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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4권(98화)
Part 11.무기를 갖추다(1)
“란슬링, 이거 엄청 맛있어 보이는 사과 파이인데 너 좀 먹어 볼래?”
“쉬익! 그거 혹시 에이프릴이 만든 거 아니냐, 쉬익!”
“아닌 것 같은데…….”
“아니긴 뭐가 아니냐, 쉬익! 어저께 에이프릴이 사과 파이 만들 거라고 하지 않았냐, 쉬익! 너나 실컷 처먹어라, 쉬익!”
“뭐가 어째? 이 도마뱀 대가리야! 날 그렇게도 죽이고 싶으냐!”
“누가 할 소리냐, 쉬익! 니가 먼저 날 보낼려고 했잖냐, 쉬익!”
젠장!
케브라가 독살당할 뻔한 사건 이후로 식사 때마다 계속 이런 꼬라지가 연출되고 있다.
이거, 무슨 수를 쓰든가 해야지 안 되겠군. 아니, 무슨 수를 쓸 것도 없다.
내가 이 저택에 처박혀서 귀족 생활을 즐기지 않으면 되는 거다.
이 큰 저택에서 노닥거리고 있지 않으면 에이프릴인들 유유자적하는 날 저세상으로 보낼 독 넣은 음식을 만들 여유도 없을 테니까.
맞았어. 이제부턴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당장 실천에 옮겨야겠다.
“조핀 님?”
“네?”
“일전에 제가 랑케 경의 블루 울프 기사단에 맡긴 소년들은 어느 정도까지 훈련되었습니까? 실전 경험도 제법 쌓였겠죠?”
“제가 확인하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만 그럴 겁니다. 랑케 경에게 한번 물어볼까요?”
“아니, 그럴 거 없습니다. 훈련을 중지하고 저에게로 다 보내 달라고 랑케 경께 전해 주십시오.”
내 말에 조핀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훈련을 중지한다는 말씀입니까?”
“네, 이제부터는 제가 직접 그들을 이끌 생각입니다.”
“우영 님께서 직접 우리 마토스 국을 도와주실 생각이시군요!”
“아니, 뭐 꼭 그렇다기 보다도……. 제 목적이 있어서 훈련을 시켰으니까요. 아시는 대로 전 조카를 빨랑 찾아야 되거든요. 아, 물론 그렇다고 마토스 왕국을 안 도와 드릴 건 아닙니다만.”
내 말에 조핀은 쬐끔 실망한 표정이 되더니 랑케에게 연락하겠다며 방을 나갔다.
그 아저씨 참, 내가 안 돕겠다는 게 아니라고 말했구만서두.
그렇잖아도 지금 황궁으로 갈 작정이라, 그 말씀이라고.
“잘 지내셨습니까?”
“앗! 우영 자작님 아니십니까?”
나를 본 비서실장은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근데 저 낯짝에 쓰인 표정은 뭔가 나한테 주는 거 없나 하는 얼굴이다.
젠장! 바라도 좀 가끔가다가 바라야 할 거 아냐. 올 때마다 이러는 건 좀 그렇잖냐고……라고 생각을 하면서 나는 주머니에서 보석을 꺼내서 건넸다.
“제 약소한 성의입니다.”
“앗! 이건 블루 사파이어로군요. 뭘 이런 걸 다. 자꾸 이러심 제 입장이 곤란해지는데요.”
“…….”
젠장!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입으론 곤란하다면서 손으로는 번개같이 보석을 받아서 제 주머니에 처넣는구먼.
“근데 황제 폐하는 지금 계시죠?”
“그럼요. 다른 분들한테는 지금 낮잠 주무시니까 다른 날 오시라고 해서 모조리 다 돌렸보냈습니다만 우영 님께선 당장에 들어가서 만나 보시죠.”
“…….”
쯧, 그럼 보석 안 줬으면 나도 오늘 그냥 돌아가야 했던 거군. 뭐 같은 인간 같으니…….
나는 속으로 들입다 욕을 퍼부어 주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휘유웅!
철썩!
역시 오늘도 우리 황제 폐하께서는 그놈의 코딱지 파서 쟁반에 원 샷하기 놀이에 여념이 없군그래.
들어가자마자 그놈의 코딱지가 쟁반에 보기 좋게 처박히고 있으니.
“폐하, 우영 자작이 왔사옵니다.”
