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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5권(104화)
Part 2. 마토스 왕국 수복 작전(2)


피그몽들과 미라쥬 길드원, 그리고 내 제자들은 나와 함께 신나게 가뎀 군의 우익을 치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죽여라! 열심히 죽이고 득템하자!”
“죽이자! 흐흐, 신나게 죽이자. 이게 얼마 만에 보는 피냐. 흐흐흐흐.”
“우와아아! 선생님 재밌게 죽이겠습니다!”
나의 사랑스런 부하들은 마구 가뎀 군에게 덤벼들어서 칼질을 시작했다.
가뎀 군은 당황해서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양 진영의 중앙이 신중하게 부딪치고 있는데 갑자기 자기들쪽으로 겁 없이 달려들어서 마구 칼질을 해 대니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거지.
“크억!”
“억! 뭐야?”
“흐흐, 죽이자! 신나게 죽이고 햄과 베이컨 실컷 먹자! 흐흐흐.”
“죽이고 또 죽여서 우리 미라쥬 길드의 명성을 떨치자! 학살마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피그몽들과 미라쥬 길드원들은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날뛰면서 가뎀 군을 몰아붙였고 제자들은 재밌게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미라쥬 길드 녀석들, 근데 거기서 하필 학살마를 들먹이냐?
날더러 저번 길드전에서 한 것처럼 레달입이라도 시전하라는 거야, 뭐야.
그게 어디 아무 때나 마구 쓸 수 있는 스킬인 줄 아는 거냐고.
그리고 1만 5천이나 되는 대군이 이렇게 넓게 포진하고 있는 이런 상황은, 좁은 회랑 속에 모인 적들을 쓸어버릴 때하고는 다르다는 걸 알아야지.
어쨌거나 내 병력들의 움직임은 매우 좋았다. 다른 마토스 군은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몸이 무거운 듯했다.
하지만 그저 죽이고 아이템을 챙기려는 미라쥬 길드원들, 피를 보고 싶은 마음만 가득한 피그몽들, 게임 속에서 살인의 즐거움을 누려 보려는 내 제자들은 거리낄 게 없었던 거지.
“우하하핫! 죽이자 또 죽이자! 크하하핫!”
“모두 아이템 잘 챙겨라. 죽이는 것도 좋다만!”
우리들은 마음껏 칼과 창을 휘둘러 대면서 가뎀 군을 베어 나갔고, 가뎀 군은 쩔쩔맸다.
이윽고 양 진영의 중앙도 충돌을 시작했다.
랑케의 블루 울프 기사단을 선두로 한 중군이 역시 가뎀 군의 정예들과 치열한 난전을 시작했다.
난 유심히 전황을 살펴봤다.
근데 이거 좀 문제네.
뭐가 문제냐고?
나의 부대가 워낙 기세가 좋아서 가뎀 군 진영 깊숙이 들어간 꼴이 되어 버렸다.
다른 마토스 군에 비해서 말이지.
게다가 가뎀 군의 진영이 변하고 있다. 랑케와 격돌하던 검은 옷의 기사단이―아마 마토스 군에서도 상당한 정예들인 듯하다― 우리 쪽으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다.
이거 잘하면 포위당해서 저 검은 기사단에게 아작 날지도 모르겠다.
그건 피해야 한다. 포위당한 상태에서 다굴당하면 큰일 난다고. 전멸당할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어디까지나 마토스 군을 도와주는 거지. 우리가 목숨 걸고 마토스 군 이상으로 결사적으로 나서는 것도 사실 좀 우습고.
“자, 일단 후퇴해라. 더 전진하지 마라! 다른 마토스 군하고 진형을 맞추란 말이다!”
근데 이거 어째 내 명령이 별로 먹혀드는 기색이 아닌데?
피그몽들도 그렇고, 미라쥬 길드도 그렇고, 그저 마구 잡아 죽이는 거하고, 죽인 녀석들 아이템 챙기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내 제자들은 그래도 내가 소리 지르니까 말을 듣고 있다만, 이런 대규모 전투에 흥분한 몇몇 아이들은 흥분해서 칼부림을 마구하다가 지 동료들의 만류를 받고서야 멈추고 있었다.
난 급히 파티원들을 불러 모았다.
“야!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피그몽들하고 미라쥬 길드원들 빨리 후퇴시켜! 도대체 어쩌자고 저렇게 적진 깊숙이 마구 파고드는 거냐고. 가뎀 군 속에 갇힌 상태에서 적의 주력과 부딪치면 전멸할 수도 있단 말이야. 빨랑 후퇴시켜!”
그러자 파티원들은 ‘우리 말도 잘 안 들을 텐데…….’ 어쩌구 하면서 투덜거리다가 내가 인상을 쓰자 마지못해서 피그몽들과 미라쥬 길드를 제어하기 시작했다.
