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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5 -
이제경



스토킹 마스터 5권(101화)
Part 1. 굿바이 암흑제국(1)


뚜벅 뚜벅!
제자들에게 무기를 모두 갖춰 줘서 완전 무장을 시킨 다음, 암흑제국으로 돌아온 나는 황궁으로 들어왔다.
모든 준비는 끝났으니, 이제 암흑제국에 온 가장 중요한 목적을 이뤄야 하니까 말이지.
조핀을 황제와 만나게 하는 퀘스트는 성공했으니 사실 이곳에 용건은 없다.
여차하면 미련 없이 언제든 이곳을 떠날 수 있다는 그 말이지. 가장 중요한 목적만 이룬다면.
응?
그게 뭔 소리냐고?
만약 이곳을 미련 없이 떠나면 거대한 저택과 귀족 작위 받은 게 아까워서 어쩌냐고?
아깝긴 개뿔…….
조폭 보스 같은 황제한테 뜯어 먹히는 걸 계산해 보니 이대로 가다간 저택이고 나발이고 남아나는 게 없겠더라고.
1년도 가기 전에 쫄딱 거지꼴 되기 딱 좋겠더라 이거야. 그놈의 번쩍번쩍한 저택으로도 도무지 감당이 안 된다는 거지.
물론 황제는 나한테 ‘아, 너도 아랫것들한테 마구 뜯어서 먹고 살아! 많이 뜯어서 나한테 상납하고 남는 건 너도 가지면 손해 볼 거 없을 거 아냐!’라는 식으로 말을 하긴 했다.
하지만 내가 어찌 그런 조폭스런 짓을 할 수 있겠는가 말이지.
솔직히 말해서 전혀 못할 건 아닌데, 그것도 시간이 있어야 그런 짓하고 자빠졌지. 지금처럼 마토스 국토도 찾아 줘야 하고 다른 퀘스트 받은 것도 신경 써야 하는 등, 손이 여덟 개라도 모자랄 판에 삥 뜯는 일에 몰두할 수가 있겠는가 말이야.
그래서 내린 결론이 이거였어.
가급적이면 미련 없이 이곳을 떠나자는 거.
내가 돌았냐고. 저딴 조폭 대빵 같은 황제한테 피땀 흘려 상납이나 하고 처자빠졌게.

헉!
이거 벌써 황제 면전에까지 도착했군.
갑자기 바위 덩어리만 한 황제 얼굴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으니…….
쩝, 나를 내려다보는 저 눈만 봐도 속이 불편해지는 거 같다.
“황제 폐하…….”
“우영 자작, 자네 어디 편찮은가? 뭔가 상당히 불편하고 못마땅한 표정이군그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황제 폐하를 만나러 오는데 불편하긴 왜 불편하겠습니까.”
“그렇지? 나한테 뭐 바치려고 오는데 기분이 즐겁고 기분이 가뿐하지, 불쾌할 턱이 있을라고. 자네 같은 충신이 말이야. 하하하하하핫!”
“헤헤헤헤…….”
“하하하하하핫!”
“후후후후…….”
황제가 음흉하게 웃어 대자 나도 어쩔 수 없이 간신 웃음을 흘렸다.
젠장! 엄청나게 존심 상하네. 좋다, 이대로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근데 오늘은 폐하께 뭘 바치려고 온 거 아닌데요?”
“…….”
내 말에 황제가 솥뚜껑만 한 눈으로 나를 째려보았다.
음, 겁난다. 저 집채만 한 자이언트가 두 눈 부릅뜨고 나를 노려보니 말이야.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 그럼 빈손으로 왔다, 그 말인가?”
“그건 아닌데요. 사실은 폐하께 여쭙고 싶은 게 있어서요. 제가 원하는 대답을 주시면 갖고 온 거 드리고…… 아니면 그냥 가겠습니다!”
“뭐시라!!”
나의 당돌한 말에 황제는 마치 자기 코털을 뽑는 고블린에게 화를 내는 드래곤이라도 되는 듯, 살기를 피워 올렸다.
음, 이거 대단하다.
드래곤 피어 정도는 아닐지 몰라도 오금이 저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러다가 오줌이라도 싸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절대로 여기서 물러나며 자진 납세를 할 순 없다.
오늘은 반드시 황제한테서 알아내야만 하니까 말이지. 바로 재경이의 행방을!
난 후들거리는 다리를 애써 가누며 안간힘을 다해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 기분이 안 좋으신 듯하니 신은 그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오늘 가지고 온 이실리움하고 함께 말이죠. 그럼…….”
