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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5권(105화)
Part 2. 마토스 왕국 수복 작전(3)


이 상황에서 뒤로 빼 봤자 개망신이 될 뿐이다.
난 후들거리는 다리를 애써 가누며 앞으로 나서서 크게 소리쳤다.
“좋다! 사실 내 상대는 안 되는 것 같다만 싸워 주지! 어디 한번 붙어 보자구!”
“…….”
내가 메이스를 꺼내 들고 호기롭게 소리치자 가뎀 군의 시선이 모두 다 나한테로 쏠렸다.
엇! 그런데 이거 어째 검은 갑옷 기사들…… 그러니까 블랙 파운딩 기사단이라고 지들이 직접 말한 놈들의 대빵이 날 보더니 엄청나게 당황하는 눈치네?
투구 쓰고 있어서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분명히 그런 눈치다.
왜 저러는 거지?
저 태도는 거금 빌려 쓰고 잠적했다가 빚쟁이와 맞닥뜨린 채무자의 자세인데?
어쨌거나 녀석은 엄청 당황하며 옆을 보고 뒤를 보고 좌우간 나하고 얼굴을 맞닥뜨리기 싫다는 의사를 강력히 표시하고 있었다.
그러자 가뎀 군도 어리둥절한 기색이고 블랙 파운딩 기사들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나는 슬슬 머리를 굴렸다.
이 틈을 놓치지 말고 기습을 해서 메이스로 저 녀석의 뒤통수를 뽀개 버릴까 하고 말이지.
하지만 진짜로 그런 얍삽한 짓을 했다가는 후환이 단단히 따를 테니 그것도 못 하겠군.
어색한 대치가 계속되고 있는데 세일들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선생님, 저기 좀 보세요!”
응? 저기 뭐가 있길래 그러는…….
오! 마토스 군이다.
랑케가 블루 울프 기사단을 끌고 다시 진격을 해 오고 있다.
날 죽게 내팽겨쳐 두고 꽁지에 불이 나게 후퇴하더니만 웬일이지?
하지만 그런다고 가뎀 군이 물러나지는 않겠지?
여전히 수적 우세에 있는 가뎀 군이 물러날 리는 없…….
응? 그런데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블랙 파운딩 기사단의 리더가 갑자기 호들갑을 치더니 퇴각 명령을 내린 거다.
“마토스 군이 반격에 나섰으니까 후퇴해. 지금 싸우면 개 피 보니까 빨랑 후퇴하라고. 어서!”
“아니, 단장님. 아까 하고 상황이 별반 달라진 것도 없는데요?”
“그냥 싸워도 될 거 같습니다만.”
“니들 말 안 들을래? 너희가 대빵이야? 아가리 닥치고 빨리 후퇴 안 할래?”
“아, 알겠습니다.”
블랙 파운딩 기사들 중 하나가 이의를 제기했다가 본전도 못 찾았다.
좌우간 우릴 포위하고 있던 가뎀 군과 블랙 파운딩 기사들은 먼지를 길게 일으키며 퇴각을 시작했다.
블랙 파운딩 기사는 나와 눈길도 한 번 안 마주치려고 하며 말을 몰아서는 빠르게 달아나 버렸다.
뭐, 우리로선 다행이긴 한데……. 근데 뭔가 이상하구먼.
상당히 찝찝하다, 그 말이다.

