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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5권(102화)
Part 1. 굿바이 암흑제국(2)
내가 서둘러서 어전을 빠져나오는데 비서실장이 슬쩍 내 앞을 막았다. 징그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말이지.
저 재수 없는 웃음은 이 인간이 나한테 뭔가 바랄 때 짓곤 하는 거였는데…….
하긴 이 인간한테 뇌물 안 준 지도 오래됐군.
황제한테 주는 것만으로도 짜증스러웠는데 이 인간한테는 더더욱 주기 싫었으니까.
“우영 자작님, 아까 폐하와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만…….”
“그래서요?‘
‘귀찮으니까 할 말 있으면 빨랑 하고 사라져 다오.’ 라는 투의 내 말에 비서실장은 잠시 머쓱하다가 이내 간신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전나세가 어디 있는가를 물으셨죠?”
“헉! 설마 그대가?”
“대략은 알고 있습죠.”
“대략이라고?”
난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대략이란 말은 신물이 나는군.
하지만 전혀 모르는 것보단 나을지도.
“말해 주실 거면 하시고, 아니면 가서 볼일 보세요. 제가 드릴 거라곤 이거 하나뿐입니다만”
이실리움으로 만든 반지 하나를 들어 보이며 하는 말에 비서실장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말씀드리죠. 전나세는 지금 가뎀 왕국에 있습니다. 폐하께서 그자의 행방을 찾으라고 호통을 치셔서 말이죠. 사람들을 풀어서 알아본 가장 최근의 행적은 가뎀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요? 그럼 지금 이 시각엔 어쩌면 가뎀을 떠나서 다른 나라에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러지 말란 법은 없죠. 하지만 이곳을 떠나서 가뎀으로 간 지가 얼마 안 되었는데 그새 다른 나라에 갔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어쨌거나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비서실장은 어느새 건너온 이실리움 반지를 자기 손가락에 끼면서 만족스러운 듯 히죽 미소 지었다.
“전부 다 모였냐? 니들에게 이제부터 지시를 내리겠다!”
저택으로 돌아온 나는 파티원들과 제자들을 죄다 불러 모았다.
제자 녀석들은 내가 고든에게 의뢰해서 말끔하게 수리한 무기들로 무장하고 있었다. 어찌나 잘 수리했는지 번쩍이며 빛나는 모양이 새것 이상이다.
그래서 녀석들은 무기를 어루만지며 하나같이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녀석들이 좋아하니 내 기분도 흐뭇하군.
근데 세영이 저 자식은 세일, 세이, 세삼, 세사가 무기를 가지고 흐뭇해 하는 게 싫은가 보다.
지 동생들을 한번 째리고 그 다음은 날 야려 보고…… 그러는군.
뭐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지금 세영이 녀석의 반응에 신경 쓸 때가 아니지.
“자, 모두 모였나?”
“네, 선생님!!”
제자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근데 파티원들은 대답이 없군.
난 인상을 쓰면서 파티원들을 돌아보았다.
“모두 모였냐고 내가 묻잖냐!”
“보면 모르냐, 쉬익!”
“훗, 이 꼬맹이들한테만 한 질문으로 알았습니다.”
“흥, 웃겨! 우리가 뭐 유치원생이에요? 뻔히 다 모인 거 보고선 그런 걸 물어보게!”
아니, 근데 이것들이……. 파티장인 내가 질문하시는데 말하는 꼬락서니가 하나같이 삐딱하구먼.
슬슬 울화가 치밀어 올라서 한바탕 퍼부어 주려다가 꾸욱 참았다.
“허허, 그래그래 알았다. 어쨌거나 모두 귀 닦고 잘 들어라. 오늘부로 이 저택은 정리하겠다. 저택 내부의 값진 물건들은 모두 팔아 치우고 돈 될 만한 것들도 다 처분할 거다. 살 사람이 나서는 대로 이 저택을 모조리 팔아 버릴 테니까 그렇게들 알고 있도록!”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
내 말에 제자들은 일제히 목청을 높여서 대답했다.
근데 파티원들은 입을 쩍 벌리고 넋 나간 표정들이다가…….
허억! 갑자기 왜 나한테 달려드는 거냐!
“지금 뭐라고 했냐! 돌았냐, 쉬익! 이 저택을 팔겠다니!”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우영 형님! 70평짜리 내 방과 100평짜리 기도실은 어쩌라고요!”
“그래요! 지금 내 옷장 속에 모아 놓은 옷만 해도 3백 벌은 넘는데, 이 저택 아니면 그 옷 넣어 둘 옷장이 있는 집을 어디서 구한단 거에요!”
“…….”
근데 이것들이…….
