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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5권(106화)
Part 3. 드디어 만난 재경이(2)


“근데 왜 그런 질문을 하시는지요?”
“제가 전하 대신 말씀드리죠. 사실 블랙 파운딩 기사단장이 은밀히 우리에게 밀서를 보냈습니다.”
“그런가요? 어떤 내용인데요?”
“우영 님과 몰래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
음, 이거 확실히 놀라운 뉴스로군.
투르펜이 중대한 일이라고 말하는 게 이해가 되는군.
“그래서……. 우린 이걸 어찌해야 하니 고민 중이었소. 어쩌면 가뎀 측에서는 우영 그대를 만나고 싶다고 하면서 사실은 함정을 파고 기다릴지도 모르니 블랙 파운딩 기사단장의 청을 쉽게 들어줄 수도 없고…….”
투르펜이 고민스레 말하자 랑케가 말을 받았다.
“그렇다고 쉽게 거부할 수도 없는 일이죠. 블랙 파운딩 기사단장은 아무도 모르게 우영 님을 만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그가 우영 님께 무슨 이야기를 할진 몰라도 어쩌면 우리 마토스에 나쁘지 않은 일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쩝, 이걸 어쩐다?
확실히 어떻게 해야 할지 쉽사리 판단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그가 나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다면 확실히 지금의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이게 함정이라면…….

침묵이 한 10분 정도 실내에 감돌았다.
투르펜도 랑케도 말없이 나만 바라보았다.
어쩔 수 없겠지. 이건 전적으로 내가 결단을 내려야만 할 일이니까.
설사 함정이래도 최악의 경우 로그아웃당하면 그뿐이니까.
물론 더 최악의 경우에는 다시 로그인해도 계속 동일한 장소에만 재접속하게 되는 감옥에 갇힐 수도 있다.
그러면 지금의 캐릭을 말소하고 다시 처음부터 게임을 해야 하는 끔찍한 꼴을 당할 수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런 위험부담을 무릅쓰고라도 그 블랙 파운딩 기사단장을 만나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나는 한참 더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자를 만나 보죠 뭐.”
“그렇게…… 하시겠소?”
“위험하진 않겠습니까?”
“위험부담이 없을 수 없지만 그걸 감수하고서라도 초대에 응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내 말에 랑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우영 님의 의향이 그러시다면 그자에게 답신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투르펜은 은근히 기대하는 눈빛을 던지며 입을 열었다.
“만나거든 얘기를 잘 해 보시구려. 어쩌면 그자가 블랙 파운딩 기사단을 이끌고 우리 마토스에 귀순하려고 그러는 건지도 모르는 일이니.”
“…….”
“…….”
투르펜의 말에 나와 랑케는 동시에 벙 찌고 말았다.
병력도 훨씬 많고, 전황도 유리하고, 전장도 가뎀의 본국이 아닌 원래 마토스 땅이었던 곳이고……. 모든 조건이 월등히 좋은 가뎀의 기사단이 뭣 때문에 마토스에 귀순을 하겠냔 거다.
이렇게 대책 없이 머리가 안 돌아가니까 나라를 잃고 이러고 있지.
그렇다고 명색이 국왕인 사람을 타박 줄 수도 없는 노릇이라 나는 한마디를 남기고 그곳을 나갔다.
“제 막사로 가 있을 테니 블랙 파운딩 기사단장의 답신이 오거든 즉시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가서 만날 테니.”

저벅저벅!
음산한 동굴 속에 내 발자국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손에 들고 있는 등잔불에 비친 내 그림자가 한 걸음 뗄 때마다 동굴의 벽에 어른거렸다.
이곳은 가뎀과 마토스 양국이 팽팽히 대치하고 있는 전장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산속의 동굴이다.
투르펜, 그리고 랑케를 만나고 내 막사로 돌아온 지 여섯 시간 뒤, 블랙 파운딩 기사단장의 답신이 도착했다는 것이다.
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가 아니고 무기는 싸고 가벼운 철검 하나만 달랑 허리에 차고 혼자서 약속 장소인 이 동굴로 온 거다.
왜 메이스를 안 가지고 왔냐고?
아, 몰라서 물어?
만약 이게 함정이라면 메이스를 갖고 있어도 소용없다고.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는 거지.
블랙 파운딩 기사단장은 답신에서, 나 혼자만 이곳에 와야 하며 동행이 있을 경우 약속은 무효가 된다고 말했거든.
나 혼자라면 메이스를 가지고 있어도 함정이나 매복에 당할 테니 그거 떨궈서 남 좋은 일 시켜 주느니 아예 안 갖고 오는 게 낫단 거지.
