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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4권(99화)
Part 11.무기를 갖추다(2)
“이것 참, 황당하군. 설마 그렇게 되었을 줄이야…….”
황제한테 인사를 하고 나온 내가 저택으로 돌아오자 세영이가 어리둥절해했다.
“뭐가 황당해요?”
“응? 세영이 넌 몰라도 된다.”
“오빠, 지금 뭐라고 했어요? 난 몰라도 된다고요? 오빠 눈에 내가 그렇게 하찮게 보인다 이거죠? 지금 말 다했어요?”
“…….”
무심결에 말했다가 세영이가 살기 띤 눈으로 바라보는 바람에 난 움찔했다.
“아니, 저 그게……. 황제가 전나세를 알고 있더라, 뭐 그런 이야기지.”
“정말요? 어떻게?”
“전나세가……. 여기 와서까지도 꽤 일을 벌인 모양이더라. 그래서 좀 복잡한 상황이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다. 근데 더 자세한 건 알려고 하지 마라. 지금 내가 머리가 꽤 복잡하거든.”
내가 애원조로 말하자 세영이는 곱게 흘겨보았다.
“흥, 그렇게 머리 복잡해서 죽겠다는 사람이 맨날 메이드들한테 둘러싸여서 즐기고 있어요?”
“그게 무슨 소리냐. 난 그저 피곤에 찌들고 지친 심신을 메이드들한테 다소 위로받고 있을 뿐이란다.”
“아, 그래요? 근데 왜 나한테는 위로받을 생각을 전혀 안 하죠? 내가 절벽 가슴이라서?”
“그렇지. 아무래도 절벽 가슴 소녀보다는 쭉쭉 빵빵 메이드들한테 위로받는 게 훨씬 더 낫…….”
“…….”
말을 하다 말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말의 의미를 파악한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이후 나한테 실컷 퍼부어 댄 세영이 녀석은 삐질 대로 삐져서 지 방으로 사라져 버렸다.
젠장할.
얼굴에 세영이가 손톱으로 그려 준 오선지에 약을 바르고 있는데 조핀이 들어왔다.
“우영 님!”
“왜요?”
“말씀하신 대로 블루 울프 기사단에 훈련을 위탁시켰던 훈련생들을 모두 불러서 정원에 대기시켜 놓았습니다.”
“그렇군요. 수고하셨네요.”
“저……, 그런데 암흑제국의 황제를 만나신 일은…….”
조핀은 기대에 찬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조세의 절반을 바치기로 한 거 좀 깎아 주면 안 되냐고 얘기 꺼냈다가 저 귀족 잘릴 뻔했습니다. 어쩌면 목까지 잘렸을지도 모릅니다. 황제한테 조금 더 강력하게 이야기했더라면 말이죠.”
“그럴 수가…….”
“다행히 이실리움을 미리 바쳤던지라 무사하긴 했습니다만.”
“그렇군요. 우리 마토스 국을 위해서 애써 주신 건 감사합니다.”
“뭘요. 근데 돈과 관련된 이야기는 앞으로 황제한테 꺼내지 않는 게 나을 겁니다.”
“네, 우리 국왕 전하께도 그렇게 말씀드려 두죠. 그건 그렇고, 어서 정원에 나가서 훈련생들을 만나 보시죠.”
“네…….”
정원에 나가니 햇볕에 얼굴이 검게 타고 한껏 단련된 전사의 티가 나는 아이들이 의젓한 자세로 정렬해 있었다.
내가 등장하자 녀석들 중 맨앞에 서 있던 세일이 힘차게 외쳤다.
“차렷! 선생님께 경례!”
“아아……. 관둬라. 경례는 무슨. 그래, 그동안 재미있게 지냈냐?”
내 말에 아이들은 왁자하니 내 곁으로 몰려와서 신나게 떠들어 댔다.
“네, 얼마나 재미있었다구요.”
“블루 울프 기사들이 얼마나 심하게 훈련시키는지 게임 접을까 생각도 했어요.”
“근데 검술을 배우고 창술을 배워서 적들을 죽이고 불 지르고 하니까 얼마나 재밌는지 훈련이 고달팠던 건 싹 다 잊어졌어요.”
후후후훗! 녀석들 이 이케루스의 재미에 흠뻑 빠진 게로군. 어쨌든 첫 단계는 성공이다.
우선은 아이들에게 이 가상현실 게임의 재미를 느끼게 해 주는 게 내 목적이었으니까.
재미를 느껴야 게임에 몰입해서 진지하게 여러 모험들을 해 나가게 되고 그 다음 단계를 밟을 수가 있는 거니까.
그리고 블루 울프 기사들이 아이들을 제법 공들여 훈련시킨 탓인지 꽤 쓸 만한 전투력들을 지니게 된 거 같다.
한눈에 봐도 무시 못할 전투원들의 인상이 풍기니까 말이지.