왜 저택을 팔려고 하느냐라는 질문도 없이, 내가 지금 닭짓을 처 하고 있다며 죽일 듯이 날 성토하고 자빠졌다.
젠장…….
정작 파티장이자 이 저택의 주인인 나보다도 더 심한 호사를 이 저택에서 누리고 있으니 그걸 포기하기가 죽기보다 싫단 거로군.
후후후훗!
이것들이 암흑제국의 이 저택에서 생활한 이후로 정신 상태가 한 오십 년은 빨지 않은 오크 발싸개가 무색하도록 푸욱 썩었구먼.
그렇다면 내가 니들의 정신 상태를 개조해 주는 은혜를 베풀어 주도록 하지.
“자, 우리 그만하자. 우영 형님께서도 이유가 있으니 이 저택을 정리하시려는 거겠지.”
내 입가에 서리는 사악한 미소를 제일 먼저 파악한 다쓰가 슬그머니 날뛰는 파티원들을 만류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훗! 너희들 아주 가관이구나. 지금 파티장인 내가 피눈물을 머금고 이 저택을 팔겠다는데, 감히 그 결정에 반기를 들고 자빠진 거냐? 내 말이 그렇게 우습게 들리냐고!”
“아니, 그게 아니고……. 쉬익!”
“반기라기보단 그냥 뭐……. 솔직히 아쉽잖아요! 이 저택 포기하는 거…….”
“엘프는 이런 집에서 살면 안 된다는 법도 없잖아요! 저 좀 호강하면 안 된다는 건가요!”
“저는 검소하고 소박한 팔라딘답게 우영 형님의 결정에 따르겠습니다!”
다른 파티원들과 달리 다쓰가 슬그머니 알아서 기는 시늉을 하는군.
짜식, 검소하고 소박한 놈이 온통 금으로 도배를 하다시피한 70평짜리 방에서 우유 목욕을 하면서 생활을 하냐?
아예 처음부터 조용히 입 처닫고 있든가, 계속 다른 파티원들처럼 개기면 덜 얄밉기나 하지.
“모두 똑똑히 들어라. 어차피 암흑제국에서 내 입지는 갈수록 어려워지게 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이곳에 오래 붙어 있으려고 이 저택을 산 것도 아니고 말이지. 근데 니들은 여기서 천년만년 도끼 자루가 썩어 나도록 잘 먹고 놀 생각하고 자빠졌냐? 도대체 언제까지 무개념 탑재 병기로 살아갈 작정이냐?”
나는 장황하게 30분간 침을 폭포수처럼 튀겨 대면서 주절주절 설교를 늘어놓았다.
“…….”
근데 이것들이 끝끝내 ‘네, 제가 잘못했거든요. 파티장님이 알아서 하세요.’라는 말을 안 하는군.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말로 해서 못 알아먹으면 몸을 괴롭게 해서 교훈을 내려 주는 수밖에…….
“그러고 보니 그동안 니들이 좀 편했던……. 아니, 무진장 편했던 것 같군그래. 하긴 이 대궐 같은 저택에서 금으로 도배한 방에서 좀 오래 생활한 것 같긴 하군. 그러니까 간땡이가 부어서 나한테 개기고 내 결정에 반발하는 거겠지. 좋다, 간만에 특별 훈련을 한번 실시해 보자고. 그래야 니들의 흐리멍덩한 정신 자세와 개김성이 교정이 될 거다. 이왕 하는 김에 내 사랑스런 제자들도 같이 훈련을 하자.”
내 말에 파티원들은 일제히 불안한 기색이 되었다.
반면 제자 녀석들은 또랑또랑한 눈으로 내가 어떤 훈련을 시키려는지 기대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쉬익! 우영 또 우릴 괴롭히려고 그러는 거 아니냐, 쉬익! 난 훈련하기 싫다, 쉬익!”
“저기…… 오빠. 그냥 오빠 말대로 할 테니까 훈련은 관두면 안 되요?”
“이미 때는 늦었거든? 잔말들 말고 일제히 자기 무기 들고 대련 준비 갖춰라. 두 팀으로 나서서 싸운다. 파티원들하고 내 제자들의 두 팀이다!”
“아니, 뭐예요! 아니, 오빠. 지금 저더러 제 동생들하고 싸우란 거예요?!”
내 말에 세영이가 발끈했다.
하지만 난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싸우기 싫으냐? 그럼 동생들한테 일방적으로 맞으면 되겠구나!”
“옵빠!”
“아, 귀 안 먹었으니 작작 소리 질러! 그럼 모두 준비됐냐? 시작이다! 서 있는 사람이 한 명도 남지 않는 팀이 지는 거다. 자, 시작해! 실전처럼 싸워 보라고!”
“우와!”