“잠깐!”
이실리움을 갖고 왔단 걸 강조한 다음 내가 등을 돌리는 순간, 황제가 다급히 불러 세웠다.
“허허허허, 사람 참. 내가 기분이 안 좋기는 왜 안 좋다는 건가? 나이도 별로 안 먹은 사람이 눈이 별로 안 좋은가보군. 그래 짐한테 물어볼 게 뭔가? 얼마든지 물어보게. 아낌없이 대답해 줄 수 있네.”
“정말이세요? 진짜 제 질문에 숨김없이 대답해 주실 겁니까?”
“아, 이 사람이! 자넨 속고만 살았나?”
황제는 버럭 짜증을 냈다.
젠장, 뭐 속고만 살았냐고?
다른 나라 같으면 말도 안 하겠다. 뒤통수 때리고 삥 뜯고 칼침 맞아서 언제 비명횡사할지 모르는 이 살벌한 암흑제국이라면 누구나 다 나처럼 행동한다고.
“폐하께서 그렇게 다짐하셨으니 그럼 여쭙겠습니다. 사실 한 사람의 행방이 궁금한데요. 그의 뒤를 쫓고 있는 중이었는데……. 이 암흑제국에 왔다는 건 알아냈는데……. 폐하께서도 혹시 아시는가 싶어서요. 아신다면 현재 있는 곳이 어딘지 좀 알려 주셨으면 합니다.”
“찾는 사람 이름이 뭔데?”
“전나세라고 하는데요.”
“…….”
웃!
이거 왜 저러지?
황제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하고 두 눈은 노랗게 타오르는 횃불처럼 분노의 빛이 번득였다.
쾅!
우웃, 놀래라.
아니 웬만한 책상보다 더 큰 손으로 바닥을 내리치면 어쩌냐고. 애 떨어지는 줄 알았네.
“내 물어보겠네. 그대와 전나세는 어떤 관계인가?”
음, 이거 숙질 관계라고 사실대로 말했다가는 상당히 재미없을 것 같군.
“네, 사실은 전나세한테 모욕당한 사람이나 단체에서 저더러 꼭 좀 찾아 달라고 부탁을 해서…….”
“음, 그런가?”
“네.”
“좋아, 그렇다면 못 알려 줄 것도 없지.”
“이곳에서도 꽤 분탕질을 친 모양이네요?”
내 말에 황제는 부르르 치를 떨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알 만하군.
엘카니아 왕국이나 교황청에서 하고 다닌 짓을 암흑제국이라고 해서 안 했을 리가 없잖냐고.
황제는 전나세란 이름만 들어도 울화가 치솟는지 콧김을 내뿜으며 씨근덕거리다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그런 자를 받아들였던 짐이 어리석었지. 감히 짐한테 삥땅을 쳐서 나의 사금고에 있던 막대한 보석을 훔쳐 달아난 자는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으니까!”
보석을 훔쳐서 달아난 거군.
하긴 황제한테는 금전적인 손실 이상으로 뼈가 아픈 건 없을 테니 가장 타격이 심할 법도 하다.
“얼마나 훔쳐서 달아났는데 그러십니까?”
“우리 암흑제국의 일 년 예산이라고 하면 믿겠나?”
“…….”
난 침을 꿀꺽 삼켰다. 놀라서 말이지.
재경이 이 녀석 암흑제국의 1년 예산이나 되는 막대한 돈을 훔쳐 달아나다니…….
쩝, 솔직히 말해서 부럽다. 그 엄청난 능력이.
근데 이 황제는 역시 속이 시커먼 인간이다.
국가 일 년 예산에 해당되는 돈을 신하들한테 삥 뜯어서 자기 금고에 챙겨 두고 있었단 말이잖아?
이번만은 재경이 녀석을 칭찬해 주고 싶은 생각까지 다 든다.
“언뜻 총명해 보이고 꾀가 많아서 짐이 옆에 두고 총애해 주었는데, 그런 식으로 배반을 때리다니. 정말이지 이가 갈리는군. 내 맹세컨대 그 전나세의 동료나 피붙이들만 봐도 요절을 내 줄 작정이네. 그래야 화가 조금이라도 풀릴 것 같아!”
“…….”
그 말에 내가 뜨끔하자 황제는 멈칫하면서 나를 꼼꼼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근데 자네……. 그러고 보니, 어째 그 전나세하고 좀 닮은 데가 있는 것 같은데…….”
“그런 흉악범과 제가 어떻게 닮을 수가 있겠습니까? 폐하께서 그런 말씀을 자꾸 하시면 전 오늘은 그냥 가 보겠습니다.”