그래서 오기 전에 세영이한테 잘 맡겨 놨고 말이지.
그리고 이게 만약 함정이 아니라면 어차피 무기는 필요 없는 거고.
어쨌건 난 좀 더 동굴 안쪽으로 깊숙이 걸어 들어갔다.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차피 여기까지 온 거 돌아갈 수도 없다.
나는 애써 마음을 다잡으면서 성큼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어둠은 더욱 짙어지고 천장에서 물방울이 가볍게 떨어지는 소리가 간혹 들려왔다.
내가 들고 있는 등잔불에 놀란 박쥐 떼들이 후두둑 날아서 내 머리 위를 지나갔다.
“…….”
난 걸음을 멈췄다.
등잔불에 드리워진 긴 그림자가 내 것 말고도 하나 더 나타났기 때문이다.
동굴 한쪽의 작은 연못 옆의 바위에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검은 갑옷에 투구를 쓰고 다리를 꼬고 시건방지게 앉아 있는 저자는 바로 어저께 전투에서 나와 싸우지 않고 가뎀 군을 퇴각시켰던 블랙 파운딩 기사단장이다.
근데 어째 이상하네.
갑옷이야 항상 입고 다니는 거니 그렇다 쳐도 어째서 투구까지 쓰고 있는 거지? 얼굴도 안 보이게 말이야.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나하고 한번 일대일로 맞짱 떠 보자고 할 작정인가?
근데 이왕 일대일 할 거면 어제 하지 않고 왜 하필 이런 곳에서……. 혹시 나한테 져서 개쪽당할까 봐 그것 때문에 이곳에서 한판하자는 걸까?
난 오만 가지 상상을 다 하면서 그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엇!
근데 저 자세는…….
짝다리를 짚으면서, 고개를 왼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여 거만하고 재수 없게 사람을 보는 저 태도는…… 아주 많이 봐 왔던 모습인데…….
이거 혹시…….
설마…….
설마…….
설마…….
“너 혹시…….”
“삼촌, 오랜만이네?”
“…….”
난 하도 기가 막혀서 말을 잇지 못했다.
전나세!
아니, 재경이, 재경이다!
바로 재경이라고!!
블랙 파운딩 기사단장은 바로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조카 재경이인 거다.
어떻게 해서든 재경이를 찾아내려고 이 게임을 시작했고 게임 속에서 별의별 일을 다 겪으며 긴 여정을 걸어왔다.
그런데 이렇게 뜻밖이고 황당스럽게 요 녀석을 만나게 되다니.
반가움과 괘씸함, 허탈함과 드디어 재경이를 찾아냈다는 성취감이 뒤섞여서 급격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나를 피곤하게 했다.
“재경이, 너…….”
“삼촌, 나 오랜만에 보니 반갑지?”
“…….”
덥석!
“엇, 뭐야? 왜 이래?”
“왜 이러냐고? 이노무 자식!”
두다다다다! 퍼퍼퍼퍽!
“아악! 이거 뭐야? 왜 갑자기 날 두들겨 패고 지랄이야! 오랜만에 만났으면 인사부터 해야 할 거 아냐! 삼촌은 어째 그렇게 예의가 없어!”
“뭐가 어째? 예의가 어쨌다고? 야, 이놈의 자식아! 지금 내가 널 안 두들겨 패게 됐냐? 너 때문에 형님, 형수가 얼마나 맘고생이 심한지 아냐? 이자슥! 게임을 해도 적당히 해야지. 게임하려고 현실 생활은 끊어 버리고 여기서 계속 이 지랄이냐! 그리고 오랜만에 만났으면 인사부터 해야지 예의 아니냐고? 이 자슥아! 그게 조카란 놈이 삼촌한테 할 말이냐? 어디다 대고 예의를 찾고 자빠졌냐? 오냐, 잘됐다. 너 오늘 삼촌한테 한번 제대로 맞아 봐라! 그동안 너 찾느라고 개고생한 거 생각하면 아직도 이가 갈린다, 이노무 자슥!”
“아악! 그만 못 때려? 도대체 언제나 되야 삼촌은 철이 들 거야? 현실에서 그렇더니 게임 속에서까지 성격이 이렇게 지랄 같은 거야!”
“이 자슥이……. 그래도!”
두다다다다! 퍼퍼퍼퍼퍼퍼퍽!
난 그동안의 울분과 울화통, 짜증과 괘씸함을 모두 주먹과 발에 집어넣어 원 없이 재경이를 구타했다.