두두두!
말발굽에 불나게 마토스 군을 몰고 진격해 온 블루 울프 기사단장 랑케는 날 보고 미소 지었다.
“우영 님, 무사하셨군요.”
“후후후. 참 빨리도 와 주시네요. 쪼끔만 더 기다렸다가 제가 블랙 파운딩 기사단한테 숨넘어간 뒤에 오시잖구요. 아마 다른 귀족들은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신 것 같은데.”
“허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무려면 그렇겠습니까. 우영 님은 다 좋은데 간혹가다 농담이 신랄하신 게 흠입니다.”
“글쎄요. 그게 전적으로 농담일까요? 어쨌거나 우리 부대가 적진 속에 고립되어 있는데 도와줄 생각도 안 하고 전군을 모두 후퇴를 시키시다니 정말 놀랐습니다. 그 덕분에 우린 모두 죽을 뻔하지 않았습니까?”
“허허, 갑자기 적의 공세가 날카로워져서 후퇴하지 않으면 아군의 손실이 클 거 같아서 그랬습니다. 뭐 우영 님의 부대야 워낙 강하니 능히 버티실 거라고 생각한 거구요.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죠.”
어쭈, 이것 보게?
너그럽게 이해해 주지 않으면 재미없을 거라는 거야, 뭐야?
“우리 부대는 당분간 짐 풀고 좀 쉬어야겠습니다. 오늘 너무 힘든 전투를 해서 말이죠. 상처도 치료하고 표션도 많이 필요한데 그건 또 어디서 생길 건지……. 또 내 돈으로 다 사야하는 건지……. 그것참……. 어쨌거나 전투가 재개되어도 저 부르지 마세요. 부대가 정상적인 상태가 되려면 얼마나 걸릴 지도 모르니까 말입니다. 그럼, 얘들아 어서 막사에 가서 갑옷 벗고 쉬자!”
“아니, 저…… 우영 님…….”
랑케가 당황하며 날 붙잡으려고 했지만 난 거들떠보지도 않고 부대원들을 이끌고 막사로 향했다.
은근히 속에서 열불이 치솟아서 말이지.
마토스의 딴 귀족들이야 그렇다 쳐도 랑케는 그렇게 안 봤는데 우릴 소모품 취급을 하려 하다니 괘씸하잖냐고.

막사에 돌아온 나는 부대원들에게 크게 소리쳤다.
“자, 지금부터 갑옷 벗고 무기 풀어라. 부상당한 자들은 상처 치료하고 배고픈 놈들은 식사해라.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무한 휴식을 취한다. 누가 와서 뭐라고 해도 암말도 듣지 말고, 내 명령이 있을 때까지는 무한정 퍼질러 쉬란 말이다. 알겠냐!”
“네, 선생님!!”
“알았다. 흐흐…….”
“알겠습니다.”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미라쥬 길드와 피그몽들은 왁자지껄하면서 지들 나름대로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정말 피곤하다, 쉬익!”
“정말이지 대단한 전투였어!”
“난 세일, 세이, 세삼, 세사가 얼마나 걱정되었는지 몰라요.”
파티원들이 하는 소리였다.
근데 이것들은 힐링해 주고 포션 나눠 주는 일밖에는 한 게 없는 것 같은데…….
특히 세영이 이 녀석은 지금 뭐라는 거야? 게임 속에서 다쳐 봤자 로그아웃되기밖에 더하겠냐고.
“자, 니들은 지금부터 할 일이 있다.”
“무엇이라고, 쉬익! 우리는 쉬지도 못 하냐, 쉬익!”
‘입 닥치고 잘 들어라. 란슬링 너는 사망자와 부상자 현황을 파악해서 내게 보고하고 부상자들은 모두 힐링해 줘라. 그리고 다쓰 너는 부대원들 무기 잃어버린 거 체크해서 내게 보고해.”
“저는요, 오빠?”
세영이가 빤히 날 바라보는군.
“너? 너는 그냥 가서 쉬든지 놀든지 알아서 하렴. 나한테 일일이 물어볼 거 없다.”
“…….”
“아니, 왜 갑자기 나를 째려보냐?”
“어쩐지 오빠가 나를 왕따시키는 거 같으니까 그러죠!”
“임마, 그러면 내가 널 왕따하기 전에 니가 나한테 잘하면 되잖아!”
“아, 그래요? 그럼 오빠가 지금 날 왕따를 하고 있긴 하다는 말이네요.”
허걱!
걸려들었다.
하지만 나는 애써 태연을 가장했다.
“왕따는 무슨. 어쨌거나 난 바쁘니까 말 걸지 마라. 내 막사에서 쉬어야겠으니까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해!”
“아무도요?”
“그래, 설령 마토스의 투르펜 국왕이 와도 들여보내 주지 마라.”
“알았어요.”