내가 못마땅한 표정을 짓자 황제는 입을 다물었다.
쩝, 내가 재경이하고 숙질간인 게 들통 나면 황제는 나한테 재경이가 훔쳐간 보석을 대신 물어내라고 할 게 틀림없다.
나는 애써 태연한 척하면서 질문을 던졌다.
“좌우간 그럼 전나세는 지금 이곳에 없다, 그 말씀이신가요?”
“그렇다네.”
“그럼 암흑제국을 떠나서 어느 곳으로 갔는지도 모르신단 말씀입니까?”
“어느 곳으로 갔는지 알면 내가 먼저 잡았을 걸? 그자한테서 내 보석을 되찾아야 할 거 아니냐고.”
그거 말 된다.
좌우간 그렇다면 또 오리무중이란 거로군.
질렸다.
이곳까지 힘들게 와서 별일을 다 겪고 귀족이 되어서 황제를 만났는데도 소득이 없다니.
내가 엄청 실망한 표정을 짓자 황제가 고개를 갸웃했다.
“자네도 그 녀석한테 뭔가 크게 손해 본 게로군. 너무 실망하지 말게. 운이 따르면 언젠가 잡을 수 있지 않겠나? 그리고 그자를 잡으면 내 보석을 나한테 돌려주는 거 잊지 말도록 하게나. 물론 이미 처분했을지도 모르니 돈으로 돌려줘도 상관은 없네. 그 녀석이 보석을 훔친 시점부터 계산해서 이자까지 쳐서 나한테 가져오도록 하게나.”
“…….”
황제의 말에 나는 기가 차서 멀뚱히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어쨌든 잘 알겠습니다. 그럼 신은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내가 꾸벅 인사하고 등을 돌리자 황제가 다급히 날 불러 세웠다.
“헉! 이보게 우영 자작! 자네 뭐 잊은 거 없나?”
“없는데요?”
“아니, 그래도 한번 잘 생각해 봐. 짐한테 뭐 줄 거 안 주고 가는 거 없냐고?”
“그런 거 없거든요.”
내가 아주 뻔뻔한 표정으로 말하자 황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열 받은 표정이로군. 하지만 재경이의 행적을 여기서도 못 찾은 실망감 때문인지 겁도 안 난다.
“허어, 이 사람. 새파랗게 어린 사람이 벌써 치매 증상이 있는 게로군. 아, 가져온 이실리움을 주고 가야지!”
황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면서 외쳤다.
엄청난 체격의 자이언트인지라 정수리가 천장에 닿을 듯 말 듯하다.
하지만 난 태연히 대꾸했다.
“그걸 왜 드리는데요? 제가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시면 드린다고 했잖습니까. 그리고 폐하께서는 제가 원하는 대답은 못 하셨구요. 전나세가 어디 있는지 대답을 해 주셨다고는 못 하시겠죠?”
“아니, 그거야 내가 그자가 어디 있는지 몰라서 그러는 거 아닌가?”
“그러니 제가 원하는 대답을 못 하신 거죠. 따라서 이실리움을 드릴 이유도 없구요. 그럼 전 가 보겠습니다.”
“…….”
내 말에 황제는 서늘하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자네 보자 보자 하니 좀 심하군. 짐한테 이래도 되는 건가?”
“훗! 이래도 되느냐구요? 제가 지금까지 폐하께 바친 이실리움이 얼마나 되는진 아십니까? 저만큼 폐하께 많은 걸 바친 신하가 몇 명이나 되는지요? 불만 있으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이 자작의 작위는 언제든 폐하께 돌려 드리죠. 대신 가끔씩 얻을 수 있는 이실리움을 폐하께서는 구경하기 힘들게 되실 겁니다만.”
나는 태연히 비웃음을 지어 준 다음 등을 돌려 어전을 나섰다.
뒤통수에 꽂히는 황제의 서늘한 시선이 따갑구먼.
젠장, 면전에 대고 퍼부어 주니 통쾌하긴 한데 후환이 쪼끔 두렵다.
돌아가는 대로 저택에 보관해 둔 돈과 보석을 빨리 처분해서 나라 밖으로 빼돌려 놔야겠다.
열 받은 황제가 나한테 반역죄 같은 거 뒤집어씌워서 재산 몽땅 몰수하지 말란 법도 없으니까.
띠링하는 소리와 함께 창이 떴다!

암흑제국 황제와의 친밀도가 대폭 하락했다! 한 번만 더 개기면 확실한 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