나는 조핀 곁에 서 있는 랑케에게 가서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랑케 님. 이 녀석들을 잘 훈련시켜 주셔서.”
“천만에요. 의외로 보기보다 재능들도 있고 의욕이 넘치는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기사들도 가르치기가 쉬웠던 거죠. 그리고 실전에도 투입시키니 제법 공도 세워서 우리 블루 울프 기사들이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허허허허.”
“그렇군요, 우리 애들이 폐를 안 끼치나 걱정했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니 기쁩니다.”
내 말에 랑케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질문을 던졌다.
“근데 소년들을 모두 불러들이신 이유가 궁금한데……. 어떤 일에 쓰실 생각이신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제가 움직일 병력이 사실상 전무해서 그렇습니다. 제 뜻대로 움직여 줄 유능한 전투원들이 있으면 제 목적을 이루는 시간이 더 단축될 테니까요. 물론 마토스의 국토 회복도 도와 드리고 말이죠.”
“아, 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우영 자작님.”
“그런데……. 이 아이들의 갑옷과 무기는 다 반납받으셨나 보죠?”
“네, 그렇습니다. 우리 블루 울프 기사단이 책임지고 훈련시킬 때는 갑옷과 무기를 모두 갖춰 주었습니다만 이제 우리 손을 떠났으니까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이제 우영 자작님께서 맡으셨으니 더 좋은 성과가 있을 겁니다.”
랑케는 한참을 덕담을 한 다음에 돌아갔다.
난 다시 대견한 미소를 지으며 소년들, 특히 소년들 중에서도 반장이자 네 명의 형제인 세일, 세이, 세삼, 세사와 이야기를 열심히 주고받았다.
근데 갑자기 뒤통수가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랍쇼? 근데 이 녀석들도 아주 난감한 얼굴이 되네?
“세영이 누나…….”
허걱!
이 녀석이 지 방에 올라간 줄 알았는데 정원엔 뭐하러 또 나온 거냐?
“흥! 세일, 세이, 세삼, 세사 너희들. 누나가 그렇게 하란 공부는 안 하고 이딴 게임이나 하고 있어? 누나 말이 그렇게 우습게 들리던?”
“그, 그게 아니고…….”
“우리가 누나 말을 우습게 들은 게 아닌데…….”
세영이가 팔짱을 끼고 독기 서린 눈으로 을러대자 사 형제는 난처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훗!
이럴 때 내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되겠지. 제자의 위난은 곧 스승의 문제라서 말이지.
“세영이, 지금 너 애들한테 뭐라고 하고 있는 거냐?”
“흥, 왜요? 참견하시게요? 지금 우리 집안 문제니까 오빠는 끼어들 자격 없거든요?”
웃! 이 자식 좀 보게.
지 동생들 나무라는데 니가 뭐냐는 식으로 비웃고 자빠졌잖아?
열이 치솟아서 나도 썩소를 날려 주며 비아냥거렸다.
“훗! 그래? 내가 자격이 없다고? 너야말로 말 다했냐! 세영이 니가 얘들 누나면 다냐? 난 얘들 선생이거든? 가상현실 게임 생활을 지도하는 선생이라 그 말이다. 이 세상에 어떤 경우 없고 성격 나쁜 누나가 자기 동생들 가르치는 선생한테 두 눈 치켜뜨고 딱딱거린다고 하더냐? 난 살다 살다 그런 이야긴 못 들어 봤다. 그리고 너도 이 게임하는 주제에 얘들한테 이딴 게임이나 하고 자빠졌냐고 나무라면 어쩌냐? 넌 무슨 애가 그리 황당하냐? 동생들 보기 창피하지 않냐?”
“…….”
내 말에 세영이는 할 말이 없는 듯 당혹스러워했다.
그러자 사 형제도 슬며시 가세했다.
“그건 선생님 말씀이 맞는 것 같아, 누나.”
“아무리 누나라고 해도 선생님한테 그러면 안 되지.”
“누나가 사과드려야 하지 않을까?”
그쯤 되자 얼굴이 시뻘게진 세영이는 소리를 빽 지르고는 자기 방으로 사라져 버렸다.
사 형제를 아드득 째려보면서 한마디를 남기고 말이지.
“이것들아, 어디 집에 가서 보자!”
흥, 집에 가서 보자는 놈치고 겁나는 녀석 없……지 않고 많이 있군.
사 형제도 좀 걱정되는 눈치로군.
“너무 걱정하지 마라. 내가 누구냐? 모두 선생님이 시켜서 한 거라고 하면 된다. 니들 누나 겁낼 거 전혀 없다, 알겠냐?”
“네, 선생님. 그런데요?”
“뭐냐? 뭐 질문 있냐?”
뭐든 물어볼 거 있으면 물어보라는 내 제스처에도 이 녀석들은 쭈빗거리더니 맏이인 세일이가 입을 열었다.
“근데 우리 누나하고 선생님은 어떤 사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