“자네 왔나? 그래 오늘은 나한테 뭘 줄 게 있어서 온 건가?”
“…….”
“농담이었네. 자넨 말야, 딴 건 다 좋은데 내가 농담만 하면 굳은 표정이 되는군. 그러면 농담하는 사람이 얼마나 무안하겠나 생각을 좀 해 보라고. 농담도 장단을 맞춰 줘야 하는 재미가 있는 법이거든?”
말은 잘한다.
그게 농담이냐?
당신도 한 번 내 입장이 돼 보라고.
당신 만나러 한 번 올 때마다 주머니를 탈털 털려야 하는 내 심정이 되면 그딴 헛소린 못할 거다.
내가 아무 말없이 속으로 불평불만을 퍼붓자 황제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자네 혹시 나한테 무슨 불만 가지고 있는 거 아닌가? 표정이 심상찮은데?”
“천만에요. 감히 제가 어떻게 폐하께 불경한 마음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흠……. 그래? 근데 불경한 마음먹어도 상관없네. 바칠 것만 제대로 바치면 난 전혀 개의치 않거든? 전혀 안 건드린다 그 말이지. 다른 나라의 황제나 왕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게 바로 그거지. 모르고 있었다면 알아 두면 좋을 걸세.”
“…….”
이 정도면 정말 심하다. 아무리 조직스러운 나라라고 해도 그렇지.
내가 정말 질렸다는 표정을 짓자 황제는 또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 사람 참. 농담에는 좀 웃으면서 장단 좀 맞추래도. 내가 무안해지지 않냐고 이미 말했잖나.”
“네, 그렇군요. 후후……. 후후후후후후!”
“허허. 자네는 뭔 놈의 웃음을 고따위로 가식적으로 웃나. 웃는 게 아주 꼴같잖구먼. 허허……. 허허허허허허허.”
“후후……후후후후후후!”
“허허……허허허허허허!”
황제와 나의 이상야릇한 웃음이 10분 정도 계속되었다.
근데 웃으면서 보자니 웃고 있는 황제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전혀 웃음을 그칠 기색이 아니니까 말이지.
이거 불안한데…….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니가 내 뜻을 모르고 아직도 알아서 안 바치고 개기고 처자빠졌냐……라는 표정 같은데…….
빌어먹을……. 어쩔 수 없군.
오늘만은 돈 굳힐려고 했는데 안되겠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 어쩔 수 없지.
나는 눈물을 머금고 주머니에 들어 있던 걸 꺼내서 황제에게 두 손으로 바쳤다.
“폐하께 드리려고 가져온 겁니다. 뭐 약소합니다만…….”
“아이구, 뭐 이런 걸 다……. 그 비싼 이실리움을 또 가져오면 어쩌나? 이러면 내가 너무 미안하지 않나 그 말일세. 자네, 내가 자네한테 미안해하는 거 볼려고 이러는 거지? 참 몹쓸 사람이군. 오늘은 뭐라고 하지 않겠네만 다음부턴 이러지 말게. 그러면 내가 화를 낼 테니까 말이지. 허허허허허허…….”
“네, 명심하겠습니다. 다음부턴 조심하겠습니다. 후후후후.”
“알아들었으면 됐네. 허허허허허.”
“후후후후후후.”
“허허허허허허.”
내가 이실리움이 아까워서 눈물을 찔끔 흘리며 웃자 황제는 ‘그러면 그렇지. 니가 나한테 상납을 안 하고 버틸 거 같냐?’라고 비웃는 표정으로 웃어 댔다.
젠장!
그렇게 한참을 더 웃은 다음에 황제가 나한테 물었다.
“그래, 오늘은 나한테 이실리움 바치러 온 거 말고 또 어떤 용건이 있어서 온 건가?”
“네, 저 다른 게 아니고요…….”
“뭐라! 마토스 왕국에 원군을 보내 주는 대신 받아야 하는 조세의 절반을 좀 깎아 주면 안 되겠냐고?”
“네……. 그게 그 나라가 몹시 어려워서 말이죠. 제가 그 나라 왕하곤 좀 친분이 있어서 잘 압니다만…….”
나는 말을 하다가 말고 침을 꿀꺽 삼켰다.
황제가 날 잡아먹을 듯 노려본 때문이다.