내 부대의 전진이 멈추어졌다.
휴! 이제 다행……이 아니잖아!
이거 뭐 이래?
가뎀 군 전체가 뒤로 후퇴를 시작했던 거다.
내 부대한테 신경 쓰고 있는 틈에 어느샌가 훌라당 다 후퇴해 버렸다!
이런 빌어먹을! 이거 도대체 뭐하는 플레이야.
이거 우릴 엿 먹이려고 랑케가 가뎀 군하고 짠 거야, 뭐야!
주위를 둘러보니 가뎀 군이 우리를 포위하려고 슬슬 다가오고 있었다.
근데 저 피그몽 녀석들은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튀어 나가려고만 하네?
도저히 못 참겠다.
“오거할”
화르르!
“퀘엑! 흐흐흐흐.”
피그몽 녀석들, 빌어먹을 오거할로 새카맣게 숯구이가 되어 나뒹굴어도 그 웃음을 웃고 자빠졌네.
내가 메이스로 오거할을 시전해서 마구 전진하는 피그몽 한 녀석을 태우자 모두 날 쳐다봤다.
“지금 뭐하는 거냐. 왜 같은 편을 태우고 지랄이냐, 흐흐흐.”
“이 망할 돼지 대가리 짜식들아. 모두 후퇴하고 우리만 달랑 남았는데 계속 돌격앞으로만 하고 있으면 어쩌냐고. 왜 내 말 안 듣고 니들 멋대로 하냐? 계속 그따위로 하는 놈들 있으면 모두 다 노릇하게 구워서 삼겹살 해 먹을 테니까 알아서 해!”
내가 펄펄 뛰면서 을러대자 그제야 눈들을 내리까는구먼.
역시 돼지 대가리들이라 좋게 말해선 안 통한다.
그 다음으로 미라쥬 간부1한테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당신은 지금 뭐하는 거야? 여기 싸우러 왔어, 아니면 아이템 챙기러 왔어? 이러다가 당신 때문에 모두 다 몰살하면 책임질 거야?”
“저, 그런 게 아니고…….”
“아니긴 개뿔이 아냐! 한 번만 더 내 말 안 듣고 그딴 식으로 했다간 가뎀 군이 하기 전에 내가 먼저 당신들 모두 다 로그아웃시킬 테니 그런 줄 알아!”
“알겠습니다. 앞으로 주의하죠.”
근데 더 이상은 이러고 있을 시간도 없었다.
가뎀 군이 우리한테 까맣게 몰려들고 있었으니까.
빌어먹을 마토스 군은 우릴 도와줄 생각도 않고 진을 저만큼 물리며 후퇴해 버렸다.
어쩔 수 없다.
이젠 죽으나 사나 강행 돌파해서 후퇴하는 수밖에.
“부대 전원 들어라! 이젠 별 수 없다. 돌격하던 그 기세의 열 배로 적진을 돌파해서 후퇴한다! 선두는 바투루가 지휘하는 피그몽들. 그 뒤는 미라쥬 길드원들이고 내 제자들은 화살로 지원하고, 파티원들은 힐링과 포션 지급을 담당해라. 후퇴 앞으로!”
내 말에 모두들 사력을 다해 무기를 휘두르면서 포위망을 뚫기 시작했다.
이제야 비로소 미라쥬 길드원들은 물론 피그몽들의 얼굴에도 위기감이 서렸다.
“죽여라!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가뎀 군이 고함을 지르며 우루루 몰려들었다.
피그몽들의 칼과 도끼가 달려드는 가뎀 군을 마구 무너뜨렸다.
피가 흐르고 살이 파편처럼 공중으로 튄다. 물론 피그몽들의 피해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천성적으로 이런 식의 싸움을 두려워 않는 피그몽들은 전혀 겁먹는 기색 없이 꾸역꾸역 몰려드는 적을 난도질했다.
미라쥬 길드원들 또한 나름대로 난전 속에서 제 몫을 하고 있었다.
하긴 유저들이 많아서 죽어 봐야 로그아웃될 뿐이니 용감하게 싸울 수 있는 거긴 하지만.
피그몽과 미라쥬 길드원들의 악착같은 사투에 가뎀 군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지금 우린 완전히 적들 속에 고립된 상황. 빨리 이 포위망을 뚫고 마토스 군 진영으로 후퇴해야만 한다.
쩝, 그런데 피그몽들과 미라쥬 길드원들의 부상자가 갈수록 늘어나는군.
나는 버럭 소릴 질렀다.
