이게 누구의 소행이란 말인가!”
“…….”
음……. 좀 충격적이긴 하군.
쓰레기통 바로 옆에는 케브라가 마치 살충제에 직격당한 바퀴벌레처럼 발랑 누워서 뻣뻣하게 굳어 있다.
발―인지 손인지―들을 모조리 앞으로 접은 채 뻣뻣하게 누운 저 꼴을 보니 새삼 저 녀석이 바퀴벌레라는 사실이 뼈저리게 느껴지는군.
근데 주위에 커틀릿이 단 한 개도 없는 거 보니 모조리 다 처먹은 모양이다.
만약 내가 그 커틀릿을 먹었으면 저리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친다.
근데 케브라의 몸통을 만져 보고 귀를 갖다 대고 하던 다쓰가 소리쳤다.
“아직 살아 있습니다! 가늘지만 숨은 붙어 있어요. 지금이라도 손쓰면 살릴 수 있을지 모릅니다.”
젠장!
좋다 말았네.
저 바퀴벌레 자식은 왜 저리도 명이 질긴 거지?
정말로 바퀴벌레 같은 생명력이다.
쩝……. 생각 같아선 치료고 뭐고 그냥 장례 치르고 후딱 파묻어 버리자고 하고 싶다만…….
“알겠다, 쉬익! 내가 치료하겠다, 쉬익!”
란슬링이 달라붙어서 혀를 날름거리며 정성스레 케브라를 치료했다.
그러자 서서히 케브라의 뻣뻣한 몸이 풀리는 것으로 보였고 서서히 더듬이와 다리가 꿈틀꿈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머! 살았어요! 케브라 님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다행이군.”
“그러게 말입니다. 근데 도대체 누가 케브라를 이렇게 했지?”
“암살자가 침입한 겁니다. 그 암살자를 색출해서 처단해야 합니다!”
“…….”
다쓰가 단호히 하는 말에 찔리는 게 있는지라 나는 꿀꺽 침을 삼켰다.
그때 케브라가 눈을 떴다.
“으……. 여기가……. 어딥니까?”
“어머! 이제 정신이 돌아왔나요?”
“으으……. 이게 어찌 된 거지……. 어저께 여기서 우영 님이 주신 음식을 받아먹은 거 외에는 기억나는 게 없는데?”
“우영 오빠가 음식을 줬어요?”
“그거 먹고 이리 되었다는 거냐, 쉬익!”
“으음……. 이럴 수가…….”
“그것참…….”
허억!
갑자기 분위기가 왜 이리 되는 거냐.
누워 있는 케브라를 제외한 모든 파티원들이 나를 째려보며 인상을 썼다.
아니, 이거 이 인간들이 대뜸 나를 케브라를 죽이려고 한 인물로 간주하고 있잖아?
어디서 그런 천부당만부당 말도 안 되는 억울하고 전혀 사실과 다른 누명을……이라고는 못하겠다만
그런 마음먹고 커틀릿 준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그 사실을 순순히 시인할 순 없지.
그래서 난 애써 태연을 가장하며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그것참……. 난 그저 어저께 에이프릴이 먹으라며 준 커틀릿을 케브라한테 준 일밖에는 없는데……. 그런데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긴 건지, 그것참…….”
“무엇! 에이프릴이……. 쉬익!”
“어머! 세상에! 그럼 에이프릴이 오빠를 독살하려고 했단 건가요?”
“으음……. 그렇다면 우영 형님이 당해야 될 일을 엉뚱하게 케브라가 벼락을 맞은 셈이군요. 이런 애석한 일이…….”
아니, 근데 다쓰 이 자식이 지금 뭐라는 거야!
어쨌건 모두가 놀라서 떠들어 대는데 갑자기 에이프릴이 나타났다.
“무슨 일이 있나요. 왜 이렇게 시끄럽죠? 어머, 우영 님……. 밤새 아무 일 없으셨나요?”
“…….”
꽤 의외라는 듯 나를 바라보는 저 눈길.
내가 살아 있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군.
말하는 꼬라지를 보니 내가 밤새 무슨 큰일을 당했기를 간절히 바랐다는 거로군.
근데 에이프릴이 나타나기만 하면 극악한 독살범이라며 주리라도 틀 것처럼 굴던 파티원들이 뜻밖의 태도를 보였다.
“아니, 근데 왜 갑자기 오줌이 마렵지? 잠깐 볼일 좀 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빨래하다 말고 왔네요!”
“전 가서 이르하임 신께 아침 예배를 좀 드려야겠군요.”
“내가 할 힐링 다한 거 같으니 난 들어가서 밥이나 먹어야겠다, 쉬익!”
파티원들이 에이프릴을 힐끔거리며 보면서 모두 사라졌다.
가만 보니 에이프릴한테 뭐라고 했다가 자기도 독살당하지 않을까 겁내는 것 같군.
나보다 에이프릴이 더 무섭다 이거냐? 내가 죽을 뻔한 건 아무 문제도 아니라 이거지?
젠장!
에이프릴은 나한테 질문을 던지는데 두 눈이 희번덕거리고 있다.
확실히 무섭기는 무서운 엘프 아가씨……가 아니고 엘프 할망구다.
“그런데 우영 님, 어저께 제 커틀릿 맛이 어떻든가요?”
“그게 케브라가 맛있다고 다 먹어 버려서 난 맛을 못 봤거든?”
내가 아직도 발라당 자빠져 있는 케브라를 가리키며 말하자 에이프릴은 아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랬나요? 그럼 오늘 또 만들어 드릴게요. 오늘은 커틀릿 말고 사과 파이를 구워 드릴 테니 기대하세요. 그리고 이번엔 아무하고도 나눠 드시지 말고 꼬옥 혼자만 드세요. 아셨죠? 호호호호.”
“근데 이제부터 에이프릴이 만드는 음식은 에이프릴이 시식한 다음에 우리가 먹을 테니 그렇게 알아 둬. 오늘 케브라를 보니 꼭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말이지.”
내가 용기를 내서 말하자 에이프릴은 날 노려보더니 팩 토라져서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