Part 3. 드디어 만난 재경이(1)


“투르펜이 두 번이나 왔다 그냥 돌아갔다고?”
“네……. 중요한 일이 있으니 이야기 좀 하자고 했는데…….”
“그냥 돌려보냈다고?”
“아, 오빠가 그렇게 하랬잖아요!”
내 말에 세영이 핏대가 오르는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근데 이 자식이 갈수록 성격이 고약해지는군.
여자면 여자답게 좀 다소곳한 데가 있어야 할 거 아니냐고.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더 갈구어 봐야 더 악만 쓰겠지.
그때 케브라가 입을 열었다.
“제가 잘 이야기했습니다. 우영 님께서는 마토스 군의 성의 없는 도움 때문에 적진 속에 고립되어 외롭게 싸우다가 부상을 당해 치료 중이니 지금은 방해하지 말고 그냥 돌아가 주셨으면 한다고 말이죠.”
음, 그거 말 잘했다.
그렇게 말을 해야 저 아무 생각 없는 투르펜도 조금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나와 우리 부대에게 조금이라도 신경을 쓰겠지.
그냥 세영이 이 자식처럼 한 나라의 왕을 무조건 돌려보내면 되느냐고.
“엇! 오빠, 지금 나와 케브라를 번갈아 보면서 케브라는 칭찬하는 표정이고 나한테는 한심하다는 눈빛을 던지는 이유가 뭐죠?”
“정말로 몰라서 묻는 거니?”
“아니, 알 것 같긴 한데……. 그러면 나한테 그렇게 말하라고 미리 귀띔했으면 되잖아요!”
“됐다, 됐어. 더 말해 봐야 입만 아프지. 케브라, 투르펜이 다른 이야기는 안 했냐?”
“네……. 다만 우영 님이 알아야 될 매우 중요한 정보가 있다는 이야기만 했습니다. 눈치를 보아하니 거짓말 같지는 않았구요.”
“뭔 정보인지는 몰라도 본인 입으로 그리 말했다면 중요한 정보겠지. 투르펜은 거짓말을 할 능력이 아예 안 되는 인물이니까. 알았다. 좌우간 가서 만나 봐야겠군.”

“오, 우영! 어서 오시구려. 어제의 전투에서는 정말 수고가 많았소!”
투르펜의 거처에는 투르펜과 랑케, 조핀만이 있었다.
투르펜은 내가 들어서자 나를 껴안을 듯 환영의 뜻을 표했다.
하지만 나는 짐짓 삐친 척을 했다.
“국왕 전하, 웬만하면 이런 말 안 하려고 했습니다만, 정말 외로워서 혼났습니다. 마토스 군이 저를 도울 의향이 별로 없는 가운데서 싸우느라 하마터면 제 목이 달아날 뻔했지 뭡니까?”
“…….”
내 말에 투르펜은 당황한 표정이 되었고, 랑케는 민망한 듯 얼굴을 붉혔다.
“아니, 그건 과장의 말씀이군요. 우영 님처럼 유능한 분의 목이 왜 달아나겠습니까. 어쨌거나 앞으로의 전투에서는 어제와 같은 일이 없도록 각별히 주의하겠습니다.”
랑케가 고개를 숙이며 하는 말이었으나 나는 퉁명스런 표정을 지었다.
여전히 삐친 척을 해야 알아서 날 모실 테니까 말이지.
투르펜은 슬며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사실은 뜻밖의 일이 있어서 그대를 불렀소만…….”
“…….”
나는 말없이 투르펜을 마주 보았다. 좀 심각한 표정인 거 보니 중대한 일이 생긴 건가 보다.
“혹시, 가뎀 군의 블랙 파운딩 기사단의 단장과 안면이 있으시오?”
“네? 제가요? 천만에요.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인데요? 어저께 전장에서 일대일로 붙을 뻔하긴 했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렇소?”
내 말에 투르펜과 랑케는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갸웃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