젠장! 자이언트가 날 노려보니 이건 어디 산에 새겨진 큰 바위 얼굴이 나한테 당장 굴러떨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자넨 도대체 어느 나라 귀족인가?”
“물론 암흑제국이죠.”
“아는군. 근데 그딴 소리하고 처자빠졌냐?”
“네?”
“네는 무슨 얼어 죽을 넨가? 이곳 귀족이면 황제인 나의 이익을 늘리는데 신경 써야지. 엉뚱한 나라의 돈 나가는 걸 막을 생각을 하고 있나? 제정신인가 그 말이네!”
음…….
왜 저러는지 알겠다.
문제는 역시 돈이군.
자기 주머니에 들어 올 돈이 조금이라도 줄어드는 걸 절대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거다.
국익을 위해서라든가 뭐 그런 거면 이해를 하겠는데, 이건 오로지 자기 주머니에 들어오는 돈의 차원이니까 전혀 존경스럽지가 않군.
“네……. 잘 알겠습니다, 폐하. 신의 생각이 짧았던 거 같습니다.”
“흥, 알아들었다니 다행이군. 앞으론 조심하게. 방금 한 발언은 내 코딱지 다섯 개 정돈 먹어야 할 일이었지만 오늘 이실리움을 바쳤으니 봐주겠네.”
“…….”
황제는 말과 함께 다시 코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후벼 파서 손가락을 튀겼다.
철퍼덕!
젠장! 내가 저걸 먹을 뻔했다니.
생각만 해도 속이 울렁거린다.
어쨌거나 이 얘긴 하는 게 아니었다. 최소한 돈 문제는 절대로 이놈의 황제 앞에서 해선 안 된다.
갖다 바치는 건 엄청 좋아하지만, 돈 축나는 건 제 살 베어 가는 것과 동급으로 생각하니까 말이지.
해서 나는 화제를 돌렸다.
“폐하……. 근데 제가 또 부탁드릴 게 하나 있는데, 이건 좀 들어주심 안 될까요?”
“또 돈 이야긴가!”
헉! 놀래라.
황제가 하수구 맨홀만 한 눈을 부릅뜨고 째려보는 바람에 심장이 멎을 뻔했다.
“돈하고는 전혀 무관한 이야깁니다만……. 알겠습니다. 싫으시면 관두구요. 제 부탁을 들어주시기 싫으신 거 같은데, 앞으로는 폐하를 찾는 일을 대폭 줄이고 저택에서 자중하며 칩거하고 있겠습니다. 아무렴요. 집에서 근신하고 있죠, 뭐.”
내가 엄청나게 섭섭하다는 투로, 한껏 삐친 척을 하자 황제는 당황한 기색이 되었다.
당연하지. 이실리움 같은 비싼 걸 바치는 신하가 집구석에 처박혀서 자기한테 안 찾아온다고 생각해 보라고. 얼마나 금전적으로 큰 손해냔 거다.
“아, 그 사람 참! 내가 화가 나서 조금 나무랐다고 그렇게 쪼잔하게 삐치고 그러면 쓰나! 아직 어린 사람이 그러면 곤란하지. 아, 칩거 같은 걸 도대체 뭐하러 하나? 속 좁게 굴지 말고 가급적 자주 와서 나와 농담도 하고 재밌는 이야기도 들려주고 그러라고. 돈 들 일도 없고, 내가 뭘 바라는 것도 아닌데 나한테 자주 못 올 이유가 어디 있나, 안 그래?”
“…….”
이런 빌어먹을……. 뭐가 어쩌고 어째?
돈 들 일도 없고, 뭘 바라는 것도 아니니까 자주 오라고?
젠장! 아무리 황제지만 뭐 이따위 황당한 인간이 다 있는지 모르겠네.
또 마음속으로 욕 나오려는 걸 꾹 참고 난 입을 열었다.
“사실은 제가 찾고 있는 인물이 있는데 행적을 쫓다 보니 이 암흑제국에 들어왔다는 정황이 포착되어서요. 그자가 이 암흑제국 어디에 있는지를 좀 알아봐 주셨으면 합니다만.”
“이름이 뭔데?”
“네……. 그게 저……. 전나세라고…….”
순간 황제의 두 눈이 번쩍 빛났다.
황제는 비스듬히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켰다.
“자네 지금 뭐라고 했나? 누구라고?”
“네, 전나세라고……. 근데 폐하도 전나세를 잘 아시는가 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