재경이는 제법 반항하려고 했지만 나는 그 틈을 주지 않고 공갈 협박과 함께 형과 형수한테 니가 개겼다고 꼰지른다고 겁을 주면서 신나게 두들겨 패 줬다.
“…….”
30분쯤 지나니까 슬슬 때리는 데 피로가 와서 구타를 멈추고 재경이를 째리며 말했다.
“그리고 짜샤, 오랜만에 삼촌을 만나는데 그 투구는 왜 쓰고 자빠졌냐? 빨랑 투구 안 벗냐?”
“칫! 투구 쓰건 말건 뭔 상관이라고…….”
“뭣! 너 계속 맞고잡냐?”
내가 을러대자 재경이 놈은 마지못한 듯 투구를 벗었다.
“…….”
변한 거 없이 그대로군.
보기만 해도 짜증이 치솟고, 쥐어박고 싶은 충동이 솟구치는 저 얼굴.
차라리 못생겼으면 동정심이라도 갈 텐데 뺀들뺀들한 저 인상에 그러니 백배는 더 얄미운 용모다.
난 더 이상의 개김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온몸 가득 뿜어내며 녀석에게 물었다.
“어디 물어보자. 너 도대체 뭘 믿고 현실로 안 돌아오고 니 멋대로 이곳에서 게임을 계속하고 있었던 거냐? 이유가 뭐냐고?”
“쳇, 이유는 무슨. 그냥 이 게임이 재밌으니까 그랬던 거지.”
“뭐가 어째! 야, 임마! 엄마하고 아빠가 너 땜에 얼마나 걱정할진 생각도 안 했냐? 처음엔 니가 식물인간 된 줄 알고 얼마나 울었는지 아냐고!”
“…….”
내가 언성을 높이자 재경이 녀석은 약간 후회하는 빛이 보였다.
그러나 그건 아주 잠깐이었다. 녀석은 이내 얼굴빛을 태연히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내가 멀쩡한 거 확인했으니까 삼촌이 로그아웃해서 아빠, 엄마한테 말해 주면 되잖아. 이 속에서 게임 열심히 잘하고 있다고! 그러니까 아무 걱정할 것 없다고.”
“아니, 근데 이 자식이 지금 뭐래는 거야? 그걸 왜 내가 말하는데? 니가 로그아웃해서 말씀드려. 깨어나서 아빠하고 엄마 안심시켜 드리란 말이야. 그리고 그 다음에 게임을 해도 하라고.”
“헹! 웃기고 있네!”
“아니, 뭐야?”
내가 또 화를 내려 하자 재경이 녀석은 손을 내밀어 날 말리는 시늉을 하며 말을 이었다.
“삼촌도 생각을 해 봐. 내가 여기서 로그아웃하고 현실로 돌아가서 아빠, 엄마를 보면, 이 게임하게 놔둘 거 같아? 아마 지금도 엄청 열 받았을 테니까 현실로 나가자마자 얼씨구나 하고 게임기 박살내 버리고 두 번 다시 게임 못하고 공부만 하게 만들걸? 내가 그걸 모를 것 같아?”
“…….”
녀석의 말에 난 할 말이 없었다.
사실 비슷한 일이 옛날에도 있긴 했다.
재경이 녀석이 게임에 심하게 몰두할 때, 그걸 참다못한 형과 형수가 극약 처방을 쓰곤 했던 거다.
그때 다시 게임을 할 수 있었던 건, 재경이 녀석이 성적이 급속하게 오르거나 해서 형과 형수를 만족시켜 주었을 때 보상으로 주어지곤 했던 거다.
그래서 재경이 녀석의 머릿속에는 지 부모가 자신한테 아무 대가 없이 제대로 게임을 하게 해 주는 상황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는 게 단단히 각인되어 있었다.
지금 재경이 녀석의 학교 성적은 엄청 떨어져 있을 테니 아마 현실로 돌아가면 한 1년간은 게임을 할 수 없겠지. 형과 형수가 절대로 게임을 계속하도록 해 주지 않을 테니까.
“얌마, 너 그러면 정말로 로그아웃해서 현실로 안 돌아갈 거냐? 계속 여기서 이러고 있을 거냐고.”
“당연하잖아! 내가 계속 여기 있으면 아빠, 엄만 나한테 탈이 생길까 봐 내가 부착한 헤드셋을 강제로 못 벗기니까 계속 게임할 수 있잖아. 내가 지금까지 여기서 이루어 놓은 게 얼마나 많은지 알아? 게임을 중지하면 나한테 얼마나 큰 손해가 생기는지 아냐고? 삼촌 같으면 아깝지 않겠어?”
“…….”