“우리가 살살할 테니 너무 걱정 마세요! 전치 3주 정도밖에 안 나올 거예요!”
“누나, 이거 평소에 누나가 나 줘 팼다고 보복으로 이러는 거 아니거든?”
“쉬익! 이런 법이 어딨냐! 우리 4명하고 120명이 싸우다니!”
“형님, 이건 너무 심합니다!”
신이 나서 무기를 들고 달려드는 제자들에게 파티원들은 사색이 되어서 비명을 질러 댔다.
하지만 난 아랑곳하지 않았다.
심하긴 개뿔.
처음부터 훈련을 빙자해서 니들을 손봐 줄 속셈으로 이러는 건데 심하긴 뭐가 심하냐고.
그런데 제자들이 파티원들에게 심하겐 못 하는군. 슬쩍슬쩍 두들기며 봐주고 있다.
쪽수 차이가 너무 심하게 나니까 저러는 건가?
그때 늦게 방에서 나온 케브라가 파티원들한테 합류하며 소리쳤다.
“우영님 말씀 못 들었냐? 제대로 훈련에 임하자! 실전에 임하는 자세로 싸우잔 말이다!”
말과 함께 케브라는 쌍절곤을 거세게 휘둘러 대며 몰려드는 내 제자들을 사정없이 후려치기 시작했다.
퍽! 퍼퍼퍽! 퍽!
“윽!”
“아얏!”
처음엔 장난으로 생각했던 제자들은 케브라의 거센 공격에 당황하더니 몇 대 세게 두들겨 맞자 슬슬 독이 오르는 표정이다.
“이거, 지금 장난하는 게 아니네…….”
“이러면 우리도 슬슬 할 순 없는데…….”
“뭐 안면 까고 해 보자면 못할 것도 없지.”
케브라의 고지식한 공격에 파티원들은 울상을 지으면서 불안한 표정이었다.
결국 제자들은 있는 힘 없는 힘 다해서 파티원들을 마구 공격하기 시작했고 파티원들은 케브라 덕분에 피떡이 되도록 매타작을 당하는 광경이 연출되었다.
그리고 1시간 후, 파티원들은 전원 늘씬하게 두들겨 맞고 저택의 앞마당에 완전히 뻗어 버렸다.
사람은 편한 상태로 오래 있으면 곤란하다고.
몸이 좀 괴로워 봐야 생활의 긴장도 유지가 되는 법이다.
앞으로도 이런 훈련을 가급적 자주 가지도록 해 봐야겠군.
엇, 근데 저기 정문에서 들어오는 사람은…… 조핀 아냐?
“조핀 님, 어서 오세요. 투르펜 전하한테라도 갔다 오셨던 겁니까?”
“네, 드디어 가뎀 군을 몰아내는 전투가 시작됩니다. 닷새 뒤입니다. 우리 마토스 군은 블루 울프 기사단을 선두로 귀족들이 병사들을 데리고 집결하고 있습니다. 암흑제국 황제도 병사들을 보내 줬구요. 우영 님께서도 모을 수 있는 대로 최대한 병력을 모아서 서둘러 우리 마토스 군에 합류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근데 병력을 좀 더 긁어모으려면 쪼끔 더 시간이 필요한데……. 닷새 가지고 될지 모르겠군요. 좌우간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내 말에 조핀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만 보니 나한테 크게 기대를 하는 눈치로군. 하긴 안 그럴 수가 없겠지.
그동안 나와 같이 여행하면서 별의별 희한하고 기괴한 경험을 다 해 봤으니까.
처음엔 날 좀 황당하게 봤겠지만 의외로 능력이 있는 걸 알고 놀란 눈치였으니까.
특히 길드전에서 내가 적 병력을 떼로 몰살시킬 때는 이 아저씨 나를 완전히 다시 보는 표정이었다.
아마 그런 걸 모두 투르펜한테 보고한 게 틀림없을 거다. 그러니 투르펜도 내가 꼭 자기편에 가담해서 같이 싸워 주길 강하게 부탁하는 걸 테지.
“저…… 근데 우영 님.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 말고 우영 님이 더 데려올 수 있는 병력들이 있기는 한 겁니까?”
조핀이 조금은 의심스럽다는 듯이 묻는군.
어허, 이 아저씨 왜 이러시나. 나하고 하루 이틀 여행한 것도 아니면서.
“그럼요. 아직 한참 더 긁어모을 수 있습니다.”
“그런가요? 어디서 사람들을 더 조달하실 건데요?”
“정말 몰라서 물으시는 겁니까? 조핀 님도 다 만나 본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그럼요. 그러니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나한테 맡기세요.”
내가 씨익 미소를 지어 주자 조핀도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