“제자들 뭐하냐! 내가 준 화살 가지고 피그몽하고 미라쥬 길드원들 제대로 엄호해 주란 말이다! 화살 다 소모해도 좋으니까 아낌없이 쏴! 그리고 파티원들은 눈뜨고 구경만 하고 있을래? 힐링 마법으로 빨리 부상자들 치료 못 해 주냐! 세영이 넌 포션 가지고 힘 떨어진 피그몽들 빨리 퍼 먹이란 말이다!”
내가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자 파티원들도 바쁘게 움직이면서 힐링을 걸고 포션을 지급했다.
그때 세일이 내게 물었다.
“선생님, 이 뱀파이어의 이빨 화살촉 정말 지금 써도 돼요? 이거 엄청 비싼 거니까 특별한 상황에만 쓰라고 하셨잖아요?”
음, 그건 그랬지.
던전 망혼의 미로에서 뱀파이어들을 해치우고 얻은 이빨로 만든 화살촉이라 강력한 위력이 있다.
웬만한 강적이라도 단 한 대만 맞아도 즉사니까.
팔아도 상당히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는 아이템이지만 제자들에게 뭔가 특별한 선물을 주고 싶어서 말이지.
난 세일에서 세사까지한테 말했다.
“상관없다. 어차피 니들이 여기서 당해서 로그아웃 당하면 아이템은 어차피 다 날아갈 텐데 별 수 있냐. 너무 남발은 하지 말고 적들 중 강한 놈들만 뱀파이어 이빨 화살촉으로 저격해서 쓰려뜨려라.”
“네, 선생님!”
세일들은 우렁차게 대답하고 즉시 자기 반 애들한테 지시를 내렸다.
곧이어 제자들의 화살이 허공을 날아서 가뎀 군의 기사들을 쓰러뜨리기 시작했다.
푸슉!
“헉! 이거 뭐야? 무슨 화살이 풀 플레이트 메일을 뚫다니!”
푸슉! 푸슉!
“크악! 내 투구가……. 윽!”
음, 과연 위력 좋네.
제자들이 쏜 뱀파이어 이빨 화살촉에 맞은 가뎀 군들은 피를 뿜으며 쓰러져 갔다.
그러자 가뎀 군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고작 1천 명에 불과해서 금방 밟아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뜻밖으로 강하게 버티고 있으니까.
그때 가뎀 군 중앙 쪽에서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들 중 누군가가 소리쳤다.
“에이씨, 짱 나게! 지금 뭐하고 자빠졌냐! 그것밖에 못하냐! 꼭 내가 나서야 하니? 모두 꺼지셈!”
“…….”
나는 벙 쪘다.
소리 지른 녀석은 검은 갑옷 기사들의 리더인 듯했다. 근데 체구도 작고 목소리도 어째 어디서 들은 듯한데?
투구를 눌러쓴지라 얼굴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도 투구를 통과해서 나오는지라 변형이 되어 들리는 것 같긴 하다만…….
좌우간 그가 소리치자 가뎀 군이 쫙 길을 비키고 검은 갑옷 기사들이 우리 앞에 마주 섰다.
음, 이거 대단하네.
검은 갑옷 기사들에서 풍기는 포스가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이거 아무리 적게 잡아도 최소한 레벨 200의 실력자들이 틀림없어 보이는데…….
더구나 저들의 리더인 저 녀석은 덩치도 작고 어려 보이지만 무지 교활하고 영악하고 사악한 것 같다.
나는 바짝 긴장했다.
사실 지금까진 잘 버티기는 했지만 피로에 부상이 누적된 상태라 가뎀 군 최강의 정예가 틀림없어 보이는 저 검은 갑옷 기사단과 싸울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 말이지.
세영이 내 눈치를 보고 슬쩍 물었다.
“오빠 어떡하죠? 저자들이 우릴 쓸어버리려고 그러는 것 같은데요.”
“흥, 누가 쓸려 가 준 대니? 어디 한번 해 보라 그래. 겁날 거 없다 이거야.”
내가 되지도 않는 허세를 부리면서 큰소리를 탕탕 치는데, 검은 갑옷 리더가 크게 소리쳤다.
“야! 누가 니네들 짱이니? 니들 전부하고 우리 블랙 파운딩 기사단 전부하고 맞짱 뜰 것도 없어. 캡짱끼리 싸워서 끝내자.”
“…….”
녀석의 말에 모두가 주춤했다.
지금까지 자신만만하게 싸우던 피그몽들이나 미라쥬 길드도 이 검은 갑옷 기사들의 포스에는 주눅이 든 거다.
지들이 나가 싸울 생각은 안 하고 날 돌아보네?
망할 놈들! 나더러 나가 싸울 필요 없다든가 죽든 살든 끝까지 함께 싸우자는 놈들이 없구먼.
피로하고 힘들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판이니 나 혼자 그냥 이 무거운 짐을 다 지고 나가서 일대일 싸움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표정들이다.
젠장! 할 수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